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아는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할 작정이었다.“날 풀어줘!”반하준은 소리를 지르면서도 몸은 아직 조금 전 상황을 되새기는 듯 온몸의 근육이 떨리고 있었다.“오늘 일은 서로 없던 걸로 해.”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힘겹게 말을 뱉었지만 잠긴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차가운 죽도가 그의 얼굴을 때리며 여자의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 울려 퍼졌다.“못난이 주제에 참 아름다운 환상만 가지고 있단 말이지.”강민아는 죽도를 내려놓으며 자기 손목에 멍이 든 것을 확인했다.싸늘한 눈동자엔 매정함만이 남아 있었다.“말했지, 오늘부터 여기서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간다고. 나중에 여기 자동 호출기 설치해 줄 테니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나한테 빌어.”강민아는 반하준을 철저히 감금하기 위해 생각한 끝에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전기 충격 목걸이 큰 사이즈로 가져와서 이 사람한테 채워요. 괜히 소리 지르고 난동 부리면 이웃들에게 피해를 줄 테니까. TV도 하나 가져와요. 반 대표님 혼자 계시면 적적할 테니 24시간 내내 틀어놓으세요.”잠도 못 자게 하려는 거다.그는 여기 갇혀서 움직일 수 없는데 24시간 내내 TV를 틀어놓으면 소음과 빛의 방해를 받아 편히 지낼 수 없었다.강민아는 정말 그를 죄수처럼 대하고 있었다!반하준의 목구멍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누구한테 배웠어? 이걸 다 누가 가르쳐줬지? 저 사람이야?”반하준은 매서운 눈빛으로 반용화를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지고 턱선은 강철처럼 날카롭고 단단했다.“아니면 저 자식이야?”반하준의 시선이 육성민에게 향했다.“다 당신한테 배운 거야. 아이 울음소리 때문에 깨고 가슴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잘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는데?”그는 밤새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으며 그녀 홀로 울부짖는 두 아이와 반씨 가문 사람들을 상대하게 내버려두었다.몸조리하는 동안 쌓였던 원한은 평생 마음에 새겨져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온몸이 스트레스와 공포에 휩
심은호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와 맞닿은 체온에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강민아는 경직된 그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우리 여친 무사하니까 됐어요.”온전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 강민아를 보자 허공에 매달렸던 그의 심장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갔다.심은호는 이내 팔을 풀었다. 최대한 강민아가 갑작스럽고 불편해하지 않도록 포옹한 시간과 힘을 조절했다.하지만 시선이 강민아의 얼굴에 닿자 그는 도저히 눈을 떼지 못했다.심은호가 적절한 타이밍에 몸을 떼어낸 탓에 그의 온기와 특유의 향기가 사라지자 되새기며 아쉬워하는 쪽은 강민아였다.“난 괜찮아요.”심은호가 곧장 물었다.“그 죄인은요? 경찰이 데려갔어요?”소식이 빠른 심은호가 반하준을 욕하는 말에 강민아는 코끝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안에 있어요.”심은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안에요? 경찰이 오길 기다리는 거예요?”강민아가 고개를 저었다.“제가 가둬놨어요.”심은호는 멈칫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강민아가 가느다란 검지를 입술 위에 올려놓는데 심은호의 시선은 온통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쏠렸다.“부탁할게요. 비밀 지켜줘요.”“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나보고 비밀 지켜달라는 거죠?”남자가 예쁜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하게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반용화와 육성민이 다 있는 곳에서 강민아는 두 볼이 화끈거렸다.심은호는 그녀를 정말 좋아해서 새 타이틀을 머리에 쓰고 다니며 도처에 자랑하고 싶은 정도였다.그런 심은호에게 잘해줄 수밖에 없었다.“남친님, 제발 비밀 지켜줘요.”심은호가 반용화를 돌아보았다.“지금 누구한테 부탁하고 있는 거죠? 아, 민아 씨가 나한테 부탁하는 거네요! 반 선생님, 들었어요?”만약 심은호가 공작이었다면 지금쯤 활짝 펼친 깃털 하나하나에 ‘강민아 남자 친구’라고 적은 뒤 반용화 주위를 맴돌며 자랑했을 거다.반용화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심은호가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다시 제 소
