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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그대는 아름답다

Author: 쭈의잔상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2 23:21:58

연서는 우성이 내민 핸드폰을 눈 한 번 깜빡이지도 못한 채 바라보았다. 우성은 연서의 옆으로 조금 다가와 사진 앱을 열었다. 손바닥만 한 검은 판 안에 사람의 얼굴과 낯선 옷차림, 길거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들어 있었다. 심지가 타는 냄새도, 기름 냄새도 없이 그렇게도 밝았다.

“어찌...이런 작은 거울 안에 이런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까?”

겨우 입을 뗀 연서의 목소리에는 놀람과 흥분이 동시에 스며 있었다. 우성은 핸드폰을 든 채 연서의 눈치를 살폈다.

“이건 사람들이 먼 훗날 만든 기계예요. 봐봐요.”

우성이 카메라 앱을 열어 셀피 모드로 연서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띵동 소리와 함께 찍힌 사진을 확인한 우성은 곧장 연서에게 보여줬다. 그녀는 눈 깜짝할 새에 그려진 두 사람의 완벽한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서가 혼이 쏙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걸 어찌 사람이 만들었다 하십니까? 더더욱 하늘의 이치나 조화로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연서는 그 안으로 들어갈 듯 화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우성은 어쩐지 우쭐한 기분이 들어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마치 하늘나라를 엿보기라도 하는 듯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빼앗겼다.

한동안 우성은 사진들을 하나둘 넘기며 연서에게 미래의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또다시 남녀유별이라고 꾸짖던 자신의 모습을 까맣게 잊은 채 우성의 옆에 바짝 붙어서 사진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갑자기 우성이 미처 지우지 못한 여자의 사진이 불쑥 나타났다. 화장한 소연의 화려하고 또렷한 얼굴과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칼, 환한 웃음이 현대의 빛 아래에서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우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아...”

그는 급히 화면을 꺼버렸다. 방 안에는 다시 등잔의 노란빛만 남았다. 갑자기 꺼진 화면에 놀란 연서는 아쉬운 표정으로 우성을 바라보았다. 우성은 당황했는지 핸드폰을 다급하게 품 안으로 다시 넣었다.

“그분이 누구시길래 그리 숨기십니까?”

우성은 ‘전 여자 친구’라는 말을 어떻게 조선 사람에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대답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연서는 더더욱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흐음... 그분이 직녀죠?!”

“...예에? ...아니요!”

우성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연서는 화들짝 놀라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쉿, 목소리를 낮추세요! 옆에서 듣겠어요.”

“아니, 그러니까... 직녀가 아니라니까요.”

우성이 목소리를 확 낮추며 말했다. 하지만 연서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그리 꽁꽁 감추시는 걸 보니, 더욱 수상합니다. 게다가 그분의 얼굴이 견우님의 거울에 그리 또렷이 담겨 있는 것이, 역시 보통 사이는 아닌 듯한데요.”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우성이 이마를 짚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더 무슨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우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서는 생각하더니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허나 직녀라기에는... 생각보다 많이 아쉬운 외모네요. 직녀님은 옥황상제의 가장 예쁜 손녀인데 말입니다.”

“...네?”

어이가 없는지 우성이 되물었다.

“솔직히... 직녀님이 그렇게 생긴 줄 알면, 견우직녀 이야기에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을 거예요. 칠석도 조용히 지나갈 테고요.”

그러자 우성이 발끈한 얼굴로 연서에게 말했다.

“아니, 제대로 본 거 맞아요? 얘가 예쁘다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요. 지금도 인플루언서... 아니 되게 유명해요.”

“그럴리가... 다시 보여주세요, 그럼.”

연서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우성이 다시 핸드폰을 꺼내 그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얘가 피부도 하얗고, 응? ...화장도 잘하고, 옷도 잘 입고... 솔직히 어딜 가도 예쁘다는 소리 듣는 사람이에요.”

우성은 괜한 오기를 부리며 아까 그 사진을 찾아 다시 연서에게 들이밀었다. 연서는 다시 사진을 보더니 기가 막힌다는 듯 우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콩깍지도 정도껏이어야지요. 아무리 마음에 품은 여인이라 해도, 추녀를 이리 추켜세우면 듣는 사람이 다 민망한 법입니다.”

“추... 추녀요?”

우성이 황당한 듯 되물었다.

“예. 딱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피부는 좋네.”

“참나... 아니, 전혀요.”

우성은 즉시 잘라 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박에 연서는 그의 얼굴만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성은 그 표정을 읽지 못하고 흥분하며 말했다.

