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
봄이었다.
하필이면 거절하기 가장 어려운 계절이었다. "이번 한번만 나가라"조부의 말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그는 결국 넥타이를 고쳐 매며 한숨을 삼켰다. 관심도 없는 사람들, 의미도 없는 대화 그리고 뻔한 인연타령까지. 이런 자리는 늘 그랬다. 시간 낭비였다. 그녀를 보기 전까지는.쿵.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한 중년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순간 주변이 술렁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하얀드레스 ...여자였다.또각
가느다란 굽이 바닥을 두드리다 멈췄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벗어 던졌다. 맨발. 망설임이 없었다."비켜 주세요"
짧고 낮은 목소리.
그 한마디에 사람들 사이가 갈라졌다. 이상하게도 그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손이 남자의 턱을 들어올렸다. 고개를 젖히고 숨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탁, 탁, 탁-
일정하고 강한 압박.
망설임 없는 리듬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도 남자의 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숨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주 미세하게 그녀의 눈이 달라졌다. 처음으로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기도가 막혔어..."
낮게 흘러나온 목소리.
그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뾰족한거 있어요?"
몇 초.
그 짧은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떨리는 손으로 작은 금속 장식을 건냈다. 설마 그녀의 손이 남자의 목으로 향했다. 위치를 짚는다. 망설임이 없다. 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푹.
짧은 소리.
그리고 하얀 드레스 위로 붉은 피가 번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고, 누군가는 숨을 삼켰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직 한곳 쓰러진 남자만 보고 있었다. 그 직후 미세하게 남자의 가슴이 들썩였다. 그는 그 장면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이 여자가 한 일을. 그리고 그걸 해낸 표정이 너무도 담담했다는 걸."119는요?"
여자의 단호한 목소리였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안도의 기운이 순식간에 다시 조여졌다."부...불렀습니다!"
누군가 급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도착하면 바로 이쪽으로 안내하세요."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렸다.
남자의 호흡을 확인하고 가슴의 움직임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완전히 안정된 거 아니니까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조용하지만 분명한 말.
그 말은 환자에게 하는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경고 같았다. 드레스는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손은 여전히 남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고, 눈은 단 한 번도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점점 가까워졌다. 누군가가 외쳤다."구급차가 왔어요!"
들것을 든 구급대원들이 들어왔다.
"환자 상태는요?"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숨은 조금 가빠보였지만 말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CPR시행했고 기도폐쇄 의심돼서 기본 기도 확보 시도했지만 안 됐고"
그녀의 시선이 환자의 목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응급으로 윤상갑상막 절개해서 기도 확보했습니다."
구급대원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바뀌었다.
"지금은 자발순환 돌아온 상태고, 호흡은 아직 불안정합니다."
하얀 드레스 위에 번진 피, 맨 발,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얼굴.
그 모든 게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구급대원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바로 이송하겠습니다."
그 말에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저 의사입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처럼 들렸다.
들것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그 옆을 놓치지 않았다.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붙었다. 시선은 끝까지 환자에게만 가 있었다. 사람들은 길을 비켜섰고, 그 사이로 그녀가 지나갔다. 점점 가까워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거리. 맨발. 차가운 바닥 위를 그대로 밟고 있었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하얀 드레스 위로 번진 피. 그 선명한 색조차 그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였다.쾅.
구급차 문이 닫히고 사이렌이 울렸다.
