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하지율은 놀란 눈으로 유소린을 바라봤다.“유소린, 설마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한테 빠진 거야?”유소린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유소린은 곧바로 해명했다.“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술집에서 모임을 했었거든. 그런데 거기서 가면을 쓴 피아니스트를 만났어. 피아노도 정말 잘 치고 분위기도 엄청 좋았어.”유소린은 당시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그날 누가 돈을 주고라도 가면을 벗겨 보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걸 목격하고... 내가 좀 도와줬어.”하지율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가면을 썼다고? 왜 굳이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유소린이 어깨를 으쓱했다.“본인 말로는 명문가 도련님이래. 집안 사람들이랑 갈등이 있어서 집을 뛰쳐나왔다던데, 정체가 들키면 가족들이 잡으러 올 거라며 얼굴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하지율의 표정은 미묘하게 굳었다.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그래서 얼굴 못 봤어?”“응.”유소린은 휴대전화로 답장을 보내면서도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나도 곧 M국으로 돌아가잖아. 그 사람이랑 진지하게 이어질 일은 없을 것 같고.”유소린은 웃으며 말했다.“가볍게 썸 타는 것도 나쁘지 않지.”하지율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유소린, 정말 연애가 하고 싶으면 차라리...”하지만 하지율이 말을 마치기 전에 유소린이 먼저 말을 끊었다.“지율아, 내 성격 모르냐? 가볍게 만나면서 기분 전환하는 건 괜찮지만 결혼은 됐어. 나는 아직도 결혼이 무서워.”그러다 문득 하지율을 바라봤다.“너는 S시에 얼마나 있을 거야?”“아마 2주 정도?”유소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랑 그 사람도 앞으로 2주 정도 인연이 남은 거네.”유소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미래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감정만큼은 진심이야.”하지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알겠어. 네가 좋다면 됐지.”하지만 그때의 하지율은 알지 못했다.유소린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사람이 훗날 유소린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될
“조심해서 와.”하지율은 가볍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화야 씨도 같이 갈 거니까 위험에 처할 일은 없을 거야.”고지후는 애초에 주용화가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하지율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주용화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니 가슴 한편이 답답해졌다.고지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래.”그렇게 통화가 끝났다.전화를 끊은 뒤 하지율은 곧바로 주용화에게 통화내용을 전했다.이야기를 들은 주용화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갑자기 왜 교통사고가 난 거죠?”하지율이 설명했다.“원래부터 두통이 심했대요. 고지후 말로는 운전하다가 갑자기 두통이 심해져서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고요.”주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고씨 가문 운전기사는요?”“그날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운전기사를 데리고 가지 않았대요.”하지율은 주용화가 유난히 자세하게 묻자 조금 의아했다.“왜요, 화야 씨? 사고에 문제라도 있어 보여요?”주용화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조금 이상해서요.”하지율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지후도 자기 어머니 사고니까 가만있지는 않을 거예요. 이번 사고가 정말 우연인지, 누군가 의도한 건지는 당연히 조사하겠죠.”사고가 발생한 곳은 S시였고, 사고를 당한 사람은 하지율이 무척 싫어하던 최혜은이었다.따지고 보면 하지율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과거 최혜은은 하지율을 여러 차례 곤란하게 만들었다.그래서 최혜은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하지율의 마음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모든 준비를 마친 뒤 하지율과 주용화는 고윤택을 데리고 전용기에 올랐다.그리고 곧 S시로 출발했다....S시 공항.하지율이 S시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유소린은 직접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하지율은 고윤택을 병원까지 데려간 뒤 직접 고지후에게 맡기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유소린이 운전하며 말했다.“지율아, 네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는 내가 사람 불러서 청소 다 해 놨어. 너랑 화야 씨는 바
나현우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함께 밖으로 향했다.그때, 하지율이 잠깐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뎠다.순간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렸다.나현우는 깜짝 놀랐지만 재빨리 손을 뻗었다.하지만 누군가가 한 발 먼저 하지율을 붙잡았다.길고 흰 손가락과 선명한 마디가 돋보이는 커다란 손이 하지율의 팔을 단단히 감쌌다.하지율은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익숙하면서도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화야 씨?”하지율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여기 계세요?”주용화는 눈을 내리깔고 하지율을 바라봤다. 검은 눈동자는 깊은 호수처럼 가라앉아 있었다.“지율 씨가 걱정돼서 와 봤어요.”“저는 괜찮아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주용화가 나직하게 되물었다.“그래요?”하지율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윤택이는요?”