“그리고 사람을 그렇게 막 아쉽다, 추녀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아무리 춘향 씨가 예쁘다 해도 그렇지, 남의 외모를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의 꾸지람에 연서는 순간 입술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귀에 박힌 말은 따로 있었다.

“어? 예...?”

“...네?”

우성은 연서의 질문에 자신의 말을 곱씹었다. 연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남의 외모를 함부로 말하지 마시라고요.”

“아니, 아니. 그 전에요.”

그녀는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우성은 연서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눈빛이 흔들렸다.

“그 전에...? ...춘향 씨가 예쁘다고...”

“제가 예쁘다고요?”

듣고 싶던 말이 나오자 연서는 큰 소리로 되물었다. 우성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등잔불이 흔들렸다. 타는 심지 끝에서 작게 지직 소리가 났다.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잘못 들은 사람처럼 눈만 깜빡였다. 그 큰 눈에 당황과 의심, 믿기 힘든 놀람이 한꺼번에 어렸다.

“...지금 저를 놀리시는 거죠?”

겨우 나온 목소리는 작고 떨렸다. 우성은 이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연서를 바라보았다.

“네? ...제가 춘향 씨를 왜 놀려요? 아니, 제 말의 어느 부분이 놀리는 거 같은지...?”

진지해 보이는 우성의 표정에 연서는 급히 시선을 내렸다. 등잔불에 비친 뺨이 서서히 붉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소맷자락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가슴이 이유 없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민망함을 감추려고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이제 보니, 나리께서는 취향이 참 특이하신가 봅니다. 직녀님의 마르고 뾰족한 얼굴이 예쁘다고 하시질 않나...”

그런 말은 우성도 생전 처음 들었다. 연서의 반응이 이상한 나머지, 하려던 말도 잊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그란 이마와 쌍꺼풀이 진 예쁜 눈, 단정하게 빗어 땋은 머리가 너무나도 잘 어우러졌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춘향과 몽룡의 이야기가 왜 그토록 유명한지 실감이 났다. 우성이 갑자기 연서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연서는 부채질한 숯처럼 달아올랐다.

“이... 이제 그만 주무시지요. 밤이 깊었습니다.”

연서는 서둘러 말을 맺었다. 더 이야기를 이어갔다가는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우성이 눈썹을 구기며 말했다.

“...저 지금 한 숟갈도 못 먹었는데...”

우성의 말에 그녀는 급히 일어났다가 깜짝 놀라 다시 앉았다.

“아... 죄, 죄송합니다! 얼른 드시지요. 저는 어... 자,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우성은 다급하게 도망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방문이 닫히며 등잔불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그는 드디어 조선에서의 첫 식사를 시작했다. 된장 향이 옅게 나는 국이 슴슴하게 우성의 목을 넘어갔다.

혼자서 밥을 먹던 그는 이상했던 연서와의 대화를 계속 되짚어보았다. 소연을 보고 못생겼다고 하질 않나, 자기가 예쁘냐고 되묻질 않나,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흐름이었다.

그러다가 우성은 문득 어릴 때 교과서에서 스쳐 본 옛 그림 속 여인들이 떠올랐다. 둥글고 부드러운 얼굴과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인상. 물론 그림 몇 점만으로 이 시대의 미인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연서가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아...’

우성은 그제야 연서가 소연을 못생겼다고 한 이유와, 예쁘다는 말에 그토록 당황한 까닭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한편, 마당으로 나온 연서는 차가운 밤공기를 깊게 마시며 차오르기 시작한 어린 달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성의 진지한 눈빛과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정말이지, 자신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을 살아생전에 만날 줄이야.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벅찬 마음을 다스리는 데 애를 썼다.

한참 뒤에야 마음을 추스른 연서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어느새 식사를 마친 우성은 빈 그릇을 소반 위에 가지런히 모아 둔 채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마주치자, 연서는 조금 전의 일이 떠오른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불과 요를 꺼내 아랫목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러고는 우성에게 그곳에서 쉬고 있으라 이른 뒤 소반을 들고 방을 나섰다.

인기척을 죽여 부엌으로 간 그녀는 그릇을 말끔히 씻어 엎어 두고, 남은 불씨와 주변까지 정리한 뒤에야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우성은 어느새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낯선 곳에서도 경계할 힘조차 남지 않았는지, 이불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연서는 문가에 선 채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처음 숲에서 보았을 때 처럼 정신없이 누워 있는 그를 눈에 계속 담았다. 그러다 잠든 이의 얼굴을 몰래 살피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민망해져, 얼른 시선을 거두고 문가의 윗목에 자신의 자리를 폈다.

