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마차에 오르자 그제야 아민이 불평을 늘어놓았다.“아씨, 고장훈 그 사람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씨를 보는 눈빛이 정말 기분 나빠요. 게다가 유경원과 난향원은 방향도 다른데 이 시간에 세자께서 저택에 계신 것도 아니고...... 고장훈이 왜 유경원 밖에 있었을까요?”“제 생각엔 그자가 아씨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해요!”유소영은 고장훈의 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여전히 세자 부인이었으니, 고장훈이 감히 어쩌지는 못할 터였다.게다가 고장훈 자신 또한 골치 아픈 일이 산더미였다.“이랴!”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유소영은 미처 방비하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다행히 아민이 그녀를 붙잡았다.“무슨 일입니까!”아민이 화가 나서 밖을 향해 소리쳤다.마부가 대답하려던 찰나, 여인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세자 부인, 접니다. 강지영이에요.”마차 안.유소영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주루의 별실 안.유소영과 강지영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예전의 초췌했던 모습과 달리 강지영의 안색은 홍조를 띠었고, 부귀를 누리는 사람 특유의 여유로움마저 감돌았다.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임근의 형 집행 장소인 동시 어귀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마침 임근의 몸이 마차에 묶이고 있었다. 구경하던 백성들은 흥분하여 일찌감치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유소영은 이어질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려 탁자 위로 시선을 옮겼다.맞은편의 강지영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거열형이 집행되는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기이한 침묵 속에서 형 집행 소리만 들려오더니, 이내 처참한 비명이 동시 어귀에 울려 퍼졌다.강지영은 임근이 죽은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유소영을 바라보았다.“왜 보지 않으세요? 저런 죄인들이 처형당하는 걸 보면 통쾌하지 않으십니까?”그녀가 물었다.유소영은 아무런 동요도 없는 얼굴이었다.“강 소저께서 절 찾으신 게, 이 형 집행을 같이 보자고 그런 겁니까?”강지영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세자 부
난향원.임유정은 아버지를 원망했으나, 그렇다고 그가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오늘 아버지가 거열형에 처한다는 소식에 그녀는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고장훈은 다리 부상이 호전되어, 이제 제법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그는 지난 며칠간 임유정이 보여 준 정성 어린 간호에 고마움을 느끼며 제안했다. “어쨌든 부인의 친부 아니오. 내가 부인과 함께 가서 시신이라도 거두어 드리겠소.”그 말에 임유정은 더욱더 서러움이 북받쳤다.아버지가 당해야 할 형벌은 거열형이었다.그리고 지금 그의 시신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딸인 자신뿐이었다.그러나 두 사람이 시신을 수습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 부인은 결사반대했다.고 부인은 일부러 두 사람을 불러들였다.“유정아, 너는 이미 임씨 가문과 연을 끊었고 이제 후작부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임근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데, 네가 가서 시신을 거두면 남들이 뭐라 수군대겠느냐?”고 부인은 이어서 고장훈을 나무랐다. “장훈이 너도 그렇다. 네가 어떻게 낙마해서 중상을 입었는지 잊었느냐? 그자들이 임근 때문에 사위인 너에게 보복한 게 아니더냐! 그런데 감히 시신을 거두러 가겠다고?”고장훈도 침묵했다.임유정은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제 친아버지가 아닙니까!”고 부인의 얼굴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사람이 죽으면 등불 꺼지듯 끝나는 법이다. 남는 게 뭐가 있겠느냐? 임근이 너희에게 남긴 건 치욕과 죄업뿐이다. 연루된 걸로도 모자라 더 당하고 싶다면 어디 한번 가 보거라!”말리는 척했으나, 실상은 이해득실을 분명히 따져 스스로 결정하게끔 종용한 것이었다.고장훈은 한발 물러섰다.그는 몸을 돌려 임유정을 나직이 달랬다.“내가 사람을 시켜 장인어른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도 잘 치러 주겠소. 하지만 우리가 직접 형장에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소. 백성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또 무슨 사단을 낼지 모르니 말이오.”임유정은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부군의 뜻을
고준형은 작은 평상 위에 앉아 있는 유소영을 바라보았다. 뒷모습만 봐도 잔뜩 심통이 난 것이 느껴졌다.그는 곧장 다가가 이불째로 그녀를 안아 들었다.몸이 공중에 붕 뜨자 유소영은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고준형은 그녀를 침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부인이 침상에서 주무시오. 내가 평상에서 잘 테니.”유소영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불을 꼭 여미고는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고준형은 침상 옆에 서서 묵묵히 휘장을 내린 뒤, 작은 평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이날 밤, 두 사람은 비록 한 침상에 눕지는 않았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서로 다른 생각에 잠긴 채, 그렇게 날이 밝았다.……이튿날, 고준형은 일찌감치 형부로 향했다.오늘은 임근의 형 집행일이었기 때문이다.