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히자 방 안엔 다시 정적이 흘렀다. 황미영은—아니, 브리아나는 한참 동안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금발. 파란 눈. 작고 예쁜 얼굴. 남이 쳐다볼 수밖에 없는, 딱 그런 얼굴. “…미친.” 한 번 더 중얼거리고 나서야 현실감이 조금 따라왔다. 살아 있다기엔 이상했고, 죽었다기엔 너무 선명했다. 이불 감촉도, 카펫의 폭신함도, 향수 냄새도, 창문 밖으로 번지는 햇살도 전부 지나치게 또렷했다. 브리아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는 호텔처럼 길고 조용했다. 벽마다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고, 바닥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소리가 안 날 것 같은 두툼한 러그가 깔려 있었다. 집이라기보다 미술관 같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돈으로 바른 성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렇게 반짝이는데도, 집 안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싸늘했다. 아래층 어딘가에서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스쳤다. 누가 소리치는 것도 아닌데 등골이 쭈뼛해졌다. 브리아나는 난간 쪽으로 한 발 다가갔다가 멈칫했다. 커다란 거실 한가운데, 햇빛은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고 샹들리에는 아침부터 번쩍였다. 은쟁반 위엔 갓 내려놓은 커피포트가 김을 올리고 있었고, 잘 정리된 소파와 꽃꽂이는 잡지 화보 같았다. 그런데 그 풍경이 어쩐지 무서웠다. 너무 예쁜데, 너무 정돈되어 있는데, 사람이 사는 냄새는 하나도 없달까. 블링블링한 전쟁터. 황미영은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한바탕 싸운 뒤 흔적만 전부 닦아낸 집. 유리잔은 새것으로 갈아놓고, 목소리만 벽 틈에 남겨둔 집. “브리 아가씨!” 등 뒤에서 샐리가 불렀다. 브리아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았다. “이쪽이에요.” 샐리는 익숙하다는 듯 드레스룸 문을 열었다. 그리고 브리아나는 또 한 번 숨이 멎을 뻔했다. 옷장이 아니라 거의 고급 편집숍이었다. 트위드 재킷, 실크 블라우스, 미디 스커트, 반짝이는 힐, 로고가 박힌 가방들까지 색깔별로
Zuletzt aktualisiert : 2026-04-29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