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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김하이
다음 날 오전.

현진 바이오테크 대표이사실.

인사팀 직원이 서류를 가져왔다.

“대표님, 오늘 면접 보러 온 지원자들 서류입니다.”

“거기 놔둬. 이따가 회의가 있으니 면접은 참석 못 할 것 같아.”

“네.”

서유준은 회의실로 향하려 몸을 일으키다가 무심코 가장 위에 놓인 이력서에 시선이 멈췄다.

[송하나.]

그 이름을 본 순간 그는 잠시 멈칫했다.

이력서를 건네받고 사진 속 익숙한 얼굴을 보자 서유준의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심지어 약간의 놀라움까지 더해졌다.

그는 장현서의 자랑스러운 제자였고, 송하나보다 몇 살 더 많았다.

유학 시절, 이미 장현서한테서 똑똑하고 재능 있는 제자를 거뒀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녀는 그야말로 천재나 다름없다고 했다.

장현서는 그와의 전화 통화 중 학술적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늘 이 후배에 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녀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교수님이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녀의 소식에 귀 기울였다.

그러다 점차 사진으로만 보았던 이 후배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유학을 마치고 서유준은 망설임 없이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들린 소식은 그녀가 곧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생에 다시는 엮일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녀의 이력서를 받게 된 것이다.

서유준은 즉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오전 회의는 취소하라고 전달해!”

서유준은 면접실로 향했다.

인사팀 직원들은 그를 보고 잠시 놀랐다가 황급히 가운데 자리를 내주었다.

“대표님.”

서유준은 억누르기 힘든 설렘을 애써 참았다.

“시작하지.”

면접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메인 석에 앉아 말없이 지켜보았고, 인사팀 직원이 지원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표님, 아까 그 지원자...”

인사팀 직원이 서유준의 의견을 구했다.

“너희가 알아서 해.”

“네, 알겠습니다.”

“다음 지원자, 송하나 씨.”

마침내 송하나가 면접실 안으로 들어왔고 서유준의 시선은 온통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녀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인사팀 직원이 몇 가지 공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송하나는 4년간 전업주부로 지냈지만, 그 기간에도 꾸준히 책을 읽고 자기 계발을 해왔기에 질문에 막힘없이 답했고 별다른 실수가 없었다.

인사팀 직원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그녀를 돌려보내고 결과를 기다리라고 말하려던 참인데 옆에 있던 서유준이 대뜸 입을 열었다.

“기혼자라고 적었는데.”

그는 왜 갑자기 일하고 싶은 건지 묻고 싶었지만, 인사팀 직원이 그의 의도를 오해하고 방금 질문에 덧붙여서 물었다.

“하나 씨, 저희는 장기적으로 근무할 직원을 찾고 있어요. 혹시 단기간 내에 출산 계획이 있으신가요?”

송하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곧 이혼할 예정이라 출산 계획은 없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서유준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눈가에 스치는 희미한 쓸쓸함을 본 그는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꼈다.

4년간의 결혼 생활에서 그녀는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하나 씨, 상황은 잘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연락 기다리세요.”

“네.”

송하나는 면접실을 나왔다.

서유준에게 있어서 그 뒤의 면접은 무의미한 시간이라 차라리 일찍 자리를 떠버렸다.

송하나의 이혼은 그에게 있어 더 이상 망설일 여지가 없는 기회였다.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통제할 수 없이 솟구쳐 올랐다.

그날 오후.

송하나는 현진 바이오테크 인사팀으로부터 다음 주에 회사에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녀는 이 소식을 교수님께 알렸다.

장현서는 그녀 성격이 겉으로는 온화해 보여도 실은 강단이 있어 분명 자신의 능력으로 면접을 통과했을 것이라 믿었다.

차설아는 송하나가 직장을 구했다는 소식에 매우 기뻐했다. 어떻게든 그녀를 불러내서 제대로 축하해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날 밤.

송하나는 약속대로 미스트라는 바에 도착했다.

