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석이 떠난 이후에도 제 황후는 여전히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한쪽에 앉아 어두운 얼굴로 조부가 약과 인삼탕을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심지어 어의들에게 침을 놓아 막힌 혈자리를 뚫게 시키기도 했다. 조부는 단신의가 남긴 약까지 전부 복용했다.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안색이 점점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어의들은 그의 마음에 다시금 투지가 생겨, 희망이 보인다는 진단을 내렸다. 제씨 가문 중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기뻐했지만, 제 황후만큼은 실망하여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모습은 제제사가 남풍관에 갔을 때의 얼굴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그녀는 이것이 최후의 수단임을 알았다. 이로 인해 친정의 미움을 사고, 황제의 노여움까지 살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러나 송석석은 그녀에게 이보다 더 큰 위협이었다. 송석석의 명성이 추락하고 바닥까지 떨어져야만 자신의 황후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래야 그녀 역시 송석석이 했던 것처럼 여학을 새로 열고, 조정의 관원들과 귀족 딸들을 끌어들여 입학시킴으로써 세가 관원의 힘을 결집하고 대황자의 세력을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이전에 자신이 하찮게 여겼던 일도 이제는 다 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주저하는 태도를 분명히 알아챘다. 오로지 제씨 가문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가는 문제가 생길 경우 철저히 실패하여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었다.목 승상이 들어와 제제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랜 벗이여, 잘 회복하시길 바라네. 이 젊은 것들이 어떻게 소란을 피우는지 지켜보자고. 누군가 소란을 피워야 세상이 흥미진진하지 않겠소."제제사는 약간 감동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목 승상이 자신을 경멸하고 멸시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여전히 평소와 같았다.결국 제제사는 버텨냈지만, 영태비는 버티지 못하고 이월 초에 외부에 상소를 발표하며 세상을 떠났다 숙청제는 연왕에게 사람을 보내 그가 돌아와 상을 치를 수 있도록 전갈을 보냈
회왕이 귀중품을 챙겨 진성을 떠났는데, 그 물건들이 이미 도중에 바꿔치기된 상태였다. 나중에서야 길에서 이를 알아차린 그는 분노하여 미칠 지경이었으나 지금 화를 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다시 진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아무런 연줄도, 자원도 없이 이곳에 도착했으며, 친왕이라는 신분만 있을 뿐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의 처지는 그야말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곧 좋은 돌파구를 찾아냈다. 이 돌파구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긴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가. 그 인물이 은거하며 잠복한 이유는 단순히 훗날 좋은 지역에 봉토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그는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지내며 수년간 아무 의심도 받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기반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조금씩 침투했다. 이 인물 이야말로 진정한 책략가였다.또한, 이 인물은 삼형보다 상대하기 훨씬 더 어려운 사람이기에, 훗날 일이 성사되더라도, 그가 이 인물의 성과를 빼앗으려 한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다만, 삼형과 그 인물을 비교해 보면 그 인물이 훨씬 더 승산이 있으니, 그는 당연히 더 승산이 있는 사람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삼형 쪽에서는 내세울 만한 패가 전혀 없었다.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연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그러나 그 인물에게는 삼형이 바로 그의 패였다. 그 인물이 삼형의 모든 것을 삼키려면 그를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연왕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한바탕 슬퍼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컸지만,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무런 가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태후에게 덕망을 더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었다.태후의 덕망이 널리 알려지면서 숙청제까지 그 명성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 그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이용한 것이다. 정말로 비열했다.진성에서는 제제사와 남풍관과 관련된 추문이 모두 잠잠해졌고, 사람들은 이제 태후의 덕망
