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세종 10년 7월, 여름.
유난히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아이구구…….”
사람 죽는 소리가 들렸다. 흙더미가 봉분(封墳)처럼 볼록 솟아 오른 주변은 일꾼들이 내뿜는 숨소리와 열기로 가득했다.
삽날이 땅바닥을 찍어 나르는 소음이 공허하게 울렸다.
3시진이 넘는 시각 동안, 이들은 구덩이를 파고 또 팠다. 못해도 여덟 자는 파고 들어갔을 것이다.
“안 돼, 안 돼, 이거…….”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던 일꾼이 삽을 내던지며 내뱉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구덩이 주위에 모여 있던 일꾼들이 모두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삽을 내던진 일꾼이 구덩이 밖으로 기어 나왔다. 흙먼지를 탁탁 두들겨 터는 그의 손은 고된 작업에 이미 부르터있었다.
“망할…….”
일꾼이 구덩이 속에 침을 탁- 내뱉으며 욕지거리를 했다.
“습기 하나 없는 땅에 대고 2길은 되는 깊이의 우물을 파라니……. 일단 물이 있을 법 직한 땅을 골라야 뭐라도 할 것 아닌가.”
그가 투덜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동의한다는 듯 끙- 옅은 신음을 흘렸다. 달궈진 지면 사이에서 새어나온 아지랑이가 옷가지 속 땀방울로 번져들어 몸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한양 좌포청에서 파견된 공노비들이었다. 여름 맞은 노비네 삶 중에 무어 하나 힘들지 아니한 것 있겠느냐만, 종일 땡볕에서 구덩이를 파고 있는 이들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는 반드시 우물을 파야 했다. 그것도 반드시 맑은 물이 퐁퐁 솟는 것으로.
문제는 그들이 하루 종일 들고 파고 있는 곳이 우물은커녕, 진흙 한 움큼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척박한 황무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우물을 세우기에는 무리인 이곳을 포청 공노비들이 뒤집어엎고 있는 데에는 ‘풍수사(風水師)’의 일방적인 지시가 결정적이었다.
‘지세를 보아하니 반드시 물이 있겠군.’
그 말을 끝으로 앞뒤 가리지 말고 땅을 파라 명령하고 휙- 가버리는 것이 풍수사였다.
궁궐에서 꽤 끗발 날리는 벼슬아치의 차남으로서 행실이 가볍고 교만하여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나름 풍수지리를 수학했다고 해도 실력없기로 소문이 나서 하급 관리들조차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 실정이었다.
결국 무능한 풍수사 하나 때문에 애매한 노비들만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죽어나는 것이었다.
아마 오늘도 대낮부터 기방에 틀어박혀 꼴에 양반이랍시고 일패 기생들과 되잖은 시조를 나누며 희희낙락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술에 취해 나타나 왜 여기를 건드렸나, 왜 이 돌을 놔두었느냐, 지신(地神)이 노하였으니 벌을 내릴 것이다 등등 온갖 같잖은 행패를 부릴 것이다.
풍수사의 패악거리를 보고 참아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뜩했다.
공노들은 가옥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소로(小路)의 맞은편, 남쪽을 향해 뻗은 산길이 시작되는 곳 직전의 틈바구니 속에 들어와 있었다.
길도 아니고, 숲도 아닌 자갈뿐인 곳을 파내려가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더 파야겠나?”
한 공노가 한숨을 쉬며 모두를 보고 물었다.
“장담할 수 없네.”
땅 파던 공노가 고개를 저었다.
“물이고 자시고 비린내도 없어.”
“이거 큰일 났구먼. 안 그래도 요즘 기분 안 좋다며 한 놈만 걸리기를 바라던 눈치던데…….”
“필시 오늘은 경을 치고 말걸세.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모두가 망나니 풍수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시간도 얼마 없었고, 삽을 잡을 힘도 바닥났다. 오찬 때 챙겨와 먹었던 말린 생선포는 이미 다 소화되고 없었다.
무엇보다, 풍수사가 지정한 장소에서 물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져버렸다. 진흙이라도 나온다면 억지로 힘을 짜내 파내기라도 할 것인데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서야 사람은 진정으로 절망하게 되는 법이다. 차마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찾아들었다.
그렇게 하릴없는 시간만 흘렀다.
문득 저쪽 오솔길에서 인기척이 났다.
