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왜 그런 거 말이야. 드라마에서 우연으로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 같은 거. 미영은 드라마를 보면서 우연처럼 에이든이 브리 앞에 섰을때, 저건 드라마 속에 존재하는 우연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든과 브리의 통화가 원작에서 삭제된 장면이었다니. 에이든은 브리가 있는 곳을 찾았고, 끊임없이 전화하고, 끈질기게 브리를 따라다닌 거였구나. 으휴. 못난 놈. ”야! 일어나.” 뭐 일어나? 일어나라는 게 지금 나보고 그런 건가? 계약이랍시고 브리를 이렇게 괴롭혔다니. 브리는 반 쯤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탁 내려놓고 에이든을 똑바로 쏘아봤다.“니가 뭔데 오라가라야. 나 지금 먹고 있는 거 안 보여?”“안 보이는데.” 에이든은 브리의 작은 어깨 턱하고 손을 놨다.“치워.”“싫다면.” 클로이와 엘리샤는 불구경이 재밌는지 음식을 더 맛있게 오물오물 먹으며 그들을 동물원의 원숭이들처럼 구경했다. 빨리 엔딩을 보기 위해선 그의 말을 따라야했지만, 이 새끼 하는 꼴을 보니 그의 말에 순순히 따라주기 싫었다. 참 멋진 남주였는데. 아쉽게 되었네. 그래도 어째저째 바네사의 공작을 피해 에이든이랑 엔딩은 할 예정이었다. “다섯 셀 때까지 안 일어나면 끌어낼거야.“ “오” 브리는 계속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 맛있다. 살짝 심장이 쫄렸지만 대담한 머리는 계속 앉아있으라고 명령했다.“사” 하. 그냥 일어설까. 메인 남주랑 기싸움해봤자 얻는 게 어디있다고. 브리는 냠냠 쩝쩝 먹던 샌드위치가 거의 끝나가는 걸 눈치챘다.‘그래 일어나자. 이것만 먹고.’“이것만 먹고 일어날게.”“삼.” 브리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에이든의 카운팅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이틴물에 회귀한 거?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다.”시간 다 됐어. 샌드위치 다 먹었으면 가자.“ 브리는 여차저차 말할 기회도 없이 손목을 잡혔다. 브리의 가녀리고 흰 손목이 에이든의 큰 손아귀에 잡혀 끌려나갔다.”아..아프다고!“ 에이든은 브리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이안은 꽤 귀여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안의 뒤에 앉은 브리는 이안 흰 셔츠에 비친 잔근육들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일부러 시선을 돌려보려곤 했지만 저 널찍한 등이 서브 남주의 등이라는 게 계탄스러웠다. 이안과의 첫만남은 아직 멀었다. 서브 남주라 그런지 장면들이 더 없었다. 브리는 수업 시간에 말을 한 번 걸어볼까 싶었지만, 딱히 용기가 나지않아 브리 앞에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로버트는 첫수업 때보다 안정된 느낌이었다. 영어의 역사와 라틴어를 조금 배웠고, 꿈꾸는 것만 같았다. 앞치마에 회화책 넣어다니며 읽던 시절이 보상받나 싶을 정도로 브리는 수업을 감명 깊게 들었다.”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그 말만 학수고대하고 기다리던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짐을 챙겨일어났다. 브리는 수업이 끝나는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옆을 보니 엘리샤가 엎드려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클로이와 브리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클로이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여념이 없었다. ‘뭐든 재밌을때지.’“아 개웃겨. 입 벌린 거 좀 봐. 야 브리 얘 좀 봐!” 엘리샤는 꿈에서 뭘하는지 히히덕 히히덕 웃으며 아잉~하고 교태를 부리기도 했다. 브리는 톡톡하고 엘리샤의 작은 어깨를 흔들어깨웠다. 엘리샤의 눈이 번쩍 뜨였다.“아 저스틴 비버랑 키스 직전이었는데! 더 잘래! 으앙!”“우리 오늘 말리부 아울렛에 쇼핑가기로 했잖아!” 엘리샤의 눈이 더 크게 번쩍뜨였다. “맞다! 오예!” 엘리샤는 금방 잠에서 깬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클로이는 그런 엘리샤와 팔짱을 꼈다.“ Hey, 빨리 너도 안 끼고 뭐해?”브리는 둘은 지켜보다가 깜짝 놀라 자신도 팔짱을 꼈다. “히힛! 쇼핑몰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아~!”“간드아~~~!” 브리는 있는 힘껏 단전에서 두 사람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둘은 살짝 놀란듯했지만 다시 웃어보였다.