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봄 향기로 수놓다 / 1-11 공공연한 사사로움

Share

1-11 공공연한 사사로움

Author: 쭈의잔상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6 09:14:47

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방 아전의 큰 외침이 들렸다.

“기생 춘향에게 태 10도요!”

뒤쪽에서 사령들과 나장들이 분주하게 형벌 기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서가 고개를 들어 부사에게 말했다.

“나리, 소녀의 말을 들어주소서. 태형 10도는 부당한 처사이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리자, 형방 아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한낱 관기가 뱉은 무엄한 말에 분노하며 외쳤다.

“어허! 어디 그런 망발을 하느냐!”

하지만 성 부사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성 부사는 역시 연서에게 묘수가 있었던 것이라 여기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 어째서 그러하냐?”

연서의 뒤에 서 있던 기생들이 다시 한 번 긴장하며 떨기 시작했다. 홍란도 식은땀을 흘리며 연서의 반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연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실로 뜻밖이었다.

“국휼에 풍류를 즐기고, 사기로서 기생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교방의 질서를 흐트린 죄는 그리 작지 않습니다.”

연서의 말에 대청의 모든 사람이 기막힌 표정으로 숨죽였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계속 말했다.

“더욱이, 저의 죄가 인정되었음은 제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뜻이 되오니, 태 50도는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말은 지난겨울의 추위를 다시 불러온 듯 매섭게 사람들을 얼렸다. 태형 50대라니, 사람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었다.

홍란과 그녀의 무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구경꾼들 역시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부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사람, 살려 달라는 사람, 억울하다는 사람만 평생을 봐 온 형방 아전 역시 할 말을 잃은 건 매한가지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성 부사의 마음은 조여 들었다.

부사는 품었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의 강렬한 눈빛은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듯, 사사로운 마음에 흔들리는 안의를 정면으로 꾸짖고 있었다. 연서에 대한 애처로움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상황에 대한 분노가 그의 마음속에서 뒤섞여 요동쳤다.

“...기생 춘향의 말이 매우 합당하다. 허나, 죄인임에도 규율을 바로잡으려는 태도와 판결에 대한 진중함을 높이 사, 태형 30도를 내리도록 하겠다. 그러면 되겠느냐?”

“...감사합니다.”

연서가 몸을 숙여 인사했다. 얼이 빠진 채 눈만 깜빡거리는 형방 아전과 사령들을 향해 부사가 말했다.

“뭐 하느냐, 어서 집행하지 않고!”

“기, 기생 춘향에게 태 삼십 도를 집행하라.”

그 말이 떨어지자 두 명의 나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벌 기구를 재차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조용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홍란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허... 이 년이 겁을 먹어 미쳤나 보구나...”

두 나장이 앞으로 나와 조심스레 연서의 팔을 붙들고 형틀 쪽으로 데려갔다. 땀과 피가 스민 거친 나무에서 역겨운 냄새가 확 끼쳐 왔다. 그녀는 나장들의 손짓에 따라 형틀 위에 엎드려, 손이 묶일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연서는 두려움에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곧 닥칠 고통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녀는 엄지손톱으로 검지를 꽉 짓누르며 아픔을 분산시키려 했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요란하게 뛰었다. 곧 아전이 구령을 외치며 형이 시작됐다.

“한 대요-”

퍽-

첫 매가 엉덩이에 떨어진 순간, 연서의 시야가 새하얗게 번졌다. 실로 숨이 멎고 이를 악물게 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곧장 두 번째 매가 이어졌다.

“두 대요-”

퍽-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숨이 짧게 새었다. 그녀는 죽어도 신음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세게 했다. 그러나 매질이 계속되자 눈앞의 흙바닥이 흔들렸고, 귀 안쪽에서 윙윙 소리가 났다. 머리카락이 젖어들며 뺨과 목덜미에 들러붙었다. 무명 속속곳이 점점 진홍색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누군가는 안타까움에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는 숨을 죽인 채 그 고통을 가늠해 보았다.

누군가는 경외심에 찬 눈으로 연서를 바라보았다.