이불 속에 몸을 눕힌 연서는 등을 돌린 채 한동안 눈을 감지 못했다.

---

뎅-

뎅-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가 새벽 공기를 무겁게 울렸다. 연서의 방 안은 아직 어둠이 짙게 남아 있었다. 연서는 등 쪽으로 파고드는 추위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리다가, 곧 따뜻함을 찾아 조금 더 앞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번쩍 눈을 뜬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우성의 품을 파고들다시피 한 채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팔 한쪽이 그녀의 허리께에 걸쳐 있었고, 연서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

연서는 숨도 못 쉬고 얼어붙었다. 간밤의 추위 때문에 자는 동안 서로에게 바짝 붙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다는 것이었다.

“이, 이게 무슨...”

그녀는 다급히 우성을 밀어내 보려 했다. 하지만 여인의 힘으로 축 처진 큰 사내를 떼어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잠든 우성은 거대한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연서는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가는 줄도 모른 채 이를 악물고 다시 그의 가슴을 밀어 보았다.

종소리가 예닐곱 번 울렸을 때, 방문이 열리고 어진이 마당으로 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순간 연서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부엌으로 간 어진이 연서가 없음을 알고 이리로 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깊이 잠든 우성은 품 안의 온기가 빠져나가려 하자, 무의식적으로 팔에 힘을 주었다. 그는 연서를 더 가까이 끌어안으며 오히려 그녀의 노력을 모두 허사로 만들었다. 결국 연서는 발자국 소리가 방문 앞에 멎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어진을 맞이했다.

끼익-

“언니, 아직도 안 일어나... 셨... 어요.......?”

어진의 말끝이 느려졌다. 이불 속에 엉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어진은 너무나도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몇 번이나 눈을 비빈 어진은 마침내 외마디 탄성을 뱉었다.

“...허!”

“어, 어진아, 이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이건 그러니까... 아휴, 좀!”

연서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우성을 발로 차다시피 밀어내고는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뒤늦게 옆구리를 얻어맞은 우성이 “윽—” 하고 짧게 신음하며 눈을 떴다. 버선발로 뛰쳐나온 연서는 추위도 잊은 채 어진의 팔을 붙들었다.

“자다 보니까 추워서, 그러니까... 자는 동안 나도 모르는 새에-”

어진은 아직도 넋이 나간 얼굴로 방 안과 연서를 번갈아 보았다.

“언니... 저도 알 건 다 알아요! 아니기는 뭐가 자꾸 아니시라는 거예요? 어머니한테 다 말씀드릴 거예요.”

“아니, 잠깐만 어진아. 우리는 진짜로 뭐 아무것도 안 했어...!”

연서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우리...? 저도 올해로 열네 살이에요. 알 건 다 안다고요.”

“어진아, 제발. 내가 다 설명할게. 그러니 어머니께는—”

쿵, 끼익-

이른 아침의 소란을 가르며 안방 문이 거칠게 열렸다.

“...뭘 어머니께는 어째?”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세 사람의 몸을 꽁꽁 묶었다. 어느새 금선이 방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막 일어나 옷을 대충 걸쳐 입은 차림이었고, 얼굴은 새벽 이슬을 닮아 차가웠다.

그녀가 신을 신고, 마당으로 발을 내딛고, 연서와 어진에게로 가까이 오는 동안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침내 그녀의 시선이 차례로 연서, 어진, 그리고 방 안의 우성에게까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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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성은 몸을 낮췄고, 금선과 어진이 등에 업힌 연서를 조심스럽게 받아 내렸다. 두 사람이 그녀의 몸을 받치는 사이 우성은 돌아서서 다시 연서를 안았다. 그녀를 요 위에 조심스레 엎어 눕히는 동안, 축 늘어진 팔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연서의 방이 서늘한 것을 느낀 우성이 방바닥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어진 씨는 이 방을 얼른 따뜻하게 해 주세요.”“네!”우성에게 업혀 오면서 체온이 다시 오르긴 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평소보다 차가웠다. 우성의 말에 어진이 다급히 달려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금선은 우성이 어떻게 하려나 싶어 곁에 서 있었다. 우성은 연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금선이 그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시키시면 제가 할 테니, 말씀으로 하시지요.”금선의 제지에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우성은 황급히 손을 뗐다. 금선은 조심스레 연서의 치마를 풀었다. 치마가 연서의 엉덩이 부근을 스치자, 연서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읏…”치마가 벗겨지고, 피로 엉겨붙은 속곳이 드러났다. 참혹한 광경에 우성과 금선은 아연실색했다. 검붉게 말라가는 것을 보니, 그냥 떼어냈다가는 살점까지 함께 뜯길 것이 뻔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우성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어진이 들어와 외쳤다.“아궁이에 불 지폈어요... 으아, 세상에...”그녀가 연서의 상처를 보며 탄식했다. 깊이 생각하던 우성이 금선에게 말했다.“물을 끓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 끓으면 미지근하게 식혀 주시고, 가장 깨끗한 무명천도 몇 장 준비해 주세요.”“상처를 씻으시려는 겁니까?”금선이 되물었다.“예. 붙은 옷부터 충분히 적셔서 떼어내야 합니다. 억지로 당기면 살이 함께 뜯길 수 있어요.”금선은 곧장 어진에게 말했다.“어진이 너는 얼른 물을 올리고, 깨끗한 무명천을 가져오너라.”“네!”어진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우성은 연서의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선용 가위를 발견하고 어진의 뒤를 향해 내밀었다.“이것도 끓는 물에

