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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런 날은 재수도 없던데.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21.09.2026 02:00:01

잠에서 깨어난 예하가 얼굴을 손으로 매만졌다. 자는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은 물론 베개까지 눈물로 푹 젖어있었다. 하아. 한숨을 푹 쉰 예하가 팔로 눈을 가렸다.

매번 세민이 나오는 방송을 보고 나면 그날의 꿈을 꿨다. 어제 녹음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씻는 순서를 기다리며 틀어둔 TV에서 나오는 드라마를 본 게 이유인 듯싶었다. 그래서 보기 싫었던 건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린 예하가 손등으로 얼굴을 거칠게 문질러 닦아냈다.

똑똑.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고 멍하니 앉아있던 예하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목을 가다듬었다. 들어와. 제 허락에 조심스럽게 열린 문 사이로 빨간 머리가 쑥 들어왔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눈가를 둥글게 휘며 웃는다.

“언니.”

“릴리. 잘 잤어?”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온 릴리가 침대에 걸터앉더니 저를 빤히 바라본다. 한국 어머니와 영국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릴리는 딱 아이돌 상이었다. 이렇게 예쁜 얼굴을 예고 없이 들이밀 때면 저도 얼굴을 붉히곤 했으니까. 한참 눈을 마주치고 있던 릴리가 팔을 뻗어 제 뺨을 양손으로 감쌌다. 쓱, 당기는 힘에 릴리의 얼굴 앞으로 딸려간 예하가 당황한 눈빛을 했다.

“왜, 왜 그래.”

“언니, 왜 울었어요?”

“…아니, 안 울었……”

“눈이 엄청 빨간데? 무서운 꿈 꿨어요?”

저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며 말하는 릴리의 모습에 예하가 아니라며 손을 밀어낸다. 손쉽게 밀려난 릴리가 에이,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 밀려났던 것보다 더 바짝 다가왔다. 외국에서 살아서 그런지 릴리는 다른 멤버들보다 스킨십이 배는 많은 편이었다. 제 허리를 끌어안은 릴리가 품으로 당겨 안고는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진짠데.”

“오늘은 같이 잘까요?”

“됐거든!”

소리 지르며 릴리를 밀어내고 벌떡 일어난 예하가 거리를 벌리며 떨어졌다. 그러자 키득키득 웃으며 일어난 릴리가 지나가며 머리를 쓰다듬고 방을 나간다. 저보다 2살이나 어린 릴리가 저리 굴 때는 꼭 동생이 된 기분이었다. 툴툴대며 욕실로 들어간 예하가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한숨을 깊게 내쉰다.

“심각하긴 하네. 이따가 스케줄 있는데.”

곧 나올 앨범의 자켓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눈이 이렇게 부어버렸으니 잔소리 폭격은 타 놓은 단상이었다. 아, 짜증 나. 머리를 쥐어뜯을 듯 잡았던 예하가 노크도 없이 벌컥 열리는 문에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오늘 촬영이라고 했잖아. 설예하.”

“아냐. 언니, 악몽 꿔서 그래.”

“그니까 그렇게 울만 한 꿈이 뭔데.”

“헉. 예하 언니 앞은 보여? 우리 숟가락 얼려둔 거 있었나?”

그새 나가서 멤버들한테 제 상태를 일러바친 모양이었다. 화가 난 듯 인상을 쓴 채 잔소리하는 리더 서린을 시작으로 중간에서 제 편을 드는 릴리, 그리고 놀리듯 말을 건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막내 나현과 뒤에서 이 상황을 관망하며 웃고 있는 우리까지. 우르르 몰려온 멤버들이 쉬지 않고 떠들자 정신이 사나웠다.

“다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하고 나가줄래. 나 이제 씻을 거거든?!”

“얼른 준비하고 나와라. 나현아, 너는 가서 숟가락 없으면 좀 얼리고.”

“네. 알겠어요. 언니. 얼른 씻고 나와.”

“나도 아직 안 씻었는데, 언니. 우리 같이 씻을까?”

