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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9화

Author: 송진
박한빈이 먼저 차에 올라탄 뒤에야 윤청하는 성유리를 데리고 몸을 돌렸다.

그때 성유리는 차 안에 이미 성시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얼굴빛은 좋지 않았다.

성유리가 차에 오르자마자 성시원은 곧바로 물었다.

“어제 너 박 대표님한테 뭐라고 했니?”

성유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인 윤청하의 시선을 마주치고 나서야 그녀가 자신이 어젯밤 박한빈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한 말을 그대로 전달한 것을 깨달았다.

성유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성시원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다시 말했다.

“네가 너무 편하게 살다 보니 자기가 누군지도 잊은 것 같구나.”

“그게 무슨 뜻인가요?”

성유리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말에 성시원은 더욱 화를 냈다.

“너 그게 무슨 태도니?”

성유리가 뭔가 더 말하려 하자 윤청하가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아 말렸다.

그래서 성유리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성시원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지만 차 안이라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어느새 차는 성씨 저택 대문 앞에 멈췄다.

집에 막 도착하자마자 성시원은 성유리에게 말했다.

“내가 분명히 말해두는데 너랑 박 대표 결혼은 이미 결정됐단다. 이건 네가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네가 할 일은 결혼을 기다리면서 다른 헛된 생각 하지 않는 거다. 알겠어?”

성유리는 되물었다.

“왜... 왜 제가 꼭 그 사람이랑 결혼해야 하죠?”

“왜냐고? 이건 부모님들이 정한 일이잖아.”

하지만 성유리는 다시 물었다.

“만약 지금 박한빈 씨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해도 아버지는 이렇게 결혼을 고집하실 건가요?”

그 한마디에 성시원은 순간 멈칫했다.

성유리는 그의 반응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제 행복을 위해서이신 건가요... 아니면 회사 앞날 때문인가요? 제가 무슨 물건입니까? 사업상의 이익과 그걸 맞바꾸기 위한 수단이라도 되는 건가요?”

