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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2 00:36:46

“쪼꼬네야?”

사라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강수는 현관문을 반쯤 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문밖에는 서희가 서 있었고, 등 뒤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라가 다가오고 있었다.

“쪼꼬 간식 다 먹었대?”

“들어가 있어.”

“왜?”

사라의 발이 멈췄다.

조금 전부터 이상했다. 할 말이 있다며 평소보다 무거운 얼굴로 앉아 있던 것도 그렇고, 벨이 울리자 자신보다 먼저 현관으로 나간 것도 그랬다.

무엇보다 지금 강수는 누가 왔는지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사라는 강수의 등을 빤히 바라봤다.

“쪼꼬네 아니야?”

“어.”

“그럼 누구야?”

대답이 없었다.

사라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오빠.”

강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어차피 말하려고 했다.

서희가 모든 걸 알았다는 것도, 오늘 자신이 서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사라에게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서희가 뒤따라와 두 사람이 사는 집 앞까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수의 시선이 문밖의 서희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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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205화

    사라는 잠시 서희를 바라봤다.술을 마시느냐는 질문 하나에 대답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안 마신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이유를 물으면 요즘 그냥 안 당긴다고 둘러댈 수도 있었다.그런데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다.서희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했다. 강수를 알면서 만났다는 것도 인정했다.그렇다고 자신의 생활 전부를 하나씩 꺼내놓고 대답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사라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걸 내가 왜 말해야 되는데.”서희의 표정이 멎었다.“뭐?”“내가 요즘 술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사라는 소파에 기대 있던 등을 조금 바로 세웠다.“그걸 왜 말해야 돼?”“사라야.”“우리 얘기랑 상관없잖아.”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싸우자는 투도 아니었고, 일부러 숨기려고 날을 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사라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얼굴이었다.서희는 잠시 말을 잃었다.“난 그냥 물어본 거야.”“그러니까. 난 대답하기 싫어.”사라는 거기서 말을 끝냈다.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머물렀다가 천천히 서희에게 돌아갔다. 더 묻지 말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사라가 스스로 선을 그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서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또 저랬다.강수는 사라가 직접 말할 때는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사라가 싫다고 하면 그다음부터 누구도 그 선을 넘지 못하게 할 사람처럼 옆에 있었다.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사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사라가 화면을 확인했다.“준호네.”서희도 아는 이름이었다.사라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사라는 별다른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어, 왜.”- 야, 민사라. 너 언제 시간 돼?준호의 목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그대로 흘러나왔다.“갑자기?”- 갑자기가 아니라 나 청첩장 줘야 되잖아. 날짜 잡자고.사라의 얼굴이 금세 풀렸다.“아, 맞다. 너 진짜 결혼하지.”- 진짜 결혼하지는 뭐냐. 청첩장 나온 지가 언젠데.“신기해서 그래.”- 뭐가 신기해.“네가 한 여자랑 평생 살

  • 불온한 정착   204화

    “아니, 없어.”사라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서희가 자신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다리를 한번 내려다봤다. 정말 종아리가 조금 뻐근했던 것뿐이었다.“그냥 오래 서 있어서 그런가 봐.”“그래?”“응.”사라는 소파에 앉은 채 발목을 몇 번 까딱였다.“이제 괜찮아.”강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라의 다리로 내려갔다.“아프면 말해.”“알았어.”짧은 대화였다.그런데 서희에게는 또 그게 걸렸다.조금 전에도 그랬다.사라가 다리 아프다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강수는 바로 알아차렸고, 앉혔고, 종아리까지 살폈다. 지금도 괜찮다는 사라의 말보다 직접 상태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근데 당신 왜 그렇게 예민해?”강수의 시선이 서희에게 향했다.“뭐가.”“사라한테.”사라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서희는 강수를 똑바로 바라봤다.“다리 좀 아프다는데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그러잖아.”“큰일이라고 안 했어.”“그럼 왜 그래?”강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아프다잖아.”“그게 다야?”“어.”서희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사라가 끼어들었다.“서희야, 나 진짜 어디 아픈 거 없어.”“알았어.”서희의 대답은 사라에게 향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강수에게 있었다.이상했다.오늘 처음 관계를 알게 돼서 모든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지도 몰랐다. 자신이 몰랐던 일 년을 한꺼번에 보고 있어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의미를 찾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그래도 강수는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원래도 이렇게 챙겼어?”이번 질문은 사라에게 향했다.사라가 눈을 깜빡였다.“뭘?”“너.”“오빠가?”“응.”사라는 강수를 한번 올려다봤다.“그런가?”정작 본인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사라는 피식 웃었다.“왜. 나 잘 챙겨?”“몰라?”“그냥 원래 그런 줄 알았지.”그 말에 서희의 표정이 굳었다.원래 그런 줄 알았다.사라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서희가 모르는 사이 쌓인 수많은