홍란의 얼굴은 점점 찌푸려졌다.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섬뜩하고 찝찝한 감정만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어째서인지 패배자의 기분이 계속 들었다. 화가 난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연서를 노려보았다. 죽어도 지지 않겠다는 그녀의 지독한 자존심이 태산과도 같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

털썩-

가득 담긴 물동이를 마당에 내려놓은 우성과 어진은 마루에 쓰러지듯 걸터앉았다. 우성은 젖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고, 어진은 헥헥거리며 숨을 돌리고 있었다. 날씨는 시원했지만 오는 길이 오르막이라 몸이 금세 달아오르고 땀이 나 있었다. 약초를 정리하던 금선은 순순히 물을 떠온 우성을 보며 조금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 했으면 이제 약방으로 가시지요. 마당에 말려 둔 약초를 가져가야 하니.”

“...약초요?”

우성이 되묻자 금선이 턱짓으로 약초 바구니를 가리켰다. 우성이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지금요? ...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돼요...?”

“그래요, 어머니... 하아... 잠깐만 쉬었다 가요.”

금선은 말없이 약초 정리를 계속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우성은 팔을 마루에 짚은 채,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와 산뜻하게 땀을 닦아주었다. 잠깐 쉬던 우성은 다시 말없이 일어나 금선이 가리켰던 바구니를 한 번에 들었다. 그걸 본 금선이 약초 정리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잠시만, 이것도 다 가져가야 하니.”

그녀는 남은 약초를 싹싹 모아 두 손에 들고 우성에게 다가갔다. 우성은 금선이 건넨 약초를 바구니에 받아 담았다. 어진도 일어나 옷을 툭툭 털더니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진 씨! ... 같이 좀 들죠?”

우성의 말에 어진이 눈을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우성이 바구니를 살짝 들어 보였다. 어진이 못 이기는 척 맨 위에 있는 바구니 하나를 휙 가져갔다.

세 사람은 곧 분이할멈의 약초방에 도착했다. 어진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말린 풀 냄새, 쌉싸래한 약초 냄새가 가득했다. 주렁주렁 매달린 꾸러미들은 큰 키의 우성에게 놀란 듯 흔들렸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니 벽 한편에는 빻은 가루와 달인 즙이 담긴 사기 그릇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안쪽에서 분이할멈이 드러누워 있었다.

“할머님! 손님이 오셨어요.”

“잉? 손님?”

분이할멈이 몸을 조심스레 일으키며 우성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우성은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우성의 인사 방식에 할멈은 그를 노비쯤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뭐 땜시 왔는가?”

금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새로 들어온 고공입니다. 이런 행색이어도 신분이 낮은 자가 아니시니 어매는 존대하셔야 합니다.”

할멈은 그 말에 어이가 없는지 우성을 이리저리 살피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금선이 계속 말했다.

“이제부터 함께 저희 일손을 도울 것이니,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편하게 요청하세요.”

“네가 이렇게 불편하게 해 놓고 뭘 어떻게 편하게 시키라 그러냐? ... 에구구구”

그녀가 허리를 잡으며 일어났다. 금선이 손으로 그녀의 등을 받쳐주었다. 우성이 그런 그녀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허리가 아프신 거예요?”

“...”

할멈이 우성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무안해진 우성은 어진을 바라보았다. 어진은 재밌는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할머니 허리는 편찮으신 지 오래입니다. 신경도 안 쓰실걸요?”

“에잉, 지랄하네. 니가 아파봐야 그런 말이 안 나오지...”

할멈이 어이없다는 듯 어진을 향해 말했다. 우성이 대답했다.

“제가 이래 봬도 의술을 좀 배웠는데...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세 사람이 동시에 우성을 바라보았다.

“아... 물론 저는 전공이 동물 쪽이긴 하지만... 의학 지식이 조금 있긴 하거든요.”

“... 이게 뭔 말이다냐?”

할멈이 금선에게 물었다. 그녀가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매 허리를 좀 고쳐 보겠다 하시네요. 원래 우마를 고치던 사람이라 의술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휴, 됐쇼! 다 늙어서 뭘 고쳐. 낼 죽을 텐디...”

