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강민재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날 파티에서의 모습을 떠올렸다.
조용하지만 눈에 띄던 분위기, 한치의 망설임도 없던 응급처치, 긴박한 상황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던 태도, 그리고 어딘가 단단해 보이던 눈빛까지 지금 그녀가 하는 말과 겹쳐지며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그녀답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가 본 적 없는 미소를 보였다.
늘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만 보였던 그녀였지만, 자신의 일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아주 잠깐 입가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강민재는 그 짧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며, 그녀에게서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유봄은 자신이 너무 자신의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살짝 미안한 듯 고개를 들었다.
“저는 제 얘기만 한 것 같네요… 혹시 강민재씨는 어떤 일 하세요?”
강민재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려다, 잠시 자신의 회사를 떠올렸다.
업계에서 손꼽히는 대형 건설사였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잠깐 생각한 뒤, 가볍게 답을 골랐다.“건설 쪽 일이에요. 현장 관리나 프로젝트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유봄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설 쪽 일이라는 말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몸을 쓰는 힘든 일을 떠올렸다. 병원 밖 세상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그녀였기에, 그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상상하지 못한 채 그저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였다.“아…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녀의 짧은 한마디에는, 그의 일을 향한 단순한 이해와 함께 자연스러운 걱정이 담겨 있었다.
강민재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타이밍을 가늠하듯 짧게 숨을 고른 뒤,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저… 솔직히 말하면 미국에서 지내면서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조금 외로운 편입니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친구가 되어주실 수 있을까요?”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듯 담담하게 꺼낸 제안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은근히 담겨 있었다.
유봄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도 자신처럼 낯선 곳에서 지내며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떠올렸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네… 좋아요. 친구 하죠.”
강민재는 속으로 밀려오는 감정을 차분히 누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이 너무 커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그의 시선과 미묘한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만족감과 설렘이 은근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를 따라다니는 여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강민재는 그동안 사고로 일찍 부모를 잃은 뒤, 할아버지를 도와 회사를 지키고 키우는 데에만 집중해왔다. 최고의 건설회사를 만든다는 목표 아래 쉼 없이 달려오며, 자연스럽게 연애나 개인적인 감정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도 여자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깊이 마음을 두는 일만큼은 스스로 선을 긋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신이 이렇게 한 사람에게 빠지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를 마주한 순간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감정을 느끼며, 그 변화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자신을 걱정하고 배려해주는 그녀의 세심한 태도에, 강민재는 또 한 번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작은 말 한마디, 자연스럽게 건네는 시선, 그리고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진심이 담긴 행동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녀 역시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낯선 타지에서 홀로 지내며 느끼던 어색함과 피로가, 그와의 대화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풀려나갔다. 서로의 처지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로에게 큰 기대를 하기보다는, 그저 같은 시간 속에서 가볍게 위로가 되어주는 관계. 유봄은 그게 지금의 자신에게 꽤 괜찮은 인연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강민재는 문득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이렇게 매일 저녁을 굶는다면, 자연스럽게 그녀를 만날 이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스스로도 황당한 발상이었지만, 그는 그 생각에 혼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꾸밈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조용히 눈에 담고 있었다. 