** 브리는 말리부 비치 로드를 드라이브해 가는 동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렉산더는 아무말 없이 비상등 깜빡이를 넣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브리의 엄마 사진을 쳐다본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학교 다녀올게요.”하고 인사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는지 몰라도. “파티는 어땠는데?“할 말이 없는지 흠흠, 기침하더니 첫말이 그거였다. 브리는 심신이 피곤한 탓에 데리고 온 아버지를 옆에 구고 하이힐부터 벗었다. “아버지 뭘 여기까지 왔어요.”구두를 가방에 넣는 브리를 보더니 알렉산더가 운을 뗐다. “파트너도 없이 그렇게 나가는데 누가 데려다줄라고?” “아니에요. 그래도 에이든이..””밀러가에서 자금 수혜 받았다. 너도 알고 있었냐?“ 아 그게 오늘이었구나. 오늘을 기점으로 알렉산더가의 자금난이 조금 줄어들었으니까. 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줄줄이 폐업했던 호텔이 밀러가의 자금과 납품 때문에 겨우 설비 공사에 착수한 시점이었다. 유서 깊은 로즈가의 호텔들, 끽하면 밀러그룹에 흡수될 뻔했지만 올드머니의 자존심과 체면 그리고 브리의 희생으로 버텨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응?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난 내 몸 하나 추리기도 바쁜데, 남자 으른들 일에 내가 왜 끼어들겠어. 아빠. 하하.“ 브리는 어색하게 시치미를 뗐다. 로즈가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할머니때부터 대대손손 물려받은 유서 깊은 호텔이었기 때문에, 그건 곧 엄마의 유물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그래서였을 것이다. 브리가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에이든한테 무릎을 꿇은 이유가. “네가 에이든한테 부탁한 건 아니고?”잠시 생각에 잠긴 브리를 의식하듯 알렉산더가 브리를 떠봤다. “어우 아빠. 그런 소리 좀 하지마. 내가 뭐가 아쉬워서 걔한테 부탁해? 이상한 소리하지말고 운전 집중해.” 꽤 친근해진 딸의 말투에 알랙산더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데리고 오면 먼저간다, 친구들이랑 밤새 파티를 하고 들어와도 그거 층계를 올라갈 뿐이었던 딸. 오늘은 자신의 차를 넙죽 얻어타더니 잔소리까지하네? 알렉산더는 핸들을 잡은 손을 까딱거리다, 옆자리에 앉은
“아니 뭐 어떻게 안다기 보다... 그냥 저절로.”에이든은 고개를 대충 끄덕이더니 옅게 미소지었다. 그의 각진 턱과 부드러운 입술이 눈에 들아왔다. 뭐지? 그것도 잠시, 에이든은 브리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빠르게 미소를 걷히곤 자세를 고쳤다. ”뭐 그건 그렇고, 아까 말한 거 있지? 오늘 초대 받은 사람들 이름 다 외우고...“”알겠다고. 자슥아.“브리는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럼 그렇지. 따라다니며 잔소리나 하는 게 계약 연애라는 건 여간 피곤한 게 아니구나. 말은 추모파티지만 고인을 그리는 사교 파티에 가까웠다. 바네사의 부모, 에이든의 가족들 등 엘리즈 하이의 부모들도 꽉꽉 채워 참석한 곳이었다. “브리, 이번에 너희 아버지는 안 오셨나봐?” 바네사의 시녀 중 한 명이 물어왔다. 브리는 대충 아버지가 이 파티에 왜 참석하지 않은지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에이든의 부모가 참석하는 이 곳에서 에이든의 눈치를 보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 오늘 아버지가 좀 아프시대.” 추모파티인데도 이들은 여유롭고 행복해보였다. 죽음도 값비싼 사람들. 브리는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다. 원작의 주인공도 그랬을까. 이런 느낌은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았지. 꽤 주인공이 외로웠을 거 같은데, 미영은 이 주인공이 꽤 특별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식당에서 본 왁자지껄 웃는 사람들, 돌아가면 녹초가 된 자신도. 해외여행을 꿈꾸던 황미영을 생각하면서. 그런 브리에게 웨이터로 보이는 누군가가 브리를 불렀다.“저 브리씨. 블랙 드레스입니다.” 단정하게 접혀있는 우아한 실크드레스였다.“누..누가 보냈어요?” 보낸 사람이 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파우더룸에서 갈아입고 나오시죠. 언제 이런 걸 준비했지, 브리는 블랙 드레스를 받아들고 파우더룸으로 향했다. 조금 피로한 얼굴. 그래도 부드러운 살결과 발그레한 볼 때문에 환하게 빛났다.“어머 브리아나, 오랜만이네요.” 알알이 빛나는 전구가 눈부시게 빛나는 화장대 앞