위잉 위잉-
점점 멀어지는 소리.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시선은 계속 그녀가 사라진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이미 보이지 않는데도 눈을 감지 않아도 떠올랐다. 하얀 드레스 그리고 그 위에 번지던 붉은색, 맨발로 바닥을 딛고 서 있던 모습,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던순간, 그리고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던 눈, 이상할 정도로 또렸했다. 그는 원래 이런 걸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 이름도 남기지 않는 인연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은 달랐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만 유독 선명했다. 마치 그날의 기억이 그녀를 중심으로 남아버린 것처럼. 이름도 모른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다. 저 여자를 잊지 못할 거라고 그리고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알람소리가 울리기 전 눈이 먼저 떠졌다. 몸이 무거웠다. 팔다리에 남아있는 묵직한 피로감, 어제 일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천장을 바라봤다. 파티장, 쓰러진 남자, 손에 닿던 감각.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익숙한 동작처럼 몸을 일으켰다. 세면대 앞에 멈춰 섰다. 거울 속에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눈가에 아주 옅은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그조차 크게 티나지 않았다. 피부는 유난히 희었다. 빛을 받은 듯 맑고 잡티 하나 없이 정리된 느낌 그리고 커다란 눈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길게 내려온 속눈썹 아래로 피곤함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콧날은 단정하게 곧았다. 과하지 않게 오똑하게 올라간 선이 얼굴 전체를 또렷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특별히 꾸민건 없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인데도 어딘가 정리된 인상이었다. 누가봐도 쉽게 시선을 두 번쯤 머물게 할 얼굴. 하지만 그녀는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아무 감정도 없이 그저 익숙한듯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머리를 묶었다. 거울속 여자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쁜 얼굴이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의사의 얼굴로. 숙직실 문을 밀고 나왔다. 복도는 이미 환하게 켜져 있었다. 밤과 아침의 경계가 흐릿한 공간. 병원은 늘 그렇듯 누군가의 하루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가운을 한 번 정리하고 걸음을 옮겼다.박수가 다시 터지고 유봄이 단상에서 내려왔다.사람들이 몰려들었다.질문을 던지고, 악수를 청하고, 명함을 건넨다.그 중심에 선 유봄.유지원은 그 장면이 못마땅했다.“저렇게까지 떠받들 일인가…”제주 학회 마지막 날 밤.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연회장에 원탁들이 둥글게 놓여 있었다.학회 공식 만찬.잔잔한 클래식 연주와 은은한 조명 아래, 의료계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유봄은 심플한 블랙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과하지 않게 올린 반머리, 얇은 진주 귀걸이.낮의 단정한 발표자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차분하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감.최재성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다가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 시선을 멈췄다.‘…역시.’실력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한데, 이 여자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유봄이 안내받은 자리에 앉자 우연처럼, 그러나 의도적으로 그녀의 오른쪽 자리는 최재성이었다.“오늘 발표, 인상 깊었습니다.”잔을 들어 가볍게 건네며 그가 말했다.“특히 출혈 상황에서 전환 속도.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현장에서 더 대단했을 것 같네요.”유봄은 미소 지었다.“과찬이에요. 교수님 세션도 잘 들었습니다. 췌담도 케이스 접근법, 많이 정교해지셨더라고요.”“정교해졌다는 말은… 예전엔 거칠었다는 뜻입니까?”장난기 어린 질문.유봄은 눈을 맞추며 담담히 답했다.“예전엔 공격적이셨죠. 지금은 계산적이시고요.”최재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대강당.로봇수술 세션의 마지막 발표자가 단상에 올랐다.“대한병원 일반외과, 유봄입니다.”낮고 또렷한 목소리가 홀을 채웠다.최재성은 프로그램북에서 시선을 들었다.유봄.이름을 보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하지만 직접 마주하는 건 몇 년 만이었다.조명이 그녀를 비추자 강단 위에 선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단정하게 묶은 머리, 절제된 화장, 깔끔한 화이트 수트.그녀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장식보다 눈에 띄었다.발표가 시작됐다.복강경 전환 없이 고난도 골반 종양을 로봇 단일공으로 집도한 케이스.영상이 흘러나오고, 그녀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졌다.“이 구간에서 혈관 변이가 예상되어 접근 각도를 15도 수정했습니다.”단순한 성공 사례가 아니었다.위험 요소, 판단 근거, 술기 선택 이유까지 정확했다.최재성의 입가가 천천히 올라갔다.‘여전하군.’아니, 더 날카로워졌다.질의응답 시간.국외 교수가 집요하게 물었다.“그 상황에서 conversion risk는 없었습니까?”잠깐의 침묵.유봄은 눈을 들어 질문자를 바라봤다.“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술은 위험을 피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는 거니까요.”담담하지만 확신에 찬 대답.청중석 여기저기서 고개가 끄덕여졌다.최재성은 그 순간 확실히 인정했다.라이벌, 그리고 아름답다.실력 있는 의사가 아름다울 때의 파괴력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세션이 끝나고 로비.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질문이 쏟아졌다.