“민재랑 경환이가 케어하고 있어요.”하지율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돌아가요.”하지만 주용화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하지율에게 머물러 있었다.가라앉은 눈빛에는 쉽게 읽히지 않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하지율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에도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마치 말 못 할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사람처럼.하지율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화야 씨...”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현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채고 황급히 입을 열었다.“형... 형님도 오셨으니까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공기는 숨 막힐 만큼 무거웠다.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나현우는 식은땀을 닦으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한참 동안 침묵하던 주용화가 문득 입을 열었다.“지율 씨, 저... 점점 욕심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하지율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주용화는 그런 반응에도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었다.“처음에는 매일 지율 씨를 볼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다음에는 지율 씨와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주용화는
하지율이 물었다.“할 말이 더 남았나요?”손형서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당연히 있죠. 우리 오빠가 죽고 나서 하지율 씨는 엄청난 이익을 얻었잖아요. 그러니 제가 순순히 넘어갈 수는 없죠.”손형서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말을 이었다.“라이벌이어서든, 오빠를 위해서든, 어떻게든 하지율 씨와 용화 씨 사이를 흔들어 놔야 하지 않겠어요?”하지율은 손형서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하지만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좋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부 하세요.”손형서가 비꼬든 조롱하든 하지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등에 칼만 꽂지 않는다면 몇 마디 들어주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손형서가 말했다.“하지율 씨, 예전에 우리 오빠가 하지율 씨 그림을 산 적 있었죠? 화가로 활동할 때 쓰던 이름이 summer였고요. 맞죠?”하지율은 짧게 답했다.“네, 맞아요.”손형서가 의미심장한 미쇼를 지으며 지난 일을 털어놓았다.“오빠가 하지율 씨 그림을 샀을 때쯤 큰일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또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여준 어머니가 후환을 없애기로 마음먹고 저희 집에 불을 질렀어요. 그 화재로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저와 오빠는 간신히 목숨만 건졌죠. 집은 전부 타 버렸어요. 원래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그 일 이후로는 더 막막해졌죠. 오빠가 쓰던 화판도 그때 다 타 버렸고요.”손형서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다행히 오빠에게는 모아 둔 돈이 조금 있었어요. 그런데 다시 그림을 시작할 준비를 하던 때, 마침 오빠가 좋아하던 화가가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작품 가격도 오르게 됐고요. 오빠는 망설이지 않고 과외를 하며 오랫동안 힘들게 모은 돈을 전부 꺼냈어요. 만약 그 화재만 없었다면 그 돈으로 작은 작업실을 얻고 조그만 미술 교실까지 차릴 수 있었을 거예요.”손형서는 하지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그때 오빠는 하지율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몇 살
손형서가 말했다.“그날은 처음으로 오빠의 그런 눈빛을 본 날이었어요. 너무 사납고 무서웠어요. 마치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눈빛이었죠.”손형서는 자조적으로 웃었다.“그전까지는 오빠가 동정심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하지율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동정심이요? 누구를 말하는 거예요? 설마 손형원 씨요?”손형서는 담담하게 하지율을 바라봤다.“오빠가 동정심 많은 사람이라는 게 안 믿기나 보네요. 설마 나쁜 사람은 끝까지 악하기만 하고, 반대로 좋은 사람은 평생 나쁜 짓 한 번 안 하고 살 거라고 생각해요?”손형서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살인범도 있고, 적에게는 냉혹하지만 자기 사람에게만큼은 의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어요.”손형서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이어졌다.“악마로 태어났거나 성인군자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세상에 선과 악이 그렇게 명확하게 나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이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지율을 바라봤다.“따지고 보면 용화 씨도 좋은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하지율 씨는 용화 씨를 사랑하죠.”하지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손형서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하지율 씨가 우리 오빠를 싫어하는 것과 연정미가 용화 씨를 싫어하는 것...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오빠가 연정미를 위해 하지율 씨를 불행하게 만들려 했던 것처럼, 용화 씨도 하지율 씨를 위해 연정미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어요.”