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강수는 사라의 허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그대로 둔 채 어머니를 돌아봤다.“왜요.”어머니는 금방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강수야.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가까이 두고 불러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전화로 몇 번 부르는 것과 한집 안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부르는 건 이상하게 달랐다.“아니…… 그냥.”강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왜 불렀어요.”“네가 여기 있으니까.”사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어머니가 새 이불을 꺼내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이렇게 네가 여기서 자겠다고 하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아서.”“전에 잤습니다.”“그건 하루였잖아.”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사라는 강수의 팔을 슬쩍 잡았다.“오빠.”“왜.”“어머니가 좋아하시잖아.”“알아.”“근데 왜 표정이 그래.”“내 표정이 왜.”“무서워.”“안 무서워.”사라가 어머니를 봤다.“무섭죠?”어머니가 잠깐 아들을 보고는 작게 웃었다.“어릴 때부터 저랬어.”사라의 눈이 반짝였다.“어릴 때도?”강수의 표정이 굳었다.“민사라.”“왜. 궁금하잖아.”“안 궁금해도 돼.”“싫어.”사라는 침대 가장자리에 다시 앉았다. 이번에는 강수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 뒤에 있던 베개를 당겨 사라의 허리 뒤에 받쳐주었다.어머니의 시선이 그 손을 따라갔다.“어릴 때는 지금보다 말이 많았어.”사라가 눈을 크게 떴다.“진짜요?”“어.”“차강수가요?”“어.”강수가 낮게 끼어들었다.“그만하세요.”“왜. 사실인데.”“오빠 말 많았대.”“너보다는 아니야.”“그건 당연하지.”사라는 조금 웃었다.그 웃음이 며칠 전보다 자연스러워진 것을 강수는 말없이 지켜봤다.어머니 역시 알아챘다.그래서 더 말해주고 싶다가도 입을 다물었다.어린 강수의 이야기를 자신이 어디까지 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아이 곁에 끝까지 있어주지 못한 사람이 이제 와 추억을 꺼내놓는 것조차 욕심처럼 느껴졌다.사라가 먼저 물었다.“오빠 어릴 때 뭐 좋아했어요?”어머니의 손이 이
사라는 젓가락을 든 채 어머니를 바라봤다.방금 자신을 뭐라고 불렀는지 뒤늦게 알아챈 건 강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사라 씨.계속 그렇게 불렀다. 카페에서도, 병원에서도, 조금 전까지도 그랬다.그런데 방금은 자연스럽게 이름이 나왔다.사라야.어머니의 입술이 잠시 굳었다.“내가…….”사라는 눈을 깜빡였다.“네.”너무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어머니가 오히려 멈칫했다.“며칠 있다 가도 된다고. 몸도 아직 제대로 회복 안 됐고.”“네.”“……있겠다고?”“네.”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향했다.사라는 고기를 하나 더 집어 먹었다.“왜?”“회사.”“며칠 안 가도 되잖아.”“집은.”“르베르 안 도망가.”강수의 눈이 가늘어졌다.“나도 있어.”“오빠도?”“어.”“회사 안 가?”“여기서 해.”사라가 피식 웃었다.“회장 아무나 하네.”“먹어.”강수가 국그릇을 다시 밀어줬다.사라는 순순히 한 숟가락 떠먹었다.어머니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강수 너까지 있으려고?”“사라 있으면요.”짧은 대답이었다.사라는 당연하다는 듯 밥을 먹었지만 어머니의 손은 잠시 멈췄다.아들이 이 집에서 며칠을 지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어린 강수를 두고 떠난 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다시 연락이 닿은 뒤에도 둘 사이에는 늘 거리가 있었다. 강수는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쉽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그런 아들이 사라가 있으면 여기 있겠다고 했다.“방은…….”어머니가 잠깐 생각했다.“강수 쓰던 방이 있기는 한데.”사라의 눈이 반짝였다.“오빠 방?”강수의 표정이 굳었다.“아니야.”“있다는데?”“내 방 아니야.”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어릴 때 방은 아니고, 나중에 혹시라도 오면 쓰라고 그냥 만들어둔 방이야.”사라가 강수를 봤다.“오빠 여기서 자본 적 있어?”“몇 번.”“그럼 오빠 방 맞네.”“먹어.”사라는 웃었다.“왜 숨겨.”“안 숨겼어.”“나 구경할래.”“볼 거 없어.”
