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는 저택을 빠져나왔다.긴 복도를 걸었다. 벽에 걸린 초상화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 길게 느껴졌다.깊은 밤이었다.도로는 텅 비어 있었고, 양옆으로 솟은 산들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 검은 실루엣처럼 보였다. 그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쳤다.문을 닫은 상점들.불이 꺼진 집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뿐이었다.복도에서 마주쳤던 그녀의 얼굴.그리고 그녀가 했던 말.우리 이제 모든 걸 끝내야 해요.더는 당신과 연락하고 지낼 수 없어요.그는 애쉬워스가 했던 말도 떠올렸다.그녀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오.프로젝트에.그 비전에.그리고 자신에게도.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든 없든.그는 에어리에 대해 생각했다.아직 그곳에는 그녀의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창가의 난초.그녀가 가져온 몇 벌의 옷.그는 그녀를 만나야 했다.애쉬워스가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그리고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해야 했다.그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거리는 한산했고, 주거용 타워는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솟아 있었다.그는 차를 세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최상층 버튼을 눌렀다.한편, 네리사는 며칠째 새로운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너무 좁거나.너무 비싸거나.회사에서 너무 멀었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매물을 살펴보고 있었다.그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누가 오는지 알았다.그녀는 노트북을 소파 위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베인스가 안으로 들어왔다.그의 시선이 거실 한가운데 서 있는 그녀에게 닿았다.창가에는 여전히 난초가 놓여 있었다.그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시선이 소파 위의 노트북으로 향했다.화면에는 새로운 아파트 매물들이 떠 있었다.그녀가 이곳을 떠날 집을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네리사가 몸을 돌았다.그녀의 눈이 그의 눈을 찾았다.무엇을 확인하려는 건지 밴스는 알 수 없었다.분노일까. 연민일까. 후회일까.그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창백한 얼굴 뒤로 도시의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네리사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어깨가 천천히 내려앉았다.“이 모든 일이 벌어진 뒤에 그런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어이없는 질문인지, 밴스 씨는 알고 있어요?”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까지 달려온 탓에 가슴은 여전히 크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심장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아니요.”네리사가 고개를 저었다.“저는 같이 가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요.”밴스의 어깨가 축 처졌다.예상했던 대답이었다.이미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직접 듣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베인 듯 아팠다.네리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이제 저한테 다시 오지 마세요, 밴스 씨.”그녀의 목소리는 거칠게 떨렸다.“우리, 더는 이렇게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제가 새 아파트를 구할 때까지만 시간을 주세요. 최대한 빨리 나갈게요. 아리에르에서도요.”밴스의 눈이 흔들렸다.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리고 그 안에는 숨기지 못한 실망이 번지고 있었다.“나갈 생각이야?”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얼마든지 있어도 돼.”“불가능해요.”네리사가 고개를 저었다.“그러면 계속 당신과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요.”그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우리는 이제 모든 걸 끝내야 해요. 그러려면 서로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제가 당신을 잊을 수 있어요.”“네리사, 제발—”“안녕히 가세요, 밴스 씨.”그녀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몸을 돌려 걸어갔다.구두 굽이 차가운 보도 위를 두드렸다.딱. 딱. 딱.사람들 사이로 그녀의 모습이 빠르게 멀어졌다.밴스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그저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그리고 주말
밴스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휴대폰은 여전히 귀에 붙어 있었고,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밴스는 네리사를 떠올렸다.자신의 손 안에 들어왔던 그녀의 손.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작은 돌.호숫가에서 함께했던 시간.그리고 아버지의 차가운 목소리까지.그 여자에게서 떨어져라.밴스는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그녀를 직접 만나야 했다.---그날 밤.밴스는 다시 8층으로 올라갔다.늦은 시간이라 대부분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형광등 몇 개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 낡은 카펫이 그의 발소리를 삼켰다.그는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그리고—그녀가 아직 있었다.네리사는 칸막이 안쪽에 앉아 있었다.등을 복도 쪽으로 돌린 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모니터 옆에는 여전히 작은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호숫가에서 가져온 그 돌이었다.밴스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네리사.”그녀의 몸이 아주 잠깐 굳었다.그 목소리를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블랙우드 씨.”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여기 오시면 안 됩니다.”“알아.”밴스는 대답했다.잠시 기다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애쉬워스 회장님에게 연락이 왔어.”그 순간 네리사의 손이 멈췄다.“이번 주말에 저택으로 오라고 하셨어.”밴스가 말을 이었다.“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네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뭔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고 하셨어.”밴스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전화로는 말하지 않겠다고 하더군.”그제야 네리사가 돌아봤다.창백한 얼굴.지쳐 보이는 눈.하지만 그 안에는 이전과 같은 단호함이 남아 있었다.“그럼 가세요.”그녀가 말했다.“프로젝트에 집중하세요.”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저한테 신경 쓰지 말고요.”밴스는 그녀를 바라봤다
