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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냄새를 맡는 남자 (1)

Author: 이온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11 23:58:16

세종 10년 7월, 여름.

유난히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아이구구…….”

사람 죽는 소리가 들렸다. 흙더미가 봉분(封墳)처럼 볼록 솟아 오른 주변은 일꾼들이 내뿜는 숨소리와 열기로 가득했다.

삽날이 땅바닥을 찍어 나르는 소음이 공허하게 울렸다.

3시진이 넘는 시각 동안, 이들은 구덩이를 파고 또 팠다. 못해도 여덟 자는 파고 들어갔을 것이다.

“안 돼, 안 돼, 이거…….”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던 일꾼이 삽을 내던지며 내뱉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구덩이 주위에 모여 있던 일꾼들이 모두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삽을 내던진 일꾼이 구덩이 밖으로 기어 나왔다. 흙먼지를 탁탁 두들겨 터는 그의 손은 고된 작업에 이미 부르터있었다.

“망할…….”

일꾼이 구덩이 속에 침을 탁- 내뱉으며 욕지거리를 했다.

“습기 하나 없는 땅에 대고 2길은 되는 깊이의 우물을 파라니……. 일단 물이 있을 법 직한 땅을 골라야 뭐라도 할 것 아닌가.”

그가 투덜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동의한다는 듯 끙- 옅은 신음을 흘렸다. 달궈진 지면 사이에서 새어나온 아지랑이가 옷가지 속 땀방울로 번져들어 몸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한양 좌포청에서 파견된 공노비들이었다. 여름 맞은 노비네 삶 중에 무어 하나 힘들지 아니한 것 있겠느냐만, 종일 땡볕에서 구덩이를 파고 있는 이들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는 반드시 우물을 파야 했다. 그것도 반드시 맑은 물이 퐁퐁 솟는 것으로.

문제는 그들이 하루 종일 들고 파고 있는 곳이 우물은커녕, 진흙 한 움큼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척박한 황무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우물을 세우기에는 무리인 이곳을 포청 공노비들이 뒤집어엎고 있는 데에는 ‘풍수사(風水師)’의 일방적인 지시가 결정적이었다.

‘지세를 보아하니 반드시 물이 있겠군.’

그 말을 끝으로 앞뒤 가리지 말고 땅을 파라 명령하고 휙- 가버리는 것이 풍수사였다.

궁궐에서 꽤 끗발 날리는 벼슬아치의 차남으로서 행실이 가볍고 교만하여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나름 풍수지리를 수학했다고 해도 실력없기로 소문이 나서 하급 관리들조차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 실정이었다.

결국 무능한 풍수사 하나 때문에 애매한 노비들만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죽어나는 것이었다.

아마 오늘도 대낮부터 기방에 틀어박혀 꼴에 양반이랍시고 일패 기생들과 되잖은 시조를 나누며 희희낙락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술에 취해 나타나 왜 여기를 건드렸나, 왜 이 돌을 놔두었느냐, 지신(地神)이 노하였으니 벌을 내릴 것이다 등등 온갖 같잖은 행패를 부릴 것이다.

풍수사의 패악거리를 보고 참아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뜩했다.

공노들은 가옥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소로(小路)의 맞은편, 남쪽을 향해 뻗은 산길이 시작되는 곳 직전의 틈바구니 속에 들어와 있었다.

길도 아니고, 숲도 아닌 자갈뿐인 곳을 파내려가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더 파야겠나?”

한 공노가 한숨을 쉬며 모두를 보고 물었다.

“장담할 수 없네.”

땅 파던 공노가 고개를 저었다.

“물이고 자시고 비린내도 없어.”

“이거 큰일 났구먼. 안 그래도 요즘 기분 안 좋다며 한 놈만 걸리기를 바라던 눈치던데…….”

“필시 오늘은 경을 치고 말걸세.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모두가 망나니 풍수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시간도 얼마 없었고, 삽을 잡을 힘도 바닥났다. 오찬 때 챙겨와 먹었던 말린 생선포는 이미 다 소화되고 없었다.

무엇보다, 풍수사가 지정한 장소에서 물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져버렸다. 진흙이라도 나온다면 억지로 힘을 짜내 파내기라도 할 것인데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서야 사람은 진정으로 절망하게 되는 법이다. 차마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찾아들었다.

그렇게 하릴없는 시간만 흘렀다.

문득 저쪽 오솔길에서 인기척이 났다.

이곳은 도성으로 들어서는 길목 중의 하나라, 저기 산골이나 어촌에서 드나드는 여객들이 많았다. 공노들은 여객 중에 하나이겠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점점 가까워지는 차림새를 보니, 수수한 무명옷에 머리에는 챙이 좁은 흑립(黑笠)을 썼고 대충 끈을 동여맨 포대기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그것조차 옷가지를 천으로 둘둘 말아 싼 것에 불과했다. 봇짐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것이었다.

옷깃이며 신발 따위가 닳고 헤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꽤 오랫동안 초야를 떠돈 것인지 한 손에 든 지팡이를 짚고 터덜터덜 이쪽으로 걸어드는데, 몸짓 발짓 하나하나 피로에 젖어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흑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눈빛만큼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초롱초롱했다.

아마 한양에 다 왔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여객이 우물터 바로 옆에 다다랐다. 생각 없이 쳐다보던 이쪽과 저쪽이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이제 갓 소년티를 벗은, 많이 쳐줘야 스물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저기…….”

청년이 청명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말씀 좀 여쭈겠습니다.”

아무리 차림새나 행색이 남루해도, 한눈에 봐도 귀한 집 자손 같은 품격이 묻어나오는 청년이었다.

그런 청년이 존대를 하며 다가서자 우물 구덩이 옆에 있던 공노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저희 말씀이십니까요?”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마용이라는 노비가 어려워하는 투로 되물었다.

청년이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여기 사시는 분들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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