그는 직접 옥사로 찾아가 참수를 기다리고 있는 임근을 만났다.한때 재상이었던 자가 이제는 죄수복을 입은 채, 얼굴은 핼쑥하고 피폐해져 있었다.그의 눈동자는 마치 고인 물처럼 탁하게 죽어 있었다.“고 대인, 듣자 하니 이삭이 죽었다더군?”고준형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오늘 오시, 재상은 동시 어귀에서 거열형에 처해질 것입니다.”임근은 눈꺼풀을 들어 올려 옥사 밖의 고준형을 쳐다보았다.“내 시신조차 온전치 못한 최후를 맞게 될 줄은 몰랐네.”“그러나 이삭의 죽음에는 분명 내막이 있을 걸세.”“나도 느꼈다네. 강회산의 그 사건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안타깝게도 난 그 결말을 볼 수 없겠지만 말이야.”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선해진다고 했던가.임근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고준형에게 말했다.“자네를 속인 게 하나 있네.”“사실 그 옛날 군량을 횡령할 때, 강회산을 끌어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네.”“그 사람은 충심이 깊은 위인이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지.”“강회산이…… 제 발로 나를 찾아왔던 거야.”고준형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임근은 믿기 힘든 이야기라는 걸 알기에 기억을 더듬으며
월하각.고준형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안방으로 돌아왔다.그때까지 방 안에는 여전히 등불이 켜져 있었다.방으로 들어서니, 과연 유소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준형이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게요?”유소영은 아민에게 눈짓하여 먼저 나가 있으라 했다.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준형에게 공손히 예를 갖췄다.“세자, 부디 제 해명을 들어주십시오.”고준형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눈빛이 의미심장했다.“이미 이 일은 더 따지지 않으려 했거늘,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려는 게요?”“저는…….”“유소영, 지난 일들은 오늘 밤이 지나면 다 잊을 것이오. 이런 사소한 일로 내 마음을 쓰게 하지 마시오. 내일 일찍 관서에 나가야 하니, 의미 없는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소.”그렇게 말하는 그의 어조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유소영도 그가 정무를 보는 데 지장을 주고 싶진 않았다.더욱이 그 역시 오라버니의 사건을 조사하고 있지 않은가…….그러나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이대로 후작부에 남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유소영이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고준형은 이미 그녀를 지나쳐 침상 쪽으로 걸어갔다.유소영이 그의 뒤를 따랐다.“세자, 그럼 내일 저녁에 다시…….”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사내는 거침없이 허리띠를 풀고 겉옷을 벗어 던졌다.유소영은 황급히 몸을 돌려 차마 더 보지 못했다.“오늘은 확실히 너무 늦었으니, 내일 제가…….”“유경원의 구조를 고칠 생각이오. 부인의 취향대로 꾸며도 좋소.”등을 돌린 채 그 말을 들은 유소영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일에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거늘, 세자는 그걸 모른단 말인가?눈앞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유경원을 재건한다니?그러나 유소영은 곧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그녀는 내일 다시 세자를 찾아오기로 하고, 우선 안방을 나섰다.헌데 향설원에 도착해 보니, 문이 봉쇄되어 있었다.석심이 입을 벙긋거리며 웃고 있었다.“부인, 혹 안에 두고 오신
고준형은 유소영을 놓아주었다. 그의 눈빛은 담담하고 서늘했다.“할 말은 다 했으니, 그만 나가 보시오.”유소영의 안광이 세차게 흔들렸다.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고준형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대로 해명해야만 했다.“세자, 세자께선 말씀을 마치셨을지 몰라도 전 아직 다 못했습니다!”“전 세자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에요.”“처음엔 높은 곳으로 시집가길 원했지만, 지금은 그저 평범한 삶을 원할 뿐입니다. 전 단순한 남편을 원해요. 세자께선 비밀이 너무 많으십니다. 그 비밀을 파헤칠 생각도 없고, 감히 그럴 엄두도 못 냅니다. 다만 거기에 휘말릴까 두려웠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고준형이 즉각 반문했다.“내가 비밀을 안고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안 것도 아니지 않소. 어찌하여 그때는 두려워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두려운 척하는 거요?”유소영은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전…… 저는…….”어찌하여 스스로 말려 들어가 버린 거지?“아무튼, 세자께서 제게 약속하셨으니 번복하시면 안 됩니다! 백번 양보해서, 설령 제가 정말 세자를 속였다 한들 사과드리면 그만 아닙니까. 세자께선 큰일을 하시는 분이니, 저와 실랑이하실 리 없지 않습니까…….”고준형은 눈빛을 흐리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녀의 말을 끊었다.“나가시오.”“이 일을 명확히 하기 전엔 못 나갑니다! 세자, 공과 사는 구분하셔야죠, 안 그렇습니까?”유소영은 고집스레 버텼다.설령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 한들 인정할 수 있었고, 대가를 치를 수도 있었다.하물며 정말로 속인 적도 없고, 세자가 입은 손해 또한 없지 않은가.그러나 세자가 이 일로 약속을 어기는 건 도리에 맞지 않았다.고준형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안 가겠다는 거요?”유소영은 분하고 조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네, 못 갑니다! 반드시 이 일을 짚고 넘어가야…….”고준형의 시선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더니, 밖을 향해 석심에게 명했다.“오늘부터 부인은 다시 월하각에서 지낼 것이다.”“세자!” 유소영이