육성민은 강민아 외에는 누구도 가까이할 수 없는 위험한 맹수 같은 존재다.“진짜 남자 친구 맞아요?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이지 말죠?”그런 육성민에게 발끈하던 심은호가 입을 벙긋하며 반박하려 하자 강민아는 손을 뻗어 남자의 소매를 잡아당겼다.강민아의 시선을 마주한 남자의 눈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민아 씨 원하는 대로 해요.”심은호의 목소리가 포근한 깃털처럼 그녀를 감쌌다.남자는 심호흡하며 강민아를 위해 마음속의 분노를 억지로 삭이고 있었다.그녀를 위해 싸우거나 빼앗을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그녀를 위해 가만히 있는 것도 할 수 있었다.“형님은 치고받는 데 선수니까 민아 씨 잘 부탁해요. 남자 친구인 나는 형님에게 상대가 안 되네요. 그쪽은 가족이니까.”심은호가 일부러 강조하며 말끝을 길게 늘리자 육성민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가느다란 손목을 들어 올리는 심은호의 모습에 강민아가 나지막이 웃었다.그저 작은 멍에 불과했지만 심은호는 소중한 보물처럼 부서지기라도 할 듯 조심스럽게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비록 아이처럼 조금만 긁혀도 울면서 남이 달래주길 기다리는 나이는 지났지만, 이렇듯 다정한 보살핌을 받을 때면 심장에 자극제를 투여한 듯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가서 씻고 일찍 쉬어요. 잠 못 자겠으면 형님한테 곁에 있어 달라고 하고. 물론 형님은 거실에서 자야 해요. 사실 나도 안방 앞 바닥에서 잘 수 있지만 민아 씨가 날 아낀다는 걸 아니까, 형님은 가죽도 튼튼해도 괜찮을 거예요. 형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방해될 수도 있으니까 방 문은 꼭 닫아요.”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육성민은 당장이라도 실과 바늘을 가져와 심은호의 입을 꿰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강민아는 반용화를 배웅하고 심은호와 작별 인사를 했다.육성민이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강민아는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던 중 정이가 작은 화이트보드에 쓴 글을 발견했다.[내일 아침은 엄마가 끓여준 사랑의 닭죽을 먹고 싶어요!]아이는
강민아는 육성민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냥 계약 관계일 뿐이야.”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이날 밤 강민아는 육성민이 손목을 주물러주며 어혈을 풀어준 덕분인지, 아니면 직접 죽도를 들고 반하준을 거칠게 채찍질해 통쾌하게 분풀이를 한 덕분인지 깊은 잠이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땐 벌써 다음 날 아침이었다.강민아는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휴대폰의 앱을 확인했다.반하준은 밤새 갇혀 있으면서도 그녀에게 애원 한 번 하지 않았다.‘제법 버티네. 아니면 이미 바지에 쌌나?’화려하고 고고한 대표님은 늘 오만하게 굴었다. 샤워할 땐 반드시 물 온도를 42.3도에 맞춰야 했으며 0.2도만 벗어나도 얼굴을 찡그리곤 했다.옷도 매번 한 번만 입고 정장 외투에 주름이라도 생기면 바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그의 앞에 내놓는 접시엔 소스가 가장자리에 묻어있으면 안 되고, 소스가 많아서 질퍽한 음식 또한 싫어했다.여름에는 실크, 겨울에는 캐시미어 소재의 침구 세트를 사용하며, 두날에 한 번씩 시트와 이불을 바꾸고 계절마다 한 가지 색상으로 통일해야 했다.이렇듯 까다롭고 성가시게 굴던 남자가 방에 갇혀 물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있었다.하루 종일 바닥에 앉은 자세로 버텨야 하는데 이대로 가다간 엉덩이가 썩어 문드러질 것 같았다.생각만 해도 강민아는 다소 기대가 되었다.그녀가 나쁜 건가. 하지만 반하준에겐 더 독하게 굴어야 할 것 같았다....강민아는 딸을 위해 아침밥을 만든 뒤 돌솥을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두고 갓 끓여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떠주었다.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다 씻은 정이가 알아서 식탁에 마주 앉았다.아이는 고개를 들어 강민아의 방을 흘깃 쳐다보다가 재빨리 자신의 보온병을 꺼냈다.숟가락을 들고 죽을 보온병에 퍼 담았다.강민아가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자 정이도 재빨리 보온병 뚜껑을 닫고 가방에 넣었다.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행동해도 강민아의 눈을 피해 갈 순 없었지만 강민아
