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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냄새를 맡는 남자 (2)

작가: 이온
last update 게시일: 2026-03-11 23:58:21

청년이 여전히 공손하게 물었다.

“맞습니다요.”

그런 청년 앞에서 노비들은 저도 모르게 양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았다.

“한양 좌포청에서 나왔습니다요.”

“그렇다면 혹시 금화도감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금화도감(禁火都監)이라면 도성의 화재에 대응하기 위해 2년 전에 설치된 관청이자 여기 모인 사내들이 한낮에 우물 파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갑자기 나타난 청년이 난데없이 금화도감을 찾으니 노비들로서도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물론입죠.”

마용이 대답했다.

“저희가 거기에서 일하고 있는걸요.”

“그렇습니까? 아까는 좌포청이라고…….”

“관청이 멀리 떨어져 있어, 일이 생길 때면 저희 같은 공노를 동원해 부리고는 합니다.”

마용의 설명을 청년은 주의 깊게 듣는 듯했다. 그러다 슬쩍 마용의 어깨 너머로 파다 만 우물 구덩이를 넘겨보는데, 그 표정이 자뭇 진지했다.

“일이 생길 때라…….”

청년이 홀로 중얼거렸다. 그때 마용은 이 청년이 혹시 그들이 모르는 단계에서 파견된 감독관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퍼뜩 들었다.

“우물을 파다 잠시 쉬고 있던 참이었지요. 금방 끝날 겁니다.”

마용이 얼른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자 다른 공노들도 무언가 낌새를 느꼈던지 주섬주섬 삽을 들고 구덩이 쪽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청년이 다시 마용을 불렀다.

“우물이라 하셨습니까?”

“네. 가옥 다섯 간 거리마다 우물을 하나씩 두어야 해서 말이지요.”

“다섯 간이라.”

“지금이야 보송보송하지만 해질녘쯤이면 여기서 물이 콸콸…….”

“이상하네요.”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찌 물 한 방울도 나지 않을 곳에 우물을 팔 수 있단 말입니까?”

“네?”

마용이 놀란 소리를 냈다. 그러자 청년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공노들이 일하고 있던 구덩이 쪽을 가리켰다.

“지금 일손들께서 딛고 계신 곳은 수맥(水脈)이 비켜나는 곳이라 아무리 깊이 들어간들, 아침 이슬만한 물 한방울 얻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도 여기를 계속 파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을 탓한다기보다는 진정으로 궁금해 묻는 어조였다.

수맥이라. 망나니 풍수사가 입버릇처럼 들이미는 단어였다.

툭하면 여기에 수맥이 흐르네, 어쩌네 하며 주위를 들들 볶는데 듣기만 해도 짜증이 치밀었다. 늘 세상만사 다 꿰뚫어본다는 표정으로 젠체하는 다른 풍수사들의 행태 또한 이골이 나도록 봤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런데 이 청년은 달랐다. 희한하게 신뢰가 갔다. 정말로 땅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마을 처녀 여럿 울렸을지 모를, 단정하고 수려한 용모에 홀렸다고 해야 하나?

“외람되오나…….”

마용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공자께서도 풍수사이십니까?”

“아닙니다.”

청년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그 뒤에 덧붙이는 말도 함께였다.

“그렇지만 물이 나오는 곳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 덕에 오히려 의심이 커졌다.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말하는 대로 한번 해보시지요.”

청년은 마용이 그를 탐탁찮아 한다는 것은 신경 쓰지도 않는 듯했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마용은 청년에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청년은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 좋겠다’ 답하고는 성큼성큼 구덩이 쪽으로 걸어왔다.

“음…….”

그리곤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대는 것이었다. 다른 공노들이 뭐하는 짓인가 싶어 이쪽을 쳐다보는 사이, 청년은 ‘아!’ 하는 탄식을 내뱉곤 별안간 기쁜 얼굴이 되어 허리를 구부렸다.

“이거면 되겠다.”

청년이 찾아낸 것은 주먹만 한 돌덩이였다.

돌을 집어든 청년이 휙 몸을 돌려 구덩이로부터 여섯 발자국을 걸어갔다.

뭘 하려는 것인가 싶었는데 그 다음에 청년이 한 행동은 그저 걸음을 멈춘 곳에 우두커니 서 있다 천천히 손에 들린 돌을 땅으로 떨어뜨리는 게 다였다.

툭-!

돌을 떨어뜨린 청년이 다시 구덩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구덩이 속에 하반신을 파묻고 있던 공노를 향해 상냥하게 말했다.

“딱 2자만…….”

공노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거기서 딱 2자만 더 파보시길 바랍니다.”

“네?”

“하시던 대로 땅을 파시라는 말씀입니다. 그쪽으로 흘러가라고 말해두었으니 곧 나올 것입니다.”

“저, 뭐가 나온다는 말씀이신지…….”

공노들이 떨떠름해하며 물었다. 청년은 빙긋 웃을 뿐,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신분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옆에서 빤히 지켜보고 있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노들은 다시 삽을 들어 구덩이 아래쪽을 파고 내려갔다.

“어어?”

한 공노가 갑자기 놀란 소리를 냈다. 방금 땅속에 박아 넣은 삽날 사이로 무언가 차가운 것이 새어나온 탓이었다.

물이었다.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물이다!”

“물이 나온다!”

공노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제는 살았다. 우물도 제시간에 팔수 있을 거고, 망나니 풍수사에게 얻어맞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 여럿 살린, 말 그대로 생명수였다.

구덩이 속에서 공노들이 기뻐하는 동안, 역시 환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마용은 슬쩍 옆에 서 있던 청년을 살폈다. 유려한 턱선, 갸름한 볼 사이로 가느다랗게 올라선 미소 끝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저 어딘가 명산 한 자락에 기거하던 신선이 청년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아득했다. 마용은 청년에게 압도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찌…….”

마용이 어려워하며 입을 열었다. 청년이 그를 향해 몸을 돌렸을 때, 옷자락에서 나는 소리마저 영험하게 들렸다.

“어찌 아셨습니까? 물이 나온다는 것…….”

“저곳은 물이 나올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탁했습니다. 여러분이 파놓은 구덩이 쪽으로 흘러주기를요.”

“그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대개는 잘 안 들어줍니다. 물은 변덕이 심한 친구들이라…….”

청년이 지팡이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아까 땅에 떨어뜨린 돌덩이 쪽으로 향했다.

“그래서 돌을 들어 지축을 흔들며 부탁을 했습니다. 조금만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주지 않겠느냐고요. 다행히 말을 들어주더군요. 그나저나 앞으로 이 일대에는 우물을 파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이야 물줄기가 흐른다고 쳐도, 천거(川渠)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니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물이 마르고 말겁니다. 우물을 파기에는 좋지 않은 곳입니다.”

청년의 말대로, 망나니 풍수사가 지정한 이쪽은 강물은커녕, 저지대로 내려드는 개울 하나 없어 발 한 되 일구기조차 쉽지 않은 땅이었다.

“그러니 우물을 파고 싶다면 저 구덩이를 중점으로 동편으로 5리 떨어진 곳을 찾으면 될 것입니다. 그 아래로 일곱 길을 파면 물이 나올 것입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물이라 양이 풍족하고 시원할겁니다.”

거기에 물어보지도 않은 다음 작업 장소까지 물색을 해주니 보면 볼수록 신통했다. 마용은 그런 청년이 더더욱 궁금해졌다.

“공자께서는……. 대체 뭐 하는 분이시기에…….”

“그저 한양에 부모님 찾아 올라온 일개 서생입니다.”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얼굴에 서린 남모를 외로움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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