한마디 하면 세 마디가 돌아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개를 저으며 네 사람을 힘겹게 밀어내고 욕실 문을 닫은 예하가 잠금장치를 꾹 누른다. 문에 기대고 서 거울 속에 비치는 제 심각한 얼굴을 보고 다시 한숨을 푹 쉰다.

“이런 날은 재수도 없던데.”

지금도 못 벗어난 첫사랑의 굴레인 것 같았다. 이건, 아마도 같은 구역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방송국을 지나다니다 우연히 볼 수 있었고, 또 같은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가서 마주칠 수도 있고 그와 만나게 될 기회는 너무도 무궁무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만난 적은 없는데.”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린 예하가 칫솔을 꺼내 치약을 쭉 짜서 입에 넣었다. 데뷔하고 2년간, 우연히 TV로 본 적은 있어도 세민과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게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여전히 세민의 꿈을 꾸고 있는 걸 보면 아직 그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다는 증거였으니까.

게다가 세민을 꿈에서 본 날은 이상하게 되는 일이 없었다. 그저 제 기분의 문제겠지만, 항상 그랬기 때문에 오늘 역시 숙소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하지만 촬영이 있으니까 나가야겠지. 입에 고인 거품을 뱉은 예하가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입을 헹군다. 샤워하기 위해 옷을 탈의한 예하가 부스 안으로 움직였다.

***

“미쳤어! 진짜 어쩔 거야. 정말. 어?!”

차가운 물병을 눈에 올리고 있던 예하가 뒤에서 들려오는 미나의 잔소리에 흠칫거렸다. 샵에 도착해 마주치자마자 미쳤다며 제 등을 찰싹찰싹 때렸던 그녀였다. 결국 홀로 메이크업을 하지 못한 채 촬영장으로 향했고, 도착해서도 여전히 부어있는 눈가에 잠시 정체기였던 잔소리가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대체 누구야. 우리 예하 울린 사람. 어?!”

“울리긴 누가 울렸다고…”

“언니한테만 사실대로 말해봐. 혹시… 멤버들이 괴롭혀?”

“언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의심하겠어요.”

“맞아. 내가 예하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다가온 우리가 예하를 끌어안으며 뺨에 짧게 키스했다. 눈을 가리고 있던 예하가 무방비한 상태에서 당한 행동에 놀라 손을 내렸다. 씩, 웃으며 저를 보고 있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젓고는 다시 물병을 눈가에 얹었다.

“맞아요. 언니가 막내인 저보다 제일 사랑받는다고요.”

“그래서 질투나?”

“네. 나도 키 좀 덜 컸으면 좋았을 텐데.”

“야, 너 은근슬쩍 키 작다고 욕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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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나게 해줘요   6. 먼저 말할 때까지 두자.

    ‘촬영 중’이라고 뜬 간판에 조심스럽게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온 준영이 혹시나 빛이 들어가 촬영에 방해될까 재빠르게 닫았다. 잠시 멈춰서서 세민과 촬영 중인 릴리를 살펴보다가 대기실로 들어오자 나갈 때보다 더 분위기가 어두웠다. 예하가 그렇게 가버렸으니, 멤버들 기분이 좋을 리가 있을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표정으로 있던 서린이 준영을 발견하고 다가왔다.“예하는요?”“옆에 스튜디오에서 쉬고 있어.”“다른 얘기는 안 하고요?”고개를 끄덕이는 준영을 보던 서린이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하의 성격상 무슨 일인지 얘기해줄 거라 생각지 않았다. 저나 매니저인 준영이나 눈치껏 둘이 무슨 사이였을지 예상하는 것뿐이었다.“아무래도 둘이 가벼운 사이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예하 반응도 어딘지 어색하더라고요.”멤버들과 떨어져 앉아 준영과 소곤소곤 대화하던 서린이 조금 전 예하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본 반가움과 설렘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거는 세민과 반대로 그를 대하는 태도가 항상 봤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선배든 후배든 늘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는 예하가 누군가에게 쌀쌀맞게 구는 모습에 멤버들 역시 놀란 눈치였다.“우선은 예하가 먼저 말할 때까지 두자.”“물어본다고 말할 애도 아니잖아요.”하긴, 묻는다고 쉽게 말해줄 이야기였다면 조금 전 제가 물어봤을 때 대답해 줬을 거다. 단호하게 말하기 싫다고 하던 예하를 다시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큰일이네. 앞으로 이틀은 더 봐야 하는데.”“그러게 말이에요.”드라마 뮤비 촬영은 내일도 잡혀 있어서 세민을 안 볼 수가 없다. 그나마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예하만 조금 늦게 스튜디오에 나올 수 있게 시간을 조절하는 일이었다. 예하를 대하던 세민의 태도로 봐서는 내일도 힘겨운 하루가 되겠다 싶었다. 게다가 세민의 촬영 이후, 남은 군무 촬영까지 예정되어있었다. 심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체력 소모가 되는 일인지 알기에 더더욱 걱정이었다.게다가 예하는 자켓 촬영이나 뮤비 촬영 전엔 아무것도