민이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정이를 바라보았고, 아이의 시선은 정이의 손에 든 보온병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이내 정이가 물었다.“내가 먹여줄까?”민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자 정이는 동의한 것으로 받아들였다.숟가락을 꺼내 죽 한 숟가락을 뜨고는 입으로 살살 불어서 식힌 뒤 민이의 입에 먹여주었다.민이는 입을 벌리고 정이가 떠먹여 주는 닭죽을 먹었다.이번에 먹은 닭죽은 전에 길고양이들에게서 빼앗아 먹었던 닭죽과 달랐다.아직 따뜻한 죽은 한때 강민아가 끓여줬던 그 맛이었다.죽을 먹던 민이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자 정이는 서둘러 숟가락을 내려놓고 눈물을 닦아주었다.“뭘 먹을 때 울면 안 돼. 몸에 안 좋다고 했어.”한때 엄마도 같은 말을 했었다.민이는 목이 메어오며 계속 흘러나오는 눈물에 눈앞이 흐려졌다.“흑...”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정이가 보온병에 담긴 죽을 다 먹여줘도 민이는 아쉬움만 가득했다.쓰레기통에 수없이 쏟아붓고 바닥에 내팽개치며 ‘돼지죽’이라고 욕했던 닭죽이, 이젠 몸이 아프고 그리워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엄마가 죽 가져다주라고 했어?”민이가 묻자 정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내가 몰래 보온병에 넣어온 거야. 엄마는 몰라.”민이의 눈에 상실감이 담겼다.정이는 휴지를 가져와 민이의 입을 닦아주었다.“민아, 밥 잘 먹고 빨리 나아야 해. 내가 자주 보러 오진 못하지만 얼른 나아.”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감정은 이토록 순수했다.아무리 서로 미워하고 절교하겠다며 소리쳐도 한쪽이 먼저 손을 내밀기만 하면 다시 화해할 수 있었다.“엇...”소리를 내던 반석현이 민이에게 노트 하나를 건네자 정이가 대신 설명했다.“석현이가 레슨 받을 때 적은 노트야. 몸이 좀 나아지면 그때 봐. 석현이는 네가 듣는 수업이 쉽다고 생각하는데 너한테 필요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적은 거야.”반석현이 민이에게 빼곡히 적힌 노트를 펼쳐 보이자 정이가 또다시 대신
고개를 든 정이는 연진숙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자 의아한 듯 물었다.“뭘 봐요?”연진숙은 무슨 원수라도 만난 듯 적대적인 표정을 드러냈다.“네가 왜 여기 있어?”연진숙은 반석현이 경호원과 정이를 데리고 병원에 왔다는 말에 민이를 다치게 할까 봐 덜컥 겁이 났다.서둘러 달려오자마자 정이가 보여 크게 화가 난 것이다.연진숙은 반석현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반용화의 양아들이지만 결국 어디까지나 양아들일 뿐, 반씨 가문의 후계자는 항상 반하준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민이가 입원하고 반석현의 후계자 교육이 시작되면서 연진숙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그러다 자기 앞에서 안하무인으로 구는 손녀를 보니 연진숙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당장이라도 뺨을 내려칠 듯 노려보고 있었다.정이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민이가 며칠째 학교에 안 나오는데 애들도 민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걸 알고 걱정해요. 제가 대표로 민이 병문안 온 거예요.”연진숙이 코웃음 쳤다.“고양이 쥐 생각하네. 무슨 속셈이야!”정이도 화가 났다.“쥐 할머니 길 막지 마요!”연진숙은 정전기라도 일어난 듯 불꽃이 화르르 피어올랐다.“감히 날 욕해? 네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어? 교양 없는 것!”정이도 물러서지 않았다. 예전엔 한집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수였지만 이젠 마음에 들지 않는 연진숙 앞에서 물러설 이유가 없었다.“민이 보고 쥐라고 했으니까 그쪽은 늙은 쥐 아니에요?”“할머니, 너무 시끄러워요!”침대에 누워있던 민이가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연진숙은 손자를 아끼는 마음에 병실에 들어서면서도 정이가 원수라도 진 것처럼 노려보았다.“저리 꺼져!”“메롱!” 정이와 반석현은 동시에 연진숙을 향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연진숙은 울컥 화가 치밀어 간호사에게 물었다.“저 두 애가 내 손자한테 무슨 짓을 했죠?”“여자애가 도련님께 죽을 먹이니까 도련님이 아주 잘 드셨어요.”간호사가 기뻐하며 연진숙에게 말했다.“입원하신 이후로 식욕이 왕성한 건 이번이 처음이
“할머니! 빨리 나 내려줘요!”간호사들도 서둘러 연진숙을 말리기 위해 몰려들었다.“여사님, 얼른 도련님 내려놓으세요!”“여사님이 이러시면 도련님 몸만 더 상해요!”여러 간호사가 힘을 합쳐 연진숙의 손에서 민이를 데려갔다.간호사들에 의해 다시 병상에 눕혀진 민이는 온몸이 불편하기만 했고 숨을 쉴 때마다 등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곧이어 간호사가 연진숙에게 물었다.“멀쩡한 음식을 왜 토하라는 거예요?”“못 들었어요? 더러운 걸 먹었다니까!”“여자애가 죽 먹일 때 저희가 이미 확인했고 아무 이상 없었어요. 손자가 겨우 입맛이 돌아서 죽을 먹는데 어떻게 상처가 있는 아이한테 구토를 유도해요?”연진숙은 민이 곁으로 다가와 나지막이 달랬다.“네가 배가 고파서 그런 거야. 그 여자가 끓인 죽은 아무 영양도 없고 서민이나 먹는 음식이야. 그게 돼지 사료와 뭐가 달라?”“난 엄마가 끓인 죽이 좋아요!”민이가 연진숙을 향해 빽 소리를 지르자 연진숙은 아이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당황하고 말았다.민이는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할머니는 날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 엄마가 싫어서 그런 거잖아요!”“민이, 난 널 걱정하고 있는 거야!”