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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Author: 정대천
이도현의 등장으로 신수빈은 놀라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다 날이 샐 무렵에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청하가 그녀를 깨우러 왔을 때, 신수빈은 잠이 부족해 아린 이마를 주무르며 일어섰다.

"대공자께 전해라. 무예에 능하고 몸 쓰는 데 익숙한 아씨 둘을 구해보시라 하여라."

지난밤 이도현이 왔다 간 일을 아무도 몰랐던 탓에 신수빈은 심한 불안감을 느꼈다.

청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신수빈의 세수를 거든 뒤 안채로 서씨 부인께 문안을 드리러 갔다.

서씨 부인은 본래 성질이 까다로웠다. 시집왔을 적 시어머니께 갖은 시집살이를 받았던 만큼 이제 며느리를 대함에 있어 더욱 엄하였다.

병을 앓는 중이라 하였지만 신수빈의 조석 문안은 면제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침상을 들인 뒤 약을 챙겨드렸고 서씨 부인은 침상에 누워 다리가 저리다며 다리를 주물러 달라 하였다.

신수빈은 말없이 낮은 탁자 곁에 앉아 정갈히 다리를 눌러드렸다.

전생에도 이랬다. 서씨 부인은 언제나 그녀를 갈궜고 이런 행태는 늘상 써먹던 수작이었다.

이윽고 점심 무렵이 되어야 서씨 부인은 진정되었고 이어서 점심상을 차려야 했다.

한참 뒤, 서씨 부인이 낮잠에 들고 나서야 청하는 속상한 듯 입을 열었다.

"마님, 부인께서 주무시는 사이 잠시 눈을 붙이시지요."

신수빈은 허리를 주무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씨 부인이 곧 깨어 다시 부를 것이 분명했기에 그녀는 부인의 처소 옆 귀방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청하는 부채질을 하며 그녀의 눈 아래 짙게 내려앉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저 안쓰럽기만 하였다.

무슨 권세가 집안이라지만 속은 시궁창 같은 일뿐이었다. 그녀가 친정에 있을 때는 이보다 훨씬 자유로웠는데...

다행히 오후가 되자 서씨 부인은 피곤했는지 더는 시비를 걸지 않았고 신수빈도 그제야 오래 누울 수 있었다.

청하가 그녀를 깨울 즈음 바깥에서는 울음섞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소리는 안채로 들어왔다.

신수빈은 소란에 눈을 떴고 윤서원과 한 어미에게서 태어난 적형제인 윤서령임을 알아보자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전생에 윤서령은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많았다. 훗날 고관대작 집안에 출가한 뒤에도 친정일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며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여러 번 곤란하게 만들었다.

윤서령은 본디부터 신수빈의 출신을 깔보았다. 이번에도 그녀를 보자 코웃음을 치고는 곧장 서씨 부인의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오늘 저 사람들한테 아주 치일 뻔했습니다!"

그러곤 훌쩍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서씨 부인은 이미 깨어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윤서령의 시녀가 더듬더듬 오늘 있었던 일을 전하였다. 신수빈도 문밖에서 대강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 경성의 귀한 규수들이 여름 잔치를 연다고 하였다. 평양 후부는 상가 집안으로서는 권세를 자랑할 만하나 경성 전체로 보자면 그리 대단한 지위는 아니었다.

본래 말단 문벌에 불과한 데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은 텅 비었기에, 윤서령이 입고 간 옷가지며 장신구가 근래 사대부 규수들 사이에서 이미 한물간 양식이라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 수치심에 겨워 울며 돌아온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서씨 부인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 딸, 울 일이 아니다. 어서 네 형수에게 알려 주거라."

신수빈은 속으로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발을 들였다.

서씨 부인은 손짓하며 웃었다.

"마침 잘 왔다. 네 혼수 중에 보기 드문 보석과 좋은 옷감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다 입고 쓰기도 어려울 터. 그러니 네 동생이 몇 가지 골라가게 하거라. 꽃봉오리 같은 나이 아니냐. 마침 혼사도 있어 만약 친왕이나 귀한 집안에 시집을 간다면 너나 서원이한테 다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 말, 신수빈은 전생에 수없이 들었다. 윤서령은 결국 정국공부 세자 부인으로 출가했고 서씨 부인은 체면을 걱정해 그녀의 혼수 가운데서 절반은 윤서령에게 가져다주었다. 게다가 일상적으로도 시도 때도 없이 들고 가는 바람에 혼수품은 모조리 빼앗기다시피 했다.

지금도 아직 혼인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건만 윤서령은 이미 갖은 장신구며 의복을 수없이 가져갔다. 이제 또다시 옛 수법을 쓰려는 것이다.

신수빈은 맑게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공교롭습니다. 저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옷감과 장신구가 많다 해도 어차피 당장 쓰지 못하면 창고에 묵을 뿐이지요. 그래서 며칠 전 전부 옷감방과 보석방에 내다 팔아버렸습니다. 평소 쓰는 것만 두 벌 남겨두었지요. 동생께서 장신구가 필요하시다면 보석방에 가서 고르시지요. 그곳 주인과 점주는 저희 오라버니와 벗이라 전부 제 오라버니 장부에 올리시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마치고 신수빈은 미소 띤 얼굴로 모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 속에는 웃음기라곤 없었다.

