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러나 그것은 주주들이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인맥과 처세, 그리고 운까지도 결국은 실력의 일부였다.애초에 주주들이 연정미의 연경 그룹 합류를 지지했던 것도 손화 그룹과 단아 그룹이 내놓은 조건 덕분에 수익을 얻었기 때문이었다.지금의 하지율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연상진을 밀어냈고 단아 그룹의 일부 자원까지 확보했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 역시 분명했다.그리고 단아 그룹이 내놓았던 몇 건의 조건도 더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연태훈 측 주주들 중 일부는 이미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방향은 서서히 하지율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물론 이런 변화가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연태훈은 상황을 지켜볼 여유가 있었지만 연재영은 그렇지 않았다.하지율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주용화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연재영은 단순히 후계자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력도 분명한 사람이죠. 손형원이나 단보현처럼 만만한 상대는 아닙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연경 그룹 내부에서 쌓아온 신뢰도도 큽니다. 단기간에 그 자리를 흔드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연태훈 회장의 지원에, 연상진, 연상준, 연정미까지 힘을 보태고 있고요.”그리고 낮게 덧붙였다.“지율 씨, 앞으로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겁니다.”주용화의 단정한 눈매를 마주한 순간 하지율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점심 식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협력 건을 더 논의하기 위해 함께 연경 그룹으로 돌아갔다.같은 시각, 유소린은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하지율의 사무실에서 하지율을 기다리던 중이었다.문이 열리고 주용화가 들어서자, 유소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화야 씨, 언제 돌아오셨어요?”주용화는 그동안 유소린에게 귀국 소식을 따로 전한 적이 없었다.그러니 유소린이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주용화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오늘 오전에요.
주용화의 말을 듣고 나서 하지율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나현우의 외모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매일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막상 떠올리려 하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 애매한 사이였다.주용화의 말을 계기로 하지율은 뒤늦게 생각을 정리했다.생각해 보니 나현우는 분명 잘생긴 편이었다.유소린이 경호원을 구할 때 잘생긴 사람을 구할 거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원래도 외모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이어서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하지율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괜찮은 편이죠.”주용화는 길게 드리운 속눈썹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괜찮은 편이라고요?”하지율은 왜 계속 나현우의 외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마음에 안 드세요?”주용화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짧은 침묵이 흐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요즘, 잘 지내셨어요?”하지율은 컵을 쥔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네. 잘 지내고 있어요. 일도... 전반적으로 순조롭고요.”하지율은 무심코 컵을 가볍게 흔들었다.고맙다는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지금 이 순간의 긴장은 단순한 어색함 때문이 아니었다.이유를 설명할 수 없이 묘하게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마치 중요한 결정을 앞둔 순간처럼 긴장이 조여왔다.주용화가 말했다.“주씨 가문 쪽 일은 거의 정리됐습니다. 당분간은 M국에 머물면서 연경 그룹과의 협업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하지율은 그를 바라봤다.“연경 그룹과... 정말 협업하실 생각이세요?”하지율의 표정을 읽은 주용화가 입을 열었다.“제이원 그룹은 그동안 사업 구조가 지나치게 단조로웠습니다. 내부에 머무르기만 했죠. 이제는 외부로 확장할 때입니다.”그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요즘 주씨 가문에 대한 평판도 좋지 않습니다. 협력 제안을 해도 선뜻 나서는 곳이 많지 않죠. 이런 상황에서는 외부와 손을 잡기 위해 초반부터 확실한 이익을 제시해야 합니다.”주용화의
