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산 중턱쯤 올랐을 때, 아정은 결국 힘이 빠졌다.평소에 운동하는 편도 아니었고, 해비는 워낙 에너지가 넘쳤다. 네 개의 짧은 다리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해비를 따라다니다 보니, 아정은 끝내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아정은 산길 옆 정자의 나무 의자에 털썩 앉아 민석을 바라보았다.민석은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평소의 반듯한 쓰리피스 정장과는 달리 한결 편안해 보였고, 그래서인지 몇 살은 어려 보였다.상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민석은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여유로웠다.아정이 물었다.“유 대표님은 안 힘들어요?”심지어 민석의 품에는 허니까지 안겨 있었다.민석은 허니를 어깨 쪽에 올려 안고, 해비의 리드줄을 손목에 몇 번 감아 고정했다. 그러고는 보온병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어 아정에게 건넸다.아정은 땀도 났고 몸도 더웠다.“저는 좀 시원한 물 마시고 싶은데요.”“안 돼.” 민석이 말했다. “미지근한 물이야. 많이 뜨겁지 않아. 지금 찬물 마시면 배 아플 수 있어.”“유 대표님은 참 이것저것 많이 챙기네요.”아정은 목이 말라 결국 보온병을 받아 몇 모금 마셨다.물은 정말 미지근했다. 아정이 생각했던 것처럼 뜨겁지 않았다.목으로 넘어가는 온도가 딱 좋았다.아정은 물을 마신 뒤 보온병을 민석에게 돌려주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저랑 같은 컵 쓰면 안 돼요. 제가 모를 줄 알아요? 그거 간접 키스잖아요.”민석은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어서 웃었다.“안 그래.”그런데 아정이 먼저 그렇게 말하고 나니, 민석의 마음 한쪽이 괜히 흔들렸다.묘한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지난번 두 사람의 입술이 살짝 닿았을 때, 아정은 그걸 키스라고 했다.민석은 오래전부터 아정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진짜 키스가 어떤 것인지.하지만 아정은 더 이상 그런 틈을 주지 않았다.아정은 마음이 맑고 단순했다. 하루 종일 놀 생각을 하거나, 해비와 허니를 돌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아정의 머릿속에는 그런 야한 생각이 조금도 들어
은혁이 민석을 흘겨보았다.“내가 괜히 네 일에 신경 썼지. 필요할 때만 찾고, 끝나니까 바로 태도 바꾸는 놈.”그 말을 남기고 은혁은 그대로 자리를 떴다.민석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3년의 시간을 벌었으니까.뭐가 됐든 민준이라는 관문은 넘은 셈이었다.물론 민석도 알았다. 가장 중요한 건 아정이 자신을 사랑하게 하는 일이었다.아정이 전에 장난처럼 두 사람이 함께하자는 말을 꺼내긴 했지만, 그건 진심이라기보다는 가벼운 말에 가까웠다.아정은 아직 사랑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민석은 이 일이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어쩌면 유일한 난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민석은 먼저 아정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그건 민석의 평생 행복이 걸린 일이었다.민준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정은 여전히 거실 소파에 웅크리고 있었다.아정의 고급 아파트에는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해비와 허니를 사각지대 없이 살필 수 있었다.시터가 곁에 있긴 했지만, 아정이 집을 비우면 두 아이는 조금 불안해했다.그래서 아정은 CCTV 화면을 보며 해비와 허니에게 말을 걸고, 달래 주고 있었다.민준이 돌아온 걸 보고 아정이 물었다.“오빠, 형부랑 나가서 뭐 했어?”“일이 좀 있었어.”민준은 아정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너는 왜 아직 방에 안 들어갔어?”“이제 들어가려고.”아정이 소파에서 내려왔다.“무슨 일인데? 오빠랑 형부 사이에 나한테 말 못 할 비밀이라도 생겼어?”“일 얘기야.” 민준이 물었다. “왜, 내 일에 관심 있어? 그럼 내가 설명해 줄게.”“아니, 됐어.”아정은 듣기만 해도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일은 오빠 일이지. 나한테 넘길 생각 하지도 마.”민준이 아정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알았어. 얼른 가서 쉬어.”아정은 민준에게 잘 자라고 인사한 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핸드폰이 울렸다. 민석에게서 온 메시지였다.민석이 물었다.[오늘 애들 얌전히 있었어?]다른 질문이었다면 아정은 기분을 보고 답장을 할지 말지
민석이 말했다.“그렇다면... 저한테 3년만 시간을 주십시오.”“3년은 너무 깁니다.” 민준이 말했다. “3년이나 걸려야 아정이가 유 대표를 사랑하게 된다면, 저는 유 대표도 딱 그 정도 사람이라고 생각할 겁니다.”“3년이라는 시간이 아정이가 저를 봐 주게 만드는 데만 필요한 건 아닙니다.” 민석이 말했다. “저 역시 한 사람에게만 충실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3년의 시험 기간.그 말은 앞으로 3년 동안 민석이 아정만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었다.민석 곁에는 다른 여자가 있어서는 안 됐다.여자 문제에 가볍게 처신하며 살아온 남자에게는, 몸까지 묶어 두는 셈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3년이라는 시간은 절대 짧지 않았다.민준이 민석을 바라보았다.“3년 동안 유 대표에게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우리 약속은 없던 일이 됩니다.”민석이 말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민준이 다시 말했다.