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부부 내외가 산파 비용을 내어줄 때까지, 강씨 노인은 바깥에서 기다렸다. 초승달이 뜬 밤이었고, 그 주위로 모래 뿌린 듯 점점이 박힌 별들이 저마다 은빛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밤안개의 습한 물 냄새가 났고, 저 언덕 아래 고을 어디에선가 개 짖는 소리가 컹컹 울렸다. 아마 술시(戌時)가 다 지났을 것이다.
끼익- 창호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가옥 옆 텃밭을 서성이고 있던 강씨 노인이 그쪽을 향해 돌아섰다.
창호문을 열고 나온 사내의 그림자가 강씨 노인을 발견하고는 터벅터벅 걸어왔다.
“노고 많으셨습니다.”
사내가 조용히 말했다. 그의 손에는 강씨 노인에게 지불할 금전이 담긴 복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복주머니는 어김없이 강씨 노인에게로 전해졌다.
“앞으로 신세 많이 질 것 같습니다. 역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복주머니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오늘 수고한 값 외에 며칠간 그들과 왕래하며 산후 조리를 도와주기로 약속했으니 평소보다 배는 많은 보수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강씨 노인은 복주머니를 끄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늙은 손으로 복주머니 끝을 만지작대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백처사.”
“네.”
사내가 무슨 일이냐는 투로 강씨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는 백씨 성을 가졌고, 화전(火田)으로 생계를 꾸리는 농사꾼 치고는 유별나게 어문(語文)과 시조에도 밝아, 백처사라 불렸는데 본인도 제법 별명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보았지 않았습니까?”
강씨 노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부인이 오늘 낳은 것이…….”
“보았습니다.”
백처사는 부인과 똑같이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끼리끼리 만난다는 것인가? 강씨 노인은 그런 부부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강씨 노인이 부르튼 입술을 달싹였다. 방금 자식을 본 아비 앞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기 힘든 말이었으나, 오늘 여기서 벌어진 일은 그 궤가 차원을 달리하였다.
“무슨 이런 변고가 다 있는지…….”
강씨 노인은 그렇게 운을 띄어놓고 슬쩍 백처사의 눈치를 살폈다. 백처사는 그저 차게 웃을 뿐, 다른 반응은 보이질 않았다.
“괜찮으…….시겠소?”
강씨 노인이 다시 한 번 백처사를 떠보았다.
“물론입니다.”
백처사가 말했다.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법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나이 올해로 예순인데 사람이……. 알을 낳은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입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 여길 수밖에요. 그저 저희를 가엾게 여기시고 이모저모 도와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나도 최선을 다해 백처사와 안부인을 돕겠지만…….”
강씨 노인이 뜸을 들였다.
“관아에는 무어라 얘기하실 생각이신지?”
“우선은 안사람 몸 먼저 추스르고 난 뒤에 생각해볼 작정입니다.”
“사실대로 알릴 생각이십니까? 부인께서 난산(卵産)을 하셨다고?”
“글쎄요.”
백처사의 말끝은 씁쓸한 웃음을 삼키는 듯했다. 강씨 노인은 그런 백처사의 속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저 충격이 너무 큰 것이겠거니 여기고 작은 소리로 혀를 끌끌 찰뿐이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소.”
그래. 이건 이들 부부가 알아서 할 문제다. 더 이상 끼어 들 틈은 없었다. 강씨 노인은 산후에 먹어서는 안 되는 것, 먹어서 좋은 것 따위를 간단히 알려주고 백처사와의 수작을 마친 후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아, 사흘 후에 포구에 배가 들어온다니 혹시 미역을 구할 수 있으면 꼭 챙겨 먹이시고.”
“미역국 말씀입니까?”
“맞소. 고기를 넣을 수 있으면 고기도 넣으시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씨 노인이 돌아섰다.
그때, 백처사가 가만히 강씨 노인을 불러 세웠다.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강씨 노인이 백처사를 돌아보았다.
“말씀해보시오.”
“한 가지 약조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약조?”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은 저희 내외가 따로 언질을 드리기 전까지는 세상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백처사가 중얼거렸다.
“조선 팔도에 오직 저, 안사람, 그리고 산파께서만이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야밤이었으나, 그 아래에서도 백처사의 낯빛에 날이 선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백처사의 목소리는 사람이 아예 뒤바뀐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호했고, 또 냉랭했다.
강씨 노인은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사내는 어림잡아 강씨 노인보다 30년은 어린, 새파란 젊은이였으나, 뭇 사람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품과 풍채를 지니고 있었다. 고을의 질 나쁜 무리나 관원들조차도 함부로 백처사를 대하거나 낮춰보지 않으니, 실로 산과 같은 사내였다.
“아시겠습니까?”
백처사가 확답을 받겠다는 듯 강씨 노인을 향해 되물었다. 말수는 적어도 늘 건실한 모습을 보여주던 백처사가 이리 나오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강씨 노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60년의 세월동안 농익어온 감각이 다급하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묻지 말라.’