탁자 뒤편에 앉은 사내의 눈빛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무슨 일이오?”“세자, 오늘 대리경 저택에 다녀왔습니다. 이씨 부인을 설득하여 그녀에게 접근하는 이들을 눈여겨봐 달라고 일러두었습니다.”고준형이 물었다.“그녀를 어떻게 설득했소?”유소영은 그가 정말로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어 하는 줄 알고,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말을 마친 뒤, 그녀가 물었다.“세자께서 보시기에 타당한지요?”고준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왔다.유소영은 그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의아했다.그가 걸음을 멈췄을 때, 둘 사이의 거리는 고작 두 걸음 정도였다.“부인은 연기에 아주 능하군.” 고준형이 그녀를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유소영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그의 말투는 칭찬하는 것 같지 않았다.오히려 비꼬는 듯했다.고준형은 옅은 미소를 지었으나, 눈빛만은 서늘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 부인이 고뿔에 걸렸을 때 내게 솔직히 털어놓았지. 임유정의 최후를 보고 나서야 후작부를 떠나 홀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그렇지 않소?”유소영은 그가 왜 그런 것을 묻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렇습니다.”고준형이 다시 물었다.“말인즉슨, 그 전에는 그런 결심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요?”“예…….”“유씨, 언제까지 나를 속일 셈인가?” 고준형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의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때마침 바람마저 그의 기분에 동조하듯, 갑작스러운 돌풍이 불어와 쾅 소리와 함께 창문을 열어젖히며 등불 몇 개를 꺼뜨렸다.서재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공기 또한 차갑게 식어갔다.유소영은 몸을 움츠리며 의아한 듯 물었다.“세자,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무엇을 속였다는 말입니까?”고준형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한기를 머금은 눈빛은 점차 험악해지더니, 차갑게 유소영을 응시했다.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위압감이 더욱 거세게 느껴졌다.유소영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
임유정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영향원으로 왔다.고 부인은 평소의 온화한 표정 대신, 싸늘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소영의 혼수가 도둑맞았다. 너는 이 일을 알고 있었느냐?”임유정은 놀란 눈으로 유소영을 바라보았다.‘이년이 또 무슨 꿍꿍이지?’상자는 줄곧 봉인되어 있었는데 어찌 도둑맞을 수 있단 말인가!‘일부러 나를 모함하려고?’임유정은 즉시 반박했다.“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하물며 혼수는 청우각에 보내졌을 때 봉인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말을 마친 그녀는 곧바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
“어머니! 왜 저를 때리세요!”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함부로 굴어서 때렸다! 선화야,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고장훈에게 시집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억울하고 힘들어도, 견뎌내야 한다! 세자 오라버니는 잊어라. 네가 좋아해야 할 사람은 오직 네 부군뿐이다!”영선화는 멍하니 굳어버렸다. 왕씨는 딸의 어깨를 잡고 타일렀다. “그리고 하루빨리 아들을 낳거라. 알겠니!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도 너를 딸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영선화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꼭… 꼭 이렇게까지 저를 몰아세워야 하나요?” 왕씨도 마음이 아팠
유소영은 아민에게 눈짓을 했다.아민은 즉시 알아차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임유정을 부축했다.“세자 부인, 이 시녀는 참으로 눈치가 없었네요. 분명 자기가 더 가까이에 있었는데 장군께서 부축하게 하다니.”옆에 있던 춘화의 안색이 새파래졌다.“무슨 소리를! 나는 그냥… 반응이 조금 느렸을 뿐이야!”아민은 임유정의 팔을 꽉 잡으며 웃었다.“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저는 힘이 센 편이라 부인을 방까지 부축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고 가도 문제없습니다.”말하는 동안 아민은 임유정을 부축하고 있던 고장훈의 손을 떼어냈다.“장군, 어
영향원. 임유정은 머리에 하얀 붕대를 감은 채 세상에 기댈 곳 없는 가련한 모습으로 앉아 조목조목 따졌다. “8만 은이라니요? 부군의 봉록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어찌 그 큰돈을 마련한단 말씀입니까?” 고 부인이 말했다. “유정아,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다. 장훈이가 어려움에 부닥쳤으니 아내인 네가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임유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늙은이 같으니라고!’ 8만 은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설령 있다고 해도 고장훈이 아닌 영선화를 위해 쓸 수는 없었다.‘누굴 바보로 아나!’임유정이 답이 없자 충용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