분이할멈은 손을 휘휘 저으며 강력히 거부했다. 우성은 또다시 머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에서 뛰는 듯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잠깐의 정적 후, 문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있소?”

눈치를 보던 어진이 먼저 나가 문을 열었다. 그녀의 앞에는 땀을 흘리며 헐떡이는 사령 하나가 있었다.

“여기 기생 춘향의 가족들이 있다 하여 왔소이다.”

“아, 예! 저희가 그 사람들입니다만...”

금선이 밖으로 나오며 대답했다.

“허면 부사 어른의 명을 받드시오. 춘향이 태 30도를 맞고 있으니, 형이 끝나는 대로 추스릴 수 있도록 하라는 명이오.”

동헌을 얼렸던 그 추위가 순식간에 약방까지 들이닥쳤다. 어진이 놀라 입을 벌렸고, 금선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 우리 춘향이가 태형을 맞았다는 말입니까? ... 그런 일을 할 아이가 아닌데...”

“내가 출발할 때는 이미 형이 집행 중이었으니 필시 지금쯤은 끝나고도 남았을 것이외다. 서두르시오.”

우성은 심각한 분위기에 휩싸여 어진과 금선의 반응만을 계속 살폈다. 어진이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우성은 무슨 큰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어 금선을 바라보았다. 그런 우성과 눈이 마주친 금선이 말했다.

“어, 어서 가서 우리 연서를 좀 데려와 주십시오.”

우성이 정신을 가다듬고 멀어지는 어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금선은 두 사람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

형틀이 풀리는 순간 연서의 몸이 옆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아마 나장들이 붙들지 않았으면 그대로 흙바닥에 굴렀을 터였다. 연서가 간신히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지탱하려 했지만, 팔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뺨에 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흘러내렸다. 턱끝에 맺힌 물방울들은 투둑 하고 떨어졌다.

부사는 한동안 착잡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형방 아전 역시 괜히 헛기침만 하고는 시선을 피했다.

연서는 도움을 거절하듯 손사래를 한 번 치고는 가까스로 몸을 세웠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각도 멀었지만 정신을 가다듬어 옷가지를 가지런히 정돈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절대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성 부사는 예방 아전을 불러 무언가를 상의하더니 형방 아전에게 말했다.

“심문을 마칠 테니, 사람들을 모두 물려라.”

“...예, 나리.”

아전은 짧게 대답하고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물리고 나졸들은 마당을 정리하라.”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생들은 자신들에게까지 화가 미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홍란은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물끄러미 연서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자, 그녀의 추종자들이 다가왔다.

“어찌 저리 독할 수가 있나, 그래. 안 그렇습니까?”

“...”

하지만 홍란은 대답 없이 분한 마음을 삼켰다. 끝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연서를 아무래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반면 연서는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다. 그저 사람이 적은 곳으로, 조금만 더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연서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관아 밖으로 조금씩 나갔다. 쉬지 못한 채로 근처의 강 기슭까지 간 뒤에야 그녀는 몸을 쓰러뜨렸다. 버드나무가 외로이 서서 가지를 슬프게 휘날렸다.

“하아... 하아...”

풀밭에 엎드린 채로 연서가 숨을 짧게 뱉어냈다.

---

관아 근처로 갈수록 웅성거림이 커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방금 있었던 일을 입에 올리며 재판에 대해 열정적으로 따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연서의 모습은 그곳에 보이지 않았다. 어진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에게 물었다.

“춘향 언니 보셨어요? ... 못 보셨어요?”

마침내 누군가의 손이 관아 뒤편을 가리켰다. 어진은 재빨리 몸을 돌려 그곳으로 걸어갔다. 우성 역시 숨을 고르며 사방을 둘러보다가 어진이 방향을 틀자 그녀를 따라갔다. 그가 좁은 길을 꺾어 돌아가자, 버드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 엎드린 연서의 모습이 보였다. 우성의 숨이 턱 막혔다.

“춘향 씨...”

어진은 피로 붉게 번진 연서의 치마를 보며 오열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뺨과 목덜미에 엉겨 붙어 그녀의 온기를 빼앗고 있었다. 우성이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연서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하고 입술이 파랗게 변해 있었다.

“저체온증 같은데... 피도 많이 흘리고...”

