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있던 강민아도 순간 멈칫했다.반진경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감싸며 눈을 크게 떴다.부은 뺨을 만지자 머리카락보다 가는 수백만 개의 바늘이 혈관을 뚫고 피부를 찢는 것만 같았다.반진경은 그제야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왜 날 때려요?”반진경이 빽 소리를 지르자 우경아는 그저 웃었다.눈꼬리가 위로 올라가고 풍성한 속눈썹은 눈가에 내려앉은 나비가 날갯짓하듯 펄럭거렸다.“때리는 거로는 부족하지. 머리에 구멍을 뚫어 구정물을 다 내보내야 하니까.”우경아가 키 172에 15센티 하이힐까지 신으니 그녀 앞에 있는 반진경은 난쟁이처럼 보였다.그녀가 손으로 반진경의 머리를 가리키자 반진경은 또 뺨을 맞을까 봐 황급히 손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머릿속에 더러운 것만 가득 찬 걸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고 누가 모를 줄 알아? 누구는 헛소리할 줄 몰라서 가만히 있나? 감히 강민아와 교육청 백 청장님을 엮어? 반씨 가문은 이 바닥에서 사업 계속할 생각이 없나 봐.”“아니야!”반진경이 빽 소리를 지르자 우경아는 곧바로 그녀의 머리를 내리쳤다.“아악!”그녀가 비명을 지르면 우경아는 반대쪽 뺨을 때렸다.하도 매섭게 때려 반진경의 두 뺨이 대칭을 이루며 부풀어 올랐다.“당신 누구야? 난 강민아한테 말한 건데 왜 날 때려?”반진경은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면서 우경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혹시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백 청장님의 아내인가?’그건 아니다.그녀는 백강훈의 아내를 본 적이 있다.“그만해요!”옆에 있던 다른 학부모들이 말렸고 허시연이 서둘러 무대에서 내려왔다.“사람이 왜 그렇게 무례해요? 어떻게 바로 손을 댈 수가 있죠?”반진경은 반씨 가문 사람이니 지금 그녀를 감싸준다면 바로 반진경의 은인이 될 수 있었다.허시연은 그 생각에 반진경을 뒤로 보내며 감쌌다.짜악!우경아가 뺨을 때리자 허시연은 머릿속이 윙윙거렸다.무대에 있던 강민아는 조용히 손을 뻗어 정이의 눈을 가렸다.우경아의 전투력은 실로 대단했다.“당신이
반진경이 우경아를 보고 단번에 떠오른 생각은 예쁜 여자라는 거다. 큰 키에 작고 섬세한 얼굴,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처럼 얼굴 하나만으로 큰 임팩트를 주는 사람이 드물었다.“어느 학생 학부모든 감히 선생님을 때렸으니 학교 측에 알릴 거예요!”허시연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우씨 성이 흔한 것도 아닌데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없었다.우경아와 강민아의 얼굴을 몇 번이나 번갈아 살펴보니, 우경아가 지나치게 젊지만 않았어도 강민아의 엄마라고 해도 믿을 만큼 둘은 닮았다.반진경은 퉁퉁 부은 얼굴을 감싼 채 우경아를 향해 아부 섞인 미소를 지었다. 마치 볼에 견과류를 가득 채운 다람쥐처럼 보였다.“우 대표님, 전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우경아의 매서운 눈동자가 싸늘해지자 그녀는 흠칫 몸을 떨더니 스스로 본인 뺨을 때렸다.“제가 잘못했어요. 홧김에 말실수했네요. 우 대표님,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허시연은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빠르게 변하는 반진경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눈으로 우경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반진경에게 물었다.“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인가요?”반진경은 꽉 깨문 잇새로 작게 말했다.“당신 월급을 주는 은행이 우씨 가문 거야.”이 한마디에 허시연은 얼굴 전체가 창백해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국내 5대 은행 중 하나가 우씨 가문 소유라면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부신 그룹보다 더 건드려선 안 되는 존재가 아닌가.순간 허시연의 이마에서 굵직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왜 나한테 사과하지?”우경아는 반진경에게 이렇게 말하며 강민아를 돌아보았다.반진경은 입가에 비릿한 피 맛과 함께 온몸의 뼈가 삐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강민아가 반씨 가문으로 시집온 순간부터 강민아의 신분을 우습게 여긴 그녀였다. 강성진의 비열하고 역겨운 얼굴과 도민영의 멍청한 모습, 남자 무리에 섞인 강나현의 우스운 꼴을 봤었다. 게다가 강민아가 오랜 시간 시골 마을에 살면서 부신 그룹의 후원을 받아 겨우 대학을
정이가 두 손으로 강민아의 손을 잡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엄마한테 사과문 써요!”“어림도 없어!”반진경이 매서운 눈빛으로 말을 내뱉자 정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용감하게 나섰다.“축제에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우리 엄마한테 쓴 사과문을 읽어요!”반진경은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웃다가 심호흡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를 억누르며 가소롭다는 어투로 정이에게 말했다.“그래, 내가 축제 무대에 올라 사람들 앞에서 사과문을 읽게 하려면 네가 1등을 해야 할 거야. 네가 무대에서 상을 받아야만 날 무대로 부를 자격이 있지 않겠어?”분노와 조롱이 뒤섞인 반진경의 머릿속은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경아가 때리는 뺨은 맞을 수 있어도 사과문을 쓰라는 건 다섯 살짜리 아이가 자신을 모욕하고 있다고만 느꼈다.이런 수치심을 잠자코 견딜 리 없었던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강민아에게 말했다.“강윤정이 축제에서 1등 하면 너희 모녀가 대단한 걸 인정하고 기꺼이 사과도 할게. 강민아, 사과문은 쓰겠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읽는 건 네 능력에 달렸어.”정이 혼자 축제에서 1등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렇듯 오만하게 말할 수 있었다.아이가 혼자 진행하는 공연이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으니까.반진경은 하늘이 뒤집혀도 그럴 일은 없다는 생각에 오만방자하게 거들먹거리고 있었다.강민아도 그녀의 꿍꿍이를 알아차렸다. 사과문은커녕 반진경이 높게 쳐든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사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정이가 강민아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전 축제에 참여할 거예요. 축제에서 공연할 거라고요!”아이는 속으로 반드시 1등을 할 거라고 다짐했다.이번에는 엄마를 위해서 신념과 의지를 불태우련다.강민아의 손이 정이의 어깨를 살며시 누르며 반진경에게 말했다.“사과문 내용이 무척 기대되네요.”반진경의 호흡이 가빠졌다. 반씨 가문에서도 강민아는 늘 고고한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출신이 비천한 게 날개를 달았다고 감