과연 너희 후부가 낯짝이 있기는 할까? 감히 신씨 집안을 빌미 삼아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가다니.

신수빈의 말에 윤서령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았고 서씨 부인은 인상이 구겨지더니 콧방귀를 몇 번 뀌고는 기분 나쁜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이상하구나. 네가 우리 집안 식구들이 네 덕을 보려는 걸 꺼리는 것이냐? 혼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혼수를 팔아버리다니 남들이 들으면 우리 평양 후부가 가세가 기울어 네 혼수에 기대는 줄 알겠다. 체면이 다 뭐가 되겠느냐?"

그들의 체면 따위는 본디 바닥에 깔려 있었다.

신수빈은 겉으로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가 감히 그럴 리 있겠습니까. 다만 세자께서 진휼에 다녀오신 뒤 태상사에 들어가셨는데 겨우 축문 읽는 벼슬 하나 얻었을 뿐이었지요. 조정에도 나아가지 못하고 관청에 가만히 앉아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앞으로 자리를 마련하려면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닐 듯싶습니다. 비록 혼례 행렬은 십 리를 붉게 물들였으나 실상 가져온 은전은 그리 많지 않아 쓸모없는 물건 몇을 팔아 은전을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서방님께서 인사치레에 쓰시게 하려는 것이었지요."

신수빈의 말은 조리 있었고 그 속뜻 또한 분명하였다. 서씨 부인은 더는 꼬집을 말이 없어 못마땅한 기색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앞으로는 뭘 하든 나와 상의하거라. 네 혼수라 하나 이제는 후부에 들어온 이상 다 집안 살림이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수빈은 이미 이들의 후안무치한 속셈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저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윤서령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발끈하며 입도 헤아리지 않고 내뱉었다.

"무슨 천하 제일의 거부댁 외동딸이라더니 이렇게나 궁상맞은 집안일 줄이야. 손에 은전이 없으면 그냥 부모님께 청하시면 될 일 아닙니까? 내 보기엔 댁네 신씨 집안의 거부란 명성도 허울뿐인 듯합니다. 그런 집안에서 우리 윤씨 집안에 시집온 건 분명 우리 집안의 체통을 빌어 보려는 수작이었겠지요."

서씨 부인은 고개를 떨군 채 찻잔을 들어 마셨을 뿐 그녀의 폭언을 막지도 않았다.

신수빈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오히려 친정에서 뭔가 더 끌어올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전생의 신수빈은 정말 그러하였다. 말 몇 마디에 마음이 무너져 혹여 친정에서 더 많은 것을 보내면 시댁이 달리 보아주지 않을까 기대하곤 했다.

그러나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들의 욕심은 끝도 없었고 그 마음은 어둡고 탐욕스러웠다.

"작은아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예로부터 사내대장은 부모께 밥 얻어먹지 않고 여인이라면 시집올 때 입었던 옷은 다시 꺼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저와 후야는 이미 혼례를 올렸으니 이제 한집 사람이온데 후야의 벼슬자리를 구하심에 쓰이는 경비를 어찌 친정에까지 의지하겠습니까. 더구나 후부의 공금으로 충당할 수도 없는 노릇이온데... 이는 저희 부부가 감당할 일이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출가한 몸인데 친정은 그저 외가일 뿐 어찌 입을 열어 손을 벌리겠습니까? 사정을 아는 이들은 ‘사돈댁에서 딸을 아끼니 제법 도와주는구나’ 하겠지만 모르는 이들은 우리 후부가 겉으론 번듯하나 속은 텅 비어 저를 맞아들인 것도 고작 친정의 재물로 구멍 난 곳을 메우려는 것이었다 오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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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마친 금자는 잠시 멈춘 듯한 신수빈의 표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금자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입가에는 가볍게 올라간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마님, 화나지 않으시옵니까?”“내가 왜 화를 내야 하지? 그가 누구를 들여오든 내 눈에는 모두 윤서령과 같을 뿐인데.”금자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생각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그렇지만 저는 자꾸 다르게 느껴지옵니다. 윤서령 아가씨께서 왕야를 속이시려는 거잖습니까? 그러니 왕야께서는 억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으시겠지요. 한데 이번의 진 아가씨는 왕야께서 좋아서 들이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20화

    관사 환관은 머리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윤씨 부인은 죽지 않았사옵니다. 물에 들어간 그 시녀가 구해서 지금 춘진각에 있사옵니다.”태후의 손에 들린 옥빗이 무심결에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며 두 동강이 났다.“그 시녀가 물에 들어갔을 때, 호수 바닥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한데 어째서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냐?”“죽은 것은 자객 환관이랍니다. 이미 섭정왕께서 건져 올려 뼛가루까지 흩뿌리셨사옵니다.”태후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녀는 호수 바닥에 사람을 더 배치해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신수빈 같은 연약한 여자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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