혼잣말을 하던 우성은 울고 있는 어진에게 말했다.

“서둘러 가죠. 지체하면 큰일 나겠어요.”

우성은 어진의 대답을 기다릴 생각은 없는지 곧바로 연서를 안아 들었다. 생각보다 더 마른 그녀의 몸이 가볍게 안겨졌다. 하지만 어진은 그런 우성의 과감한 움직임에 놀라 허둥댔다.

“어어...”

“잠깐 언니분 좀 잡아주세요.”

우성이 연서를 다리 쪽으로 내려놓으며 말하자, 어진이 연서를 부축했다.

“어떻게 하시려고...”

우성은 말없이 등을 돌려 연서를 업었다. 어진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이, 이렇게 가시려고요? 관아에서 들것을...”

“체온이 떨어지고 있어서 이렇게 가야 해요.”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연서의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 몸을 바로 세우자, 연서의 입술 사이로 희미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

우성은 연서를 업은 채로 온 길로 다시 돌아 뛰었다. 등 위에서 연서의 가느다란 숨이 간헐적으로 목덜미에 닿았다.

희미하게 떨리는 그 숨결이 끊어질까 봐, 우성은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봄 향기로 수놓다   1-15 치부인가, 환부인가?

    연서의 엉덩이 상처는 말라붙은 피와 진물로 엉겨 딱지처럼 굳어 있었다. 멍 자국은 더욱 크게 퍼져 있었고, 터진 자국마다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금선이 미지근하게 식힌 물에 깨끗한 무명천을 적셔 환부의 가장자리부터 아주 살살 닦아냈다.“읏...”연서가 이를 악물며 신음했다. 금선은 한동안 상처를 닦다가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냐.”연서는 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답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는 있었지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일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금선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별일은 아닙니다.”금선이 손을 멈추고 연서를 째려보았다. 연서는 그런 금선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별일이 아닌데 태형을 30대씩이나 때리냐? ... 누굴 두들겨 패기라도 한 거냐?”금선의 격노에 연서가 마지못해 대답하기 시작했다.“어머니, 혹시 칠복 아재 딸 기억나세요? ... 홍이라고.”금선이 다시 그녀의 상처를 닦으며 대답했다.“...홍이를 때렸어?”“때리다뇨... 걔가 요새 그리 저를 괴롭혀요. 특히 제가 사기가 된 후로 더 심해졌어요.”연서의 말에 금선이 말했다.“걔가 엄마 없이 자라서 이상한 열등감이 있나 보다.”“얼굴도 예쁜데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튼, 걔가 저한테 어저께 공개적으로 시를 쓰더라고요. 아름다운 수를 삼베에 놓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저를 모욕하며 비웃었어요.”금선이 한숨을 쉬었다.“그래서... 때렸니?”“아이 참, 안 때렸다니까요! ... 아무튼 그래서 저도 화답을 해 주었지요. 꽃 주제에 누에인 나를 비웃느냐고 해 주었어요.”금선이 피식 웃었다.“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스스로 비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다니... 너는 부끄럼도 없냐?”“......어머니는 누구 편이신 거예요? ...자꾸 말이나 끊고...”금선의 말에 연서가 열받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말에 금선은

  • 봄 향기로 수놓다   1-14 고장 난 나룻배

    아침 일과를 마친 마당에는 볕이 들어 밝고 따뜻했다.“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마루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약초를 다듬는 금선과 어진을 향해 우성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내의 깍듯한 인사에 여전히 어색한 듯, 두 사람은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금선은 우성의 발치께를 눈으로 슬쩍 보며 대답했다.“조심히 가세요. 급하게 가시다 그르치실라.”“...네, 알겠습니다.”괜히 잔소리 한마디 더 얹는 금선에게 우성이 착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어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조금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꼭 가셔야 돼요? ... 아직 언니도 아프고, 나리가 어제 물도 다 써서 물도 없는데...”“...”우성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금선이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는 발걸음에 우는 소리 말어라... 사내들 떠날 때마다 울어대니 나라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치...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리 쉽게 가 버립니까, 그래.”어진이 미련을 잔뜩 쏟아냈다. 우성은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워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연서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천근같은 몸을 일으킨 연서는 겨우 문틀을 잡고 서서 우성을 보았다. 모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이었다. 우성이 급하게 그녀 쪽으로 돌아섰고, 어진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언니...!”연서는 걱정스러운 그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을 바라보았다. 잠깐 우성과 눈을 맞추던 연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부디 건강하세요.”짧고 단정했다.우성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느새 그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우성이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파이팅.”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집 밖으로 향했다. 어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렁한 눈으로 금선에게 물었다.“방금 뭐라신 거예요? 파잇딩?”“...”하지만 금선이 그 말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연서와 그만의