연진숙이 말하자마자 민이는 배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우욱!”순식간에 조금 전까지 먹었던 죽이 모두 뱃속에서 토해져 나왔다.“민이야!”연진숙의 비명이 병동 전체에 울려 퍼졌다....집에 있던 강민아는 우경아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민아 씨가 낸 아이디어 봤는데 우리 팀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선금 20% 줄 테니까 앞으로 우리 팀 이끌고 프로젝트 완성해 줘요.”강민아는 우경아의 일 처리가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낮에 금방 우경아에게 파일을 넘겼는데 저녁에 바로 기술팀을 넘겨줄 줄이야.“우 대표님께서 챙겨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전 저만의 팀을 꾸리고 싶어요.”우경아가 솔직하게 물었다.“내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건가요?”강민아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답했다.“낙하
그녀가 올린 건 반하준을 밟고 있는 영상이었다.그 부분만 잘라내니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기 쉬웠다.영상에서 그녀와 반하준은 각각 프레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남자는 두 손이 묶여있지만 영상에는 수갑이 보이지 않아 반하준이 자발적으로 바닥에 앉아 강민아에게 짓밟히는 것처럼 보였다.또한 강민아는 일부러 영상의 소리를 제거해 보는 사람이 반하준의 옆모습과 강민아에게 밟힌 부분에 집중하도록 유도했다.소리가 없는 영상은 야릇한 상상을 떠올리기 쉬웠다.남자가 흐릿한 눈빛과 살짝 벌린 입술로 어떤 소리를 낼지 영상을 보는 사람은 오직 상상으로만 유추할 수 있다.강나현은 진작 준비해 놓은 메시지를 보냈다.[언니, 내가 굳이 얼쩡거리는 게 아니라 하준 씨가 날 억지로 강승에 보낸 거야. 언니도 알겠지만 난 자유분방해서 언니 비서가 되면 잘 챙겨줘!]메시지를 보낸 강나현이 고소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강민아는 지금쯤 화가 나서 휴대폰을 잡은 손마저 덜덜 떨고 있을 거다.강나현이 무심코 강민아의 게시물을 클릭했다.서로 삭제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과거엔 종종 게시물을 살펴보며 강민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곤 했었다.강나현은 강민아가 최근에 올린 게시물 하나를 보고 당황했다.[남편과의 달콤한 순간]강나현이 경멸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강민아에게 남편은 무슨.영상을 클릭하자 시야에 들어오는 반하준의 옆모습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믿을 수 없다는 듯 영상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녀의 머릿속이 하얘졌다.강나현은 발끈했다.‘강민아와 반하준이 다시 만나는 거야? 말도 안 돼!’분명 인공지능으로 얼굴을 바꾼 거다. 강민아는 아직도 사모님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거다.강나현은 다시 강민아와의 채팅방으로 돌아갔다.“미친 거야?”타이핑하는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고, 강나현의 메시지를 확인한 강민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강나현이 하도 멍청해 상대조차 하기 싫었다.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자신조차 멍청해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무식하게 아
정이는 바지 주머니에서 귤 사탕을 꺼내며 실망한 듯 말했다.“대상만 받으면 여사님이 연주가 사탕 먹는 거 동의할 줄 알았어요.”강민아가 딸을 다독였다.“연주에게 사탕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정이는 작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엄마, 저 사람 찾아가도 돼요?”강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원수가 아니잖아.”정이는 반하준에게 걸어가 두 손을 펼쳐 손바닥에 놓인 사탕 한 알을 보여주면서 팔을 들었다.반하준은 마음이 들뜨며 깊은 눈동자가 동요했다.“나한테 주는 거야?”“아저씨, 저 대신 이 사탕 연주에게 좀 전해주세요.”반하준의 반짝이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어두워졌지만 기꺼이 도움을 청하는 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이의 손에서 사탕을 가져갔다.“그래, 내가 사탕 연주에게 전해줄게.”정이는 두 손을 다리 옆에 딱 붙인 채 반하준을 향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아저씨!”다시 한번 반하준을 마주할 때 정이는 가슴을 당당하게 내밀었다.그동안 그녀에게 반하준은 늘 거대하고 낯선 나무 같은 존재였다. 정이는 아빠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고 반하준도 늘 무심하게 대했다.기억 속 반하준은 한 번도 정이를 안아준 적이 없어 한번은 강민아에게 물어보기도 했다.“제가 어렸을 때 아빠가 안아준 적 있어요?”“있지...”강민아가 멈칫하며 눈가에 담긴 슬픔을 감췄지만 정이는 하얀 거짓말이라는 걸 예리하게 알아차렸다.이제 그녀는 더 이상 반우정이 아니기에 반하준을 태연하게 마주하며 그에게 말을 걸 용기도 생겼다.정이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 폴짝폴짝 강민아를 향해 달려갔다.강민아는 아이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고개를 숙인 백강훈이 휴대폰을 확인하자 조금 전 연락을 보냈던 사람에게서 답장이 왔다.[저 꼬마를 만나보고 싶네요. 내가 찾던 인재인 것 같아요.]백강훈은 그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강민아와의 관계를 오해했다는 생각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글을 입력했다.[기회 되면 만남을 주선해 보죠.]백강훈 옆에