강수의 어머니가 사는 곳은 한적한 시골의 끝집이었다.서울에서 한참을 달려 큰길을 벗어나자 높은 건물부터 사라졌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 양옆으로 낮은 집과 밭이 이어졌고, 그마저 뜸해진 끝에 작은 단층집 하나가 나타났다.사라는 창밖을 내다봤다.“여기야?”“어.”“진짜 조용하다.”강수가 차를 세웠다.마당 한쪽에는 작은 장독대가 있었고 처마 아래에는 말린 나물 몇 묶음이 걸려 있었다. 오래된 집이었지만 마당과 창문은 깨끗했다.사라는 안전벨트를 풀다가 강수를 봤다.강수는 이미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오빠.”“왜.”“오랜만에 오는 거야?”강수의 손이 잠시 멈췄다.“어.”사라는 더 묻지 않았다.어머니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강수가 자주 찾아오는 곳은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남은 세월을 자신이 굳이 헤집을 필요도 없었다.사라는 무릎 위에 올려둔 작은 액자를 챙겼다.강수의 시선이 내려갔다.“내가 들어.”“싫어.”“왜.”“뜬금이 내가 들 거야.”강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차에서 내린 사라는 액자를 가슴에 품었다.현관문이 열렸다.강수의 어머니가 급히 마당으로 나왔다.“왔니?”아들에게 향했던 눈이 곧 사라에게 옮겨갔다.“어서 와요.”“안녕하세요.”사라가 꾸벅 인사했다.어머니는 사라의 얼굴부터 살폈다. 며칠 전 병원에서 본 것보다는 혈색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평소보다 창백했다.“추운데 왜 밖에 서 있어요. 들어와요.”“안 추운데요.”“그래도 들어와요.”사라가 순순히 현관으로 향했다.강수가 뒤에서 사라의 등을 받치려 하자 사라가 돌아봤다.“나 잘 걸어.”“가.”“자꾸 환자 취급해.”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강수가 신발 벗는 동안 기다렸다.어머니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주방으로 먼저 향했다.집 안에는 따뜻한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사라가 코끝을 움직였다.“냄새 좋다.”어머니가 바로 돌아봤다.“배고파요?”“조금요.”“잘됐네. 이것저것 해놨어요.”강수가
퇴원한 뒤에도 사라는 서희를 만나지 않았다.연락을 막지는 않았다. 차단도 하지 않았다. 서희에게서 몇 번 메시지가 왔지만 읽기만 하고 답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도 지금은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강수도 재촉하지 않았다.사라가 생각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고, 그는 그대로 두었다.르베르로 돌아온 첫날 사라는 가장 먼저 뜬금이의 초음파 사진을 액자에 넣었다.작은 액자는 침실 협탁 위에 놓였다.그 뒤로 며칠 동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회사에도 가지 않았다.여행을 가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밖에 나가 놀겠다는 말도 없었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만지다가 그것마저 내려놓았다. 배가 고프면 먹었고, 졸리면 잤다.울지도 않았다.강수는 그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아침에 눈을 뜨면 사라가 옆에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출근해야 하는 날에는 정민에게 일정을 최대한 줄이라고 했고, 집에서 처리할 수 있는 서류는 전부 르베르로 가져왔다.그렇다고 사라 곁에 붙어 말을 걸지는 않았다.밥을 가져다 놓고.약을 챙기고.물을 채워놓고.잠든 사라에게 이불을 덮었다.그뿐이었다.그날도 사라는 거실 소파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강수는 맞은편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사라야.”“응.”“밥.”“조금 있다가.”“아까도 그랬어.”“지금 안 배고파.”강수는 서류를 내려놓았다.“먹어.”사라가 소파 등받이 너머로 눈만 내밀었다.“오빠.”“왜.”“나 살 빠져도 돼.”“안 돼.”“왜.”“몸 상해.”사라는 한참 강수를 보다가 천천히 일어났다.“뭐 먹어?”“죽.”표정이 바로 시들었다.“또?”“어.”“나 이제 환자 아니야.”“먹어.”“고기 먹고 싶은데.”강수는 바로 휴대전화를 들었다.사라가 눈을 깜빡였다.“뭐 해?”“고기 시켜.”“죽은?”“내가 먹어.”그제야 사라가 아주 조금 웃었다.며칠 만에 처음 보는 제대로 된 표정이었다.강수의 시선이 잠시 멈췄지만 아무