  • 봄 향기로 수놓다   1-13 하늘과 땅의 차이 (1)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가 새벽을 깨우며 울려왔다. 관아에서 시작되는 둔중한 울림은 차가운 거리를 지나 연서의 방에까지 닿았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우성은 선뜻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지만 연서의 상태가 걱정되어 벌떡 일어났다.계속 엎드려 있는 게 힘들었는지, 연서는 몸을 조금 옆으로 돌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연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다행히 어제의 열은 떨어져 있었다.그녀의 얼굴도 약간의 눈물자국을 빼고는 꽤 평온해 보였다. 밤새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던 우성은 안도감에 하품이 나왔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자 곧바로 찬 기운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성은 앉아서 짚신을 신다가 발이 욱신거리자 버선을 벗어 보았다. 발은 붓고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처음 신어 본 짚신으로 연서를 업고 달리기까지 했으니, 버티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우성은 고통을 참으며 다시 짚신을 신었다.우성이 부엌 쪽으로 다가가자, 안쪽에서는 이미 작은 불빛과 함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진이 평소처럼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나리? 뭐가 필요하시면 부르시지, 왜 직접 나오셨어요?”“... 춘향 씨 먹을 걸 좀 만들려고요.”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우성은 그대로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어진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앞을 막았다.“아니, 아니요. 부엌은 사내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래두요! 어제도 말씀드렸잖아요. 언니 밥은 제가 차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세요.”우성은 자신을 막아선 어진의 손을 슬쩍 피해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따라붙은 어진이 그의 옷자락을 붙들며 소리쳤다.“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로...!”“춘향 씨가 지금 제대로 먹어야 해서 그래요... 어제 저녁 차려 온 거 보니까 풀데기밖에 없더만, 그래서 낫겠어요?”우성은 그녀와 실랑이할 생각이 없다는 듯 부엌 안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흐음... 피를 많이 흘려서 철분이랑 단백질이 필요한데... 계란이나 고기 같은 건 없어요?”“예? ...고

  • 봄 향기로 수놓다   1-12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은

    우성은 몸을 낮췄고, 금선과 어진이 등에 업힌 연서를 조심스럽게 받아 내렸다. 두 사람이 그녀의 몸을 받치는 사이 우성은 돌아서서 다시 연서를 안았다. 그녀를 요 위에 조심스레 엎어 눕히는 동안, 축 늘어진 팔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연서의 방이 서늘한 것을 느낀 우성이 방바닥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어진 씨는 이 방을 얼른 따뜻하게 해 주세요.”“네!”우성에게 업혀 오면서 체온이 다시 오르긴 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평소보다 차가웠다. 우성의 말에 어진이 다급히 달려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금선은 우성이 어떻게 하려나 싶어 곁에 서 있었다. 우성은 연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금선이 그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시키시면 제가 할 테니, 말씀으로 하시지요.”금선의 제지에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우성은 황급히 손을 뗐다. 금선은 조심스레 연서의 치마를 풀었다. 치마가 연서의 엉덩이 부근을 스치자, 연서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읏…”치마가 벗겨지고, 피로 엉겨붙은 속곳이 드러났다. 참혹한 광경에 우성과 금선은 아연실색했다. 검붉게 말라가는 것을 보니, 그냥 떼어냈다가는 살점까지 함께 뜯길 것이 뻔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우성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어진이 들어와 외쳤다.“아궁이에 불 지폈어요... 으아, 세상에...”그녀가 연서의 상처를 보며 탄식했다. 깊이 생각하던 우성이 금선에게 말했다.“물을 끓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 끓으면 미지근하게 식혀 주시고, 가장 깨끗한 무명천도 몇 장 준비해 주세요.”“상처를 씻으시려는 겁니까?”금선이 되물었다.“예. 붙은 옷부터 충분히 적셔서 떼어내야 합니다. 억지로 당기면 살이 함께 뜯길 수 있어요.”금선은 곧장 어진에게 말했다.“어진이 너는 얼른 물을 올리고, 깨끗한 무명천을 가져오너라.”“네!”어진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우성은 연서의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선용 가위를 발견하고 어진의 뒤를 향해 내밀었다.“이것도 끓는 물에

