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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늦은 밤, 청담동 80평대 고급 아파트 안방에는 흐트러진 침구가 부딪히는 소리와 뜨겁게 뒤엉킨 두 사람의 거친 숨이 은밀하고 밀도 높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은은한 무드등 아래,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작은 여자의 하얀 몸을 완전히 가리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37세, 국내 굴지의 CH건설 회장이자 전국 최대 조직 사뇌파의 보스 차강수. 벗어 던진 와이셔츠 아래 드러난 구릿빛 상체에는 칼에 베이고 찔리며 살아온 흔적인 오래된 흉터들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하드 투블럭 아래 오른쪽 얼굴을 길게 가로지른 흉터까지 더해진 그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남자였다. 그런 강수의 품 안에서 거리낌 없이 가쁜 숨을 흘리고 있는 여자는 25세의 민사라였다. “하아…… 오빠.” 사라의 가느다란 허벅지가 강수의 몸 양옆으로 벌어져 있었다. 하얀 팔은 넓은 어깨를 감싸 안았고, 160cm의 작은 몸은 189cm에 달하는 그의 거대한 체구 아래 거의 가려질 정도였다. 강수의 커다란 손이 가느다란 허리를 움켜쥐고 제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순간 사라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터졌다. 입술이 맞닿았다. 처음에는 짧았던 입맞춤이 금세 거칠고 짙어졌다. 사라가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더 가까이 달라붙자 강수 역시 작은 몸을 품 안에 단단히 가뒀다. 떨어졌다 다시 맞닿는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뒤섞였다. “잠깐…… 숨 좀 쉬자.” 사라가 겨우 얼굴을 돌리며 웃었다. 강수가 그녀의 붉어진 입술을 엄지로 천천히 훑었다. “네가 먼저 매달렸잖아.” “내가 언제?” 뻔뻔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는 얼굴을 보던 강수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세상 사람들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세계에서 평생을 살아온 차강수가 유일하게 경계를 풀어버리는 사람. 민사라. 3년 동안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세상을 떠돌던 여자였다. 오는 남자를 막지 않았고 떠나는 남자를 붙잡지도 않았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것조차 답답해하던 사라가 지난 1년 동안 처음으로 짐을 풀었다. 하필이면 가장 가져서는 안 되는 남자에게. 이 집도 처음에는 강수가 사라에게 마련해 준 공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현관에는 그의 구두가 놓였고, 욕실에는 면도기와 칫솔이 생겼다. 드레스룸 한쪽은 검은 정장과 셔츠가 차지했으며 서재에는 CH건설 서류가 아무렇지 않게 쌓였다. 냉장고에는 사라가 좋아하는 디저트가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야근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오는 날에도 강수는 사라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케이크 상자를 들고 왔다. “오빠, 나 돼지 만들려고?” “좀 쪄.” “싫어.” “그럼 남겨. 내가 먹게.” 말은 그렇게 해놓고 결국 마지막 한입까지 사라에게 먹이는 남자였다. 같이 밥을 먹고, 소파에서 영화를 보고, 한 침대에서 잠들었다. 아침이면 사라는 강수의 셔츠를 제 잠옷처럼 걸치고 돌아다녔고, 강수는 그런 사라를 붙잡아 흐트러진 머리부터 정리해주곤 했다. 누가 본다면 영락없는 신혼부부였다. 단 하나. 차강수에게 진짜 아내가 따로 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우우웅― 협탁 위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라가 무심코 액정을 바라봤다가 멈칫했다. [김서희] 강수의 아내. 그리고 사라의 가장 친한 동갑내기 친구. “오빠.” 강수는 대답 대신 사라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서희 전화.” “놔둬.” 우우웅― 진동이 다시 울렸다. 사라가 결국 휴대전화를 집어 강수에게 내밀었다. “받아봐.” “싫다.” “난 궁금한데.” 강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가.” 사라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오빠가 서희한테는 어떻게 말하는지.” 한동안 사라를 내려다보던 강수가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서희야.” 사라의 눈이 커졌다.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품 안에 가둔 거칠고 위험한 남자는 사라지고, 낮고 다정한 남편 차강수만 남았다. ― 여보, 아직 회사야? “그래. 서류가 좀 남았어.” 기가 막힐 만큼 자연스러운 거짓말이었다. 사라가 소리 없이 웃더니 강수의 목덜미에 일부러 입술을 눌렀다. 쪽― 강수의 턱 근육이 굳었다. ― 여보? 무슨 소리야? 커다란 손이 곧장 사라의 입을 덮었다. 