강수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사라가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지 자신이 정해줄 수는 없었다. 서희를 미워하라고 할 수도, 아무도 미워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몰라.”사라가 강수를 봤다.“오빠도 몰라?”“어.”강수의 엄지가 사라의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네 마음대로 해.”“내 마음대로?”“미우면 미워해.”“안 미우면?”“그러면 말고.”사라는 다시 사진을 내려다봤다.간단한 말이었다.그런데 지금 자기 마음은 하나도 간단하지 않았다.서희가 자신을 밀었다.그 직후 피가 났고 뜬금이는 떠났다.그 사실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당장이라도 서희에게 왜 그랬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머리채를 잡혔던 두피도 아직 욱신거렸고, 바닥에 부딪친 몸도 아팠다.그런데 의사는 그것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이미 자신에게 유산기가 있었다.그렇다면 서희가 밀지 않았어도 뜬금이가 갔을까.아니면 그 충격만 없었으면 계속 있었을까.아무도 알려줄 수 없었다.“나 서희 미워해도 돼?”“어.”“내 친구인데.”강수의 눈이 가라앉았다.“그래도.”“근데 서희 입장에서는 나도 미웠겠지.”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사라는 그 침묵을 알아들었다.“나도 서희한테 나쁜 짓 했잖아.”“그거랑 이건 달라.”“다른 건 알아.”사라가 손가락으로 초음파 사진 가장자리를 만졌다.“내가 오빠 만난 거랑 서희가 나 민 거랑 다른 거 알아.”잠깐 숨을 삼켰다.“근데 서희도 나 때문에 많이 울었잖아.”“그래서 네가 밀려도 되는 건 아니야.”강수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사라가 그를 봤다.“알아.”“그거 섞지 마.”“안 섞어.”“지금 네가 걔 이해해줄 필요도 없어.”사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그러다 힘없이 웃었다.“오빠 서희한테 진짜 화났구나.”강수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어.”짧은 대답이었다.“많이?”“어.”“얼마나?”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머물렀다.“말하지 마.”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왜?”“네가 아무것도 하지 말랬잖
강수는 서희 쪽으로 향하던 발을 돌렸다.사라가 생각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은 지킨다. 지금 서희에게 가서 무슨 말을 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어디.”“진료실 앞입니다.”강수는 정민과 함께 복도를 걸었다.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던 의사가 강수를 확인하고 안으로 안내했다. 강수는 의자에 앉지도 않은 채 책상 앞에 섰다.“말씀하세요.”의사가 잠시 차트를 확인했다.“우선 환자분은 현재 안정되고 있습니다. 출혈도 처치 후 지켜보는 중이고요.”“유산 원인은요.”강수는 다른 설명을 기다리지 않았다.의사가 고개를 들었다.“한 가지 원인만으로 단정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강수의 눈이 가라앉았다.“넘어진 것 때문 아닙니까.”“환자분이 임신 초기였고, 이전 진료에서 출혈과 유산 위험 소견이 조금 있었던 건 맞습니다. 최근에는 상태가 좋아졌지만 임신 초기 유산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오늘 충격은.”“영향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강수의 턱이 굳었다.“그럼 그것 때문에 죽은 겁니까.”의사는 섣불리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침묵이 내려앉았다.강수는 책상 가장자리를 내려다봤다.카페에서 사라의 머리채가 잡혔다.몸이 끌렸고, 밀려 넘어졌다.그리고 피가 흘렀다.눈앞에서 본 사실은 그것뿐이었다.“사라가 물으면 똑같이 말해주십시오.”“네.”“애매하게 빼지 말고.”의사가 강수를 바라봤다.“가능성이 있는 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건 없다고.”“그렇게 설명드리겠습니다.”강수는 그제야 몸을 돌렸다.“그리고 환자분이 자신을 탓할 가능성이 큽니다.”걸음이 멈췄다.“임신 초기 유산을 겪은 분들이 많이 그러십니다. 뭘 먹어서 그런 건지, 움직여서 그런 건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계속 이유를 찾으려고 하세요.”강수의 눈앞에 조금 전 사라가 떠올랐다.내가 카페 안 왔으면.오빠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간다고 해서.“환자분 잘못이라고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