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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증거는 반드시 진실로 가는가? (1)

Author: 쭈의잔상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4 21:49:00

조선에서의 두 번째 밥을 먹던 우성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와 마루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진의 목소리에 우성이 음식을 빠르게 삼켰다.

“네, 들어오세요.”

어진이 방문을 열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흰 무명 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앉아서 우성에게 그 상복을 내밀었다. 우성은 젓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옷을 받아 들었다.

“이건...”

“이것은 언니의 부친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상복입니다. 일단은 이것을 입으시고, 차차 맞는 옷을 구해 보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성은 옷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겠다는 금선의 의도가 선명했다. 망설이는 우성을 보고 어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우성이 어진을 바라보았다.

“저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쉽게 섞이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까 어진 씨도 봤겠지만, 저는 조선의 예법이나... 규율, 생활 방식 이런 걸 전혀 알지 못해요. 모두가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

“그건 그렇죠. 솔직히 지금도 엄청 수상해 보이시는 건 사실이니까요.”

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은 애꿎은 옷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진은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다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어머니의 계획은 이래요. 나리께서... 이 집의 고공(雇工)으로 일해 주시는 거예요.”

“...고공?”

우성은 처음 듣는 말이라 어진에게 되물었다.

“예... 그러니까... 이 집에 함께 기식하시면서 저희의 일손을 도와주시는 거지요.”

“머슴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

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머슴...이 뭐예요?”

“아... 머슴은 지금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럼 노비?”

“예에-? 노비라뇨, 큰 오해이십니다.”

어진이 놀라 손사래까지 쳐 가며 부정했다. 우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어머님이 저한테 일을 시키면 저는 그 일을 하고, 그 일을 하는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는다... 이거 아니에요?”

“...네! 맞아요! 정확히 아시네요.”

어진이 손뼉을 짝 치며 웃었다. 하지만 우성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치며 말했다.

“그게 노비잖아요?”

어진이 다시 팔딱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죠!! 노비는 사고팔기도 하고, 자유가 없는 사람이에요. 관기인 우리 언니를 보세요. 관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고, 놓아줄 때까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어요.”

“...”

우성은 연서가 노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크게 놀랐다. 그가 알기로 춘향은 기생인데, 기생도 노비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진의 설명을 듣느라 물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공은요, 자발적으로 원해서 일을 하는 거예요. 만약 그만하고 싶으시면 그만하고 떠날 수 있는, 자유인이라고요.”

“아아, 네에...”

어진의 열성적인 설명에도 우성은 그리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지금 그에게는 자유가 없지 않았던가?

‘노비 맞구만... 잘 쳐줘야 머슴인데...’

우성의 불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진은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들이 세운 계획을 통보했다.

“아무튼 그래서, 어머니 말씀은... 나리께서는 짐승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까 어느 정도 사람을 치료하는 지식도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저희가 작은 약방을 하고 있는데 함께 일하시면서 지내시면 신분을 만들기도 좋을 거예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볼게요. 하지만 제 억울함이 입증되면 꼭 보내주세요.”

우성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진은 다시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나갈 테니까, 한 번 입어 보시겠어요?”

“아, 저기...”

일어서려는 어진을 우성이 불러세웠다.

“제가 먼저 좀... 씻고 싶은데.”

“아아...”

우성의 말에 어진이 씨익 웃었다.


연서가 문을 열자, 교방 문 앞을 서성이던 바람이 먼저 앞장섰다. 말소리가 일순 멈추며 기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쏠렸다. 연서는 본능적으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기운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데, 한 기생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저, 저는 스승께서 읽으라 해서 읽은 죄밖에는 없습니다! 저까지 물고 늘어지시면... 저, 저도... 저 또한 가만히는 있지 않을 겁니다...!”

연서가 가만히 보니, 어제 자신의 시를 낭독했던 기생이었다. 두려움에 바들거리는 모습에 연서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망발이냐?”

하지만 그 기생은 제 말만 토해 버리고 뒤돌아 도망쳤다. 창가 쪽에 서 있던 홍란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국휼 기간에, 그것도 사기라는 자가 풍류를 즐기고 관아의 법도를 무너뜨렸기 때문이지요. 그 아이의 눈물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

그 말에 연서는 자신이 쓴 시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걸 깨달았다. 홍란이 조심스레 소매에서 연서의 시를 꺼내며 계속 말했다.

“이름 하나 안 적혀 있는데, 아전 나리가 한눈에 알아봅디다. 대체 얼마나 예쁨을 받던 겁니까?”