  • 불온한 정착   203화

    한동안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서희는 눈물을 닦은 채 강수를 바라봤고, 강수 역시 더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이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협박인지, 정말 끝까지 붙잡겠다는 뜻인지 지금 당장 따질 생각도 없어 보였다.사라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 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처음에는 괜찮았다.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었다가 반대쪽으로 옮기는 일이 반복됐다. 현관에서부터 계속 서 있었고, 긴장까지 겹치니 종아리가 뻐근했다.사라는 발목을 한번 돌렸다.그리고 다시 섰다.잠깐 뒤 또 자세를 바꿨다.강수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사라가 한쪽 발을 살짝 들고 있었다.“왜.”사라는 강수를 올려다봤다.“나 다리 아파.”서희의 눈이 순간 커졌다.이 상황에?강수는 아무 말 없이 사라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었다.“앉아.”“응.”너무 자연스러웠다.사라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려 했다.서희가 기가 막힌 얼굴로 두 사람을 봤다.“지금 나랑 얘기하는 중이잖아.”사라의 걸음이 멈췄다.“알아.”“근데 다리 아프다고?”사라는 잠깐 서희를 바라봤다.“아픈데 어떡해.”정말 그뿐이라는 얼굴이었다.서희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강수는 사라의 팔을 잡아 소파 쪽으로 데려갔다.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였지만 사라가 소파에 앉는 것까지 보고서야 손을 놓았다.“어디.”“종아리.”강수가 사라 앞에 섰다.“쥐 났어?”“그건 아니고 그냥 뻐근해.”“계속 서 있어서 그래.”“그런가 봐.”사라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다리를 쭉 뻗었다.강수는 잠깐 그 다리를 내려다봤다.“가만있어.”“응.”그리고 몸을 숙였다.사라의 종아리를 손으로 감싸 천천히 눌러보는 순간, 서희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어이없는 웃음마저 사라졌다.사라는 그제야 서희를 의식하고 강수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됐어.”“아프다며.”“지금은 좀 그래.”강수가 고개를 들었다.사라가 눈으로 서희 쪽을 가리켰다.그제야 강수도 손을 뗐다.

  • 불온한 정착   202화

    강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서희가 무엇을 묻는지는 정확히 알았다.아내와 불륜 상대.결혼과 연애.과거와 현재.그렇게 단순하게 나누어 묻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서희는 자신에게 사라가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강수는 잠깐 사라를 봤다.조금 전까지 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한참 말을 고르던 여자는 이제 입을 다문 채 서 있었다. 강수와 눈이 마주쳐도 대신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그게 사라였다.강수에게 무엇을 증명하라고 한 적이 없었다.“달라.”짧은 대답이었다.서희의 눈이 흔들렸다.“뭐가.”“다 달라.”“어떻게 다른데?”강수는 시선을 돌려 서희를 봤다.“너 사랑했어.”서희의 입술이 굳었다.이미 들었던 말이었다.그런데 이 집에서 다시 듣자 전혀 다른 말처럼 느껴졌다.“네가 좋았고, 결혼하고 싶었어.”강수는 그 시간을 부정하지 않았다.서희와 함께했던 사 년도, 결혼했던 이유도 거짓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때의 자신은 정말 서희를 사랑했다.“그럼 지금은?”강수의 침묵이 짧게 내려앉았다.서희가 물었다.“나는 과거고 사라는 지금이야?”강수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그렇게 자를 일 아니야.”“그럼 어떻게 잘라?”“안 잘라.”“오빠.”“있었던 건 있었던 거야.”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너랑 있던 시간 없어지는 거 아니야.”서희의 눈가가 붉어졌다.그게 더 잔인했다.차라리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면 미워하기라도 쉬울 것 같았다. 결혼생활이 전부 거짓이었다고 하면 속았다고 욕할 수도 있었다.그런데 강수는 사랑했다고 했다.사랑해서 결혼했고, 그 시간도 진짜였다고 했다.그러면서 지금은 다른 여자와 이 집에 살고 있었다.“그럼 사라는.”서희가 물었다.강수의 시선이 움직였다.사라에게 닿았다.“뭔데?”이번에는 대답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내가 있고 싶은 데.”사라의 눈이 커졌다.서희의 얼굴도 그대로 멎었다.강수는 더 꾸미지 않았다.“그래서 여기 있는 거고.”사라는 아무 말도 못 했다.

