LOGIN청우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지설 씨 남자친구분, 메시지를 바로 답장하지 않잖아요. 게다가 지설 씨가 부탁한 일도 바로 해 주러 움직이지 않았고요.”“이건 점수 많이 깎이는 부분이에요. 지설 씨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해요. 남자친구분이 정말 지설 씨를 제일 먼저 생각하는지요.”지설은 잠시 뭐라고 할지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사실 남자친구도 많이 바빠요. 메시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도 있고요.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지설 씨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요?”청우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지설 씨는 남자친구에게 바라는 기준이 너무 낮아요. 상대가 돈이 많고 잘생겼다고 해서 기준까지 낮추면 안 돼요.”“여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자기 자신을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지, 자신을 서운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지설이 조용히 말했다.“남자친구는 저한테 잘해 줘요. 사실 저는 사랑도 서로 주고받는 거라고 생각해요.”“No, No, No. 그건 아니에요. 남자는 여자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연애 상대로는 많이 부족한 거예요.”청우는 차분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결혼이나 연애에서 여자가 감당하는 건 언제나 남자보다 많아요. 예를 들면 여자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할 수 있고, 나중에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몸에 상처가 남아요.”“또 취업할 때 회사가 여자에게 묻잖아요. 언제 결혼할 거냐, 언제 아이를 낳을 거냐고요. 기혼이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 여자를 꺼리는 회사도 많고요. 남자가 취업할 때 이런 질문을 받나요?”“게다가 많은 남자들은 여자를 물건처럼 평가하면서, 여자가 결혼할 때 집이나 차를 바라는 건 이기적이라고 말하죠.”“하지만 여자가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면, 남자가 아내 집으로 들어가 살면서 집안일하고 아이를 돌보고 장인어른과 장모님 노후까지 책임지겠다고 할까요? 남자들이 과연 그렇게 하려고 할까요?”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원장님 말이 맞아요. 그래도 요즘 결혼은
“이런 건 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이고요. 그다음은 내적 조건이죠.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아야 하고, 바람도 안 피워야 하고...”“이상한 식으로 여자들이랑 가볍게 연락 주고받는 일도 없어야 하고, 가정적이어야 하고, 책임감도 있어야 하고, 아내 기분도 잘 풀어줄 줄 알아야 하고요...”지설은 청우가 결혼 상대 조건을 하나하나 늘어놓는 걸 듣다가 잠깐 멈칫했다.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원장님은 본인이 뭘 원하는지 정말 분명하시네요. 그건 좋은 것 같아요.”그런데 청우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그런 남자가 없어요. 제 기준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저는 그냥 당연한 걸 말하는 건데, 주변에서는 자꾸 남자보는 제 눈이 너무 높다고 해요. 근데 제 기준이 어디가 높죠? 아무튼 저는 그런 사람 아니면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할 거예요.”지설은 궁금해서 물었다.“원장님처럼 조건도 좋고 능력도 있는 분이면, 기준에 맞는 남자들이 아예 없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청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예전에 비슷한 사람은 있긴 있었어요. 근데 막상 만나 보면 결국 어딘가 하나씩 걸리더라고요.”“어떤 사람은 일이 너무 바빠서 저를 제때 챙겨 주지도 못하고,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지도 못했어요.”“저는 요리 못하는 남자도 별로예요. 그 정도는 기본 아닌가요? 그 쉬운 걸 안 배운다는 건, 나중에 다 저더러 하라는 뜻처럼 느껴지거든요.”“또 어떤 사람은 말이 너무 번지르르해서 가벼워 보였어요. 그런 스타일은 나중에 바람피울까 봐 불안하고요.”“또 어떤 사람은 본인 자체는 괜찮았는데, 집안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결혼은 결국 두 집안이 엮이는 거잖아요. 저는 상대 가족까지 제가 돌보며 살아야 하는 상황은 싫거든요.”“저는 작은 흠도 잘 못 넘기는 편이에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그걸 모르는 척하고 같이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직도 완벽한 남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지설은 말문