제상서는 방문객을 모두 사양했지만, 직접 대부인과 함께 송석석을 방문했다.송석석은 평소처럼 그들을 맞이했다. 제상서와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대신 염선생이 그와 대화를 나눈 후, 대부인을 곁채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했다.대부인은 지난 일년여 동안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아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은 평온해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이전처럼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자신이 상서부의 살림을 책임지는 종부로서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늘 자신을 억누르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그녀가 지금은 많이 내려놓은 듯했다.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적당히 넘기는 법을 배운 것이다.대부인은 딸을 잘 교육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송석석에게 사과하며 말했다."저는 한평생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대로 해낸 일이 거의 없더군요.”"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평생 단 한 가지라도 잘해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송석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에게나 인생의 결핍은 있기 마련이지요. 앞으로는 자신을 더 잘 돌보면 될 일입니다."제대부인은 깊이 있고 차분한 눈빛으로 답했다."그렇습니다, 스스로를 더 잘 돌보는 것이 곧 삶을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방법이니까요."송석석은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부수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제대부인이 이를 해냈다는 사실이 정말로 대단하게 여겨졌다."참, 제제사께서 찾으라고 하신 분은 제가 이미 수소문 중입니다. 소식이 생기면 바로 알려드리겠다고 전해주세요."제대부인은 그녀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과감함과 약속을 지키는 굳건함에 깊은 감탄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낮추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왕비님."사실 제제사가 찾고자 한 사람을 송석석이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홍현과 그들을 시켜 그 사람의 이
송석석은 훈장으로서 다른 것은 가르칠 수 없어도 무술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했기에,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무술을 배울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고 신체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무술 말이다.그 말을 듣자,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무술은 타고난 자질이 중요한 법이기에 배우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송석석은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차라리 수업을 하나 더 만들어 힘과 민첩성을 키우는 연습을 하도록 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신을 방어하는 일에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진정으로 무술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신중히 선발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신신이 시만자가 현갑군을 지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송석석을 졸라댔다.“나도 여학에 와서 가르치면 안돼? 나를 여교두로 임명해줘. 응? 제발!”송석석은 신신의 바람대로 해주었고,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가르치기로 했다. 평소 수업 중 한 시간 정도는 신신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었다.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무술을 배울 열 명의 학생들을 선발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농가 출신이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다만 나중에 생계가 어려워질 경우 아가씨들의 호위로 나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몸을 팔지 않아도 되고, 월급도 적지 않다는 이유였다.그중 명십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농사를 지었고, 집안에 글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녀의 이름조차도 형제자매의 순서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사촌들과 합쳐 총 열일곱명이 있는 집안에 막내였기 때문에 명십칠이라 불렸다.원래 그녀의 집에서는 딸에게 글을 배우게 하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장사를 하다 늘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속는 일이 많아진 뒤로, 글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 이런 기회가 생기자 당연히 망설임 없이 딸을 여학에 보낸 것이다.명십칠은 올
송석석은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나서야 대충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명희의 부모는 셋째 아들의 혼사를 준비하기 위해 산속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 겨울철이라 산짐승이 동면에 들어간 틈을 타 가파른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좋은 약초는 대부분 험준한 산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며칠간 연달아 산에 오르다 보니 부부는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피로에 지쳐 있었다. 그러던 중 명희의 어머니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고, 이를 붙잡으려던 명희의 아버지마저 함께 굴러 떨어졌다.다행히 약초를 캐던 사람이 마침 그 길을 지나가 그들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산속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한 사람은 허리를 다쳤고 다른 사람은 다리가 부러졌다. 