  • 봄 향기로 수놓다   1-11 공공연한 사사로움

    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방 아전의 큰 외침이 들렸다.“기생 춘향에게 태 10도요!”뒤쪽에서 사령들과 나장들이 분주하게 형벌 기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서가 고개를 들어 부사에게 말했다.“나리, 소녀의 말을 들어주소서. 태형 10도는 부당한 처사이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리자, 형방 아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한낱 관기가 뱉은 무엄한 말에 분노하며 외쳤다.“어허! 어디 그런 망발을 하느냐!”하지만 성 부사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성 부사는 역시 연서에게 묘수가 있었던 것이라 여기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러하냐?”연서의 뒤에 서 있던 기생들이 다시 한 번 긴장하며 떨기 시작했다. 홍란도 식은땀을 흘리며 연서의 반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연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실로 뜻밖이었다.“국휼에 풍류를 즐기고, 사기로서 기생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교방의 질서를 흐트린 죄는 그리 작지 않습니다.”연서의 말에 대청의 모든 사람이 기막힌 표정으로 숨죽였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계속 말했다.“더욱이, 저의 죄가 인정되었음은 제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뜻이 되오니, 태 50도는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그녀의 말은 지난겨울의 추위를 다시 불러온 듯 매섭게 사람들을 얼렸다. 태형 50대라니, 사람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었다.홍란과 그녀의 무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구경꾼들 역시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부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사람, 살려 달라는 사람, 억울하다는 사람만 평생을 봐 온 형방 아전 역시 할 말을 잃은 건 매한가지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성 부사의 마음은 조여 들었다.부사는 품었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의 강렬한 눈빛은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듯, 사사로운 마음에 흔들리는 안의를 정면으로 꾸짖고 있었다. 연서에 대한

  • 봄 향기로 수놓다   1-10 증거는 반드시 진실로 가는가? (1)

    조선에서의 두 번째 밥을 먹던 우성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와 마루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리,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어진의 목소리에 우성이 음식을 빠르게 삼켰다.“네, 들어오세요.”어진이 방문을 열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흰 무명 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앉아서 우성에게 그 상복을 내밀었다. 우성은 젓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옷을 받아 들었다.“이건...”“이것은 언니의 부친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상복입니다. 일단은 이것을 입으시고, 차차 맞는 옷을 구해 보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우성은 옷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겠다는 금선의 의도가 선명했다. 망설이는 우성을 보고 어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십니까?”우성이 어진을 바라보았다.“저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쉽게 섞이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까 어진 씨도 봤겠지만, 저는 조선의 예법이나... 규율, 생활 방식 이런 걸 전혀 알지 못해요. 모두가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그건 그렇죠. 솔직히 지금도 엄청 수상해 보이시는 건 사실이니까요.”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은 애꿎은 옷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진은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다가 다시 말했다.“어쨌든, 어머니의 계획은 이래요. 나리께서... 이 집의 고공(雇工)으로 일해 주시는 거예요.”“...고공?”우성은 처음 듣는 말이라 어진에게 되물었다.“예... 그러니까... 이 집에 함께 기식하시면서 저희의 일손을 도와주시는 거지요.”“머슴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머슴...이 뭐예요?”“아... 머슴은 지금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럼 노비?”“예에-? 노비라뇨, 큰 오해이십니다.”어진이 놀라 손사래까지 쳐 가며 부정했다. 우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그러니까, 어머님이 저한테 일을 시키면 저는 그 일을 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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