윤항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었다.“많이 놀랐어요? 그렇다고 제가 지설 씨 따라온 건 아니에요. 저 H시 사람이거든요. 집에 가려고 비행기 타는 게 뭐가 이상해요?”지설이 물었다.“그럼 왜 일등석 안 타셨어요?”지설은 이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믿지 않았다.윤항은 턱을 쓸며 태연하게 말했다.“일등석은 질릴 만큼 타 봤어요. 가끔은 이코노미석도 타 보고 싶을 수 있잖아요. 안 돼요?”지설은 잠깐 생각하다가 결국 선을 그었다.“진윤항 씨가 아직도 저한테 마음이 있으면, 그건 접으세요. 저 남자친구 있어요.”“알죠. B시의 기씨 가문 둘째 아들이잖아요. 근데 뭐, 지설 씨가 한 번 다른 사람을 받아들였으면 나중엔 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거 아닌가요?”“제가 그 사람보다 못한 것도 아닌데요. 전 그냥 지설 씨가 헤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되죠.” 윤항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지설은 더는 윤항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안대를 꺼내 쓰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윤항은 지설이 대꾸하지 않자 더 말을 걸지 않았다.그렇게 둘은 별다른 대화 없이 H시까지 왔다.비행기가 H시에 도착하여 내린 뒤에도 지설은 윤항과 따로 인사하지 않았다.지설은 곧장 택시를 잡아 예약해 둔 호텔로 향했다.그런데 프런트에서 신분 확인을 마치고 키를 받으려던 때, 윤항이 또 나타났다.윤항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이것도 참 신기하네요. 저도 여기 묵거든요.”지설은 미간을 좁혔다.“진윤항 씨는 집에 간다면서요?”윤항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부모님이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요. 좀 늦게 들어가려고요.”지설은 더 말 섞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그런데 윤항 방은 지설 바로 옆이었다.윤항은 객실 문을 열기 전에 지설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심심하시면 저를 불러요. 저 시간 많아요. 밤새 얘기해 드릴 수도 있는데.”지설은 정말 한마디하고 싶었다.그런데 윤항은 상대할수록 더 들러붙는 타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근데 그때의 나는 욕심이 너무 컸어. 그런 남자는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 나는 학벌도 괜찮고, 외모도 괜찮고, 아직 어리니까 당연히 돈도 있고 힘도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믿었거든.”“근데 재벌가에 들어가 몇 년 살고 나서야 알았어. 어떤 선택이든 다 대가가 따르더라.”“내 전남편, 진짜 형편없는 사람이었어. 근데 그때 나는 걔가 나 때문에 달라질 수도 있다고 믿었어... 내가 진짜 어리석었지.”진연은 말을 마친 뒤, 지설을 똑바로 보며 진지하게 덧붙였다.“미안해, 지설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예전의 나는 진짜 최악이었어. 너한테 사과 한마디는 꼭 하는 게 맞아.”지설은 웃었다.“사과는 받았어. 근데 그렇다고 너를 용서할 생각은 없어. 친구 하자는 말도 안 할 거고.”진연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겨우 말했다.“지설아, 너 진짜 말 너무 직설적이야. 사람 민망하게 체면도 안 세워 주네.”지설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너도 예전에 나한테 체면 같은 거 안 세워 줬잖아. 됐어, 나도 너랑 더 실랑이하고 싶진 않아. 밥만 먹고 갈게. 진연아, 우리는 성격부터 친구 할 타입이 아니야.”지설은 성격 좋은 사람처럼 다 받아 주는 쪽이 아니었다.오늘 진연을 도운 것도 순전히 시아가 하는 짓이 보기 싫어서였다.진연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너 진짜 끝까지 솔직하네.”지설은 찻잔을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우리 이렇게 오래 앙숙으로 지냈잖아. 예전에 너는 나한테 훨씬 심한 말도 많이 했어. 그러니까 나한테 듣기 좋은 말 기대하진 마.”진연은 그런 지설을 보며 힘없이 웃었다.“예전에 내가 너한테 잘못한 건 맞아.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이렇게 구는 것도 받아들일게. 어쨌든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 네가 계약 잡아 줘서 나 당분간 이 일자리 지킬 수 있게 됐잖아. 진짜 네 덕분이야.”...지설은 H시로 출장을 가기로 했고, 도진이 공항까지 데려다줬다.가는 길에 도진이 말했다.“나도 며칠 뒤에 B시
유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설이 차도 못 사는 사람인 양 비웃었다.그런데 지금은 지설이 이미 차값을 일시불로 결제했고, 정작 유연 자신은 카드에 돈이 없었다.체면이라도 세워 보려는 마음에 유연은 서둘러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영민 휴대폰은 연결되지 않았다.엄마에게 전화할까도 싶었지만, 부모님은 오늘 점심 비행기로 해외여행을 떠났다.지금쯤이면 부모님께 도움받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았다.결국 유연은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빈이 전화받았다.[왜?]유연은 다급하게 말했다.“오빠, 나 차 한 대 사려고 하는데 20억만 좀 보내 줘.”요즘 유연은 유빈이 줬던 창업 자금도 전부 FH그룹에 갖다 넣었다.거기에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유빈에게 계속 돈을 받아 갔다.대부분 영민 때문이었다.유빈은 여동생이 돈을 쓰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래도 남자한테 퍼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유빈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나 속일 생각하지 마. 너 돈 필요하다는 거, 또 부영민 때문이잖아? 유연아, 이제 정신 좀 차려. 네가 그렇게 돈을 쏟아붓는데도 걔가 널 얼마나 챙겨주기나 하냐?][앞으로는 내가 매달 일정 금액만 보낼 거야. 그거 쓰고 나면 끝이야. 더는 안 줘. 그러니까 네가 알아서 그 금액 안에서 맞춰 써.]유빈은 그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유연이 가진 돈은 거의 다 FH그룹 쪽으로 들어갔다.그런데 FH그룹에서 나오는 수익은 유연의 계좌로 들어오지 않았다.결국 지금 유연의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유연은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억울했고, 화도 났다.오빠는 너무 매정했다.영민도 마찬가지였다.전화를 받지도 않는다니.