한강 위로 바람이 스쳤다.유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 파티.할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참석했던 자리.유봄도 그날을 기억했다.할아버지가 드물게,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부탁했었다.“체면상 한 번만 얼굴 비춰다오.”그녀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결국 그 자리에 나갔다.화려한 조명과 웃음소리, 계산적인 시선들.그런 자리는 늘 숨이 막혔다.그러다 갑자기 들려온 외침.“사람이 쓰러졌어요!”그 순간, 망설임은 없었다.집안의 체면도, 드레스도, 시선도 다 사라지고 몸이 먼저 움직였다.유봄은 한강 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저도 억지로 나갔던 자리였어요.그냥… 사람이 쓰러졌다길래 움직였을 뿐이에요.”강민재가 웃었다.“그게 당신이야.”유봄은 그를 올려다봤다.몇 년 전,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간 두 사람.그때 이미 시작됐던 인연이, 이제야 제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가슴 깊이 내려앉았다.강민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한강 위로 번지는 불빛이 그의 눈동자에 어른거렸다.“나… 당신 찾으려고 꽤 헤맸어.”유봄이 고개를 갸웃했다.“저를요?”“응. 파티 끝나고 나서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했지.근데 동유럽 출장이 겹쳐서 몇 달을 한국에 없었어.돌아왔을 땐 이미 흔적도 없더라.”그는 작게 웃었지만, 그 안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그래서 그냥… 인연이 아닌
식사가 끝나고, 세 사람은 한정식집 현관 앞으로 나왔다.밤공기가 선선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돌계단 아래로 수행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강두수 회장은 외투를 걸치며 유봄을 향해 몸을 돌렸다.“봄아.”이제는 이름도 자연스럽게 불렀다.“이제 편하게 우리 집에도 놀러 오너라.눈치 보지 말고.”그리고 옆에 서 있는 강민재를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이놈이 열받게 하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고.”지팡이로 바닥을 툭 치며 덧붙였다.“내가 이 녀석 혼꾸녕을 제대로 내줄테니.”강민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할아버지, 누구 편이세요?”강두수는 단호했다.“당연히 봄이 편이지.”유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명심하겠습니다, 할아버님.”그러다 눈을 맞추며 덧붙였다.“건강 조심하세요. 무리하지 마시고요.”그러자 강두수가 껄껄 웃었다.“손주며느리가 유명한 의사인데 뭐가 걱정인가?”“이제 나는 든든해.”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만족이 어려 있었다.차 문이 열리고, 강두수는 타기 전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둘이 잘 어울린다.”짧은 한마디.그러고는 차에 올랐다.검은 세단이 천천히 출발했고,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그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했다.차가 완전히 사라지자, 강민재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합격이네.”
차창 밖으로 한정식집의 한옥 지붕이 보였다.잠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차에서 내렸다.이번에는 강민재가 먼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놓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한옥 안쪽 가장 깊은 별실.창밖으로 작은 정원이 보이고, 대청마루 너머로 은은한 조명이 비쳤다.잘 다려진 한지 메뉴판과 정갈하게 세팅된 놋그릇들.그 앞에 앉은 사람은 강두수 회장이었다.겉으로는 태연했다.지팡이를 옆에 세워두고 차를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은 언제나처럼 묵직했다.하지만 잔을 내려놓는 손끝에 아주 미세한 긴장이 스며 있었다.몇 년 전부터였다.“여자친구 있습니다.”그 한마디만 남기고 한 번도 제대로 소개하지 않던 손주.그 고집 센 놈이 오늘에야 정식으로 인사를 시키겠다 했다.어떤 사람이기에.기업가 집안의 딸도 아니고, 정략적으로 얽힌 관계도 아니고, 손주가 저리도 단단히 마음을 준 여자라니.강두수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궁금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걱정은 없었다.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민재가 그렇게까지 아끼는 여자라면…’괜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손주놈은 일은 차갑게 해도 사람 보는 눈만큼은 정확했다.자신을 닮았으니까.문밖에서 직원의 정중한 목소리가 들렸다.“회장님, 손님 도착하셨습니다.”강두수는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심장이 아주 조금 빨리 뛰었다.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대기업 총수다운 무게가 실려 있었다.‘그래, 어디 한번 보자.’손주놈이 그토록 좋아한다는 여자.그 문이 열리는 순간을 조용히 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한 층을 단독으로 쓰는 공간이 고요하게 펼쳐졌다.강민재의 펜트하우스는 처음이었다.문이 열리자마자 통유리 너머로 서울의 밤이 한눈에 들어왔다.한강과 도심의 불빛이 겹겹이 쌓여 마치 별이 땅으로 내려앉은 듯 반짝였다.80평이 넘는 넓은 공간, 절제된 인테리어, 그러나 차갑지 않은 온기.유봄은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서울… 참 예쁘네요.”유리창에 비친 불빛을 바라보며 아이처럼 미소 지었다.강민재는 그런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가왔다.“당신이 좋다면… 여기로 할까.”“뭘요?”유봄이 돌아보자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신혼집.”공기가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당신이 싫다고 하면 다른 데 알아볼게.더 넓은 곳이든, 한강이 더 가까운 곳이든.”유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강민재는 대답 대신 그녀의 뒤로 다가섰다.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품에 안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함께 서울 야경을 향했다.그의 턱이 그녀의 어깨 위에 닿았다.“근데…”낮게 웃으며 속삭였다.“우리 애들 태어나면 흙 밟으면서 뛰어놀아야 하지 않겠어?”유봄의 숨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정원 있는 집이 좋겠다.잔디 깔고, 작은 그네도 놓고.”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그려온 미래처럼 자연스러운 말투였다.그의 품 안에서 유봄의 심장이 천천히 빨라졌다.이 남자는 현재만 말하지 않는다.항상, 자신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