‘알려하지 말라.’
‘궁금해 하지 말라.’
백처사는 과녁을 조준하는 사수 같은 눈으로 강씨 노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씨 노인은 그런 백처사를 가만히 응시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조하리다.”
강씨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소.”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백처사가 꾸벅 머리를 숙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강씨 노인에게는 억겁의 시간처럼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그들이 작별하기 전, 백처사가 끝으로 맺은 말이었다. 강씨 노인은 그대로 집을 빠져나갔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는 발이 자꾸만 더 서두르라 다그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도망치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그리 질겁했는지는 몰랐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것뿐이었다. 사람 몸으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물줄기가 덮쳐오고 있다면 누구라도 그러하지 아니하겠는가.
강씨 노인은 그렇게 백처사의 집을 떠났다. 아니, 달아났다.
그 뒤로, 강씨 노인은 며칠에 한번 꼴로 음식이나 약재 따위를 싸들고 백처사를 찾아가 저녁까지 있다 돌아갔다. 백처사는 외진 곳에 살고 있었고, 강씨 노인도 입단속을 철저히 하였는지 별다른 잡음은 나질 않았다.
그렇게, 사람이 알을 낳은지 스무 해가 흘렀다.
“뭐야, 이거……”정맹차가 필사적으로 뒤로 몸을 뺐다.그러다 벽에 등을 부딪히고 경악에 겨운 얼굴로 어리를 올려다보았다.“너…… 너 뭐야? 뭐하는 년……”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말없이 정맹차를 향해 스르르- 다가갈 뿐이었다.탁-!어리가 정맹차의 앞섬을 붙들었다.그리고는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멱살 붙잡은 듯 끌어올렸다.“으헉……”“그게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고.”“놔, 놔라……”“그저 돈벌이에 미쳐 취하려 들었다는 것이냐. 어리석은 것. 한치 앞도 보지 못하면서도 오직 탐욕만 부리는구나. 너희 인간들은.”“미친…… 숨 막…… 힘이 왜 이리…… 세……”“너희가 이러하기에.”어리가 터질 것 같은 분노를 꽉 누르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는 너희를 굽어살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알겠느냐?”“놓으라…… 고…… 끄윽……”“내가 어째서 이런 것들 때문에 감추고, 숨고, 아프고, 슬퍼해야 한다는 말이더냐. 대체 왜? 내가 무슨 이유로. 왜? 도대체 왜?”어리는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쏟아내는 듯했다.그건 그렇고, 정맹차의 얼굴이 보랏빛이 되는 것이 금방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그, 그만 하시지요!”천우가 얼른 일어나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바로 반치 앞에 서 있는데도, 어리의 몸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밀어내는 것처럼 접근하기 힘들었다.“낭자. 낭자!”“……”“이러다 사람 죽겠습니다! 얼른 손을 놓으세요!”천우가 애원하며 어리의 손목을 붙들었다.뜨거웠다. 마치 불에 달군 쇠꼬챙이 같았다.기이하게도, 이처럼 뜨거운데도 옷자락 하나 타지 않고 있었다.탁-어리가 손을 놓았다.붙들려있던 정맹차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끄억…… 캐액……”정맹차가 숨이 끊어질 듯 기침을 하며 끈적한 침을 토해냈다.그러다 갑자기 방밖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를 쳤다.“아무도 없냐! 아무도 없어?!!!!”그와 동시에, 왈칵 방문이 열렸다.지척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맹차의 역사(力士)들이었다.모두 한손에 칼이며 둔기 따
"모르지."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애초에 거기 모인 장사꾼들이 전부 보통내기가 아니외다.처음에 그 목걸이를 가져온 놈도 한성바닥에서 굴러먹던 놈팡이인데,얼굴에 곰보자국이 가득할 만큼 끔찍하게 살아온 부류라더군.그치들은 대군마마고 포도대장이고 눈에 뵈는 게 없지.목숨을 걸고 장사하는 놈들이고,그렇게 벌어들인 눈앞의 쌀과 엽전이 더 중한 일이기에.”“동무께서 보통 상인이 아니신 듯 합니다.”“포교 나으리 듣고 계셔서 대놓고 말은 못 하겠네.하지만 떳떳하게 좌판이나 가게 열어놓고 장사하는 부류는 아니라고 생각해주시오.”“암시장에 종사하는 분이란 말씀입니까?”“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소.”정맹차가 팔짱을 낀 채로 눈을 흘겼다.어리도 거기까지는 깊게 캐 물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두 사람 모두 잠시 입을 다물었다.적막이 흘렀다.“암시장에서 거래된 옥패 달린 특이한 목걸이.그리고 그 목걸이를 가져간 손님은 다름 아닌 대군마마.”어리가 가만히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그리고 정맹차를 지긋이 바라보는데,조금 전까지의 요염한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싸늘하게 변한 것이,사람이 아닌 한(恨)을 품은 귀신을 보는 듯했다.“세 살 먹은 어린애라도 그 목걸이가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텐데