“하아...”

연서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참으로 지겨웠다. 이쯤 되니, 홍란이 자신에게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새삼 궁금해졌다. 그녀는 홍란을 보고 똑바로 서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사는 게 지루하니?”

예상보다 연서가 쉽게 흔들리지 않자 홍란도 자세를 가다듬으며 그녀를 마주 보았다. 주변 기생들은 어느새 그녀들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루한 것은... 남자의 손길 하나 받지 못하는 스승님의 삶이 아닙니까?”

“흠... 그러냐? 허나 그렇다 한들, 숱한 남성들의 손길을 받은 네가 이토록 심한 결핍을 느끼는 연유는 무엇이냐? ...이제는 만족하지 못하는 네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홍란의 눈동자가 묘하게 흔들렸다.

“모쪼록, 오후가 되면 동헌에서 부를 것이니... 부사 나리께 어디 한 번 잘 대꾸해 보십시오, 지금처럼.”

그 말에 연서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분노와 수치심이 그녀의 자존심을 계속해서 망치질했다. 연서는 돌아서며 몸의 떨림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한편, 우성은 빈 동이를 들고 어진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가 입은 옷은 생각보다 짧았다. 바짓부리는 어정쩡하게 올라왔고, 저고리 소매 밖으로도 팔목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봐도 제 옷이 아닌 티가 났다. 우성이 불편한 듯 자꾸만 소매와 허리춤을 만지작거렸다. 어진은 그런 그를 힐끗 보더니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오므렸다.

“계속 그렇게 만지시면 사람들이 쳐다봐요.”

“...더 큰 건 없겠죠?”

우성이 툴툴거렸다. 어진은 뒤돌아 우성을 한 번 더 훑더니 대답했다.

“나중에 관아에서 언니 앞으로 몫이 나오면 바지라도 하나 사 달라고 해 보세요.”

“...나중에라...”

우성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마을 어귀를 돌자, 아침 일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우성은 괜히 긴장하며 눈치를 봤다.

“잉? 못 보던 사람인디? 누구냐, 입분아?”

지나가던 양인 하나가 어진에게 물었다. 그녀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오신 고공이세요. 집에 일손이 자꾸만 딸려서요.”

“아이구 잘했네. 손 많이 가는 집에 그동안 여편네 셋만 있었으니... 역군 부족한 관아에서도 좋아할 테고... 이사 왔나? 아직 어린가벼, 수염이 없네?”

멈추지 않는 질문 공세에 당황한 우성은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어진이 재빨리 웃으며 말했다.

“무... 무모증이시래요.”

“이잉? 아이구... 그럼 거기도...?”

양인의 눈길이 우성의 사타구니에 머물렀다.

“...”

“쯧쯧... 힘내요잉.”

그가 우성의 팔을 툭툭 치고 지나가자 우성이 어진을 노려보았다. 어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다 밀었다고 할 순 없잖아요.”

“...이제부터 계속 자랄 건데 그땐 어떡하고요?”

우성이 짜증 난 목소리로 물었다. 어진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약방에서 만든 약 먹고 난다고 하면 되죠! 이게 바로 일석이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어진이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툭 찌르고는 다시 출발했다. 우성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계속 뒤따라갔다.

잠시 후에 우물가에 도착한 두 사람은 동이를 내려놓고 기지개를 한 번 쭉 폈다. 버드나무 한 그루가 쓸쓸한 움직임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자, 물 먼저 뜨시고... 저쪽에서 씻고 오세요.”

우성이 눈을 크게 떴다.

“네? ...여기서요?”

“...예!”

“아니... 사람들 다 보는 데서요?”

어진이 기가 막히다는 듯 우성을 바라보았다.

“혹시 아녀자세요? 사내들은 그냥 저기서 막 씻어요. 특히 저-기서.”

“아니 뭐 아까는 정강이 좀 보여줬다고 까무러치더니, 여기서는 다 벗으라고요?”

우성은 우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미 아낙네 둘이 빨래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거는 체통이나 예절 문제고요, 사내들은 원래 저기서 씻는다니까요? 정 부끄러우시면 입고 씻으시든지요. 그런데 그러면 사람들이 더 쳐다보지 않을까요?”

“하아...”

어진의 놀림에 우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집에 떠 가서 씻으면 안 돼요?”

“예? 당연히 안 되죠! 하루 종일 물만 뜨러 다니실 거요?”

