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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Auteur: 정대천
“왕야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시녀들을 불러서 시중을 들게 할까요?”

“필요 없다.”

신수빈은 큰 수건과 향비누를 욕조 곁에 두고 밖으로 나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시녀들은 이도현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

신수빈은 혼자 천으로 천천히 머리칼을 닦았다. 그녀의 머릿결은 풍성하고 길었다. 어릴 적부터 곱게 길러 온 검은 머리라 씻고 나면 쉽게 마르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닦으며 생각했다. 머지않아 백관들이 경성으로 돌아올 터이니 이제는 양회 염세의 일을 본격적으로 파고들 기회를 찾아야 했다.

셋째 오라버니의 일도 이제는 물고기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긴 나머지 이도현이 이미 몸을 씻고 밖으로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는 것이냐?”

신수빈은 어깨에 무게가 실리며 따뜻한 기운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이미 그녀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신수빈은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손에 쥐며 말했다.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 늘 번거롭습니다. 매번 반나절은 걸려야 마르니 며칠 뒤엔 조금 자를까 합니다. 쪽을 틀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니까요.”

이도현은 선반에서 새 수건을 하나 집어 들고는 그녀의 머리를 대신 닦아 주었다.

“이대로가 좋다. 본왕은 이게 마음에 든다.”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초야의 밤, 그녀의 머리카락이 풀어져 베개 위를 가득 덮었던 모습을. 누우니깐 더욱 도드라지던 그 고운 자태를.

이도현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인내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는 수건을 바꿔 가며 그녀의 머리를 반쯤 마를 때까지 닦아 주는 등, 어느새 시중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신수빈은 동경 속에 비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의 짜증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오늘 밤 그가 어떤 요구를 할지 마음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왕야께서 어찌하여 이렇게 일찍 경성으로 돌아오신 겁니까?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이도현은 말끝을 흐렸다. 사실 조정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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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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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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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11화

    그는 기병 차림을 하고 있었다. 마치 밤이슬의 습기가 그대로 배어든 듯, 눈썹과 눈매에는 달빛의 맑은 기운이 있어 차갑지만, 온화한 기색 또한 어려있었다.그는 지금 탁자 앞에 앉아 있었고 그녀는 얇은 옷차림에 젖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물기가 은은히 얼굴에 서려 복숭앗빛 뺨과 고운 안색이 반쯤 드러난 모습은 요염하면서도 아리따웠다.천하에 더할 나위 없는 절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의 눈에는 오직 그녀만이 비출 뿐이었다.그는 수년간 전장을 누볐다. 대군이 어느 땅에 이르든 현지의 주둔 장수나 지방 관원이 으레 미인을 바쳐 왔다. 그러나 그때의 그는 정사에 뜻이 없었기에, 그런 일들이 모두 공허하고 천박하게 느껴졌다. 몇 차례 거절하자 그가 미색에 뜻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미인을 바치는 이도 드물어졌다.그때의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여인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사람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한 겹, 한 겹, 마음을 해부하듯 파고드는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눈앞의 신 씨가 바로 그런 미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 역시 범속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이렇게 별과 달을 밟으며 서둘러 달려오게 될 줄은 이도현 스스로도 몰랐다. 그녀가 놀라 멈칫하는 표정 하나까지 그는 모두 눈에 담았다.이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걸어왔고, 신수빈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녀가 몸을 굽혀 인사를 올리려는 순간, 그는 긴 팔로 그녀를 들어 올리듯 감싸안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신수빈의 코끝에 땀과 이슬 냄새, 그리고 풀과 흙의 냄새가 뒤섞여 스며들었다. 솔직히 말해 좋은 향은 아니었기에, 최대한 참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왕야께서 어찌 오셨습니까?”“황릉 제사가 끝나고 백관들이 경성으로 돌아왔다. 마차가 너무 느려 본왕이 먼저 돌아온 것이다.”그는 말하지 않았다. 해마다 팔월까지 행궁에 머물던 자신이 올해는 일부러 핑계를 만들어 백관들을 일찍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10화

    둘째 마님은 지금 당장이라도 신 씨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헛소리하지 말거라!”그러나 신수빈 여전히 싱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볼 뿐, 그 분노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했다.“그렇다면 둘째 숙모께서도 이견은 없으신 거네요.”“청하야, 이따가 둘째 숙모 댁으로 가서 은자를 받아 오는 것을 잊지 말거라.”둘째 마님이 손에 쥔 수건을 분풀이하듯 꼬아 비틀어서 마치 새끼줄처럼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신수빈은 오히려 느긋하게 부채를 흔들고 있었다.이도현이라는 인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런 비열한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는 참으로 유용했다.윤수혁은 두어 개의 상을 사이에 두고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선을 옮겼다.맑은 눈과 고운 치아, 시선이 오갈 때마다 생기가 넘쳐 흘렀다. 부채를 가볍게 흔드는 모습이 어찌나 생동감 있던지!그는 더 이상 신수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점심 연회가 끝나자 윤 가의 종친들은 모두 돌아갔다.조상을 모신 뒤에는 유시부터 문을 나서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중원절에는 백귀가 밤거리를 배회한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오후에 신수빈은 금자를 시켜 청하와 함께 이방으로 가 은자를 받아 오게 했다. 하나는 금자가 구경을 좋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청하가 무술을 익히지 않아 혹시 모를 손해를 볼까 염려돼서였다.금자는 돌아오자마자 둘째 마님이 뜰에서 성을 내던 모습을 흉내 내며 재잘거렸고 신수빈은 옆에서 웃었다. 이 아이는 정말로 이런 일을 즐기는 것 같았다.이때 청하가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말했다.“둘째 마님께서 원래도 인색하신 분이긴 햇지만, 예전에는 후부를 등에 업었으며 아래 사람들에게도 그럭저럭 잘해주셨습니다. 한데 지난번 장부를 조사한 뒤로는 하인들의 녹봉을 계속 깎아 오셨지요. 지금 그분 곁에 있는 큰 하녀의 녹봉이 저희 저택에서 허드렛일 하는 아이들보다도 적습니다. 아까 제가 갔을 때, 둘째 마님이 화를 내며 말하시더군요. 이 수건은 하인들이 쓰는 것이니 앞으로 녹봉의 절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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