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rtir

2

Autor: 딸기팝콘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7-28 18:50:35

익숙한 복도.

익숙한 소리.

바쁘게 오가는 발걸음 사이로 자연스럽게 몸이 스며들었다.

“선생님, 나오셨어요?”

병동 쪽에서 간호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밤은 어땠어요?”

“새벽에 한 번 좀 바빴어요.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요.”

짧은 보고.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았어요.”

말은 짧았지만, 그 한마디에 간호사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병실 앞을 지나며 몇 명과 더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자연스럽게 오가는 인사.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제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병동 깊숙한 쪽으로 들어가며 그녀는 차트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상태를 훑는다.

머릿속이 빠르게 정리됐다.

피곤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손은 가벼웠다.

이곳에 있으면,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지니까.

그녀는 차트를 덮었다.

그리고, 다음 병실로 향했다.

그녀가 병실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복도가 조금 조용해졌다.

남아 있던 간호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듯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진짜 대단하지 않아?”

작은 목소리였다.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솔직히 처음엔 좀 무서웠거든.”

“맞아. 말도 별로 없고.”

둘 다 웃음을 참듯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정적.

그러다, 다른 간호사가 조용히 덧붙였다.

“근데… 환자 볼 때 보면 완전 다르잖아.”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봤지? 어젯밤 응급수술하고도 저렇게 바로 들어가는 거.”

“그러니까…”

누군가 한숨처럼 말했다.

“진짜,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어.”

시선이 자연스럽게 병실 문 쪽으로 향했다.

닫혀 있는 문.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듯.

“얼굴도 예쁘고…”

“일도 잘하고…”

“집안도…”

말이 거기서 잠깐 멈췄다.

굳이 이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들려온 낮은 발소리.

규칙적이고, 가볍지 않은 걸음.

간호사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교수님…”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흰 가운을 걸친 남자가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흐티러짐 없는 옷매무새.

그리고 이유 없이 시선을 끄는 얼굴.

대한병원의 최고 인기남.

이진성 교수였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들 옆을 지나쳤다.

하지만, 아주 잠깐 시선이 스쳤다.

닫혀 있는 병실 문 쪽으로.

그 안에 누가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간호사들의 대화는 끝까지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부 들었을지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걸음을 멈춘 채 병실 쪽을 잠깐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옅게, 미소 지었다.

티 나지 않을 정도로, 혼자만 아는 표정으로.

금방 사라질 듯한 미소였다.

이내 고개를 돌린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나가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여유롭고 단정했다.

수술실은 이미 준비가 끝나 있었다.

밝은 조명 아래, 모든 것이 정리된 상태.

기계의 일정한 소리만이 조용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환자 상태?”

낮고 차분한 목소리.

이진성 교수였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이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혈압 유지되고 있습니다. 맥박 안정적입니다.”

유봄의 대답은 짧았다.

이미 장갑을 낀 손이 자연스럽게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시작하죠.”

말이 떨어지자, 공기가 한순간 더 조여졌다.

메스가 건네졌다.

이진성의 손이 움직였다.

망설임 없는 선.

정확하게, 필요한 만큼만.

그 옆에서 유봄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한 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흡인.”

짧은 지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흐르는 혈액이 정리되고, 시야가 다시 확보됐다.

“좋아.”

아주 작게, 이진성이 말했다.

칭찬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말투.

하지만,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수술은 빠르게 진행됐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움직임.

말은 많지 않았지만,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마치 오래 맞춰온 것처럼.

“여기, 봐.”

이진성이 말했다.

유봄의 시선이 바로 따라갔다.

“이쪽 조직, 어떻게 할 거지?.”

질문이었다.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선택을 묻는 질문.

잠깐의 정적.

유봄의 눈이 흔들림 없이 고정됐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절제 후 봉합이 더 안전합니다.”

망설임 없는 대답.

수술실 안이 아주 미세하게 조용해졌다.

이진성의 시선이 그녀에게 잠깐 머물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진행하지.”

허락이었다.

아니, 신뢰에 가까운 말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수술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마지막 봉합.

실이 지나가고, 상처가 정리됐다.

“수고했습니다.”

짧은 한마디.

그제야 숨이 조금 느슨해졌다.