앞으로는 일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누군가가 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치료도 계속 받아야 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게다가 셋째 아들의 혼례가 다가오면서 그 입버릇처럼 가족의 단합을 말하던 명희는 결국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명희의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계셔?" 송석석이 물었다."아니, 그들은 몰라. 그녀의 부모님은 기와집에 살지 않고, 낡은 헌 집으로 실려 가서 거기서 요양하고 계시대.""다른 가족들은 그녀를 파는 것에 동의했어?" "모르겠어. 다만 그녀의 큰오빠가 이미 5냥으로 거래를 끝냈다고 하더군. 그 사람이 이미 집에 찾아왔었는데, 내가 발 빠르게 먼저 데려온 덕에 다행히 막을 수 있었어."송석석이 다시 말했다."이 일은 양 마마에게 맡기자. 양 마마가 가서 처리하게 하고 너는 따라가기만 하면 돼. 절대 그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다투지도 마. 알겠지?"신신은 황실에 있는 동안 시만자가 그들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던 말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때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대낮에 공개적으로 때리면 안 된다. 반드시 몰래 때리고, 누가 때렸는지 모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신신이 대답했다."오늘은
송석석은 명희의 손을 꼭 잡고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의 가족에 대한 안 좋은 말은 언급하지 않았다.시만자와 신신은 밖에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난 후, 시만자는 보주에게 명희를 데리고 가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시만자가 물었다."왜 명희에게 가족을 보호하라고 했어? 차라리 명희에게 가족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알려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그 굴레에 갇히게 될 거 아냐."송석석은 물을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그녀의 차분한 눈빛 속에는 약간의 슬픔을 담겨있었다."이 일은 그저 명희만의 사례가 아니야. 많은 백성의 집안이 이렇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해결책이 딸이나 여동생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는 거야. 그들에겐 그게 아주 잔인한 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들은 딸을 어린 신부로 팔거나, 부잣집 자제에 시집을 보내는 것이 그저 한 가지 출구라고 여길 뿐이거든.그녀는 잠시 멈추고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사실 아들 결혼을 위해 딸을 팔아버리는 일도 흔해. 최소한 명희의 부모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지만 말이야. 그들은 은화를 벌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았어. 어머니는 장사를 하고, 아버지는 농가에서 노동을 했지. 심지어 위험을 감수하며 약초를 캐러 가셨잖아. 나는 그들이 명희를 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믿어. 아니었으면 명희를 서원에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시만자가 말했다."하지만 명희의 큰오빠와 큰형수는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셋째 오빠는 결혼을 위해 명희를 팔았어. 정말 다들 너무 이기적인데, 명희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어?"송석석은 대답했다. "가족과 단절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야. 특히 명희는 앞으로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부모님의 상태도 걱정해야 하잖아. 아직 열한 살 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없을거야. 우리는 지금 명희의 마음속에 증오를 심을 필요가 없어. 나이가 들고 조금 더 성장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분
송석석은 장장 반 시진 동안 그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진성을 떠날 이유가 필요했기에 말을 타고 궁으로 향했다. 숙청제는 사여묵이 보낸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첫 번째 편지에는 한 마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으며, 그 마을의 주민들이 모두 사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숙청제는 비밀 명령을 내려 사여묵에게 산으로 가서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두 번째 편지에서는 그들이 산에 들어갔으나 방어가 철저하고, 사병임이 분명하지만 아직 무기와 군량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숙청제는 다시 명령을 내려 무기와 군량을 찾아 모조리 없앨 수 있도록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후로 소식이 끊겨 버렸다.숙청제는 사실 조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여러 산을 조사하고 있는데 사병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무림 고수들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충분히 위험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만약 무기를 모두 찾아내 없앤다면, 그 즉시 도적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군을 근처에서 발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큰 소동을 일으킬 필요도 없고, 피를 볼 일도 적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송석석으로부터 그들이 보름동안 소식이 없다는 말을 듣자, 그도 매우 불안하고 초조했다. 