사라는 눈을 휘어 웃으며 손바닥 안에서 장난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 많이 늦어? 오늘 맛있는 거 해놨는데. 기다릴게. 웃고 있던 사라의 눈빛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서희는 좋은 친구였다. 3년 만에 돌아온 자신을 누구보다 반갑게 안아준 여자였고, 강수를 이야기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웃는 여자였다. ― 보고 싶어, 여보. 사랑해. 강수의 손이 사라의 입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사라에게 박혀 있었다. “나도 사랑해, 서희야.” 사라의 웃음이 멎었다. 뚝. 통화가 끝나자 사라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었다. “가.” “어딜.” “네 와이프한테. 기다린다잖아.” 사라가 몸을 빼려는 순간 강수의 굵은 팔이 허리를 낚아채 다시 품으로 끌어당겼다. “안 가.” “왜?” 강수는 대답 대신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사라를 제 가슴에 단단히 끌어안았다. “오늘은 여기 있어.” “여긴 내 집이거든?” 강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 집이지.” 사라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평생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겠다던 여자에게 그 세 글자는 이상하리만큼 깊숙이 박혔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처음부터 ‘우리 집’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1년 전.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사라가 술에 취한 서희를 부축해 처음 그 펜트하우스에 들어갔던 밤. 현관문이 열리고 차강수가 들어섰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그런데 사라를 발견한 강수의 첫마디는 이상했다. “민사라.”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저 알아요?”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현관문을 천천히 닫았다. 그리고 잠시 뒤— 사라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식사는 거의 끝나 있었다. 테이블 위 음식은 대부분 식었고, 처음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세 사람 사이에 놓인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사라는 여전히 서희를 용서하지 않았다. 서희 역시 사라를 용서하지 못했다. 강수와 서희 사이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누구도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는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은 한 테이블에 끝까지 앉아 있었다. 5년 전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서희는 맞은편을 바라봤다. 진이는 강수의 품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커다란 팔 안에 작은 몸이 완전히 묻혀 있었고, 강수는 대화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아이의 자세를 고쳐 안았다. 그 옆에서 사라는 남은 밥을 먹고 있었다. 강수의 손이 움직였다. 사라 앞에 반찬 하나를 당겨놓았다. 사라는 쳐다보지도 않고 집어먹었다. “이거 맛있다.” “더 시켜?” “아니. 배불러.” “그만 먹어.” “방금 더 시키냐며.” “배부르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사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서희
사라는 눈을 깜빡였다. 질문이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내가 널 이해를 왜 해?” 서희의 표정이 멈췄다. 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품에 잠든 진이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릴 뿐이었다. “……왜라니?” “왜 이해해야 되는데?” 사라는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너는 나 이해하려고 1년이나 돌아다녔다며.” “응.” “나는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너무 단순한 대답이었다. 서희가 헛웃음을 흘렸다. “너답다.” “응. 나 원래 이래.” 사라는 태연하게 국을 한 숟갈 먹었다. 조금 식어 있었다. 강수가 그걸 보고 호출 버튼을 누르려 하자 사라가 손등을 잡았다. “됐어. 그냥 먹어.” 강수는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사라는 다시 서희를 봤다. “네가 왜 그랬는지 생각은 해봤지.” “그게 이해하려고 한 거 아니야?” “아니.” 사라가 고개를 저었다. “궁금한 거랑 이해하는 건 다르잖아.” 서희가 말이 없어졌다. “네가 왜 나를 밀었는지.” 사라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왜 그렇게까지 망가졌는지.” 그날의 기억은 아직 남아 있었다.