유봄은 장갑 낀 손을 내려다봤다.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수술등 불빛 아래에서, 이진성의 시선이 잠깐 그녀

를 향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짧게 눈웃음을 지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용하게.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Continúa leyendo este libro gratis
Escanea el código para descargar la App

Último capítulo

  • 봄을 담다   14

    그동안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던 이진성은 요즘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매일이 초췌했고, 밤이면 술로 시간을 버티듯 지새웠다.그 영향은 수술에서도 드러났다.늘 정확하던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판단도 예전 같지 않았다.완벽하던 그의 균형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유지원은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유봄이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진성을 완전히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스쳤다.모처럼 일찍 퇴근한 날.유지원은 일부러 지하주차장에서 이진성의 차 옆에 서 있었다.한참을 기다린 끝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이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를 확인한 순간, 유지원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교수님.”그의 앞에 선 그녀는 잠시 눈을 마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드릴 말씀이 있어요.”이진성은 이미 지친 기색으로 얼굴을 찌푸렸다.“내일 얘기해요.”신경질적인 말투로 짧게 내뱉은 그는 그대로 차 문을 열려 했다.그 순간, 유지원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책임지세요.”이진성의 손이 멈췄다.“책임지실 행동 하셨으면… 책임지셔야죠.”차갑게 내려앉은 말.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유지원을 바라봤다.눈빛이 순간 굳어졌다.이진성의 시선이 굳은 채로 멈췄다.그때 유지원이 한 발 더 다가오며 말했다.“회식 날… 기억 안 나세요?”잠깐의 침묵.“교수님이… 제 선을 넘으셨어요.”차분하게 내뱉는 말이었지만, 그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이진성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리고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그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유지원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말을 이었다.“…이 일, 제 동생 유봄도 알고 있어요.”그 한마디에 이진성의 표정이 굳었다.하지만 사실은 유봄이 이 일을 알 리 없었다.이미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그녀였다.확인할 수도, 따질 수도 없는 상황.유지원의 입가에 아주 미세한 미소가 스쳤다.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듯.말을 듣는 순간, 이진성의 손에서 차키가 힘없이 떨

  • 봄을 담다   13

    이진성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기억이 나지 않는 공백만이 남아 있었다.출근한 이진성은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하루를 시작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늦더라도 답장을 주던 유봄의 연락이 오지 않았다.“…왜지.”짧게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다시 들여다봤지만 상황은 같았다.잠시 망설이던 그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그리고 유봄을 직접 찾아 나섰다.이진성은 유봄이 자주 머물던 병동 스테이션으로 향했다.하지만 그곳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유봄 선생님, 혹시 어디 계신지 아세요?”오더를 정리하던 간호사에게 조용히 물었다.간호사는 잠시 확인하더니 말했다.“유봄 선생님, 오늘 휴가 내셨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이진성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휴가요?”짧게 되묻는 목소리에는 걱정이 스며 있었다.“네, 어제 당직도 대신 서주시고… 오늘은 쉬신다고 전달받았어요."‘어제… 연락도 없었고.’그의 머릿속에 의문이 빠르게 떠올랐다.이진성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그의 표정에는 점점 더 짙은 걱정이 번지고 있었다.유봄이 며칠째 휴가를 내고 있다는 소식에 유철중 이사장은 자연스레 걱정이 들었다.늘 바쁘게 움직이던 손녀였다.웬만한 휴가도 반납하며 병원에 남아 있던 아이.“유봄이 휴가를 냈다고?”짧게 되묻는 목소리에는 놀람과 함께 미묘한 염려가 섞여 있었다.단 한 번도 오래 쉬는 법이 없던 손녀였기에, 이번처럼 연달아 자리를 비우는 건 분명 평소와 달랐다.유철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조용히, 유봄의 상태를 확인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일주일 후.유철중 이사장은 손녀와의 점심 약속을 잡은 장소로 향했다.직접 얼굴을 보고 상태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하던 차 먼저 유봄에게서 연락이 왔다.약속 장소에서 마주한 손녀의 모습은 그의 기억보다 한층 더 야위어 있었다.유철중은 말없이 유봄을 바라보았다.걱정이 섞인 시선이 자연스럽게 머물렀다.유봄은 마주 앉은 할아버