정맹차의 시선이 어리에게로 향했다.“낭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정맹차가 냉랭한 투로 중얼거렸다.“제3자가 끼어드는 것은 허락하지 않소.그것이 반촌의.정맹차와의 거래에서 지켜야 할 법칙이니.”“정맹차와 백포교님.그리고 저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말을 듣고,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이를 제3자라고 홀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어리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화가 난 것도,불쾌한 것도 아니었다.그저 차분하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 살피는 듯한 어투인데 목소리 한번 높이지 않고도 단번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구석이 있었다.“흠.”정맹차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어리는 그 앞에서 조용히 응답을 기다렸다.“그럼 낭자께서도.”정맹차가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와 거래해보지 않으시겠소?”“무엇을 거래한단 말씀입니까?”“내가 그 목걸이를 원하는 이유.그것을 말해드리지.”“단순한 일문답도 거래로 취급하시다니.악독하십니다.”“원하는 것은 뭐든 손에 넣어야 직성에 풀리기에.어떠신가?거래해보시겠나?”“그렇다고 제가 정맹차께 따로 드릴
“사건이라.”정맹차가 조금 자세를 고쳐 앉았다.허리를 쭉- 펴고 팔짱을 거만하게 끼는 것이, 주도권을 가져갔다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렇다면 내 관리 하에 있는 마용은. 반촌 노비는. 백씨 포교께서 바라시는 중요한 정보 소유자라는 말씀이군.”“그러합니다만……”“말인즉슨, 내 허락이 없으면 마용은 백씨 포교께 인도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반촌 노비의 일은 포교가 아니라, 포도대장이 와도 함부로 손에 쥘 수 없는 일이지. 따라서 백씨 포교께서는 내 협조가 없으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고.”정맹차가 눈을 반짝이며 살짝 고개를 천우 쪽으로 수그렸다.“그럼 거래하시겠나?”“거래요?”“이곳의 법도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걸맞은 무언가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마귀굴인 까닭이기에.”정맹차가 탐욕스럽게 입술을 혀로 핥았다.“어떤가? 마용의 행방을 알려줄 테니, 그쪽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아볼텐가?”맹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자비한,예측불허의 사내와 대뜸 거래를 하다니.어느 쪽이든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했다.그러나 여기에서 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어쨌거나 사람들의
“뭐라?”정맹차가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지금 포청 포교라고 하셨소?”“네.”어리가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단호함으로 대답했다.정작 당사자인 천우는 가만히 있는데, 나머지 두 사람이 살벌하게 각을 세우니 난감했다.“허허, 이거야 원……”정맹차가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여인을 향한 탐욕으로 번뜩이던 눈이, 어느새 매서운 반촌 뒷골목의 우두머리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어이. 백씨 포교.”정맹차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우를 불렀다.“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옆구리에 칼 찬 포청 포교가 이 몸과 독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천우를 공자라고 높여 부르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나는 물론이고, 밖에서 대기 중인 저놈들도 포청이라면 좋아할 이유가 없거든. 돈이든 힘이든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기에. 그나마 나와 안면이 있는 낭자께서 동행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여기 이러고 있을 수도 없었을 거다.”“이해합니다.”천우가 태연하게 대답했다.“맹차께서 염려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뭐 하나만을 여쭤보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푹 삶은 수육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가운데,천우와 어리 두 사람에게 사발 그릇이 하나씩 쥐어졌다.정맹차가 술병을 들어 탁주를 따르는데 끅끅-술잔 채워지는 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자,드십시다.”정맹차가 권하는 대로,세 사람이 잔을 비웠다.어떻게 담근 술인지는 몰라도,제법 강렬하고 거친 것이 한 잔만 마셔도 열기가 훅 올라오는 듯했다.“술 맛이 어떻습니까?”정맹차가 무도하게도 맨손으로 고기를 집어 들며 물었다.“손님들에게만 대접하는 나름 귀한 술이외다.좋은 물에 찹쌀을 넣고 칡뿌리에 각종 약초를 더한 것이지.아마 바깥에서 이런 술 맛보기는 쉽지 않을 거요.반촌에서만 특별히 담그는 술이기에.”“마시기 좋은 듯합니다.”천우가 인사치레로 허허-웃으며 대답했다.그 옆에서 어리는 조용히 술잔을 입술에 댔다 떼기를 반복 중이었다.“그건 그렇고……”정맹차가 고기조각에 새우젓을 듬뿍 찍으며 운을 띄었다.“두 분은 어쩐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신 참이오?”정맹차의 시선이 문득 천우의 도포 아래쪽으로 향했다.“소매 아래에 칼까지 차시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