이곳은 도성으로 들어서는 길목 중의 하나라, 저기 산골이나 어촌에서 드나드는 여객들이 많았다. 공노들은 여객 중에 하나이겠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점점 가까워지는 차림새를 보니, 수수한 무명옷에 머리에는 챙이 좁은 흑립(黑笠)을 썼고 대충 끈을 동여맨 포대기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그것조차 옷가지를 천으로 둘둘 말아 싼 것에 불과했다. 봇짐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것이었다.
옷깃이며 신발 따위가 닳고 헤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꽤 오랫동안 초야를 떠돈 것인지 한 손에 든 지팡이를 짚고 터덜터덜 이쪽으로 걸어드는데, 몸짓 발짓 하나하나 피로에 젖어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흑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눈빛만큼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초롱초롱했다.
아마 한양에 다 왔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여객이 우물터 바로 옆에 다다랐다. 생각 없이 쳐다보던 이쪽과 저쪽이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이제 갓 소년티를 벗은, 많이 쳐줘야 스물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저기…….”
청년이 청명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말씀 좀 여쭈겠습니다.”
아무리 차림새나 행색이 남루해도, 한눈에 봐도 귀한 집 자손 같은 품격이 묻어나오는 청년이었다.
그런 청년이 존대를 하며 다가서자 우물 구덩이 옆에 있던 공노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저희 말씀이십니까요?”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마용이라는 노비가 어려워하는 투로 되물었다.
청년이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여기 사시는 분들이십니까?”
“뭐라 하셨소?”천우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반촌에 있던 관리를 없앴다? 내가 맞게 들은거요?”“네. 조선 땅의 역법을 연구하던 관리였습니다. 강원도 산속에 들어가 일몰, 일출 시각을 적어서 정리하고 있더군요. 그러다 한양에 자료를 제출하러 돌아왔고.”어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모골이 송연해진 천우가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없앴다는 말은… 설마 살해했다는 뜻입니까?”“……”“대답해보시오.”천우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재촉했다.눈앞에 서 있는 여인이 무자비한 살인귀가 아니기를 바랐다. 그 순간만큼은.“그저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치운 것뿐입니다.”어리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그 관리가……”천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반촌에서 실종되었다는 그 사람입니까? 오늘 오며가며 얘기 들었던 그 사람?”“네. 포청에서 이미 살피고 갔다는 그 사람입니다.”“포교 앞에서 자기가 관리를 죽여 없앴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구려. 낭자께서는.”“그 자의 역법 연구가 미르의 생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모르니까요.”“역법을 공부한다고 해서 미르가 소멸한다는 것을 어찌 증명할 수 있단 말이오?”“증거는 필요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천지신명의 뜻에 따라…”“설령 천지신명께서 그리 정해놓았다고 해도, 당신이나 나나 그것을 거스르려 사람 명줄을 해할 권리는 없소. 오늘 불타버렸던 반촌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죄 없는 그 관리도.”천우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어리는 그 앞에서 한쪽 눈살을 찌푸린 채로 듣고 있었다.“사람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소.”천우는 믿고 있는 바를 그대로 쏟아냈다.“그리고 나는 낭자가 이번 일의 범인이라 자백한 이상,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는 않을거요. 포교로서, 그리고 또 자식으로서 낭자는 내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소. 내가 사랑하는 분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갈라놓았소. 난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물빛미르이니 숙적인 붉빛미르를 막아내겠다
어리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땅의 사람들이 더 이상 미르가 필요 없음을 천지신명께 증명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순차적으로, 그리고 파괴적으로 그 작업은 행해지고 있지요. 착실하게.”“그게 무슨……”“사람들도 애초부터 우리를 노리고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벌이는 일이 우연찮게도 미르를 몰아내는데 일조하고 있을 뿐이지요.”“무슨 일입니까, 그게? 정확히 말 좀 해주시오!”천우가 답답한 심정에 목소리를 크게 냈다.엄청난 고함소리였다.미르의 그것과도 같았다.산 전체가 우르릉- 울리는 듯했다. 나뭇잎 우수수 흩날리던 소리가 끓어올랐다가 다시 잠잠해졌다.“제 짐작에는.”어리가 진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다 말했다.천우의, 미르의 면모를 보아서 그런 것일까? 얼굴에 은근한 미소와 어려 있었다.“사람들 더 이상 미르의 권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붉빛미르에게는 더 이상 무찌를 적이 없고. 물빛미르에게는……”“돌보아야 할 것이 없다?”“물빛미르는 올바른 곳에 물과 비를 내려 농사지을 땅을 융성케 하고, 풍성한 소출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용. 즉, 이 땅의 천문(天文)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이로울 수 있게 보조해주는 것이지요. 비와 물에 젖은 땅에서 자라난 곡식으로 모두가 먹고 사니까.”&l
일순간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흘렀다.바람조차 놀란 것인지 밤중의 산속임에도 나뭇잎 하나 흔들리는 소리 하나 들리질 않았다. 세상 만물이 모두 이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했다.“그, 그게……”천우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시오?”“지금 이 조선 땅.”어리가 발을 들어 딛고 서 있던 바닥을 쾅쾅 구르며 말했다.“이 조선 땅에서, 물빛께서 고향이라고 여기시는 이 땅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심상찮은 일?”“우리 두 미르의 생존을 담보로 하는 일이겠지요. 이미 시작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생명과 권능을 좀먹어가고 있습니다.”“그게 무슨……”“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입니다.”“말도 안 되오.”천우가 딱 잘라 말했다.“나조차도 미르라는 짐승이 실존하는 것을 알지도, 실감하지도 못하였는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없앤다니? 그게 가능하단 말씀이오?”“그러합니다.”“당최 뭘 어떻게 한다는 얘기입니까? 창칼을 들어 미르를 사냥하기라도 한다는 말이오?”“창이나 칼, 화살 따위로는 우리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이미 충분히 보시지 않았습니까?”