“물론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전부 헛수고일 수도 있습니다. 아정이가 유 대표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으니까요.”“알고 있습니다.” 민석이 말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3년 뒤에도 아정 씨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제가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하지만 그 3년 동안 제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민준은 한동안 민석을 바라보았다.“사실 유 대표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아정이가 제 동생만 아니었다면 저도 유 대표를 꽤 괜찮은 남자라고 봤을 겁니다. 그런데 왜 아정이 때문에 자신을 그런 틀 안에 가두려고 합니까?”“저한테는 그게 틀이 아닙니다.”민석이 말했다.“저는 아정 씨를 사랑합니다. 아정 씨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아정 씨를 놓치면, 저는 평생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민준이 갑자기 은혁을 바라보았다.“배 서방, 할 말 없어?”갑자기 지목당한 은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은혁은 잘 알고 있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대범해 보이지만, 어떤 때는 누구보다 계산적이라는 것을.애초에 누구 돈이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었다.그래서 민석이 빈손으로 나가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은혁은 저도 모르게 민석을 쳐다보았다.그 눈빛에는 분명히 이런 뜻이 담겨 있었다.‘이 자식, 진심이야?’솔직히 말해 은혁조차도 민석이 평생 아정만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는 못했다.민석은 원래 여자 문제에 가벼운 사람이었다. 여러 여자를 만나며 살아온 민석이 한 여자에게 평생 묶인다는 건 어쩐지 현실감이 떨어졌다.그런데 지금 민석은 자기 전부를 걸고 진심을 내보이고 있었다.하지만 민석이 아무리 진심을 다한다 해도, 민준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민준이 말했다.“우리 구씨 가문은 유 대표 재산, 별로 탐나지 않습니다.”“압니다. 구씨 가문이 돈보다 마음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것도 알고요.” 민석이 말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제가 감히 겸손 떨지 않고 말씀드리면, 제가 예전에 철없이 저지른 일들만 빼면 다른 남자들이 저보다 나은 점이 뭐가 있습니까?”“정말 겸손하진 않으시네요.”“제 결혼을 두고 싸우는 일입니다. 제 평생 행복이 걸려 있는데, 겸손할 수 없습니다.”민준이 말했다.“사실 제가 유 대표와 아정이가 만나는 걸 반대하는 이유에서, 유 대표 본인 문제는 작은 부분입니다.”민석이 의아한 듯 물었다.“그럼 가장 큰 이유는 뭡니까?”“아정이요.”은혁도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처제가 왜요?”“아정이는 유 대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건 인정하셔야죠.”민석은 맥이 빠졌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인정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정 씨가 저를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싫어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합니까?” 민준이 웃었다.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 정도 감정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민석이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은혁이 말했다. “나한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나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하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아정도 은혁에게는 처제 같은 존재였다.집안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는데, 은혁 혼자 민석 편을 들 수는 없었다.나중에 서하가 알면 은혁은 분명히 곤란할 것이다.민석이 말했다.“너도 불편한 거 알아. 대단한 부탁 아니야. 그냥 구 대표만 불러내 줘.”그 정도라면 어렵지 않았다.은혁이 물었다.“언제 만나려고?”“지금.”“지금?”은혁이 시계를 확인했다.“아직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긴 한데, 혹시 약속 있으면 어쩌려고.”“알아봤어. 오늘 저녁 약속 없고, 일찍 집에 들어갔대.”“준비는 다 해 놨네.” 은혁이 말했다. “결국 나 끌어들이려고 판 깐 거잖아.”“도와줄 거야, 말 거야?”은혁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 걸 준비를 했다.“근데 뭐라고 말하지? 네가 만나자고 한다고 바로 말해?”“네가 보고 싶다고 해.” 민석이 말했다. “이유는 아무거나 만들어 내고.”“그럼 나보고 거짓말하라는 거잖아. 난 형님 만나고 싶은 마음 없는데.”민석은 잠시 생각했다. 둘이 짜고 민준을 속여 불러내는 것도 썩 보기 좋은 일은 아니었다.민석이 말했다.“그럼 사실대로 말해. 그래도 네 체면 봐서 구 대표가 나와 주지 않겠어?”은혁이 말했다.“일단 해볼게.”은혁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에야 통화가 연결됐다.민준은 마침 어머니에게 드릴 과일을 손질하고 있었다.아정도 거실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다.집에는 가사도우미가 있었지만, 어머니와 아정은 굳이 민준이 직접 깎은 과일을 먹고 싶다고 했다.민준은 과일 접시를 들고 거실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배 서방?]아정이 고개를 들어 민준을 보았다.‘형부?’‘형부가 왜 오빠한테 전화하지?’하지만 민준은 아정에게 엿들을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과일 접시를 내려놓고 손짓만 한 뒤 서재 쪽으로 걸어갔다.은혁이 말했다.“네, 접니