“브리아나? 음? 너 어디가?“ 엘리샤가 작게 불렀다. 브리는 성큼성큼 단상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단상 위에는 작은 현악단이 있었다. 턱수염이 긴 첼로 연주자가 무릎 사이에 첼로를 낀 채 브리를 바라보았다. 브리는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순간 홀 안이 술렁였다. “쟤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노래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상황에서?” 뒤늦게 파티장으로 들어온 에이든이 무대로 걸어가려 했다. “야, 비켜.” 그가 낮게 내뱉으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려는 순간, 누군가 옆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이안이었다. 그는 파티에 조금 늦었다. 이안 케네디. 캘리포니아의 가장 유명한 갤러리 소유자의 아들이었다. 그의 가문은 노블리스오블리주로 유명했고, 겸손한 애티튜드와 자선활동으로 유명했다. 금발의 머리카락, 짙은 쌍커풀과 꽤 귀여운 눈매. 끝이 완벽하게 올라간 입꼬리와는 대비되는 근육질의 어깨. 에이든이 날카롭게 그를 돌아보았다. “놔.” 이안은 단상 위의 브리를 바라본 채 낮게 말했다. 은근한 미소로 브리를 바라보면서. “기다려봐. 뭐하는 진 봐야 할 거 아니야.“ 브리는 마이크 앞에 섰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아까보다 차분했다. 브리는 로버트 선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마거릿 여사께서 Cyndi Lauper의 〈Time After Time〉을 좋아하셨다고요.” 로버트 선생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브리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제가 감히 이 자리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그 노래만큼은 진심으로 부르겠습니다.” 홀 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브리는 현악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연주해주실 수 있을까요?” 첼로 연주자는 잠시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옆의 피아니스트와 눈을 마주쳤다. 짧은 침묵. 이윽고 피아노가 조심스럽게 첫 음을 눌렀다. 익숙한 전주가 아주 느리게 흘러나왔다. 물결이 흐르듯 전주가 나왔다. 브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첫 소절을 불렀다. 화려
“눈치가 없는 거야, 머리가 나쁜 거야?” 잠시의 잡념을 깨우듯 에이든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이어졌다. “너 이러면 사교계에서 아웃이야. 알아?” 아웃. 삼진아웃도 아니고 아웃 아웃 자꾸 아웃거리는 게 귀에 피딱지가 않을 거 같았다. 하긴 아웃은 아웃이지. 사교계에서 아웃. 엘리즈 하이에서 아웃. 로버트 선생에게 밉보이고, 엔딩은 더 멀어진다. 그렇게 되면 미영은 이 세계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잃는다. 그럼 인생에서도 아웃. “됐고,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한테 다 인사하고, 이름이랑 사업 부분 어떤 성격인지까지 정리해서 나한테 보고해.” ’....이기적인 놈, 아욱국으로 끓여버릴까보다!’ "알겠어. 그렇게 할게.“ 브리는 잠시 풀이 죽은 투로 대답했다. 남친이라는 작자가 드레스 갈아입힐 생각은 안하고 자기 안위만 걱정하는 게, 여기도 박살난 건 매한가지인 것 같았다. 울어나 볼까, 근데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뭔가를 해야했다. 어쩐다, 어쩐다. 그래도 산 세월이 있는데. 그런 브리에게 문득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브리는 잠시 뭔갈 생각하는가 싶더니 혼자 손뼉을 맞대 치며 뭔가를 결심한듯 보였다. 브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해결할게.” 에이든이 말을 멈췄다. “뭐?” “해결하면 되잖아. 이것아.“ “네가 뭘 어떻게 해결해. 지금 이 밤에 누가 드레스를 배달해줄 수도 없고... 너 어디 보냐?” 브리는 대답 대신 저택 안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파티장에 들어설 때 보았던 것이 머릿속을 스쳤다. 입구 옆에 마련된 작은 추모 전시. 마거릿 헤일이 생전에 쓰던 흰 장갑, 오래된 향수병, 손때 묻은 요리책, 그리고 유리 액자 안에 들어 있던 낡은 포스터. 분홍색과 하늘색이 섞인 화려한 포스터 속 여가수. Cyndi Lauper. 브리는 그걸 분명히 봤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어딘가 촌스럽고 예쁜 80년대 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