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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즈 하이

作者: 차노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01 16:46:36

슈웅, 하고 검게 썬팅된 차 문이 위로 열렸다.

캘리포니아 햇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브리는 본능적으로 눈이 부셔 와 눈을 가늘게 떴다.

“가실까요.”

아까까지만 해도 차 안에서 사람 속을 박박 긁던 에이든은, 문이 열리자마자 세상 부드러운 말투로 팔을 내밀었다. 기가 차지도 않았다.

브리는 거절하려다가, 결국 마지못해 그의 팔에 손을 걸었다.

그 순간 에이든이 뭔가 잊은 게 있다는 듯 멈춰 섰다.

손에 들고 있던 자켓을 휙 뒷좌석에 던져 넣고, 삐릭, 하고 차를 잠갔다.

그제야 브리는 놓친 걸 알아차렸다.

에이든은 교복 차림이었다.

“오… 오늘 교복 입는 날이었어?”

브리는 제 차림을 내려다봤다.

후드 집업에 몸에 달라붙지 않는 트레이닝 팬츠, 운동화. 옷장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입고 나온 결과였다.

엘리즈 하이는 교복의 본질인 평등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학교 같았다. 이들에게 교복은 학생을 같게 만드는 옷이 아니라, 엘리즈 하이 학생이라는 자격을 과시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에이든은 몸매가 드러나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브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정신머리 하고는.”

브리는 입술을 비죽였다.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겠지. 개학 첫날이니까, 기껏해야 선도부 잔소리 정도나 듣고 말 것이다.

브리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엘리즈 하이의 교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둥근 아치형의 끝이 보이지 않는 교문을 지나자, 엘리즈 하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꼭 성처럼 지어진 건물, 정교하게 다듬어진 창문과 벽면, 넓게 펼쳐진 잔디와 중앙 분수.

학교라기보다 영화 세트장 같았다. 그런데도 잘 관리된 나무와 분수 덕에 특유의 온화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묻어났다.

브리는 다시 한번 제 차림을 내려다봤다.

“하, 이 전생의 습관이 무섭다니까.”

작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황미영으로 살 때는 편한 게 최고였다.

움직이기 편하고, 일하기 편하고, 허리 덜 아프고, 빨래 쉬운 옷. 문제는 지금 이 몸이 황미영이 아니라 브리아나 로즈라는 거였다.

정문 근처에 있던 학생들 시선이 하나둘, 곧 우르르 이쪽으로 몰렸다.

“브리다.”

“진짜 예쁘다…”

“오늘 에이든 차 타고 왔어?”

“쟤 교복 안 입었는데?”

“헐, 미친. 진짜네? 어쩌려고 저러냐.”

브리는 수군거림을 애써 무시했다.

로비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살짝 긴장했다.

오겠지.

분명히 오겠지.

원작에서라면 이쯤, 그녀가 등장했어야 했다.

“와~ 브리, 오랜만이야.”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브리가 고개를 들자, 여자애 하나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윤기 나는 갈색 머리, 단정하게 손질된 교복, 지나치게 완벽한 미소. 화려하지만 정돈된 인상.

바네사.

원작에선 분명 여왕벌이자 악녀였다. 브리아나를 제일 집요하게 긁고, 에이든 주변을 맴돌고, 끝까지 사람 속을 거슬리게 하던 타입.

브리는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줬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바네사는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개학날인데 소감이 어때?”

목소리도 밝았다.

억지로 꾸민 다정함이라기보다, 진짜로 반가워했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줄줄 흘렀다.

브리는 순간 눈을 깜빡였다.

‘어?’

바네사는 브리의 차림을 위아래로 한번 훑고는 눈을 반짝였다.

“와, 이거 예쁘다. 어디서 샀어?”

브리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막상 실제로 마주한 바네사는 생각보다 상냥했고, 적어도 첫인상만큼은 꽤 괜찮아 보였다. 딱히 노골적인 악의라고는 찾을 수 없을 만큼, 꽤 귀엽기까지 했다.

‘뭐지. 생각보다 착한데?’

“아… 그냥 옷장에서 아무거나 집어 입고 나왔어.”

그러자 바네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은 약간 어색하긴 했다.

“개학 첫날이니까, 너무 바빴나 보다. 진짜 브리답다.”