“무엄하오.”천우가 지친 와중에도 주의를 주었다.“왕을 바꾸다니. 그리고 그것이 하찮다니. 백성으로서 품을 수 없는 참람한 사상이오.”“백성으로서?”어리가 되물었다.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천우를 노려보는 것이 조금 발끈한 것 같기도 했다.“물빛께서는 진정으로 당신이 이 땅의 백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당연한 것 아니오?”천우가 콧김을 뿜었다.“이 땅에서 나는 작물을 먹고, 이 땅에서 통하는 언어를 말하고, 이 땅에서 보내는 시간을 누리고 있소이다. 또한 이 땅에서 만난 사람들과 웃고 울며 살아왔소. 그것이 이 땅의 백성이 분명하다는 증좌(證左)가 아니오?”“사람들과 웃고 울며 살아왔다. 그것이 증거라는 말씀이십니까?”“그렇소.”“사람이 아닌, 미르의 몸인데도 진정 그리 생각하십니까?”“나는 아직도 내가 물빛미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천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일평생을 팔다리가 달린 사람으로 살아왔소.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너는 미르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어쩌라는 것입니까? 솔직히 처음 주상전하께 미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주상전하라.”어리가 피식 웃으며 말허리를 잘랐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불과 물의 미르가 어쩌고, 사람의 몸으로 환생을 했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며 당장 관가를 찾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그러나 불을 다루는 사람이 있고, 물을 다루던 자신을 압도하였으며 주상전하로부터 미르가 실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그리고 본인을 붉빛미르. 붉은색 빛깔을 띈 용이라 소개하는 사람이 있다.더 이상 의심할 수 있을 리 없었다.나는 물빛미르고.너는 붉빛미르다.“용이라는 것은 본디 그 외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짐승이다……”천우는 지난번 주상전하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가만히 읊조리며 눈앞의 어리를 가만히 쳐다봤다.어폐가 있는 것이, 눈앞의 여인은 용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눈썹 긴 두 눈과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 가느다란 목, 달덩이 같은 얼굴…… 이게 그냥 사람이지, 어찌 흉악한 미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미르에 대해 나름 알고 계시는 듯합니다.”어리가 두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불빛에 비친 눈망울에 날카로운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아니면. 누구한테서 들었다거나.”“……”“물빛께 미르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습니까? 누구입니까?”“대답하지 않을 것이오.”천우가 단호
“으음……”천우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상자 안에 넣고 마구 흔들어진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머리는 지끈거리고,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으며 속도 울렁거렸다.무엇보다,일어설 마음이 들지 않았다.너무나도 지쳐버린 탓인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감각의 통제력을 상실한 듯한 기분이었다.‘여기는……’천우는 바닥에 늘어붙은 듯한 느낌을 억지로 젖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실내에 들어와 있는듯 어두컴컴했고,약간 물에 젖은 흙냄새가 났다.바닥이 차갑고 등도 젖어 있었는데,천우는 지금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혼절해 있던 참이었다.진흙을 발라 세운 벽 안쪽에서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어디지?여기가……’당최 어디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인지가 되질 않았다.끼익-앞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들어보니,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사람?사람이 맞는 듯했다.팍-일순간 한덩이의 불길이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