사라는 멈췄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맞은편에 앉은 서희를 한동안 바라봤다. “말했잖아.”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때 미안하다고.” 거기까지였다. 변명도 하지 않았다. 다시 사과하지도 않았다. 강수의 품에서는 진이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작은 등을 받친 커다란 손만 일정하게 움직였다. 서희가 물었다. “그게 끝이야?” “응.” 사라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컵을 내려놓으며 되물었다. “너는?” “뭐가.” “너도 있잖아.” 사라의 눈이 서희에게 똑바로 향했다. “나한테 미안할 일.” 서희의 손가락이 물컵에 멈췄다. 둘 사이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강수는 끼어들지 않았다. 이건 사라와 서희가 해야 할 이야기였다. 진이가 품에서 조금 움직이자 작은 뒤통수를 받쳐 자세만 고쳐줬다. 서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지.” 사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많이.” “그래.” 그 한마디였다. 서희가 허탈하게 웃었다. “넌 안 물어봐?” “뭘.” “뭐가 미안한지.” 사
로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희가 돌아오고 싶었다는 말을 꺼낸 뒤 누구도 쉽게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먼저 움직인 건 사라였다. “밥 먹었어?” 서희가 눈을 깜빡였다. “뭐?” “점심.” “……아니.” 사라가 강수를 올려다봤다. “오빠.” “왜.” “같이 먹자.” 강수의 눈이 서희에게 한번 갔다가 다시 사라에게 돌아왔다. 마음에 든다는 얼굴은 아니었다. “왜.” “나 배고파.” “너만 먹으면 되잖아.” “차강수.” 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강수는 몇 초 바라보다 진이를 한쪽 팔에 고쳐 안았다. “가자.” 그걸로 끝이었다. 회사 근처 한식당의 조용한 룸으로 들어갔다. 강수 옆에는 사라가 앉았고 서희는 맞은편에 자리했다. 진이는 강수의 품에서 아직 자고 있었다. 음식이 하나씩 들어왔다. 사라는 젓가락을 들자마자 갈비찜부터 집었다. “맛있겠다.” 강수는 말없이 사라 앞에 있던 작은 접시를 당겼다. 갈비의 뼈를 발라 살만 올려놓고 다시 밀어줬다. 사라는 익숙하게 집어먹었다. “맛있어.” 강수는 대답 대신 다른 반찬
사라는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다시 멈췄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사라야.”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붙잡으려는 목소리도, 강수를 만나게 해달라는 말도 아니었다. 사라가 돌아봤다. 서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강수도 걸음을 멈췄다. “왜.” 사라가 물었다. 서희는 잠시 강수를 바라봤다가 다시 사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 사실.”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이혼하고 5년 동안 외국에 있었어.” 사라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강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선이 서희에게 머물렀다. 둘 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여행했어.” 서희가 작게 웃었다. “여기저기.” 사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희가 이혼 뒤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찾아보지도 않았다.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었다. “왜?” 사라가 물었다. 서희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너처럼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았어.” 사라의 표정이 굳었다. “뭘.” “네가 했던 말들.” 서희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
강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사라에게 걸어갔다. 서희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시선이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 “왜 안 올라와.” “가려고 했지.” 강수의 눈이 사라의 얼굴을 한번 훑었다. 화가 난 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그러다 아기띠 안에서 잠든 진이에게 내려갔다. “줘.”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진이?” “어.” “잘 자는데.” “알아.” 강수는 이미 손을 뻗고 있었다. 사라가 아기띠를 풀어주자 커다란 손이 진이의 목과 뒤통수를 먼저 받쳤다. 작은 몸을 조심스럽게 빼내 제 품에 붙인 뒤 자세를 고쳐 안았다. 진이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강수의 손이 등을 천천히 쓸었다. “쉬.” 작은 몸이 다시 힘을 풀었다. 사라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내가 잘 안고 있었거든?” “알아.” “근데 왜 뺏어.” “무겁잖아.” “안 무거워.” 강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비어버린 아기띠를 사라 몸에서 풀어냈다. 끈이 어깨에서 내려오자 사라가 그제야 목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