바네사는 브리를 잘 아는 사람처럼 말했다.

하지만 십수 년을 산 황미영은, 한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브리는 바네사를 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에이든이 브리 옆으로 다가와 섰다.

“가자.”

바네사가 웃는 얼굴로 에이든을 돌아봤다.

“에이든, 웬일로 브리랑 같이 학교를 왔네?”

둘이 나란히 서 있으니 실루엣은 정말 잘 어울렸다.

아무런 우여곡절도 없이 살아온, 너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서 오히려 권태만 묻어나는 부잣집 아이들 같았다.

브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어… 좀 그렇게 됐어.”

바네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겉으로는 쿨하게 넘겼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브리 저년이 에이든 차 얻어 타려고 별 난리를 쳤겠지.

바네사는 끓어오르는 생각을 하얀 이를 드러낸 미소 뒤로 눌러 담았다.

오전 수업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일교시는 문학 수업이었다. 중년의 꽤 멋진 신사가 들어와 수업을 했는데, 브리는 이름을 제대로 들을 정신이 없었다.

누가 자기를 힐끗거리는지, 누가 바네사와 붙어 다니는지, 누가 에이든을 보는지, 상황을 파악하느라 드문드문 대답만 했을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츄리닝 차림이었던 탓에, 선생의 따가운 눈총까지 받아야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

엘리즈 하이 식당은 식당이라기보다 호텔 레스토랑 같았다.

높은 천장 아래, 유리벽 너머로 야자수가 흔들리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대리석 카운터 위엔 병아리콩 샐러드, 훈제 연어, 치킨 시저 샐러드, 컵과일, 요거트 파르페, 아보카도 토스트, 파스타 샐러드가 모두 값비싼 그릇에 담겨 있었다.

브리는 쟁반을 든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

“와 이런 것도 먹고 사는 구나“

“빨리 안 가져가고 뭐 해?”

엘리샤였다.

브리아나, 엘리샤, 클로이는 퀸카 삼인방으로, 바네사 무리와는 묘하게 라이벌 관계에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을 보니 꽤 반가웠다.

마네킹 같은 몸매, 좋은 향수 냄새, 아무렇지도 않게 빛나는 분위기. 원작에서 정이 가던 캐릭터들이었다.

브리는 대충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집어 그들과 마주 앉았다.

누구와 점심을 먹는지는, 학교 안 권력을 보여주는 창 같은 것이었다.

클로이가 껌을 소리 내서 씹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점심시간 되니까 진짜 개학한 것 같네.”

엘리샤가 바로 맞장구를 쳤다.

“야, 아니 오스틴 봤어? 걔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줬다니까? 근데 차에서 내리면서 뭐라는 줄 알아?”

“왜왜? 뭐랬는데?”

클로이는 벌써 웃겨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엘리샤가 목소리를 가늘게 흉내 냈다.

“마미~ 나 식단 도시락을 두고 와써~”

클로이가 손뼉까지 치며 터졌다.

“꺄하하하! 오스틴 걔 덩치는 산만해서 왜 그런대?”

“아니 그니까! 엘리즈 하이의 마마보이!”

브리는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흐름에 맞춰 같이 웃었다.

한창 웃고 떠드는데, 식당 한가운데서 챙챙 하고 스푼 두 개를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다들 잘 들어.”

식당을 꽉 채우던 웅성거림이 한꺼번에 멎었다.

브리는 설마 하며 고개를 돌렸다.

에이든이었다.

설마.

에이든은 포크를 하나 들어 올리더니, 브리아나 로즈가 앉아 있는 쪽을 가리켰다.

포크 끝과 브리아나의 눈이 정확히 맞닿았다.

브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기 오늘부터 내 여친. 브리아나 로즈.”

정말로 식당 전체가 잠깐 멈춘 것 같았다.

브리는 눈을 깜빡였다.

미친놈인가?

웅성거림이 뒤늦게 터졌다.

“뭐야?”

“진짜?”

“사귀는 거였어?”

“바네사는?”

브리는 저 멀리 스무디 바 앞에 서 있는 바네사를 봤다.

방금 전까지 완벽하게 웃고 있던 얼굴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아사이볼이 허공에서 멈췄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 아니, 믿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뭐, 라, 고?

홱 서슬퍼런 시선이 브리에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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