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유연은 더 화가 치밀었다.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그럼 차량은 이번에 안 하실 건가요?”유연은 이를 악물었다.“오늘은 안 살래요. 다음에 와서 결제할게요.”그때 옆에 있던 지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아는 웃으며 말했다.“사모님이 어딜 봐서 그런 사람이랑 비교된다고 그러세요? 제가 먼저 차량부터 보여드리고, 그다음에 VIP 라운지에서 좋은 차도 준비해 드릴게요.”유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지설은 아우디를 꼼꼼히 둘러본 뒤, 직접 잠깐 시승도 해 봤다.타 보니 더 마음에 들었다.지설은 진연에게 말했다.“괜찮다. 이 차로 할게. 나 일시불로 살 거야.”진연은 놀란 눈치였다.“남자친구랑 상의는 안 해도 돼?”진연은 알고 있었다.남자들은 체면 때문에 바깥에서는 자기 여자한테 뭐든 넉넉하게 해 주는 척하기 쉽다.하지만 여자가 정말 비싼 걸 사려고 하면 속으로는 다 따지게 마련이었다.미리 말도 없이 큰돈을 써 버리면, 괜히 남자가 못마땅해할 수도 있었다.지설이 웃었다.“내 돈 쓰는데 왜 그 사람이랑 상의해?”진연의 표정은 복잡해졌다.그러다 끝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도 솔직히 이 계약 잡고 싶어. 근데 너랑 네 남자친구 사이 괜히 불편해질까 봐 그래. 지설아, 오늘 네가 나 편 들어줬잖아. 그래서 나도 솔직하게 말할게... 나 지금 협의이혼 진행 중이야...”“나도 한때는 좋은 집안으로 시집갔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혼생활에서 정말 많이 당했어. 남자 돈이라는 게, 진짜 네 것처럼 보여도 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더라... 주긴 줘도, 그게 네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은 또 아니더라고...”진연은 여전히 지설의 사업도 결국 남자 도움으로 굴러가는 거라고 여기는 눈치였다.지설이 가진 돈 역시 남자가 준 거라고 믿는 듯했다.아마 진연의 생각으로는, 여자가 자기 힘만으로 일을 키워 낸다는 그림 자체가 잘 그려지지 않는 모양이었다.지설은 차분하게 말했다.“오해야, 진연아. 이 돈은 다 내가 번 돈이야. 도진 씨랑은 상관없어. 내가 번 돈을 어디에 쓸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진연은 쉽게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지설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내가 사업하면서 그 사람 도움을 아예 안 받은 건 아니야.
지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듯,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천천히 내려 보였다.하얗고 고운 얼굴은 군데군데 붉게 부어올라 있었고, 뺨에는 손자국이 어른거렸다.그리고 지설은 턱을 들어 올려, 목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두 줄의 시퍼런 손자국을 그대로 보여주었다.“엄마, 똑바로 떠서 봐봐. 이게 다 부영민이 어젯밤 술 처먹고 한 짓이야! 이렇게 갑자기 미쳐서 사람을 패는 남자랑... 어떻게 다시 살라는 거야? 이걸 보고도 재혼하라는 말이 나와?”목소리는 갈라
지설의 두 손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이마에는 진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안에서부터 밀려오는 공포는 마치 제방이 무너진 물결처럼 삽시간에 번져나가 지설을 완전히 집어삼켰다.지설은 결국 바닥에 쪼그려 앉아 두 팔로 머리를 감싸안고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은화가 우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금방 연결되었고, 우란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은화야.”은화는 급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란아, 내가 아까부터 계속 지설 씨한테 전화하고 있는데... 전화를 전혀 안 받아. 너 지금 아직 우리 건물 안에
도환은 동생의 신호 따위 전혀 못 알아챈 듯, 오히려 싱긋 웃으며 예린에게 말을 건넸다.“예린아,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네 눈엔 여전히 이 답답한 도진이만 보이니...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도대체 도진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냐?”그 말에 예린의 얼굴이 순간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 살짝 고개를 돌리더니, 곧바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불렀다.“도환 오빠!!”이내 마치 도진을 두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재빨리 말을 보탰다.“도진 오빠는 전혀 답답한 사람 아니야!”그 목소리에는 도진을 지켜 주고
지설의 원래부터 차가운 얼굴은 지금 이 순간 더 깊은 서릿발이 내려앉은 듯 한층 더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그리고 눈빛에서는 얼음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지설은 천천히 턱을 들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제 사생활이 어떤지는, 구예린 씨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다른 중요한 일 없으면, 지금 당장 제 눈앞에서 사라져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예린의 가슴속에서 분노가 활활 치솟았다.예린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무 표정도 없는 지설의 얼굴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심지설 이 X... 대체 얼굴이 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