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은재가 현관문을 열다가 옆집 문 앞에 서 있던 여자와 마주쳤다.
"어머, 일찍 왔네."
"반차 썼어요."
"얼굴이 안 좋다. 밥은 먹었어?"
"괜찮아요."
"국 끓였는데 좀 줄까? 혼자 사니까 걱정돼서."
"괜찮아요, 진짜예요. 감사합니다."
은재는 고개를 숙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닫히자 등을 기대고 숨을 내쉬었다.
옆집 아줌마의 호의가 고마우면서도 무거웠다.
8평짜리 원룸.
싱크대와 침대 사이를 팔 하나 뻗으면 닿았다.
창문 하나.
화장실 하나.
현관 옆에 신발 2켤레가 들어가는 좁은 선반.
보증금 3,000만 원짜리 전셋방이었다.
회사에서 지하철로 40분, 유치원에서는 1시간이 넘었다.
은재는 구두를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가방을 침대 위에 내려놓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어떻게 됐어?"
여동생이었다.
"봤어."
"……어땠어?"
은재는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컸어. 키가 많이 컸더라."
"건강해 보여?"
"뛰어다녔어. 친구들이랑. 넘어질 뻔해도 다시 뛰고."
"다행이다."
"웃더라."
"뭐?"
"웃으면서 뛰었어."
"……"
"누가 데리러 왔어?"
"여자. 이름은 모르겠어."
"그 여자겠지."
"아마."
"뭐 하던데?"
"신발에 묻은 흙 털어주고. 떡볶이 먹겠다는 거 안 된다고 하고. 그런 거."
"……엄마처럼?"
은재는 싱크대에서 물 한 잔을 따랐다.
컵을 잡은 손가락에 힘이 빠져 물이 컵 밖으로 조금 흘렀다.
"몰라."
"들린 거야, 그 대화?"
"바로 앞을 지나갔어."
"위험하게. 가까이 가지 말라니까."
"내 쪽으로 걸어온 거야."
"그래서? 눈 마주쳤어?"
"응."
"어떻게 됐는데?"
은재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목이 좁아진 것처럼 물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아줌마 누구세요, 라고 했어."
"……"
"전화 끊을게."
"언니, 울지 마."
"안 울어."
"목소리가 떨리잖아."
"안 울어. 끊을게."
"내일 퇴근하고 갈게. 밥 먹자."
"응."
은재는 통화를 끊고 물을 마저 마셨다.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자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고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블라우스를 개어 세탁기 위에 올려두다가 손이 멈췄다.
블라우스 소매에서 느티나무 껍질 냄새가 났다.
침대 옆 서랍장이 눈에 들어왔다.
서랍장 맨 아래 칸.
1년에 서너 번, 잠이 오지 않는 밤에만 열어보는 서랍이었다.
오늘은 한낮인데도 손이 저절로 갔다.
은재는 서랍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이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고, 다시 잡았다.
철컥-
서랍이 열렸다.
투명 파일 3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혼심판문, 양육자 지정 결정문, 면접교섭 제한 관련 서류 묶음.
3개의 파일 표지에 각각 날짜와 사건번호가 적혀 있었다.
서류들의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은재는 이혼심판문이 든 파일을 꺼냈다.
파일 커버가 손때로 뿌옇게 변해 있었다.
서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이혼심판문 1페이지.
'주문: 원고 서은재와 피고 권태윤의 이혼을 명한다.'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미성년 자녀 권도하(남, 0세)의 양육자를 피고 권태윤으로 지정한다.'
'친권은 원고와 피고의 공동행사로 한다.'
손가락 자국 위에 또 손가락 자국이 겹쳐 있었다.
몇 번이나 같은 줄을 훑었는지 종이가 얇아져 있었다.
'양육자: 권태윤.'
은재의 손가락이 그 줄 위에서 멈췄다.
5년 동안 이 줄을 읽을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손이 멈추었다.
5년 전 법정이 떠올랐다.
가정법원 2층, 조명이 너무 밝았고 의자가 딱딱했다.
"양측의 진술과 의료 소견을 종합하여, 원고의 양육 적격성에 의문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은재는 대답하려 했다.
옆에 앉은 변호사가 팔을 잡아 말렸다.
"원고의 산후우울 치료 사실, 의료진의 소견, 관계인 진술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판사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은재는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긁었다.
"피고 측의 양육자 지정 청구를 인용합니다."
법정을 나올 때 복도에서 태윤과 마주쳤다.
태윤은 서류 봉투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눈이 은재를 피해 벽 쪽을 향했다.
"은재 씨, 나도……이렇게까지 될 줄은."
"……"
"도하는, 내가 잘 키울게."
복도 끝에서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됐고, 가자. 뒤돌아보지 마."
시어머니가 태윤의 팔을 잡아끌었다.
태윤이 끌려가면서도 한 번 고개를 돌렸지만, 은재와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복도 끝의 비상구 표시등이 초록빛을 내고 있었다.