갑자기 강한 힘이 반진경의 팔을 움켜쥐고 온몸을 뒤로 끌어당겼다.“악!”반진경이 소리를 지르며 격분해 고개를 돌려보니 장기명이 그녀를 뒤로 끌어당기고 있었다.“그만해! 지금 무슨 짓 하고 있는지 알아? 창피하지도 않아!”장기명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자 반진경의 분노는 더욱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어떻게 감히 나한테 뭐라고 해?”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장기명이 낮게 윽박질렀다.“창피한 짓 그만해. 정말 강윤정을 때리면 반씨 가문에서의 처지도 난감해지고 연주와 나까지 너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 거야!”화가 난 반진경과 달리 장기명은 그녀보다 침착했다.반하준이 강민아를 위해 나서서 반진경을 막는 것을 보고 강민아가 아무리 반하준과 이혼했어도 반진경이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또한 반진경이 꿈에서도 강민아를 짓밟으려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호화로운 정원에 야생 동물이 침입하면 정원의 주인이 외래종을 쫓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반진경은 강민아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났지만 지금 이런 행동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건 잘 안다. 장기명은 지금 그녀를 막지 못하면 자신도 덩달아 심연으로 떨어질 것임을 알았다.장기명은 큰 손으로 반진경의 뒤통수를 잡고 억지로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게 했다.“제가 진경이를 대신해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요즘 기력이 없고 마음이 불안정해서 그런 거니까 다들 이해해 주세요.”이윽고 장기명은 반진경의 어깨를 힘껏 잡고 정이와 마주 보게 했다.그는 반진경의 머리 뒤쪽을 꽉 쥐고 누르려고 했지만 반진경의 목은 마치 철근이 박힌 것처럼 그의 힘에 저항하고 있었다.장기명은 반진경 대신 이렇게 말했다.“윤정아, 아저씨가 고모 대신 사과할게.”그는 웃으며 강민아에게도 말했다.“진경이가 성질 더러운 거 알잖아요. 내가 잘 얘기할게요.”“아저씨, 그럼 연주는...”“당연히 너희랑 같이 간식 먹어도 돼. 워낙 위가 안 좋고 고기 냄새를 못 맡아서 채식을 먹게 한 거야
정이의 시선이 단상 아래 학부모들을 지나 장기명 옆에 서 있는 소심한 반연주에게 향했다.뜨거운 열기가 마음에 밀려오며 강민아가 왜 반진경과 내기할 때 반연주도 언급했는지 알 것 같았다.엄마는 그녀가 무대에 올라서서 용기를 내 반진경의 행위를 폭로할 때 고작 다섯살밖에 안 됐지만 줄곧 인정할 수 없었던 일도 말하길 바랐던 것이었다.“제가 아는 연주는 줄곧 채식주의자였고 고기나 우유, 계란도 먹을 수 없었어요. 우리와 함께 점심이나 디저트도 먹지 못했고 늘 배가 고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어요. 연주가 자꾸만 이유 없이 기절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반 여사님이 약속한 대로 연주가 우리와 함께 학교에서 점심과 디저트를 먹는 걸 허락해 주길 바라요. 만약 반 여사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우린 미워할 거예요!”무대 아래에서 아이들이 소리치자 다른 아이들도 거들었다.“약속 안 지키는 사람 학교에서 보기 싫어요!”“반 여사님은 학부모회장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는 반장이나 조장이 되면 약속을 꼭 지켜야 해요!”“연주가 자꾸만 쓰러지는데 이건 딸을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아이들의 솔직한 말에 자리에 있던 학부모들이 수군거렸다.“반진경은 임신했을 때부터 채식했어. 애도 같이 채식해야 복을 받는다고.”“전에 우리도 말렸잖아. 연주가 어려서 풀만 먹이면 안 된다고. 어려서부터 채식해야 아들을 낳는다고 했어. 연주는 남동생의 복을 쌓기 위해 태어난 아이라고!”“반진경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학부모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백강훈은 고개를 내밀고 객석을 바라보다가 교장에게 물었다.“연주란 아이가 조금 전 백조의 호수 센터인가요?”“네, 맞습니다.”교장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사이 백강훈이 말했다.“등장할 때 더 어린 학생인 줄 알았네요. 또래 친구들보다 발달 격차가 너무 커서 앞으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쪽에서 책임져야 할 것 같은데요.”교장도 어쩔 수가 없었다.“반연주 학부모가 채식주의자라 학교에서도 부모의 육아