소식이 없다는 것은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뜻인데, 이렇게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 군대를 보낼 수는 없었다. 숙청제는 송석석에게 명령을 내려 사람들을 데리고 금관성에 가서 한 차례 공단 비단을 운반해 오라고 지시했다. 그 비단은 서경에 전달될 것이니 실수 없이 전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듯이, 금관성의 외곽에는 산적과 도적들이 많았다. 그 지역은 산이 많았기 때문에, 산적들이 산을 점령한 뒤 상인들의 행렬을 습격하는 일 또한 많았던 것이다.따라서 송석석이 현갑군을 이끌고 가는 것은 명분이 정당했다.그러나 실지적으로 공단을 호위하는 데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송석석 일행은 상인의 신분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노주에 갔다. 송석석은 먼저 대석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후, 대사형과 몽동이를 만날 생각이었다.그녀는 금관성 안의 눈에 띄는 곳에 매화꽃을 그려 표식을 남겼다. 그리고 그 표식을 통해 그들이 묵을 여관을 찾을 수 있었다.그날 밤, 대사형과 몽동이가 찾아왔다. 두 사람의 얼굴이 먼지투성이였고, 옷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재빨리 정리하려 했지만, 신발엔 아직 털리지 않은 흙과 먼지가 가득했다. 그들이 산을 막 떠나 온 것이 분명했다.오는 내내 걱정이 많았던 송석석은 안부를 물어볼 새도 없이 대사형에게 급히 상황을 물었다.심청화가 먼저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다."너희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 그들과 정말 연락이 끊겼고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석촌 남쪽의 오래된 숲에서 사여묵이 남긴 표식을 발견했지. 그들이 그곳에 잠시 머물렀던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아마 며칠 전 일이었을 게야."그는 송석석이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이 소식을 먼저 전한 후에 두 사람의 실종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리는 황제의 밀보를 받았다. 산에 들어가서 어디에 식량과 무기가 숨겨져 있는지 알아보라는 명을 받았지."그래서 그들이 편지를 받았을 때 사실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조사를 가기로 했던 것이다.사여묵은 원래 이런 방식으로 조사를 가는 것을 반대했다. 무작정 산으로 들어가 조사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 마치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그는 차라리 그들의 활동을 면밀히 지켜보며 누가 그들과 접촉하고 누가 식량을 가져다주는지, 얼마나 가져오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위험도 더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그는 식량이 산에 많이 숨겨져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겨우 겨울을 나기 위한 정도이고, 봄이 되면 다시 식량을 보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결국 몇 천 명이 먹을 식량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양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하지
소씨 가문의 반응을 보니, 진성의 다른 가문들이 평소에 그들과 친밀하지 않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만자는 소 부인이 놀란 틈을 타 말을 이었다.“우리 부군이 가장 아끼는 조카가 바로 지아인데, 큰 억울함을 당해서 태후마마께 아뢰려던 걸 내가 간신히 말렸소. 지아를 때린 자가 스스로 나서서 벌을 받으면 그만인 것을!”왕이장은 진성에서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시만자의 부군, 만종문의 제자, 병부 효고사, 그리고 진성 내 만종문 산업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 왕씨 가문의 관계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이럴 때 활용해도 괜찮을 만큼 중요했다. 태후마마가 만종문의 임 사부를 존경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시만자는 말을 마치고 혼자 의자에 앉았는데, 그 표정은 송석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소씨 가문은 비로소 섭정왕비가 직접 소 세자를 데려온 것도 왕지아를 위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소 부인은 왕지아에게 이토록 강력한 배경이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아이고, 제가 소인의 말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네요…”소 부인이 급히 사죄했다.“반드시 뒤에서 함부로 지껄이던 자들을 찾아내 왕씨 아가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그러자 시만자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처벌할 마음이 있는데, 왕지아의 눈을 더럽힐 필요까지 있겠소? 백작부에서 처벌하지 못한다면, 마침 섭정왕비께서 사람을 데리고 오셨으니 소 세자를 처벌할 때 함께 처리하면 되겠소.”소 백작은 급히 수긍하며 하녀와 종들을 불러내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넘겼다. 송석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소 세자가 덕행에 흠이 있는 탓에 작위 수여는 불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누군가 경위부에 고소한 이상 내가 방관할 수도 없소. 대충 몇 대 맞고 넘어가려 한다면 법이 왜 있겠소?”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화풀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소씨 가문 때문에 지아와 소민이를 갈라놓을 순 없는데…’소 부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