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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을 낳았다 (2)

作者: 이온
last update 公開日: 2026-03-11 23:58:10

부부 내외가 산파 비용을 내어줄 때까지, 강씨 노인은 바깥에서 기다렸다. 초승달이 뜬 밤이었고, 그 주위로 모래 뿌린 듯 점점이 박힌 별들이 저마다 은빛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밤안개의 습한 물 냄새가 났고, 저 언덕 아래 고을 어디에선가 개 짖는 소리가 컹컹 울렸다. 아마 술시(戌時)가 다 지났을 것이다.

끼익- 창호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가옥 옆 텃밭을 서성이고 있던 강씨 노인이 그쪽을 향해 돌아섰다.

창호문을 열고 나온 사내의 그림자가 강씨 노인을 발견하고는 터벅터벅 걸어왔다.

“노고 많으셨습니다.”

사내가 조용히 말했다. 그의 손에는 강씨 노인에게 지불할 금전이 담긴 복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복주머니는 어김없이 강씨 노인에게로 전해졌다.

“앞으로 신세 많이 질 것 같습니다. 역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복주머니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오늘 수고한 값 외에 며칠간 그들과 왕래하며 산후 조리를 도와주기로 약속했으니 평소보다 배는 많은 보수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강씨 노인은 복주머니를 끄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늙은 손으로 복주머니 끝을 만지작대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백처사.”

“네.”

사내가 무슨 일이냐는 투로 강씨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는 백씨 성을 가졌고, 화전(火田)으로 생계를 꾸리는 농사꾼 치고는 유별나게 어문(語文)과 시조에도 밝아, 백처사라 불렸는데 본인도 제법 별명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보았지 않았습니까?”

강씨 노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부인이 오늘 낳은 것이…….”

“보았습니다.”

백처사는 부인과 똑같이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끼리끼리 만난다는 것인가? 강씨 노인은 그런 부부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강씨 노인이 부르튼 입술을 달싹였다. 방금 자식을 본 아비 앞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기 힘든 말이었으나, 오늘 여기서 벌어진 일은 그 궤가 차원을 달리하였다.

“무슨 이런 변고가 다 있는지…….”

강씨 노인은 그렇게 운을 띄어놓고 슬쩍 백처사의 눈치를 살폈다. 백처사는 그저 차게 웃을 뿐, 다른 반응은 보이질 않았다.

“괜찮으…….시겠소?”

강씨 노인이 다시 한 번 백처사를 떠보았다.

“물론입니다.”

백처사가 말했다.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법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나이 올해로 예순인데 사람이……. 알을 낳은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입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 여길 수밖에요. 그저 저희를 가엾게 여기시고 이모저모 도와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나도 최선을 다해 백처사와 안부인을 돕겠지만…….”

강씨 노인이 뜸을 들였다.

“관아에는 무어라 얘기하실 생각이신지?”

“우선은 안사람 몸 먼저 추스르고 난 뒤에 생각해볼 작정입니다.”

“사실대로 알릴 생각이십니까? 부인께서 난산(卵産)을 하셨다고?”

“글쎄요.”

백처사의 말끝은 씁쓸한 웃음을 삼키는 듯했다. 강씨 노인은 그런 백처사의 속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저 충격이 너무 큰 것이겠거니 여기고 작은 소리로 혀를 끌끌 찰뿐이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소.”

그래. 이건 이들 부부가 알아서 할 문제다. 더 이상 끼어 들 틈은 없었다. 강씨 노인은 산후에 먹어서는 안 되는 것, 먹어서 좋은 것 따위를 간단히 알려주고 백처사와의 수작을 마친 후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아, 사흘 후에 포구에 배가 들어온다니 혹시 미역을 구할 수 있으면 꼭 챙겨 먹이시고.”

“미역국 말씀입니까?”

“맞소. 고기를 넣을 수 있으면 고기도 넣으시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씨 노인이 돌아섰다.

그때, 백처사가 가만히 강씨 노인을 불러 세웠다.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강씨 노인이 백처사를 돌아보았다.

“말씀해보시오.”

“한 가지 약조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약조?”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은 저희 내외가 따로 언질을 드리기 전까지는 세상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백처사가 중얼거렸다.

“조선 팔도에 오직 저, 안사람, 그리고 산파께서만이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야밤이었으나, 그 아래에서도 백처사의 낯빛에 날이 선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백처사의 목소리는 사람이 아예 뒤바뀐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호했고, 또 냉랭했다.

강씨 노인은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사내는 어림잡아 강씨 노인보다 30년은 어린, 새파란 젊은이였으나, 뭇 사람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품과 풍채를 지니고 있었다. 고을의 질 나쁜 무리나 관원들조차도 함부로 백처사를 대하거나 낮춰보지 않으니, 실로 산과 같은 사내였다.

“아시겠습니까?”

백처사가 확답을 받겠다는 듯 강씨 노인을 향해 되물었다. 말수는 적어도 늘 건실한 모습을 보여주던 백처사가 이리 나오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강씨 노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60년의 세월동안 농익어온 감각이 다급하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묻지 말라.’

‘알려하지 말라.’

‘궁금해 하지 말라.’

백처사는 과녁을 조준하는 사수 같은 눈으로 강씨 노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씨 노인은 그런 백처사를 가만히 응시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조하리다.”

강씨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소.”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백처사가 꾸벅 머리를 숙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강씨 노인에게는 억겁의 시간처럼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그들이 작별하기 전, 백처사가 끝으로 맺은 말이었다. 강씨 노인은 그대로 집을 빠져나갔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는 발이 자꾸만 더 서두르라 다그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도망치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그리 질겁했는지는 몰랐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것뿐이었다. 사람 몸으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물줄기가 덮쳐오고 있다면 누구라도 그러하지 아니하겠는가.

강씨 노인은 그렇게 백처사의 집을 떠났다. 아니, 달아났다.

그 뒤로, 강씨 노인은 며칠에 한번 꼴로 음식이나 약재 따위를 싸들고 백처사를 찾아가 저녁까지 있다 돌아갔다. 백처사는 외진 곳에 살고 있었고, 강씨 노인도 입단속을 철저히 하였는지 별다른 잡음은 나질 않았다.

그렇게, 사람이 알을 낳은지 스무 해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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