화려하게 눈부신 조명과 술렁이는 분위기에 그녀는 약간 어색함을 느꼈다.

“하나야, 여기야 여기!”

차설아가 룸 입구에서 송하나를 향해 손짓했다.

송하나가 막 자리에 앉았을 때, 매니저가 웃통을 깐 남자들을, 아니 호빠 선수들을 줄지어 데리고 들어왔다.

송하나는 이 광경에 깜짝 놀랐다.

“설아 너 지금 뭐한 거니?”

“네가 곧 이혼하는 걸 축하하고, 직장 구한 것도 축하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걸 기념해서 이 언니가 특별히 준비해봤어. 마음에 드는 애 있으면 술 마시는 동안 옆에 두고 놀아.”

송하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녀는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일한 연애 경험은 사춘기 시절 이강우를 좋아했던 것, 그리고 그와 결혼한 게 다였다.

“쟤로 하자.”

차설아는 맨 안쪽에 있는 가장 잘생긴 애를 가리키며 송하나 대신 결정을 내렸다.

그 남자가 송하나의 옆자리에 앉았다.

완벽한 초콜릿 복근이 눈앞에서 흔들거리니 그녀는 차마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어색함을 달랬다.

문득 그 남자가 적극적으로 송하나의 손을 잡으며 그녀에게 눈빛을 보냈다.

“누나, 내 위에 앉아서 마셔요. 복근은 마음대로 만져도 돼요.”

송하나는 깜짝 놀랐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녀는 너무도 어색한 나머지 재빨리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에서 세수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는데 나오다가 실수로 길을 잘못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VIP 구역에 발을 들였다.

그 시각, VIP 룸 안.

이강우가 송태리에게 자신의 소꿉친구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최로운과 심성빈은 어릴 적부터 이강우와 함께 자랐고, 집안 또한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강현시의 유력 인사들이었다.

이강우는 팔을 소파에 걸치고 있었고 송태리는 그의 옆에 앉아 꼭 마치 자연스럽게 품에 안긴 듯한 모습이었다.

최로운이 술잔을 들었다.

“형수님, 한 잔 올리겠습니다.”

“우리 강우는 모임에 여자를 데려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태리 씨가 처음이라니까요.”

송태리는 이강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자꾸 놀리지 말아요. 혹시 오는 여자들마다 이렇게 말해주는 건 아니겠죠?”

“제가 하는 말은 다 사실이에요. 못 믿겠으면 성빈이한테 물어봐요!”

심성빈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강우는 여자한테 가까이하지 않기로 유명하잖아요. 하도 송하나가 수작 부려서 강우한테 결혼을 강요한 거지. 안 그러면 우리 강우 그딴 여자 쳐다도 안 봤을 거예요.”

이 말을 들은 송태리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녀는 신이 나서 손에 든 술을 단숨에 비웠다.

최로운이 또다시 한 잔을 따라주었다.

“태리 씨, 술 정말 잘 드시네요! 자, 한 잔 더 해요!”

이때 이강우가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했다.

“얘 술 약해. 적당히 줘.”

최로운이 옆에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감싸고 도는 거야?”

“고작 두 잔 마셨어. 강우 너 너무 인색한 거 아니야?”

이강우가 송태리의 손에서 술잔을 건네받았다.

“내가 대신 마실게.”

“그건 안 되지!”

최로운이 이강우의 술잔을 다시 송태리에게 넘겼다.

“적어도 러브샷 정도는 해야잖아.”

송태리는 살짝 수줍은 듯 이강우를 바라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마실게요. 대신 이 잔까지 마시면 더 이상 권하지 않기예요.”

“역시 태리 씨가 통쾌하네요!”

송태리와 이강우가 술잔을 높이 들었다.

바로 그때, 송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개를 들자마자 이강우와 송태리가 러브샷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강우는 그녀를 본 순간, 얼굴에 노골적인 혐오감이 떠올랐다.

“네가 여길 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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