  • 봄을 담다   12

    이진성은 곧바로 유봄에게 왜 안 오냐며 문자를 보냈지만, 한참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나이 든 교수들은 1차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자리를 뜨고, 남은 자리는 젊은 이진성에게 맡겨졌다.혼자 남은 그는 전공의들이 건네는 술잔을 거절하지 못한 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술을 받아 마셨다.술자리가 무르익자, 평소 이진성을 흠모하던 여전공의들이 하나둘 가까이 다가왔다.“교수님, 여자친구 있으세요?”“진짜 궁금했어요.”너도나도 웃으며 던지는 질문들.평소라면 끝까지 절제했을 이진성이었지만, 오랜만에 마신 술에 그는 꽤 취해 있었다.느슨해진 표정, 그리고 보기 드문 부드러운 미소.“있습니다.”잔을 내려놓으며,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똑똑한 여자친구요.”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이진성은 흐릿한 눈으로 웃으며 덧붙였다.“곧… 결혼할 겁니다.”단정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그의 말을 들은 순간, 주변에 있던 전공의들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진짜요…?”“결혼이요…?”놀란 기색이 먼저 번졌고 이내 어딘가 씁쓸한 기류가 따라붙었다.이미 누군가의 남자라는 사실 하나로, 자신들에겐 애초에 기회조차 없었다는 걸 깨달은 듯, 전공의들의 얼굴에 조용한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그 말을 들은 유지원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것도 모른 채 주먹을 꽉 쥐었다.그 시각, 응급 상황을 정리한 유봄은 그제서야 이진성의 문자를 확인했다.잠시 망설이다가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얼굴이라도 보고 갈까…’그녀는 그렇게 결심하고, 회식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유봄은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이진성에게 줄 숙취해소제를 고르며 안으로 들어섰다.그 안쪽 테이블에는 이진성의 동기들이 앉아 있었고, 고깃집에서 스쳐 봤던 그를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걔, 대학 때는 연애 관심도 없던 놈 아니었냐?”“그러다 갑자기 유봄이랑 사귄다니까 좀 이상하긴 하더라.”“유봄 배경 모르는 사람 없잖아

  • 봄을 담다   11

    유지원의 눈빛이 서서히 식어갔다.“또… 유봄이야.”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어릴 때부터 그랬다.비교의 대상은 언제나 유봄이었고, 결과는 늘 같았다.더 인정받는 사람,더 사랑받는 사람.그리고 결국 선택받는 사람.“없었으면…”아주 작게, 스쳐 지나가듯 흘러나온 말.유봄만 아니었다면 이 병원도 자신이 설 수 있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그리고이진성.그 남자 역시.차트를 내려놓는 순간, 유지원의 시선이 다시 엽서에 꽂혔다.나의 사랑, 유봄.짧은 한 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입술이 미세하게 굳었다가, 이내 풀렸다.“…그래.”아주 작게 흘린 말.전부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유봄이 다 가져가고 있다면 하나쯤은, 자신이 가져와도 되지 않을까.그녀의 눈빛이 천천히 식었다.그리고 또렷해졌다.이진성.그 남자만이라도 유봄에게서 뺏고 싶다는 욕망이,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리 잡았다.유지원의 손이 잠깐 멈췄다.방금 전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지시를 쏟아내던 선배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이거 빨리 처리해.”“그건 왜 아직도 안 끝났어?”당연하다는 듯 내리꽂는 말투.설명도, 배려도 없이 쏟아지는 지시들.입술이 천천히 굳어졌다.지금까지는 참고 넘겼다.인턴이니까, 당연한 과정이라고.하지만 그 선을 넘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웃기네.”작게 흘러나온 말.‘내가 누군데.’지금 이곳에서,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인턴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그건 ‘모르고 있어서’일 뿐이었다.유지원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자신이 대한병원장의 큰딸이라는 사실을 밝혀, 아무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다 같이 구내식당으로 향하던 길, 유지원은 그날도 선배 레지던트의 잔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그때 저 앞에서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대한병원 원장 유재원.그리고 내과 과장 김순철 교수.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유지원의 걸음