무대 아래 관객들은 강민아와 정이를 집중해서 바라보며 반진경이 무슨 짓을 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반하준은 민이를 품에 안은 채 가만히 서 있었고, 강민아와는 불과 10미터 남짓한 거리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수백만 마일 떨어져 있어 넘을 수 없는 벽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반하준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이없고 우스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오랜 세월 늘 남들 위에 군림하며 강민아가 절대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서서 그에게 접근하려는 강민아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이혼한 후 강민아의 삶이 점점 엉망이 되어야 하는데 왜 오히려 그녀는 이토록 화려하게 반짝이는 걸까.무대 조명이 강민아를 비추자 그 빛이 꼭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예쁜 얼굴을 투명하게 빛나고 이목구비는 그림을 그려 넣은 것 같았으며 입술은 앵두처럼 붉었다.이토록 집중해서 강민아의 얼굴을 본 건 처음이었다. 마치 강민아를 처음 만난 듯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아빠, 안 도와줄 거예요?”민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뭘 도와줘.”불쑥 말을 꺼낸 반하준은 무력감이 밀려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민이도 강민아를 바라보며 손이 닿지 않는 저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왜 이렇듯 밑으로 추락하는 느낌이 드는지 알지 못했다.괴로운 느낌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심연으로 심장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데 저항할 힘은 없었다.“엄마는 이제 정말 우리를 버린 거예요?”민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 정이의 맑고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요. 하나는 반 여사님과 허 선생님이 저에게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빠지라고 말한 거예요. 제가 뚱뚱해서 다른 친구들 공연을 방해한다고 했어요. 삼촌과 함께 봄날의 사자를 공연한 건 저도 무대에 설 기회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반 여사님은 또 여기저기에서 엄마와 백 청장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말했어요.”“세상에!”무대 아래가 소란
장기명은 반하준을 보자마자 쥐가 고양이를 만난 것처럼 움츠러들며 나지막이 외쳤다.“진경아, 진경아! 빨리 여기로 와.”반진경은 이미 문 앞에 도착해서 고개를 돌려 장기명을 부르려는데 반하준이 그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장기명은 얼굴을 찡그리며 반하준이 그녀를 찾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반진경은 입을 삐죽거리며 다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반하준은 냉기가 쏟아지는 커다란 이동식 냉장고 같았다. “올라가서 민아한테 사과해!”“하준아, 어떻게...”반진경의 얼굴이 확 바뀌며 눈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가득했다.둘이 이혼까지 했는데 반하준은 강민아를 도와주는 건가?“난 네 사촌 누나야!”반진경이 소리쳤다.“쯧.”윤세현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경멸하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볍게 혀를 찼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심은호에게 눈치를 보냈다 “전남편이 영웅 노릇을 하는데 그쪽은 아무것도 안 해요?”심은호는 태연하게 강민아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이건 민아 씨 전장이죠. 전 그냥 민아 씨가... 차근차근 무대에 오르는 것만 지켜보면 돼요.”심은호의 말을 들은 윤세현이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무대 위로 걸어가는 강민아가 보였다.윤세현은 강민아가 여기서 뭘 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심은호가 말했다.“반하준은 이 기회에 나서서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나서서 반진경을 압박하는 건 민아 씨의 기회를 빼앗아 가는 것뿐이에요. 내기는 민아 씨와 정이, 반진경 세 사람이 한 거예요. 민아 씨와 반진경의 대결에 반하준이 무슨 자격으로 끼어들어요?”심은호와 윤세현 사이에 앉은 반석현은 얌전히 허벅지에 손을 얹고 발은 땅에서 조금 떨어진 채 진지한 눈빛으로 강민아를 바라보았다.강민아는 정이의 손을 잡고 다시 무대로 걸어와 마이크를 집어 들고 스위치를 눌렀다.“소란스럽게 굴어 죄송합니다.”강민아의 청아한 목소리가 강당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학부모와 선생님