그의 계획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그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일은 실패한 적이 없다. 그에게 그녀에 대한 계획 역시도. 아마도 그녀는 이제 언제까지나 그의 곁에 설 것이고 그가 그녀의 바람막이가 될 것이고 그녀의 따뜻한 품이 될 것이다. 이런 그의 계획은 전혀 모르는 유봄은 큰 눈을 들어 그에게 살짝 미소 짓는다. 그 미소가 그의 눈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금이라도 손을 뻗어 그녀의 하얀 볼을 얼마나 만져보고 싶은지 그녀는 짐작조차도 못하고 있다.한강 위로 바람이 스쳤다.유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 파티.할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참석했던 자리.유봄도 그날을 기억했다.할아버지가 드물게,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부탁했었다.“체면상 한 번만 얼굴 비춰다오.”그녀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결국 그 자리에 나갔다.화려한 조명과 웃음소리, 계산적인 시선들.그런 자리는 늘 숨이 막혔다.그러다 갑자기 들려온 외침.“사람이 쓰러졌어요!”그 순간, 망설임은 없었다.집안의 체면도, 드레스도, 시선도 다 사라지고 몸이 먼저 움직였다.유봄은 한강 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저도 억지로 나갔던 자리였어요.그냥… 사람이 쓰러졌다길래 움직였을 뿐이에요.”강민재가 웃었다.“그게 당신이야.”유봄은 그를 올려다봤다.몇 년 전,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간 두 사람.그때 이미 시작됐던 인연이, 이제야 제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가슴 깊이 내려앉았다.강민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한강 위로 번지는 불빛이 그의 눈동자에 어른거렸다.“나… 당신 찾으려고 꽤 헤맸어.”유봄이 고개를 갸웃했다.“저를요?”“응. 파티 끝나고 나서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했지.근데 동유럽 출장이 겹쳐서 몇 달을 한국에 없었어.돌아왔을 땐 이미 흔적도 없더라.”그는 작게 웃었지만, 그 안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그래서 그냥… 인연이 아닌
식사가 끝나고, 세 사람은 한정식집 현관 앞으로 나왔다.밤공기가 선선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돌계단 아래로 수행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강두수 회장은 외투를 걸치며 유봄을 향해 몸을 돌렸다.“봄아.”이제는 이름도 자연스럽게 불렀다.“이제 편하게 우리 집에도 놀러 오너라.눈치 보지 말고.”그리고 옆에 서 있는 강민재를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이놈이 열받게 하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고.”지팡이로 바닥을 툭 치며 덧붙였다.“내가 이 녀석 혼꾸녕을 제대로 내줄테니.”강민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할아버지, 누구 편이세요?”강두수는 단호했다.“당연히 봄이 편이지.”유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명심하겠습니다, 할아버님.”그러다 눈을 맞추며 덧붙였다.“건강 조심하세요. 무리하지 마시고요.”그러자 강두수가 껄껄 웃었다.“손주며느리가 유명한 의사인데 뭐가 걱정인가?”“이제 나는 든든해.”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만족이 어려 있었다.차 문이 열리고, 강두수는 타기 전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둘이 잘 어울린다.”짧은 한마디.그러고는 차에 올랐다.검은 세단이 천천히 출발했고,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그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했다.차가 완전히 사라지자, 강민재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합격이네.”
차창 밖으로 한정식집의 한옥 지붕이 보였다.잠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차에서 내렸다.이번에는 강민재가 먼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놓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한옥 안쪽 가장 깊은 별실.창밖으로 작은 정원이 보이고, 대청마루 너머로 은은한 조명이 비쳤다.잘 다려진 한지 메뉴판과 정갈하게 세팅된 놋그릇들.그 앞에 앉은 사람은 강두수 회장이었다.겉으로는 태연했다.지팡이를 옆에 세워두고 차를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은 언제나처럼 묵직했다.하지만 잔을 내려놓는 손끝에 아주 미세한 긴장이 스며 있었다.몇 년 전부터였다.“여자친구 있습니다.”그 한마디만 남기고 한 번도 제대로 소개하지 않던 손주.그 고집 센 놈이 오늘에야 정식으로 인사를 시키겠다 했다.어떤 사람이기에.기업가 집안의 딸도 아니고, 정략적으로 얽힌 관계도 아니고, 손주가 저리도 단단히 마음을 준 여자라니.강두수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궁금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걱정은 없었다.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민재가 그렇게까지 아끼는 여자라면…’괜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손주놈은 일은 차갑게 해도 사람 보는 눈만큼은 정확했다.자신을 닮았으니까.문밖에서 직원의 정중한 목소리가 들렸다.“회장님, 손님 도착하셨습니다.”강두수는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심장이 아주 조금 빨리 뛰었다.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대기업 총수다운 무게가 실려 있었다.