전문 경호원인 나현우는 촉이 예민했고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날카로웠다.손형원을 몇 번 마주했지만, 그는 그 위험한 인물에게서 별다른 살기를 느끼지 못했다.주용화를 마주한 순간, 나현우가 놀란 건 오히려 하지율 때문이었다.지금의 그녀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는 분명 결이 달랐다.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말투와 행동은 물론이고 미묘한 표정 변화와 시선 처리에서 그 차이가 느껴졌다.나현우를 본 주용화가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그는 시선을 옮겨 하지율을 바라봤다. 짙은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은근히 느껴졌다.“지율 씨, 이분은...”하지율이 곧바로 답했다.“현우 씨는 소린이가 소개해 준 경호원이에요.”나현우는 단순히 실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상황을 읽는 눈치와 순발력도 갖춘 사람이었다.그는 곧바로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나현우입니다. 대표님처럼 편하게 현우 씨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주용화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저를 아십니까?”나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입니다. 대표님이랑 소린 누님께서 종종 말씀해 주셨거든요. 대단한 분이라고.”유소린은 평소에도 주용화 이야기를 자주 꺼내곤 했다.하지율은 그걸 굳이 막지는 않았지만, 직접 언급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주용화는 하지율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현우가 일부러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고 있다는 것도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럼에도 굳이 짚어내지 않고 그저 웃으며 물었다.“저를 실제로 본 적은 없을 텐데요.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나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아, 그게... 형님 같은 외모는 흔치 않잖아요. 한눈에 알아봤습니다.”주용화는 나현우를 바라봤다.“마침 지율 씨와 식사하러 가는 길입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나현우는 하지율의 경호원이었다. 그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었다.막 동행하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하지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연정미가 담담히 말했다.“그래서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야 저희가 틈을 타 이익을 챙길 수 있으니까요. 이용당하는 문제라면...”연정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연상진처럼 앞에서 대신 부딪쳐 줄 사람이 없어졌으니까, 결국 저를 내세울 수밖에 없죠. 하지율을 견제하려면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큰오빠도 알아요. 제가 여자라 판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 그래서 연경 그룹에서 자리를 주고, 거기서 얌전히 일하면서 가치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거죠... 물론 지금은 저도 그 기회가 필요하고요.”연씨 가문이 연정미를 이렇게까지 밀어주는 건, 단순히 정략결혼에 써먹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그들이 원하는 건 그녀가 가진 가치를 끝까지 끌어내는 것이었다. 정략결혼은 그중에서도 가장 수익이 낮은 선택지에 불과했다.연정미의 뛰어난 사교 능력은 이미 가문 사람들에게 충분히 입증돼 있었다.그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이익이 얼마나 큰지, 모두 기대하고 있었다.그래서 반대 의견을 누르면서까지 그녀를 연경 그룹에 들여보냈다.물론, 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비중이 크지 않을 뿐이었다.연정미 역시 마찬가지였다.이용당하는 것 자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주용화가 돌아온 것 역시 그녀에게 손해는 아니었다.그가 돌아와 계속 하지율을 돕는다면 하지율과 연씨 가문은 더 크게 충돌할 테니까.그 틈에서 연정미는 이익을 챙기려 했다.반대로 주용화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지율은 힘이 약해지고 고립될 터였다.‘어느 쪽이든, 판만 흔들리면 결국 기회를 잡는 건 나야. 다만...’연정미의 눈빛이 깊어졌다.‘하지율만 없었어도 이렇게까지 돌아갈 필요는 없었을 텐데.’손형원과 단보현의 도움을 받아 훨씬 빠르게 연경 그룹에서 입지를 굳혔을 것이다.손형원 역시 지금처럼 입지가 흔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단보현 또한 하지율과 시장을 두고 경쟁하느라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주씨 가문 사람들 중에 정상인 놈은 하나도 없다니까.’연재영은 알고 있었다. 주용화가 일부러 연상준을 상대해 주며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우리는 상대가 안 돼.’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그만하시죠. 더 상대할 필요 없겠네요.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주용화가 끝까지 빈틈을 보이지 않자, 연상준 역시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결국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한 채, 연재영과 함께 자리를 떴다.두 사람은 연재영의 사무실로 돌아가 연정미를 기다렸다.약 30분쯤 지나자, 연정미가 도착했다.연상준이 먼저 물었다.“어땠어?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어?”연정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우리가 숨긴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으셨어. 그래도 초기 지분 문제는... 아버지한테도 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야. 쉽게 하지율 쪽으로 기울지는 않으실 거야.”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그런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하지율의 능력이나 수완은 꽤 높이 평가하고 계셔. 그래서 나도... 좀 우려돼.”연재영이 고개를 들었다.“정미야, 무슨 뜻이야?”연정미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하지율이 결심만 하면... 초기 지분을 협상 카드로 내세워 연경 그룹 후계자 자리를 요구할 수도 있어. 그러면... 아버지가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어.”연정미는 시선을 들어 연재영을 바라봤다.“예전에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셨으니까 후계자로 고려하지 않으셨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연경 그룹에 돌아온 지 1년 남짓한 시간 만에 자리 잡았고 성과도 확실하게 보여줬어. 게다가 지금은 하지율을 지지하는 주주들이 큰오빠를 지지하는 세력 못지않아.”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하지율이 요구를 꺼내면 아버지도 고민할 수밖에 없어.”연정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리고 만약 하지율이 후계자가 되면... 돌려놨던 초기 지분도 결국 하지율 손에 다시 들어가게 돼. 결국 아무것도 잃지 않고 후계자 자리까지 가져가게 되는