은재는 빈 복도에 혼자 서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머리 위에서 윙윙거렸다.
법원 1층 로비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다가 종이컵을 떨어뜨렸다.
그게 5년 전이었다.
은재는 심판문에서 손을 뗐다.
서류 위에 남은 손가락 자국 하나가 더 생겼다.
심판문을 내려놓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침대 맞은편, 원룸에 하나뿐인 문이 달린 작은 공간이 있었다.
1평 남짓한 그 방.
이사 올 때 집주인에게 사정해서 붙박이장을 빼고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아이 이불을 사서 개어놓은 것도 이사하던 날이었다.
방문에 아이 키를 재는 스티커를 붙이려다 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문을 열었다.
작은 이불과 베개가 접혀 있었다.
벽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못 자국만 남아 있었다.
이불 위에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은재는 손가락으로 이불 모서리에 앉은 먼지를 쓸었다.
'언젠가는.'
5년째 되풀이하는 말이었다.
오늘 본 아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파란 가방을 메고 뛰어가던, 작은 등.
은재는 문을 닫고 서랍 앞으로 돌아왔다.
심판문을 투명 파일에 넣고 서류 모서리를 한 번 더 훑었다.
서랍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철컥-
서랍이 닫혔다.
은재는 서랍장 위에 이마를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일주일 뒤 금요일 저녁.은재는 다시 중고 서점에 갔다.도하에게 줄 그림책을 한 권 더 사려는 것이었다.2층 아동 도서 코너로 올라갔다.한지오가 있었다.같은 자리, 같은 선반 앞.이번에는 검은 니트에 면바지 차림이었다.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읽고 있었다.은재가 계단 위에서 멈추었다.한지오가 고개를 들었다."또 왔네요.""또 왔습니다."한지오가 읽던 책을 선반에 도로 꽂았다.은재가 그림책 선반 앞으로 갔다.지난번에 샀던 나무 이야기 옆에 새로운 책이 꽂혀 있었다.구름 위를 걷는 고양이 이야기."그 책 표지 좋네요. 고양이예요?""네. 구름 위를 걷는 고양이 이야기요.""아이가 고양이 좋아하면 괜찮을 거예요.""도하가 뭘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파란색 고른 것밖에.""면접 때 물어보세요. 좋아하는 동물이 뭐냐고.""그러려고요. 목록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물어볼 것들."은재가 고양이 그림책을 꺼내 펼쳤다.그림이 수채화풍이었다.구름 위에 앉은 고양이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래에는 작은 집들이 있었다.한지오가 선반 반대쪽에서 에세이 코너를 보고 있었다.은재가 그림책을 넘기다가 한지오를 보았다.서류를 볼 때의 긴장이 없었다.
금요일 퇴근 후.은재는 집 근처의 중고 서점에 들어갔다.작은 서점이었다.1층에 소설과 에세이, 2층에 아동 도서와 그림책이 있었다.은재는 2층으로 올라갔다.도하에게 줄 그림책을 찾으려는 것이었다.다음 감독 면접이 2주 뒤로 잡혔다.이번에는 간식 외에 그림책을 가져가고 싶었다.5살이 좋아할 만한 그림책을 고를 자신이 없었다.은재가 도하의 취향을 아는 것은 파란색을 골랐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2층은 좁았다.나무 선반 3개가 벽을 따라 서 있었고, 가운데에 낮은 테이블이 있었다.테이블 위에 추천 도서가 쌓여 있었다.은재는 그림책 선반 앞에 서서 제목을 읽기 시작했다.동물 이야기, 계절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족 이야기 앞에서 손이 멈추었다.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알 수 없어서 한 권을 꺼내 펼쳐보았다.아빠와 아들이 산에 가는 이야기였다.은재는 책을 다시 꽂았다.다른 책을 꺼냈다.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친구를 찾는 이야기.그림이 부드러웠다.파란색 배경에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가격표에 3,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그 책, 좋습니다."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은재가 돌아보았다.한지오가 서 있었다.평소의 셔츠 차림이 아니었다.면 재킷에 청바지, 캔버스 운동화.은재가 처음 보는 옷차림이었다."변호사님?""안녕하세요."&nbs
수요일 오후.은재가 자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때 총무팀장이 다가왔다."은재 씨, 우편물 와 있어요. 등기."총무팀장이 노란 봉투를 건네주었다.은재의 이름 옆에 회사 주소가 적혀 있었다.발신인은 ○○ 법무법인.등기 우편, 내용증명이라고 적혀 있었다.은재는 봉투를 받아 책상 위에 놓았다.동료가 곁눈으로 봉투를 보았다.은재는 봉투를 서류 밑에 넣었다."감사합니다."총무팀장이 돌아갔다.은재는 점심시간까지 봉투를 열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자 회의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봉투를 열었다.A4 용지 2장.내용증명 우편이었다.'수신: 서은재 귀하발신: ○○ 법무법인 (권태윤 대리인)제목: 접근 행위에 대한 경고 및 중단 요청'은재가 첫 번째 문단을 읽었다.'귀하는 미성년 자녀 권도하에 대한 피해자보호명령(접근 제한)의 전력이 있는 자로서, 현재 해당 보호명령은 종료되었으나, 자녀의 생활 영역에 대한 접근은 아동의 안정적 양육 환경을 저해할 우려가 있습니다.'은재가 2번째 문단을 읽었다.'귀하가 자녀의 유치원 인근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이는 사실상의 감시 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에 즉각적인 중단을 요청합니다.'3번째 문단.'상기 행위가 지속될