“...”

우성이 화가 난 듯 냅다 저고리를 풀기 시작했다.

“어맛-! 사내는 저쪽에서 씻는다니깐, 참말루!”

어진이 질색하며 돌아섰다. 우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벗으며 강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당 한가운데, 연서가 홀로 꼿꼿이 서 있었다. 봄날 오후의 따스한 햇빛이 연서를 비추었으나, 그녀의 마음까지 덥히지는 못했다. 대청 주위로 꽤 많은 사람들이 중문까지 둘러싸고 있었다. 국휼 이후 첫 공개 심문이어서 그런지, 관아의 모든 사람이 구경 온 것만 같았다. 그녀는 올바르게 살고자 했던 자신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꽉 쥔 그녀의 주먹은 필사적이고, 측은했다. 성 부사는 대청에 똑바로 앉아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방 아전이 고발 내용을 아뢰었다.

“교방의 기생 춘향이 국휼 중 시를 지어 풍류를 즐기어 기강을 어지럽혔다는 고발입니다.”

홍란이 연서의 뒤쪽 즈음에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그 증좌로서, 내용은 이러합니다.”

아전이 무표정으로 연서의 시를 들고 큰 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이를 듣던 기생들은 일제히 몸을 떨었다. 연서의 말 한마디가 교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면 다른 구경꾼들은 연서가 지은 시를 들으며 감탄했다. 성 부사도 눈을 감고 연서의 시를 음미했다. 낭독이 끝나자, 눈을 뜬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춘향을 고발한 자가 누구냐?”

홍란이 몸을 숙이며 대답했다.

“예...! 역시 교방의 기생인 홍란이라고 합니다.”

“...시를 지은 것을 고발한 것이냐?”

“그 이유만은 아니옵니다. 평소 춘향은 소인의 외모를 시기하여 못마땅하게 여기고 괴롭혀 왔사옵니다. 저는 그저, 때가 되면 멎겠지, 시간이 지나면 줄겠지 하며 견뎠을 뿐이오나, 사기가 되시고 예방의 큰일을 맡으시니 더욱 횡포를 부리셨습니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술술 거짓을 뱉는 홍란의 모습에 연서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가 이제는 지나치어 결국 그 시를 지어 제게 건네고는, 제 미색이 봄이 지나면 시드는 꽃과 같다며 조롱했습니다. 허나,”

“...”

“저는 단지 제 억울함을 풀고자 고발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교방과 예방을 넘어, 관아 전체의 법도를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성 부사가 듣다 못해 말했다.

“시를 지어 너를 능욕했다 한들, 그것이 어찌 법도와 관련이 있느냐? 국휼 기간이라 하더라도, 개인에게 시 하나 못 쓰게 할 정도로 이 나라가 소국이란 말이냐?”

평소 연서를 크게 아끼던 그였다. 그가 부임하고 연서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의 사람됨과 큰 재주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인간성과 순수함, 강직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홍란의 거짓 고발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법을 잣대 삼아 심문하는 공적인 자리였다.

“나리께서 평소 춘향을 예뻐하신다는 것을 잘 압니다. 허나 국휼 기간에 시를 지어 즐기는 일은 곧 풍류에 속한다는 점을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게다가 춘향이 쓴 시는 제게만 건넨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자리에서 낭독되었으므로, 교방을 어지럽혔다 할 수 있사옵니다.”

연서는 이 모든 거짓 증언을 고개 숙인 채 듣고만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불이 일던 연서의 가슴은 오히려 차갑게 식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 연서의 얼굴을 살피려 성 부사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으나,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 없어 답답했다.

“...좋다. 그럼 내 춘향에게 묻겠다.”

“예...!”

연서가 힘을 주어 대답했다. 성 부사는 생각한 뒤 그녀에게 물었다.

“...저 말이 모두 사실이냐?”

연서가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홍란이 쓴 시에 답시로 예를 갖추었을 뿐, 교방을 혼란시키고 국법을 능욕한 적이 없습니다.”

“...”

하지만 성안의는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형방 아전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나리, 증좌를 보이라 명하십시오.”

성 부사도 알고 있었다. 아전은 자신의 말에 답하지 않고 계속 연서만 바라보는 성 부사를 보며 무안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홍란과 기생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증좌가 있느냐?”

“없습니다.”

연서가 또렷하게 말했다. 홍란은 안도의 미소가 번지는 것을 감추려 고개를 더욱 숙였다. 성 부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증좌는 없으나, 공개적인 낭독이 있었다 하니... 교방의 기생들 모두가 증인이구나. 저 기생들을 모두 춘향의 뒤로 세워라.”