아스테라 스파이어 8층은 임원층보다 훨씬 조용했다.유리벽으로 된 사무실도, 전망 좋은 코너 오피스도 없었다. 똑같이 늘어선 칸막이와 낮게 이어지는 대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낡은 회색 카펫 위로 형광등이 희미하게 윙윙거렸다.공기에서는 오래된 커피와 종이 냄새가 났다.밴스는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양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원래라면 이곳에 올 이유가 없었다.공식적인 용무도 없었다.그럼에도 그는 여기까지 왔다.그리고 그녀를 발견했다.네리사는 칸막이 안쪽에 앉아 있었다. 복도를 등진 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머리는 단정하게 뒤로 묶여 있었고, 허리는 꼿꼿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서는 그녀가 더 작아 보였다.마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밀려난 사람처럼.모니터 옆에는 작은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호숫가에서 주워 온 돌이었다.밴스는 단번에 알아봤다.그는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네리사는 그를 보지 못했다.손가락은 아무렇지 않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일하고 있었다.마치 자신의 세계가 무너진 적도 없었던 것처럼.갑작스럽게 부서로 발령받은 적도 없었던 것처럼.다시 자신의 본래 성을 되찾은 적도 없었던 것처럼.마치 이제 밴스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처럼.옆자리 여직원이 고개를 들었다.밴스를 발견한 순간 눈이 커졌다.하지만 곧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시선을 돌렸다.밴스는 더 머물지 않았다.그대로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그날 오후.두 사람은 복도에서 마주쳤다.네리사는 손에 커피잔을 든 채 휴게실로 향하고 있었다.반대편에서는 밴스가 걸어오고 있었다.네리사가 고개를 들었다.그와 눈이 마주쳤다.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네리사는 곧 시선을 피했다.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의 곁을 지나쳤다.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다.어깨가 거의 스칠 듯 가까이 지나갔다.그 순간 밴스의 코끝에 익숙한 향
시간이 흘렀다.해가 지기 시작했고, 도시 곳곳에 하나둘 불빛이 켜졌다.밴스는 목적지도 없이 차를 몰았다.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맴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생각은 끊임없이 네리사에게로 향했다.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차는 펜트하우스 앞에 멈춰 있었다.자신이 살던 곳.그리고 조비가 기다리고 있을 곳.밴스는 차를 세운 뒤에도 한동안 내리지 않았다. 두 손은 여전히 핸들 위에 놓여 있었다.어두워진 밤하늘 아래 펜트하우스의 창문에서는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그는 휴대폰을 확인했다.네리사에게서는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었다.밴스는 다시 메시지 창을 열었다.가장 처음 보냈던 메시지까지 화면을 올렸다.Aerie. PH 70. 오후 7시.그날 네리사는 왔다.그녀는 그곳에 머물렀고, 결국 자신에게 입을 맞췄다.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메시지에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밴스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리고 핸들에 이마를 기댔다.들어가고 싶지 않았다.조비를 보고 싶지도 않았다.그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밴스는 결국 차에서 내렸다.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문이 열렸다.펜트하우스는 조용했다.조비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한 손은 배 위에 얹혀 있었다.밴스가 들어오자 조비가 고개를 들었다.“늦었네.”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소파에 앉지도 않은 채 조비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봤다.“무슨 생각이야?”조비가 눈을 깜빡였다.“뭐?”“네 계획 말이야.”밴스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네리사가 해고되지 않도록 했지. 네 아버지에게 회사에 남겨달라고 했고. 네가 말했잖아. 네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이라고.”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그게 정말 이유야?”조비의 얼굴이 굳었다.“밴스, 나는…….”“진실을 말해.”조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잠시 후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난 네리사가 불쌍했어.
상자 두 개는 크지 않았다.하나는 개인 물품을 담은 상자였고, 다른 하나에는 몇 달 동안 쌓아 온 업무 자료가 들어 있었다.네리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창문.수많은 밤을 지새웠던 책상.그리고 밴스가 프로젝트 호라이즌에 대해 처음 이야기했던 의자.그녀는 첫 번째 상자를 들어 올렸다.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문을 나섰다.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내려갔다.재무 부서.회색 카펫과 베이지색 벽, 가지런히 늘어선 칸막이들.모두 똑같았다.문도 없고, 이름도 없고, 사생활도 없는 공간이었다.날카로운 정장의 여성이 그녀를 맞이했다.“설리번 씨. 저는 마거릿입니다.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네리사는 잠시 멈췄다.설리번.5년 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성이었다.자신을 배신한 남자의 성.그리고 이제 이혼과 함께 벗어던질 이름이었다.“사실…… 지금 이혼 절차를 밟고 있어요.”그녀가 차분하게 말했다.“앞으로는 제게 휘트모어 씨라고 불러주셨으면 합니다.”마거릿이 눈을 깜빡였다.“물론입니다. 휘트모어 씨. 이쪽입니다.”두 사람은 칸막이 사이를 걸었다.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도 들렸다.네리사는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그들은 창가 쪽에 있는 한 칸막이 앞에서 멈췄다.예전 사무실보다 훨씬 작았다.문도 없었다.사생활도 없었다.“여기가 자리입니다.”마거릿이 말했다.“우리 팀 사람들은 괜찮은 편이에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제 사무실로 오세요.”“감사합니다.”마거릿이 자리를 떠났다.네리사는 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낯선 의자였다.텅 빈 책상.꺼진 컴퓨터 화면.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도시는 그대로였다.하지만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네리사는 천천히 짐을 풀었다.레오와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호숫가에서 주워 온 작은 돌.그리고 휘트모어.어머니의 성이자, 결혼하기 전 자신의 이름.그녀는 그 이름을 책상 한쪽에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