성유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성시원이 갑자기 손을 들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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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빈의 태도는 너무도 단호했다.그의 평온한 눈빛 속엔 분명히 광기 어린 집착과 냉혹함이 섞여 있었다.그렇기에 성유리는 그저 멍하니 박한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박한빈은 미처 성유리에게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꽉 쥐고 있던 손목을 풀어줬다.“저는 해야 할 일이 좀 더 있으니까 성유리 씨는 푹 쉬세요.”그렇게 말한 뒤, 그는 바로 서재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남겨진 성유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크루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그날 밤의 파티가 몇 시까지 이어졌는지 성유리는 알 수 없었다.성유리는 어느 순간 깊은 잠에 빠졌고 꿈결처럼 귓가에는 아직 잔잔한 교향곡 소리가 맴도는 듯했다.그리고 귀 기울이면 사람들이 오가는 인사와 대화도 희미하게 들렸다.어렴풋이 성유리는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성시원을 보았다.그 시각, 성시원 앞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는데 그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성시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역시 성 회장님은 안목이 남다르십니다. 일찍이 박씨 가문과 약혼을 맺다니... 따님이 박 대표님이랑 결혼하면 성리 그룹은 앞으로 탄탄대로 아닙니까?”상대의 칭찬에 성시원은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그야 당연하죠. 제가 뭐 유리를 괜히 키웠겠습니까?”“근데 박 대표님이 정말 약속을 지킨 건 좀 의외네요.”“감히 안 지킬 수 있겠습니까?”성시원은 눈을 부릅뜨며 딱 잘라 말했다.“만약 박 대표가 파혼이라도 한다면 제가 당장 언론에 퍼뜨려서 두 번 다시 결혼 같은 거 못 하게 만들어버릴 겁니다.”“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이제 박씨 가문과 같은 배를 탔으니 성 회장님도 더 승승장구하실 겁니다.”“허허, 그건 두말할 것도 없죠!”두 사람은 서로 비위를 맞추며 웃고 있었지만 성유리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그저 꿈인데도 가슴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훅 끼쳐왔다.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성유리의 다리는 마치 바닥에 못이라도 박힌 듯 단 한 걸음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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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박한빈의 얼굴을 마주 보자 성유리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잠깐의 침묵 끝에야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저한테 시간을 조금 주셔야죠. 그리고...”“그리고 뭐요?”“박한빈 씨는 저를 좋아하세요?”성유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그 질문에 박한빈은 잠깐 멈칫했다.사실 이건 성유리가 예전부터 계속 생각해 온 문제였다.그런데도 막상 박한빈의 당황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보자 성유리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리고 이를 악문 채 말을 이었다.“솔직히 박한빈 씨도 저 안 좋아하시잖아요? 저랑 결혼하려는 것도 결국은 두 집안 사이의 약속 때문이잖아요. 박한빈 씨도 저 안 좋아하면서 왜 저한테만 좋아하라고 강요하세요?”“전 성유리 씨랑 결혼할 겁니다.”박한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런데 성유리 씨는 계속 저를 벗어나려고만 하잖아요.”“제가 그러는 게 잘못이에요? 저는 그냥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뿐인걸요?”“그럼 전에 백지환이라는 남자랑 결혼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박한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계속 말했다.“서로 좋아한다고요? 성유리 씨가 좋아했던 게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데요? 인간으로서의 자격은 있었습니까?”허를 찌르는 말에 성유리는 얼굴까지 붉어지며 버럭 소리쳤다.“박... 박한빈 씨도 좋은 사람은 아니잖아요!”“네?”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지금 그 말... 무슨 뜻이죠?”그제야 성유리는 자신의 말이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서둘러 해명하려고 했다.“사실 박한빈 씨도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요.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게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지... 그거랑은 별개의 문제라고요.”“그래요?”박한빈은 성유리의 말을 듣고 천천히 성유리 쪽으로 몇 걸음 더 다가왔다.“그럼 전 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건데요?”“저도 백지환 씨처럼 바람을 피웠나요? 아니면 밖에서 성유리 씨를 비하하는 얘기라도 하고 다녔어요?”“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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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지금 다들 두 사람 사이 아는 거 몰라? 결혼 날짜까지 이미 잡혀있는데 갑자기 결혼 안 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돼?”“그런데 저는 전부터 계속 말씀드렸잖아요.”성유리는 고개를 푹 떨군 채 계속 말했다.“저는 그 사람이랑 결혼하기 싫다고 말했잖아요. 어머니랑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정하신 거잖아요.”“박 대표랑 결혼하기 싫다고? 그럼 누구랑 결혼하겠다는 건데? 백지환이랑?”윤청하의 목소리가 점점 싸늘하게 식어갔다.그리고 백지환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성유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혀버렸다.“너 정신 차려.”윤청하가 다시 말을 이었다.“지금 밖에 얼마나 많은 눈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는 줄 알아? 박 대표랑 한 번 가까이 해보려고 눈에 불 켜고 달려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은 아니? 지금 네가 앉아 있는 이 자리를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그리고 박 대표가 뭐가 모자라서? 잘생겼고 집안도 좋은 데다가 능력도 있어. 부족할 게 뭐가 있니? 설마 너랑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성유리, 너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려?”“저는 박한빈 씨가 저랑 안 어울린다고 한 적 없어요. 다만...”성유리가 뭔가 더 말하려던 찰나, 문이 갑자기 확 열렸다.그 소리에 윤청하는 놀라 고개를 홱 돌렸다.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자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박한빈은 그 자리에 서서 무표정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성 대표님께서 어머님 찾으십니다.”윤청하는 입술만 달싹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박한빈이 먼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그제야 정신이 든 윤청하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곧장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물론, 문을 나서기 직전 성유리에게 눈짓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하지만 성유리는 그 ‘신호’를 모른 척했다.사실 지금 성유리의 긴장감은 윤청하보다 훨씬 더 심하게 곤두서 있었다.윤청하는 그저 걸어 나가면 그만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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