손형서는 하지율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하지율 씨가 좋은 사람인지, 연정미가 나쁜 사람인지 그런 건 두 남자에게 중요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하지율 씨가 사람을 죽이겠다고 하면 용화 씨는 망설이지 않고 칼을 쥐여 줄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뒤처리까지 전부 대신해 주겠죠. 용화 씨는 하지율 씨가 착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하지율 씨라서 사랑하는 거예요.”손형서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제가 오빠를 동정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손형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용화 씨가 결국 바라던 걸 이루게 됐네요.”손형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이렇게 된 것도 나쁘지 않네요. 적어도 용화 씨는 행복할 테니까요.”손형서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다만 우리 오빠는 너무 허무하게 죽어 버렸네요.”하지율이 물었다.“제 제안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세요? 아니면 지금 답을 주실 건가요?”하지율의 말에 손형서는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듯 눈을 깜빡였다.그러더니 하지율을 바라보며 물었다.“우리 오빠가 죽었는데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조금의 안타까움이나 미련도 없어요?”손형서는 하지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우리 오빠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죠.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한테만큼은 정말 잘했어요. 아마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러서 벌받은 거겠죠. 결국 평생 원하는 건 하나도 얻지 못했으니까요.”잠시 후 손형서는 다시 하지율을 바라봤다.“오빠는 원래 미술을 좋아했어요.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누구를 해친 적도 없었고, 손씨 가문 가주 자리를 욕심낸 적도 없었죠. 사실... 저와 오빠는 둘 다 혼외자였어요.”손형서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그래서 어릴 때부터 늘 괴롭힘을 당했죠. 정말 힘들게 살아남았어요. 손씨 가문 사람들이 일부러 우리가 혼외자라는 사실을 퍼뜨렸거든요. 그 때문에 오빠는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받으며 자랐어요.”하지율은 드물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형서 씨는요? 형서 씨도 괴롭힘을 당했나요?”손형서는 담담하게 답했다.“처음에는 저도 당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학교를 옮겨 주셔서 그 뒤로는 제 과거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손형서는 자조적으로 웃었다.“저는 여자라서 손씨 가문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아니었어요. 손씨 가문 사람들이 가장 경계한 사람은 오빠였죠.”하지율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두 분 다 혼외자였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경계할 이유
최근 하지율과 정기석의 사이가 점점 가까워졌다.지내다 보니 뜻밖에도 정기석에게 그녀와 비슷한 취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정기석도 음악회에 가는 걸 좋아했고 대학교 시절에는 바이올린을 부전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를 물려받아야 했기 때문에 나중에 흐지부지되었다.바이올린 실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음악에 대해 얘기할 땐 독특한 견해를 많이 가지고 있어 하지율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예전에 정기석은 하지율을 돕기 위해 일부러 고지후 앞에서 더욱 다정하게 얘기했다. 이제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정기석도 적응되어 계속해서 다정하게
젊은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심문 담당자가 하지율을 바라보며 말했다.“새로운 목격자가 나타나 사건을 더 조사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아직 돌아가실 수 없습니다.”목격자라니?만약 사실이라면 지금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그것도 정확한 타이밍에 느닷없는 증인이라...하지율이 온몸으로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상대방은 그녀의 처지를 알고 일부러 이 타이밍에서 그녀를 증인을 내세워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것이 분명했다.어찌나 악의적이고 치밀한지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심문 담당자는 시종일관 예의를 갖췄고, 단호
어느새 임채아와 고지후는 온몸이 흠뻑 젖었다.하지율은 드라마 같은 이 장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두 사람의 실랑이가 보기 역겨워 고지후에게 따지러 가는 줄 알았던 정기석은 매우 신사적으로 물었다.“도와줄까요?”“필요 없어요.”하지율은 창가로 가서 핸드폰을 꺼내 두 사람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정기석은 어리둥절해졌다.“지금 뭐하는...”“찍어두는 거예요.”하지율이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이런 것도 바람의 증거가 될 수 있잖아요. 인터넷에 올리면 타격감이 장난 아닐걸요?
분노에 휩싸여 씩씩거리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모두 정기석에게 시선이 쏠렸다.그러자 정기석의 입가에는 무심한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믿는 편이네요? 만약 이 아가씨가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불륜녀라고 얘기하면 믿을 건가요? 불치병 같은 건 전혀 없고 그냥 사람들의 동정심을 사려고 불쌍한척하는 거라면 믿을 거냐고요.”다들 말문이 막힌 듯 조용히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그러자 정기석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전후 사정을 모르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연약하다고 해서 다 정당화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