한지오의 사무실.은재가 상담실에 들어서자 한지오가 서류를 펼치고 있었다.테이블 위에 서류가 3묶음으로 나뉘어 놓여 있었다."조사관 보고서 열람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은재가 맞은편에 앉았다.한지오가 첫 번째 서류를 밀어주었다."면접 보고서입니다. 조사관의 관찰 의견이 기재되어 있어요."은재가 서류를 받아 읽었다.'아동은 신청인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 간식 제공 시 자연스럽게 수용하였으며, 블록 놀이 시 신청인에게 지시하는 등 상호작용이 관찰됨.'은재의 눈이 그 문장 위에서 멈추었다.도하가 블록을 놓으라고 지시한 것이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이거 여기.'아이의 짧은 말이 법원의 언어로 '상호작용이 관찰됨'이 되어 있었다."긍정적인 내용인가요?""네. 아이가 울거나 회피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록된 것은 중요합니다. 다음 면접을 위한 근거가 됩니다."한지오가 2번째 서류를 꺼냈다."다음은 의무기록 열람 결과입니다."은재가 서류를 받았다.의무기록 사본이었다.은재의 입원 기간 기록 중 담당 의사와 다른 서명이 있는 페이지에 형광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병원 측에서 의사 명단을 제공했습니다. 이 서명과 일치하는 원내 의사는 없었습니다.""원내 의사가 아니라는 거죠?""맞습니다. 외부에서 온 의사가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입
월요일.출근 전에 한지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조사관 보고서가 접수되었습니다. 열람 신청하겠습니다.''결과가 좋은 건가요?''보고서 내용을 확인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면접이 중단 없이 진행된 것 자체가 긍정 요소입니다.'은재는 메시지를 읽고 핸드폰을 넣었다.출근길 지하철 안이었다.주말 동안 면접 장면을 수십 번 떠올렸다.도하의 목소리, 블록 쌓는 손, 파란 색연필.떠올릴 때마다 세부가 조금씩 흐려지는 것이 두려웠다.그래서 핸드폰 메모장에 기억나는 것을 모두 적어놓았다.아이가 말한 문장, 아이가 만진 것, 아이가 쳐다본 방향까지.퇴근 후, 은재는 도하의 유치원 근처로 갔다.면접 이후 처음이었다.느티나무가 보이는 자리에 섰다.하원 시간이었다.유치원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하나둘 나왔다.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도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5분이 지나서 도하가 나왔다.파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면접 때 본 가방과 같은 것이었다.도하의 옆에 여자가 있었다.유세린이었다.세린이 도하의 손을 잡고 있었다.은재가 마지막으로 세린을 본 것은 5년 전 법원에서였다.세린의 머리가 길어져 있었다.묶지 않은 머리카락이 등 중간까지 내려와 있었다.세린이 도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입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도하가 고개
면접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은재는 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었다.운동화를 신발장에 넣으려다 멈추었다.아침에 깨끗하게 닦아 신고 나간 운동화였다.면접교섭센터 3층까지 이 운동화를 신고 걸어갔고, 도하와 같은 방에서 1시간을 보낼 때 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바닥에 얼룩 하나 없었다.신발장에 넣었다.주머니에서 파란 색연필을 꺼냈다.책상 위에 놓고 의자에 앉았다.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색연필의 파란색이 또렷했다.가운데 부분에 아이의 지문이 남아 있었다.작은 손가락의 흔적.은재는 그 자리를 손끝으로 만져보았다.살짝 매끄러운 표면 위의 아이 손기름.닦으면 없어질 자국이었다.은재는 닦지 않았다.'아줌마, 이거.'도하가 색연필을 내밀었을 때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아줌마.엄마가 아니었다.은재를 부르는 말이 아줌마였다.그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5년 동안 만나지 않은 사람을 엄마라고 부를 아이는 없다.은재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여동생에게도 말했었다.'안 부를 거야. 나를 모르니까.'그 말이 사실이 되었을 뿐이었다.하지만 아이가 색연필을 건넸다.아이의 손에서 은재의 손으로.12색 중에서 아이의 손이 고른 것이 파란색이었다.도하의 유치원 가방이 파란색이었다.아이가 파란색을 좋아하는지, 우연인지, 알 수 없었다.핸드폰이 울렸다.여동생이었다."어떻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