‘그래, 어디 한번 보자.’손주놈이 그토록 좋아한다는 여자.그 문이 열리는 순간을 조용히 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한 층을 단독으로 쓰는 공간이 고요하게 펼쳐졌다.강민재의 펜트하우스는 처음이었다.문이 열리자마자 통유리 너머로 서울의 밤이 한눈에 들어왔다.한강과 도심의 불빛이 겹겹이 쌓여 마치 별이 땅으로 내려앉은 듯 반짝였다.80평이 넘는 넓은 공간, 절제된 인테리어, 그러나 차갑지 않은 온기.유봄은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서울… 참 예쁘네요.”유리창에 비친 불빛을 바라보며 아이처럼 미소 지었다.강민재는 그런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가왔다.“당신이 좋다면… 여기로 할까.”“뭘요?”유봄이 돌아보자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신혼집.”공기가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당신이 싫다고 하면 다른 데 알아볼게.더 넓은 곳이든, 한강이 더 가까운 곳이든.”유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강민재는 대답 대신 그녀의 뒤로 다가섰다.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품에 안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함께 서울 야경을 향했다.그의 턱이 그녀의 어깨 위에 닿았다.“근데…”낮게 웃으며 속삭였다.“우리 애들 태어나면 흙 밟으면서 뛰어놀아야 하지 않겠어?”유봄의 숨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정원 있는 집이 좋겠다.잔디 깔고, 작은 그네도 놓고.”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그려온 미래처럼 자연스러운 말투였다.그의 품 안에서 유봄의 심장이 천천히 빨라졌다.이 남자는 현재만 말하지 않는다.항상, 자신과 함
강민재는 잠시 휴대폰을 확인했다.그리고 고개를 들었다.“미안합니다.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짧고 단정한 거절.핑계도, 애매한 여지도 없었다.이미연은 순간 아쉬움이 스쳤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아, 그러시구나. 그럼 다음에 뵈어요.”“네. 다음 주 회의 때 뵙겠습니다.”그는 정중하게 인사하고자신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망설임 없이.이미연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사업 이야기 외에는 단 한 발짝도 곁을 허락하지 않는 남자.함부로 웃지도 않고, 의미 없는 기대를 주지도 않는다.그래서 더 어려웠고, 그래서 더 끌렸다.‘저 사람…’쉽게 얻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차 문을 열기 전, 강민재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이미연의 시선이 가늘어졌다.일할 때와 전혀 다른 톤.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그녀의 승부욕을 자극했다.사업은 계산으로 따낼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다르다.이미연은 천천히 차에 올라타며 생각했다.‘그래요, 강민재 대표님.’사업 파트너로는 충분히 곁에 섰다.이제는 조금 더 가까이.조급하게 들이대지 않는다.대신 자연스럽게, 그의 일상 안으로 스며들 것이다.그가 쉽게 허락하지 않을수록 그의 곁은 더 가치 있어 보였다.그리고 이미연은 도전적인 것을 포기해 본 적이 없었다.공항을 빠져나온 차량이 올림픽대로에 올라섰다.창밖으로 한강이 스쳐 지나갔다.이미연은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아까 본 장면이 계속
미드웨스트 병원의 수술실.최재성은 늘 그렇듯 완벽했다.로봇 암이 그의 손끝처럼 움직였고, 출혈은 거의 없었다.수술이 끝나자 스태프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그는 담담히 장갑을 벗을 뿐이었다.그의 머릿속에는, 문득 몇 년 전 기억이 스쳤다.캐나다 학회장에서였다.산부인과 로봇수술 세션에서 발표하던 한국인 의사.차분하지만 단단한 목소리.질문이 쏟아졌지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받아치던 태도.유봄.그는 객석 뒤편에서 그녀를 지켜봤었다.끝나고 악수를 나누며 “인상 깊었습니다”라고 짧게 말했을 때, 유봄은 예의 바르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그 미소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얼마 뒤, 그녀가 한국의 대한병원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잠시 아쉬움을 느꼈다.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그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었으니까.그리고 오늘, 한 통의 제안서가 도착했다.서울 한양병원.로봇센터장 직함.전폭적 지원.파격 연봉.센터 운영 독립권 보장.조건은 과감했고, 메시지는 분명했다.― 대한병원에 맞설 카드가 되어달라.최재성은 파일을 천천히 읽다가 창밖을 바라보며 낮게 웃었다.“재밌겠네.”대한병원.그리고 그곳에 있는 유봄.망설임은 없었다.그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제안 수락합니다. 일정 조율하시죠.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서울 의료계의 균형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그의 결정에는 야망도 있었고, 승부욕도 있었고,그리고 아주 약간, 다시 한 번 그녀를 보고 싶다는 마음도 섞여 있었다.인천공항 VIP 게이트 앞.한양병원 전략기획실장과 홍보팀장이 직접 마중 나와 있었다.기자 몇 명이 멀찍이 대기하고 있었고, 플래시가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검은 코트를 걸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최재성.짧은 악수, 간결한 인사.“멀리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교수님.”“서울이라면 올 가치가 있죠.”담백한 대답.그러나 눈빛은 이미 계산을 끝낸 사람의 것이었다.한양병원 이사회실.이사장은 직접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