  • 불온한 정착   201화

    사라는 한참 대답하지 못했다.서희가 말하는 ‘자리’가 무엇인지는 알았다.아내라는 자리.오랫동안 강수를 사랑했고, 결혼했고, 함께 살았던 사람의 자리. 그걸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거였다.그런데 사라는 이상하게도 그 질문에 바로 그렇다거나 아니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음…….”사라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뭐라고 설명해야 되지.”서희의 얼굴이 굳었다.“설명할 게 있어?”“아니, 그게 아니라.”사라는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평소에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서희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그래도 묻는다면 대답하고 싶었다.사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가 오빠한테 느끼는 감정이랑 내가 오빠한테 느끼는 감정이랑 같아?”서희가 눈을 깜빡였다.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뭐?”“똑같냐고.”“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데.”“나한텐 상관있어.”사라가 말했다.강수는 두 여자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사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조용히 듣고 있었다.“물론 둘 다 사랑이라고 묶을 수는 있겠지.”사라가 손가락을 괜히 만지작거렸다.“근데 사람 감정이 그렇게 간단하게 묶여져?”서희의 눈썹이 조금씩 좁아졌다.사라는 말을 고르며 이어갔다.“너는 오빠랑 오래 만났잖아. 좋아했고, 결혼했고. 같이 보낸 시간도 있고.”그 시간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강수가 서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그게 너랑 오빠가 만든 거잖아.”서희가 가만히 사라를 바라봤다.“근데 나는 달라.”“뭐가 다른데.”“그냥 달라.”사라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나는 너처럼 오빠를 만난 것도 아니고, 너처럼 좋아하게 된 것도 아니야. 같이 있을 때 느끼는 것도 아마 다를 거고.”“그래서?”서희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다르면 내 자리가 아니야?”사라가 잠시 멈췄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난 네 자리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 불온한 정착   200화

    사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사랑하느냐는 질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단어를 자신에게 가져다 붙여본 적이 별로 없어서였다.좋으면 좋았고, 싫으면 싫었다. 만나고 싶으면 만났고, 떠나고 싶어지면 떠났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해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끌린다고 해서 그 감정을 굳이 거창한 이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그래서 사라는 잠깐 생각했다.“사랑……?”서희의 눈이 흔들렸다.사라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그게 뭔데.”“뭐?”“나 그런 거 잘 몰라.”서희의 얼굴이 어이없다는 듯 굳었지만 사라는 장난치는 게 아니었다. 정말 생각하고 있었다.강수도 말없이 사라를 내려다봤다.“근데 그냥.”사라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옆에 있으면 설레고 좋아.”강수의 시선이 멈췄다.“같이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어. 별거 안 해도 그래. 밥 먹고, 놀고, 그냥 소파에 같이 누워 있어도 좋아.”사라는 잠깐 강수를 올려다봤다.그 눈에는 평소처럼 장난기가 없었다.“그리고 오빠 앞에 있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별거가 별거 아니게 돼.”강수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서희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사라를 바라봤다.“그게 무슨 말이야.”사라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말로 설명하려니 생각보다 어려웠다.자신에게는 언제나 별것 아닌 척했던 것들이 있었다. 돌아갈 곳 없이 자란 것도, 가족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것도, 서후를 잃은 것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라를 옮겨 다니고, 웃고, 놀고, 사람을 만나면 그만이었다.그런데 강수 앞에서는 굳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다.“다들 나 이상하다고 하거든.”사라가 작게 웃었다.평소처럼 밝은 웃음은 아니었다.“너도 알잖아. 나 어릴 때부터 뜬금없는 짓 많이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갑자기 어디 가버리고.”서희는 대답하지 않았다.너무 잘 알았다.“사람들은 처음에는 재밌어해. 근데 오래 보면 꼭 그래. 왜 그렇게 사냐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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