  • 빛나게 해줘요   5. 잠시만, 혼자 있고 싶어요.

    머리를 헝클어뜨린 준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예하와 세민이 아는 사이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세민의 행동에 예하는 순간 움찔하더니 이내 불쾌하단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상반된 태도에 준영이 재빠르게 대기실을 훑으며 누가 있었는지 파악했다. 현시점에 가장 인기 있는 배우와 아이돌이었다. 혹여나 두 사람의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라도 날까 걱정스러웠다.“예하는 내가 찾아볼 테니까 우선 릴리랑 나현이는 촬영 들어갈 준비 하자.”“알겠어요.”“네.”다급한 걸음으로 대기실을 나온 준영이 예하가 갔을 법한 곳을 떠올렸다. 조용한 곳, 사람들이 적은 곳을 찾아갔을 거란 생각에 최대한 어둡고 돌아다니는 스태프들이 적은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다음 촬영이 현재 와 있는 제2 스튜디오에서 있으니 사람 대부분이 이곳에 몰려 있을 거란 생각에 떠오른 장소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걸음은 다급했지만,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할 때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한 얼굴로 같이 인사한 준영이 조용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내일 촬영 준비 중이라 조금 전에 있던 장소보다 조용하고 사람도 적었다. 아무리 급했어도 본인이 익숙한 장소를 찾는 게 사람 심리였다. 조금 전 사용했던 대기실 문을 조심스럽게 연 준영이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안쪽에 웅크리고 앉은 예하를 발견한 준영이 조심히 문을 닫고 불을 켰다.“불도 안 켜고 뭐 하고 있어. 아무도 없는데 무섭지도 않아?”“… ….”“예하야.”“…잠시만, 혼자 있고 싶어요.”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에 잠시 머뭇거렸던 준영이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나갈 줄 알았던 준영이 다가와 앉자 예하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미나한테 잔소리 듣고 싶으면 울든가.”“…하아. 진짜.”졌다는 듯 바람 빠진 웃음을 보인 예하를 보며 같이 웃던 준영이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다리를 세우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앉은 탓에 치마를 입은 예하의 다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너는 치마 입고 왜 그렇게 앉아