“윤정이한테 사과해요!”“연주 어머니, 약속해 놓고 안 지키면 어떡해요!”아이들이 반진경에게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건네자 그녀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졌다. 옆에서 휴대폰을 들고 촬영하는 부모님들도 있었다.“반씨 가문 저분이 무슨 짓을 했길래 햇님반 애들도 막아서는 거죠?”“윤정이가 대상 받으면 연주가 우리랑 같이 간식 먹게 해주겠다면서요. 그것도 안 지킬 거예요?”한 아이가 물었다.반진경을 바라보는 반연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강민아와 정이가 힘들게 얻어낸 기회였는데 엄마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 같았다.“아빠.”반연주는 장기명의 바지 다리를 붙잡고 장기명이 조금이라도 나서서 도와주길 바랐다.장기명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무슨 간식?”반진경은 짜증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강민아가 나랑 내기했어. 강윤정이 대상을 받으면 무대에 올라가서 사과하는 것 말고도... 연주에게 고기를 먹이라고 강요했어! 내 딸의 앞길을 망치려는 거야!”이 말을 들은 장기명도 큰 손으로 반연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망설였다.반진경은 딸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이를 위해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아이를 출산한 이후에는 분유도 전부 두유로 바꿨다.반연주의 식단도 엄격하게 관리했는데, 학교에서 점심과 간식을 나눠주고 채식주의자인 반연주를 따로 챙기기까지 하는데도 반진경은 학교 음식량이 너무 많다며 불만을 제기했다.선생님은 반진경의 요구대로 점심시간에 아이에게 고작 채소 몇 잎과 과일 몇 조각만 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의 몸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은 선생님이 져야 했다.반연주의 점심은 매일 반진경이 집에서 가져다주며 디저트는 먹지 못하게 했다.장기간 채식만 먹어 늘씬한 딸보다 매일 고기와 우유를 챙겨 먹는 또래 여자아이들은 발육이 훨씬 빨랐다. 정이만 해도 반연주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체격이 반연주의 두배는 되었다.반연주가 채식만 먹어야 귀엽고 어린 모습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명도 장기간 채식만 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반진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아니야, 사과는 무슨 사과야! 그런 일은 없었어. 강윤정, 적당히 해!”반진경은 강민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따지려고 다가가는데 반석현이 휴대전화를 꺼내 앱을 실행한 뒤 안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그 순간 축제 콘솔의 디스플레이 화면에 음악 재생 화면이 뜨더니 우렁찬 행진곡이 울려 퍼지며 참석한 어린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음악에 맞춰 박자를 타기 시작했다.강당이 활기를 띠자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스피커에 울려 퍼졌다.“반 여사님 무대에 올라와 주세요!”강민아는 손을 뻗어 반석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만지며 웃음을 터뜨렸다.“석현이 대단하다!”이제 반진경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사과를 하지 않으면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졌다.강민아의 칭찬을 받은 반석현은 고개를 돌렸고, 강민아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는 커다란 별들이 반짝이는 듯했다.평소에는 거의 웃지 않던 반석현이 강민아, 정이와 함께 있을 때만 비로소 그 나이에나 있을 법한 해맑은 미소를 보여줬다.뒷줄에 앉아 있던 민이는 강민아와 반석현이 서로를 향해 웃는 모습을 보고 심장이 욱신거렸다.짧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작은 입은 불만스러운 듯 삐죽거렸다.‘반석현 진짜 너무하네!’민이는 순식간에 분노가 차올랐다.아이의 심술은 부리는 것도 돌변하는 것도 빨라서 그동안 반석현과 잘 지냈던 순간은 하얗게 잊어버렸다.아이들의 열띤 박수 속에서 강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학부모들은 반진경을 돌아보았고 장기명이 좌불안석이었다.“그냥 올라가지 그래?”반진경은 이를 갈았다.“내가 뭐 하러 올라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강민아는 어떻게 딸을 시켜서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반진경이 일어나서 강민아를 향해 걸어갔다.“네 딸보고 무대에서 내려오라고 해!”강민아가 되물었다.“전에 정이가 1등을 하면 무대에 올라가서 공개로 사과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어요? 사과문은 수정했어요? 무대에 올라가서 망신이나 당하지 마세요.”화가 난 반진경은