  • 봄을 담다   10

    그날 밤.이진성은 혼자 서 있었다.머릿속에는 계속 같은 장면이 맴돌았다.유봄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남자,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시선들.“…하.”짧게 숨을 내쉰 그는, 고개를 들었다.더 이상 애매한 위치에 둘 생각은 없었다.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유봄을 자신의 사람으로.그는 조용히 결심했다.청혼하겠다고.그리고 같은 시기.대한병원 인턴 오리엔테이션 날.유지원은 병원 복도를 따라 걷다가,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이진성.단정한 가운, 흐트러짐 없는 태도, 그리고 한 번 보면 쉽게 눈을 뗄 수 없는 분위기.유지원의 걸음이 멈췄다.“…누구지.”짧게 중얼거린 말.하지만 시선은 이미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그 순간 유지원 역시 한눈에 빠져버렸다.인턴 배정 희망서를 받아 든 순간, 유지원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다른 인턴들이 과를 두고 고민하는 사이, 그녀의 펜은 이미 한 곳에 멈춰 있었다.일반외과.원래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과였다.힘들고, 거칠고, 버티기 어려운 곳.하지만 유지원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이진성.그 한 사람.단상 위에서 내려오던 순간 스쳐 지나간 그 눈빛.차갑게 정리된 말투, 그리고 쉽게 가까이 갈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까지.오히려 그래서 더 욕심이 났다.유지원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체크를 마쳤다.며칠 뒤, 일반외과 첫 출근.스테이션은 예상대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짧게 오가는 지시, 빠르게 움직이는 발걸음들.그 혼잡한 흐름 속에서, 유지원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그리고 찾았다.이진성.차트를 넘기며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는 모습.군더더기 없는 동작, 짧고 정확한 말.멀리서 보기만 해도, 다른 사람들과 결이 달랐다.유지원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쳤다.하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았다.젊은 나이에 조교수 자리까지 오른 이진성은, 애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병원 안에서 그의 위치는 분명했다.실력으로 올라온 사람, 그리고 그만큼 철저하게

  • 봄을 담다   9

    강민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멈춰 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엉켜 있던 인허가는 다시 흐름을 찾았고, 막혀 있던 자금 라인도 그의 지시 한 번으로 방향이 잡혔다.흔들리던 현지 파트너 역시, 직접 나선 그의 한마디에 태도를 바꿨다.처리는 빠르고, 판단은 정확했다.불필요한 과정은 과감히 잘라내고, 핵심만 남기는 방식.짧은 시간 안에 상황은 눈에 띄게 정리되고 있었다.하지만 강민재는 알고 있었다.지금 해결되고 있는 것들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이라는 걸.이 사태의 뿌리는 더 깊숙이 박혀 있었고, 한 번의 정리로 완전히 끝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겉을 정리하는 것과, 완전히 잘라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그는 창가에 서서 잠시 도시를 내려다봤다.차갑게 정돈된 유럽의 풍경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들이 얽혀 움직이고 있었다.“……”짧게 숨을 내쉰 그는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이번 건은 단기간에 끝낼 일이 아니었다.겉으로는 빠르게 수습하고 있었지만, 남아 있는 문제들까지 완전히 도려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최소 몇 달.그는 머릿속으로 일정을 다시 정리했다.본사와의 조율, 현지 라인 정리, 새로운 구조 재편까지.모든 걸 끝까지 잡으려면,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강민재는 망설이지 않았다.이미 선택한 일이었고, 시작한 이상 끝을 내는 성격이었으니까.“정리한다.”짧게 중얼거린 말처럼,그의 시선은 다시 냉정하게 가라앉았다.이번에는 단순한 해결이 아니라, 완전히 정리하기 위해서였다.늦은 밤, 일정이 겨우 끝난 뒤였다.강민재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창가에 섰다.하루 종일 이어진 회의와 정리, 끝없이 이어지는 보고들로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그는 말없이 위스키를 한 잔 따랐다.잔에 부딪히는 얼음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낮게 울렸다.한 모금.목을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감각이, 쌓여 있던 피로를 조금씩 눌러내렸다.창 너머로는 유럽의 밤거리가 펼쳐져 있었다.정돈된 가로등, 잔잔

Más capítulos
Explora y lee buenas novelas gratis
Acceso gratuito a una gran cantidad de buenas novelas en la app GoodNovel. Descarga los libros que te gusten y léelos donde y cuando quieras.
Lee libros gratis en la app
ESCANEA EL CÓDIGO PARA LEER EN L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