  • 빛나게 해줘요   4. 오랜만이네요. 선배님.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원래 나오기로 한 배우를 대신해서 온 사람이 세민이라니. 한 공간에서 그와 촬영할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앞섰다. 그는 알까. 자신이 오늘 촬영하는 뮤직비디오가 제 노래라는 것을.급격하게 싸늘해진 대기실 분위기에 멤버들이 예하의 눈치를 살폈다. 데뷔 전부터 민세민과 마주치는 것을 기피하던 예하였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항상 다정하고 착한 예하가 그리 꺼리는 거라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싶어 회사에서도 조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게 된 배우가 하필이면 민세민이라니. 가라앉은 예하의 분위기를 눈치챈 멤버들이 입을 다문 채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무슨 정신으로 자켓 촬영을 끝내고 뮤비 촬영장으로 넘어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원래 안무 뮤비부터 찍기로 했지만, 세민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갑자기 스케줄이 변경됐다. 세민을 곧 만날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 준비 중인 예하에게 먼저 다가온 릴리가 평소처럼 곁에 앉으며 어깨에 고개를 기울였다.“언니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아니야.”“언제 만났어요?”“응?”“아니. 우린 오늘 보는 게 처음인데, 언니가 왜 그렇게 싫어하나 싶어서요.”같은 직종에 있는 만큼 언제고 마주칠 거라 생각했다. 특히나 지금 세민의 위치라면 어디서 마주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떤 배역이든 했어야만 했던 몇 년 전과 달리 지금은 방송국에서 서로 부르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로 유명해졌으니 말이다.그냥, 말끝을 흐린 예하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미룰 수 있으면 최대한 미루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회사와 계약할 때 말도 안 되는 부탁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싫은 게 맞는 걸까.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으니까 자꾸 생각나고 꿈에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보기 싫었다. 그와 마주친 순간, 또다시 두근거리고 흔들릴 걸 알고 있어서.“조금 불편해서 그런 거야. 괜찮아.”“정말 괜찮

  • 빛나게 해줘요   3. 누구라고요?

    나현의 말에 예하가 이를 부득 갈며 따졌다. 그러자 가까운 곳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룹 내 막내인 나현은 부모님의 우수한 유전자 탓일까. 멤버 중 가장 키가 컸다. 그래서인지 가끔 이렇게 키를 가지고 저를 놀렸다.나이로는 나현이 막내였지만, 멤버들 모두가 둘째인 저를 편하게 생각해서인지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에 팬들 역시 저를 막내 취급하는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팬사인회 때마다 나현에게 저를 잘 챙겨주라고 했을까. 둘의 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었지만, 당시엔 너무 황당해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그날 이후, 운동과 담을 쌓았던 저는 마음을 바꾸고 더 열심히 몸매를 가꿨다. 키가 안 되면 몸매라도 좋아야겠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멤버들은 없는 11자 복근까지 자리 잡았는데, 아직 그룹 이미지상 소속사에서 금지령을 내린 탓에 공개한 적이 없어 아쉬웠다. 대체 왜 못 보여주게 하는 거야.어느새 나현이 아닌 소속사를 씹고 있던 예하가 손을 내렸다. 어디 좀 보자. 물병을 내리자마자 다가온 미나가 많이 가라앉은 눈을 보고 안도했다.“이제 화장 들어가도 되겠다.”***무슨 정신으로 자켓 촬영을 끝내고 뮤비 촬영장으로 넘어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원래 안무 뮤비부터 찍기로 했지만, 세민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갑자기 스케줄이 변경됐다. 세민을 곧 만날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 준비 중인 예하에게 먼저 다가온 릴리가 평소처럼 곁에 앉으며 어깨에 고개를 기울였다.“언니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아니야.”“언제 만났어요?”“응?”“아니. 우린 오늘 보는 게 처음인데, 언니가 왜 그렇게 싫어하나 싶어서요.”같은 직종에 있는 만큼 언제고 마주칠 거라 생각했다. 특히나 지금의 세민의 위치라면 어디서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떤 배역이든 했어야만 했던 몇 년 전과 달리 지금은 방송국에서 서로 부르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로 유명해

  • 빛나게 해줘요   2. 이런 날은 재수도 없던데.