  • 봄 향기로 수놓다   1-11 공공연한 사사로움

    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방 아전의 큰 외침이 들렸다.“기생 춘향에게 태 10도요!”뒤쪽에서 사령들과 나장들이 분주하게 형벌 기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서가 고개를 들어 부사에게 말했다.“나리, 소녀의 말을 들어주소서. 태형 10도는 부당한 처사이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리자, 형방 아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한낱 관기가 뱉은 무엄한 말에 분노하며 외쳤다.“어허! 어디 그런 망발을 하느냐!”하지만 성 부사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성 부사는 역시 연서에게 묘수가 있었던 것이라 여기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러하냐?”연서의 뒤에 서 있던 기생들이 다시 한 번 긴장하며 떨기 시작했다. 홍란도 식은땀을 흘리며 연서의 반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연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실로 뜻밖이었다.“국휼에 풍류를 즐기고, 사기로서 기생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교방의 질서를 흐트린 죄는 그리 작지 않습니다.”연서의 말에 대청의 모든 사람이 기막힌 표정으로 숨죽였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계속 말했다.“더욱이, 저의 죄가 인정되었음은 제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뜻이 되오니, 태 50도는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그녀의 말은 지난겨울의 추위를 다시 불러온 듯 매섭게 사람들을 얼렸다. 태형 50대라니, 사람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었다.홍란과 그녀의 무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구경꾼들 역시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부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사람, 살려 달라는 사람, 억울하다는 사람만 평생을 봐 온 형방 아전 역시 할 말을 잃은 건 매한가지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성 부사의 마음은 조여 들었다.부사는 품었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의 강렬한 눈빛은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듯, 사사로운 마음에 흔들리는 안의를 정면으로 꾸짖고 있었다. 연서에 대한

  • 봄 향기로 수놓다   1-10 증거는 반드시 진실로 가는가? (1)

    조선에서의 두 번째 밥을 먹던 우성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와 마루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리,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어진의 목소리에 우성이 음식을 빠르게 삼켰다.“네, 들어오세요.”어진이 방문을 열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흰 무명 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앉아서 우성에게 그 상복을 내밀었다. 우성은 젓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옷을 받아 들었다.“이건...”“이것은 언니의 부친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상복입니다. 일단은 이것을 입으시고, 차차 맞는 옷을 구해 보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우성은 옷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겠다는 금선의 의도가 선명했다. 망설이는 우성을 보고 어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십니까?”우성이 어진을 바라보았다.“저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쉽게 섞이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까 어진 씨도 봤겠지만, 저는 조선의 예법이나... 규율, 생활 방식 이런 걸 전혀 알지 못해요. 모두가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그건 그렇죠. 솔직히 지금도 엄청 수상해 보이시는 건 사실이니까요.”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은 애꿎은 옷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진은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다가 다시 말했다.“어쨌든, 어머니의 계획은 이래요. 나리께서... 이 집의 고공(雇工)으로 일해 주시는 거예요.”“...고공?”우성은 처음 듣는 말이라 어진에게 되물었다.“예... 그러니까... 이 집에 함께 기식하시면서 저희의 일손을 도와주시는 거지요.”“머슴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머슴...이 뭐예요?”“아... 머슴은 지금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럼 노비?”“예에-? 노비라뇨, 큰 오해이십니다.”어진이 놀라 손사래까지 쳐 가며 부정했다. 우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그러니까, 어머님이 저한테 일을 시키면 저는 그 일을 하고, 그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