민석이 아정에게 물었다.“결혼식 힘들지 않았어?”“괜찮았어요!”아정은 오히려 재미있었다. 게다가 아정이 제일 어렸기 때문에, 다들 자연스럽게 챙겨 주었다.“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됐겠네.”“네.” 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저한테 잘해 줬어요.”“그럼... 마음에 드는 남자는 있었어?”민석이 정말 묻고 싶었던 건 바로 그거였다.“다들 괜찮았어요.”“아...”민석이 낮게 대답했다.아정이 민석을 바라보았다.“유 대표님, 질투해요? 저는 그냥 친구로 생각한 거예요. 친구가 되려면 당연히 마음에 들어야 하잖아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랑 누가 친구해요?”“그냥 친구야? 평범한 친구?”아정은 케이크를 먹던 작은 포크를 내려놓았다.“유 대표님, 선 넘는 질문 아니에요?”민석이 서둘러 말했다.“너를 간섭하려는 건 아니야. 그냥...”“그냥 뭐요? 유 대표님도 말 못 하잖아요.” 아정이 말했다.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설령 나중에 사귀게 된다고 해도 저는 누가 저에게 간섭하는 거 싫어요.”“알아.”“알면 됐어요.” 아정이 말했다. “저도 유 대표님 간섭 안 할 거예요. 우리가 만약 집안 사람들 때문에 사귀는 척만 하게 된다면, 그 뒤로는 각자 자유롭게 지내면 돼요. 무슨 뜻인지 알죠?”민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니까 사귀는 사이라도 서로 각자 알아서 지내자는 뜻이야?”“유 대표님은 그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정이 말했다. “저는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가 저를 묶어 두는 것도 싫어요.”“그게 우리가 함께하기 위한 네 조건이라면, 난 받아들일게. 네가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다 받아들일 수 있어.”“알았어요.”아정은 나른한 듯 기지개를 켰다.민석은 애써 시선을 거두었다.민석도 이미 들었다. 이번 선우와 소진의 결혼식에는 신랑 들러리가 몇 명 있었고, 다들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아정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아정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아정을 만나 보고
“응, 알아.”서하가 물었다.“너랑 하 변호사님은 어때?”[그 인간?]소진은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힐끗 봤다.[하루 종일 잔소리야. 진짜 귀찮아 죽겠어.]선우는 옆에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순진한 얼굴을 과장되게 포장한 모습이었다.그 모습에 소진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왜 그렇게 사람을 귀찮게 굴어?”서하가 말했다.“자기 일 다 내려놓고 병원에서 너한테 붙어 지내는 건데, 말 좀 곱게 해.”[아기 절반은 하선우 거잖아.]소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러니까 더 열심이지.]몇 마디 더 이야기
“그럼 배은혁은?”임범철의 말에 서하가 잠시 멈칫했다.“무슨 말씀이세요?”“너희 다시 만나는 거 아니야?”임범철은 더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네가 돈이 없어도, 배은혁은 있잖아.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는데 체면이 무슨 소용이냐? 그 사람한테 돈 달라고 해.”“저희는 다시 만나는 거 아닙니다.”서하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마음속은 복잡했다.‘왜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지.’“제 일은 배은혁과는 상관없어요.”“뭘 그렇게 고집부려?”임범철이 코웃음을 쳤다.“배은혁 조건이 얼마나 좋은데, 어디가 네가 아까워? 이제
서하는 손을 뻗어 벽을 짚고 잠시 숨을 골랐다.머리가 어지러워 바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잠깐 그렇게 서 있다가, 천천히 욕실로 향했다.예상했던 대로였다.거울 속 얼굴은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흰자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피곤함이 얼굴 전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서하는 물로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때, 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욕실 문을 조금 열자 은혁과 눈이 마주쳤다.“깼어?”은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아직 자는 줄 알았어. 그래서 문은 안 두드렸고...”“괜찮아.”서하가 답했다.“어제
수술이 이미 끝나버린 이상, 서하가 뭐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그래도 서하는 잔소리처럼 말했다.“절대 찬물에 손대지 말고, 옷 든든히 입고, 잘 먹어야 해.”“알아, 알아. 다 들을게.”“그럼 하 변호사님한테는 언제 말할 거야?”“이따 내가 바로 메시지 보낼게.”서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하 변호사님... 진짜 많이 화나겠다.”소진은 벌써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쓰고 있었다.서하는 급히 그녀의 손을 눌러 멈췄다.“말 좀 예쁘게 해. 하 변호사님 너무 불쌍해.”소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피식 웃었다.“너 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