    잠에서 깨어난 예하가 얼굴을 손으로 매만졌다. 자는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은 물론 베개까지 눈물로 푹 젖어있었다. 하아. 한숨을 푹 쉰 예하가 팔로 눈을 가렸다.매번 세민이 나오는 방송을 보고 나면 그날의 꿈을 꿨다. 어제 녹음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씻는 순서를 기다리며 틀어둔 TV에서 나오는 드라마를 본 게 이유인 듯싶었다. 그래서 보기 싫었던 건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린 예하가 손등으로 얼굴을 거칠게 문질러 닦아냈다.똑똑.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고 멍하니 앉아있던 예하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목을 가다듬었다. 들어와. 제 허락에 조심스럽게 열린 문 사이로 빨간 머리가 쑥 들어왔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눈가를 둥글게 휘며 웃는다.“언니.”“릴리. 잘 잤어?”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온 릴리가 침대에 걸터앉더니 저를 빤히 바라본다. 한국 어머니와 영국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릴리는 딱 아이돌 상이었다. 이렇게 예쁜 얼굴을 예고 없이 들이밀 때면 저도 얼굴을 붉히곤 했으니까. 한참 눈을 마주치고 있던 릴리가 팔을 뻗어 제 뺨을 양손으로 감쌌다. 쓱, 당기는 힘에 릴리의 얼굴 앞으로 딸려간 예하가 당황한 눈빛을 했다.“왜, 왜 그래.”“언니, 왜 울었어요?”“…아니, 안 울었……”“눈이 엄청 빨간데? 무서운 꿈 꿨어요?”저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며 말하는 릴리의 모습에 예하가 아니라며 손을 밀어낸다. 손쉽게 밀려난 릴리가 에이,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 밀려났던 것보다 더 바짝 다가왔다. 외국에서 살아서 그런지 릴리는 다른 멤버들보다 스킨십이 배는 많은 편이었다. 제 허리를 끌어안은 릴리가 품으로 당겨 안고는 등을 토닥였다.“괜찮아. 괜찮아.”“진짠데.”“오늘은 같이 잘까요?”“됐거든!”소리 지르며 릴리를 밀어내고 벌떡 일어난 예하가 거리를 벌리며 떨어졌다. 그러자 키득키득 웃으며 일어난 릴리가 지나가며 머리를 쓰다듬고 방을 나간다. 저보다 2살이나 어린 릴리가 저리 굴 때는 꼭 동생이 된 기분이었다. 툴툴대며 욕실로 들어간 예하가

  • 빛나게 해줘요   1. 우리, 그만 만나자.

    무슨 생각을 저리 심각하게 하는지 한마디 말도 없이 앉아있는 걸 보니 조금 서운했다. 이게 얼마 만에 만나는 거였더라. 손가락을 접어가며 그와 만난 날을 세었다.그와는 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예술 고등학교인 만큼 연습생 신분인 학생끼리 뭉친 모임이 있었는데, 입학 후, 친구와 함께 갔던 그룹 모임에서 그를 처음 봤다. 모두가 연습생 준비 중인 아이들이라 외모가 빼어났지만, 그는 더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정말 신이 있다면 모든 힘을 그에게 쏟아붓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잘생긴 외모였다. 뒤로 후광이 빛난다는 말은 그저 TV나 만화에서 하는 헛소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후광을 받아 빛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저를 보고 환하게 웃는 얼굴에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하기도 했었다. 짙은 눈썹에 아래로 적당한 크기의 눈동자.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옅게 그려지는 쌍꺼풀이 참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눈꼬리가 살짝 내려가 강아지상인 그는 웃을 때마다 오른쪽 광대뼈 위로 인디언 보조개가 푹 들어갔다. 세상 사람이 말하는 매력 포인트는 전부 가지고 있는 듯했다.저보다 2살이나 많은 선배였지만, 먼저 살갑게 다가와 대해준 덕에 빠르게 모임에 스며들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가 그의 졸업식 날, 용기를 내 고백했다. 거절당해도 그저 그에게 제 마음을 말하고 싶었던 욕심이 컸다. 그런데, 제 생각과 달리 그는 제 고백을 받아줬고, 그 이후 선후배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하지만, 학교를 졸업하니 그와 만나는 게 힘들어졌다. 졸업하자마자 더 바빠진 탓이었다. 필모를 키우기 위해 조연부터 시작에 작은 역할에도 빼지 않고 출연했고, 지금은 함께 돌아다니면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로 유명해졌다. 오늘도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입을 삐죽이며 앞에 앉은 세민의 눈치를 살피던 예하가 시켜두고 여태 입도 못 댄 커피잔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오빠,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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