사령 몇 명이 재빨리 구경하는 기생들에게로 다가갔다. 몇몇 기생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잠깐의 혼란 끝에 교방의 기생 모두가 연서의 뒤에 섰다.

“이제, 모두에게 묻겠다. 누구의 말이 사실이냐?”

그 말에 다들 떨며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연서가 평온한 표정으로 곁에 머무는 봄바람의 어루만짐을 느꼈다. 성 부사는 기생들이 괘씸한지 그답지 않게 대노하여 말했다.

“어째서 누구도 답하지 않느냐? 이대로 침묵한다면 교방 전체를 관아를 우롱한 죄로 다스릴 것이다.”

시를 낭독했던 기생이 큰 소리로 외쳤다.

“홍란, 홍란의 말이 맞습니다! 사기께서 저를 시켜 홍란을 비난하는 시를 읽게 했나이다. 그전까지 저희는 모두 길쌈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어 주소서.”

성 부사와 예방 아전의 얼굴이 이전 어느 때보다 살벌했다. 기생들이 대놓고 거짓 증언으로 자신을 우롱한 데다 연서를 향한 측은지심까지 겹쳐, 성 부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형방 아전은 다시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나리...!”

성안의가 자세를 바로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교방의 기생 춘향에게... 죄가 있음이 밝혀졌으므로... 10도의 태형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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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도 쉬지 않던 연서의 몸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점점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몸을 조금 일으키자니 팔꿈치와 어깨가 아팠고, 그렇다고 엎드리자니 허리와 목이 불편했다. 조금씩 옆으로 눕는 게 가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동 범위가 극히 좁아 답답했다.삼십 대를 굳이 맞아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지만, 이내 그녀의 자존심이 그 생각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한계를 느끼고 독서를 포기했다. 연서는 책을 바닥에 던지듯 툭 내려놓으며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책이 바닥에 툭 쓰러지며 [詩經]이라고 쓰인 표지가 보였다.“흐아아-”연서가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기는 했지만 바르지 않은 자세로 이미 수없이 읽은 책을 또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이 점차 고요해지는 듯싶었다.“아하하! 아이참, 다시 해 보세요. 왜 이렇게 못 하세요?”바깥에서 어진의 목소리가 창호지를 뚫고 들어왔다. 우성과 무엇을 하는지 마당에서는 자박자박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곧 우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이게 지금 무게 중심이 하나도 안 맞는 거 같아요.”“와 진짜 안 해 보셨나 보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사내가 되어서 이런 것도 안 해 보고 뭐 하셨어요?”연서는 너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이겨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조금 들어 올리고, 조심조심 팔꿈치를 짚어 기듯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방문 앞에 도착한 연서는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끼익-연서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우성과 어진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에엥? 언니! 왜 일어났어요?”“...뒷간 가시게요?”우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걱정스레 말했다. 무례한 우성의 말에 연서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하... 아녀자한테 그런 거 묻지 마세요... 나 참, 숨 쉬듯 무례하네.”“...”우성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진도 그런 우성을 타박하며 덧

  • 봄 향기로 수놓다   1-16 부재의 파장

    경찰서 안쪽은 민원실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프린터가 돌아가는 소리, 간헐적으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여성청소년과로 예성을 안내한 경찰은 인계를 마치고 돌아갔다. 사십 전후로 보이는 경위가 그녀를 맞이했다. 예성은 남자가 가리킨 의자에 앉아서 긴장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아까 기본 내용은 들었습니다. 견우성 씨 동생분이라고 하셨죠?”“네.”그는 모니터를 보며 능숙하게 타이핑을 시작했다.“마지막으로 직접 본 시간하고 장소 말씀해 주시겠어요?”“음... 마지막으로 본 건 저희 본가 OO로 24-1이고요, 시간은... 이틀 전 저녁 7~8시쯤인 것 같아요.”“이틀 전이면... 11월 6일인가요?”경위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성은 그 말에 핸드폰을 꺼내 달력을 확인했다.“잠시만요... 네, 맞아요.”“11월 6일... 7시경... 그날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예성은 그날 우성과 차 안에서 다투듯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저랑 말다툼 비슷하게 좀 하긴 했는데... 그 정도는 평소에도 하던 거라 특별히 다르다고 하기엔 좀 그래요... 제일 이상한 건 차가 그대로 있고 사람만 없어졌다는 거예요.”“... 차는 있는데 사람이 없다... 실종자가 평소에 우울증이나 병을 앓고 있었나요?”그의 말에 예성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정확히 우울증 진단을 받거나 병이 있지는 않았어요.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우울 증세가 좀 심하게 오긴 했었는데...”“...우울 증세... 또 있을까요?”그제야 예성은 상태의 방문이 떠올랐다.“아...! 잠시만요.”그녀가 갑자기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상태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오빠가 없어진 직후에 자칭 형사 한 분이 와서 이걸 주고 갔어요.”“형사요...?”경위가 예성이 내민 명함을 받아들었다.“시간관리국? 이런 부서는 없는데... 직접 받으신 거예요?”그가 명함을 뒤집어 이리저리 보며 물었다. 예성이 그의 말에 대답했다.