진행자는 육성민에게 더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그러면 삼촌분은 여자 친구를 사귈 생각이 있나요?”육성민은 더 이상 화제의 중심이 되고 싶지 않은 듯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그의 시선은 무대 위 객석을 가로질러 강민아에게 정확하게 향했다.강민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따뜻한 미소를 짓자 그가 주목받는 것에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네, 있어요.”육성민은 마치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대답했다.단상 아래 엄마들은 이미 정신이 다른데 팔려 주변에 육성민에게 소개해 줄 적당한 연령대의 미혼 여성을 생각하고 있었다.강민아도 다소 놀란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육성민이 여자 친구를 만날 생각이 있다는 건 제법 놀라웠다.이윽고 윤세현이 강민아의 한쪽 팔을 꽉 잡아당기며 육성민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왜 그래?”강민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내 달빛을 지켜야지!”강민아는 주위 학부모들이 젊고 잘생긴 육성민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윤세현이 알아차리고 그러는 줄 알았다.육성민이 마침내 여자 친구를 찾겠다고 말했으니 여동생인 그녀도 쉽게 빠져나가긴 힘들 것 같았다.동시에 윤세현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반하준을 노려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며 가는 눈매가 한층 짙어졌다.‘육성민이 도발하는 건가?’그가 강민아와 이혼한 후 갑자기 이런 인생 대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니.반하준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차갑게 비웃었다.“형님은 어떤 여자를 좋아해요?”강민아 옆에서 심은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잘 모르겠어요.”심은호는 여우처럼 교활한 눈매를 가늘게 뜨며 입술을 달싹이더니 눈가에 번진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나중에 물어봐야겠어요.”그는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한쪽 팔을 무심하게 강민아의 의자 등받이 가장자리에 올려놓았다.심은호는 뭔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능글맞은 표정으로 무대에 서 있는 육성민을 바라보았다....무대에서 선생님은 정이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소감을 말하라고 했다.“혼자서 공연할 수 있게 격
“무슨 헛소리야!”반진경은 불쾌한 듯 장기명의 어깨를 밀치며 질책했다.“팔이 왜 밖으로 굽어? 딸이 잘되길 바라야 하는 것 아니야?”장기명은 입을 삐죽거리다가 이내 말을 바꾸어 반진경을 달랬다.“연주가 1등 할 거야. 심사위원 점수 말고도 공연장에 있는 관객들의 투표도 있으니까 연주가 공연할 때 관중들이 제일 많았어.”반진경은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었다.“연주가 꼭 1등 할 거야!”이미 많은 학부모에게 언질을 해두었고 그녀가 알기론 반연주에게 투표한 사람만 반수가 넘었다.강민아는 고개를 숙인 채 정이의 공연에 체크 표시를 했다.반석현도 덩달아 체크를 그리며 강민아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민이는 두 사람의 대각선 뒤에 앉아 둘의 행동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반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정이한테 투표하지 않는 거야?”민이는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볼을 부풀렸다.“내가 왜 정이한테 투표해요?”“정이를 안 뽑으면 누구를 뽑을 건데?”민이가 공연 리스트를 훑어보다가 반연주에게 체크했다.강민아가 안아주지도 않는데 정이에게 왜 투표를 해주겠나.자리에 있던 관객들은 손에 들고 있던 공연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었다. 10분 후, 심사위원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가 수상을 발표했다.“... 1등은 햇님반의 백조의 호수입니다.”반진경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감격의 박수를 보냈다. 그녀는 대표로 무대에 올라 상을 받는 반연주를 보았다.“우리 연주 정말 대단해!”반진경은 강민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말아 올리며 비웃듯 혀를 끌끌 찼다.이윽고 단상에 서 있던 선생님이 말을 이어갔다.“축제 대상 수상자는 햇님반 강윤정 학생의 봄날의 사자입니다.”반진경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금세 얼어붙었고 장기명은 입을 열었다.“대상이 1등보다 더 대단한 것 같은데? 1등은 세 개인데 대상은 강윤정 하나잖아.”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진경이 발끈했다.“왜 쟤가 대상인데?”장기명은 서둘러 반진경의 소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