연상준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하지율이 무슨 짓을 하든, 주용화는 결국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무조건 편들 거라는 걸.연상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었다.“주용화 씨, 저희는 이미 당신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알아챈 걸 하지율이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다 알면서 모른 척했을 뿐입니다.”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왜 계속 곁에 두고, 그렇게까지 챙겼겠습니까. 전부 이용하려고 그런 겁니다. 주용화 씨를 이용해 우리와 맞서게 만들고, 또 우리를 이용해 당신 정체까지 드러나게 한 거죠.”말을 멈춘 연상준의 시선이 깊어졌다.“임채아가 왜 그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손형원에게 잡혔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고지후와 하지율이 미리 꾸며놓은 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지후는 하지율에게 빚진 게 있다면서 아직도 용서를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율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사람입니다.”연상준의 입꼬리가 더 비틀렸다.“그리고 주용화 씨가 연경 그룹에서 자리를 잡게 도와주고 나니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를 앞세워 당신을 쫓아내고 그 뒤에는 피해자인 척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계속 연락을 흘린 거죠.”연상준은 무언가 떠올린 듯 말을 이었다.“아직 모르셨습니까? 당신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경호원 두 명을 새로 들였습니다. 정기석과는 여러 차례 열애설이 났었고 고지후와 함우민도 자주 연경 그룹에 드나들고 있습니다.”잠시 말을 멈춘 뒤, 낮게 덧붙였다.“주용화 씨... 당신은 그저 하지율의 어장 속 물고기일 뿐입니다.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도구일 뿐입니다. 하지율이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몰랐죠? 누구에게도 진심 같은 건 없을 겁니다!”연상준은 알고 있었다. 주용화 같은 사람에게는 하지율의 실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하지만 하지율이 그에게 진심이었는지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라는 것도.주용화는
전화는 금세 연결되었고, 건너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누구십니까?”목소리는 맑고 서늘했다. 젊고 정상적인 그 목소리는 광기가 전혀 없어 보였다.어디가 비정상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그런데도 단보현은 어쩐지 이 목소리가 낯익게 들렸다. 하지만 어디서 들은 목소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단보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주씨 가문 가주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단씨 가문의 현 가주 단보현입니다.”건너편 남자가 웃음 섞인 톤으로 받았다. “예전부터 성함은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주신 건 무
다음 날, 고지후는 또다시 하지율의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렸다.어젯밤, 고지후는 고윤택과 오늘 일정을 확인해 두었다. 하지율이 고윤택을 데리고 스포츠 클럽에 가서 사격 연습을 할 거라고.정시온은 데려가지 않고 둘이서만 움직일 계획이었다.재결합할 결심이 선 고지후로선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지후는 야근으로 급한 업무를 정리해 두고 이른 시간부터 아파트 앞에 서 있었다.고지후는 고윤택에게도 이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아직 어린 고윤택은 비밀을 못 지키는 편이라 혹여나 입 밖으로 얘기해 하지율이 계획을 바꿀까 봐서였다
결승에 들 가능성이 있던 몇몇 참가자들까지 제작진을 압박하며 하지율을 제명하라고 했다.대회 측이 하지율은 교통사고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말 그대로 피해자라고 설명해도,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그들은 똑같은 주장을 했다.“전초아는 하지율 때문에 탈락한 거예요! 싸워보지도 못하고 탈락했어요. 하지율은 반드시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초아만 불쌍해지잖아요!”그렇게 나오자 주최 측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회의실에 각 파트 책임자들이 모였다. 사안을 놓고 긴급 논의가 시작됐다.책임자 A가 말했
임채아는 문득 떠올렸다. 조금 전 주용화가 임채아더러 연정미를 찾아가 보라 했던 걸 말이다.그 말은 곧 주용화도 연정미의 귀걸이를 봤다는 뜻 아닐까?‘날 떠보는 건가? 아니면 무언가를 알아낸 건가?’하지만 설령 주용화가 봤다 한들, 그 귀걸이가 연정미가 잃어버린 바로 그 귀걸이라는 보장은 없다.세상에는 비슷한 물건이 너무 많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채아의 가슴 한구석이 너무 불안했다.연정미도... 바이올린을 켠다.혹시 똑같은 귀걸이를 두 쌍 갖고 있는 건 아닐까?임채아가 입을 열었다.“그 귀걸이요, 예전에 누가 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