  • 봄 향기로 수놓다   1-15 치부인가, 환부인가?

    연서의 엉덩이 상처는 말라붙은 피와 진물로 엉겨 딱지처럼 굳어 있었다. 멍 자국은 더욱 크게 퍼져 있었고, 터진 자국마다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금선이 미지근하게 식힌 물에 깨끗한 무명천을 적셔 환부의 가장자리부터 아주 살살 닦아냈다.“읏...”연서가 이를 악물며 신음했다. 금선은 한동안 상처를 닦다가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냐.”연서는 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답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는 있었지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일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금선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별일은 아닙니다.”금선이 손을 멈추고 연서를 째려보았다. 연서는 그런 금선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별일이 아닌데 태형을 30대씩이나 때리냐? ... 누굴 두들겨 패기라도 한 거냐?”금선의 격노에 연서가 마지못해 대답하기 시작했다.“어머니, 혹시 칠복 아재 딸 기억나세요? ... 홍이라고.”금선이 다시 그녀의 상처를 닦으며 대답했다.“...홍이를 때렸어?”“때리다뇨... 걔가 요새 그리 저를 괴롭혀요. 특히 제가 사기가 된 후로 더 심해졌어요.”연서의 말에 금선이 말했다.“걔가 엄마 없이 자라서 이상한 열등감이 있나 보다.”“얼굴도 예쁜데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튼, 걔가 저한테 어저께 공개적으로 시를 쓰더라고요. 아름다운 수를 삼베에 놓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저를 모욕하며 비웃었어요.”금선이 한숨을 쉬었다.“그래서... 때렸니?”“아이 참, 안 때렸다니까요! ... 아무튼 그래서 저도 화답을 해 주었지요. 꽃 주제에 누에인 나를 비웃느냐고 해 주었어요.”금선이 피식 웃었다.“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스스로 비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다니... 너는 부끄럼도 없냐?”“......어머니는 누구 편이신 거예요? ...자꾸 말이나 끊고...”금선의 말에 연서가 열받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말에 금선은

  • 봄 향기로 수놓다   1-14 고장 난 나룻배

    아침 일과를 마친 마당에는 볕이 들어 밝고 따뜻했다.“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마루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약초를 다듬는 금선과 어진을 향해 우성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내의 깍듯한 인사에 여전히 어색한 듯, 두 사람은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금선은 우성의 발치께를 눈으로 슬쩍 보며 대답했다.“조심히 가세요. 급하게 가시다 그르치실라.”“...네, 알겠습니다.”괜히 잔소리 한마디 더 얹는 금선에게 우성이 착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어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조금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꼭 가셔야 돼요? ... 아직 언니도 아프고, 나리가 어제 물도 다 써서 물도 없는데...”“...”우성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금선이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는 발걸음에 우는 소리 말어라... 사내들 떠날 때마다 울어대니 나라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치...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리 쉽게 가 버립니까, 그래.”어진이 미련을 잔뜩 쏟아냈다. 우성은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워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연서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천근같은 몸을 일으킨 연서는 겨우 문틀을 잡고 서서 우성을 보았다. 모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이었다. 우성이 급하게 그녀 쪽으로 돌아섰고, 어진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언니...!”연서는 걱정스러운 그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을 바라보았다. 잠깐 우성과 눈을 맞추던 연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부디 건강하세요.”짧고 단정했다.우성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느새 그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우성이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파이팅.”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집 밖으로 향했다. 어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렁한 눈으로 금선에게 물었다.“방금 뭐라신 거예요? 파잇딩?”“...”하지만 금선이 그 말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연서와 그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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