그녀가 우경아에게 손짓하자 둘은 강당의 한적한 구석에 앉았다.반진경은 빨갛게 부어오르고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싼 채 강민아와 우경아가 있는 방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허시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우 대표라는 사람 대단한 분인가요?”반진경이 콧방귀를 뀌었다.“너 같은 건 벌레보다 더 쉽게 죽이는 사람이야.”허시연은 찬 공기를 훅 들이키며 동공마저 흔들렸다. 자신이 우경아에게 실례를 범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허시연은 두 다리의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놀라서 반진경의 팔을 붙잡는 그는 온몸이 삶은 국수처럼 무너져 내렸다.“사모님... 우 대표님께 말씀 좀 잘해줄 수 있나요? 저같이 비천한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데 무례를 범했어요.”반진경은 싫은 기색을 내비치며 자기 팔을 잡은 허시연의 손을 뿌리치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이를 악물고 나지막이 쏘아붙였다.“내 코가 석 자인데 널 어떻게 도와줘?”멍청한 허시연의 모습에 반진경은 역겨운 눈빛을 보냈다. 하찮은 평민은 우경아 앞에서 떠도는 하루살이와 다름없었다.강민아도 허시연처럼 반씨 가문 사람이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기어야 하는데, 정작 그녀는 반진경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반진경은 차갑게 지시를 내렸다.“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우리 연주가 무대에서 돋보이게 하는 거야. 연주를 센터에 세웠는데도 상을 못 받으면...”반진경이 아니꼽게 허시연을 흘겨보자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살갑게 말했다.“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연주는 춤에 재능이 있어요. 꼭 무대 위에서 모두의 주목을 받게 할게요.”반진경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허시연에게 햇님반 아이들의 연습을 계속하라고 말했다.강민아 쪽을 바라보던 그녀는 둘이 어쩌다 가까워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반진경은 휴대폰을 꺼내 장기명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는 그녀의 전화를 끊어버렸다.혀를 차며 또다시 전화를 걸어 한참 동안 기다려서야 연락이 닿았다.“여보세요. 나 바빠!”“우영 그룹 우 대표가 강민아를 만나러 승덕까지 왔어.”‘우 대
강민아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너무 일찍 저에게 등 돌린 걸 후회하고 계시네요.”“강민아 씨, 우리한테 넘겨준 데이터를 조작한 거죠?”우경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눈빛에는 극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그녀에게서 음산한 냉기가 퍼져나갔지만 옆에 앉아 있던 강민아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제가 왜 조작해요? 우 대표님 밑에 일하는 직원의 능력이 부족한 거죠. 섣불리 사람을 배신하니까 벌써 200억 정도 손해를 보셨죠?”팔짱을 낀 우경아의 정성껏 관리한 손톱이 연분홍빛을 띠고 있었다.강민아의 말에 그녀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그녀는 진작 자신이 없으면 우영 그룹의 양자 테크에서 억대 손해를 볼 것을 예상하였던 걸까?심지어 수백억을 손해 볼 때 우경아가 자신을 찾아올 거란 것도 예상했다.그 생각에 우경아는 살짝 놀랐다.조금 전 자신이 나타났을 때 강민아가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걸 떠올리며 우경아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여자를 다시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민아 씨는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인 것 같네요. 내가 그쪽을 오해했어요. 7년 동안 집안에만 갇혀 지낸 여자가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별 능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공부를 잘하는 건 아무 쓸데가 없어요. 날고 기는 천재도 이론만 빠삭하고 실전에는 멍청이니까. 확실히 그쪽은 날 놀라게 하네요.”강민아를 바라보는 우경아의 두 눈엔 그녀를 손에 쥐고 싶은 충동이 타올랐다.“강민아 씨, 우리 계속 같이 일합시다. 전에 일은 내가 미안했어요. 나는 지금 진심으로 협업을 제안하는 겁니다. 협업 말고도 여러 가지 도와줄 수 있어요. 예를 들면...”앞을 돌아보니 그녀에게 맞아서 얼굴이 부어오른 반진경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무대 위에서 발레하는 반연주에게 시선이 향했다.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나랑 같이 일하면 그쪽 딸 센터로 만들어 줄게요.”“그건 됐어요.”강민아가 단호하게 거절했다.“어른들 싸움에 아이들까지
우경아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었다. 강민아에게 40억을 주고 쫓아냈는데 이제 그녀를 다시 데려오려니 상대가 4천억을 원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녀는 강민아가 4천억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다.우경아의 목구멍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피를 말리는 협력자나 경쟁자를 만나본 적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여전히 강민아 앞에서 여유로웠다. “강민아 씨, 이 바닥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당신에게 수익의 70%를 줄 수는 있어요. 투자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프로젝트 전체를 나한테 주지 않으면 전 그쪽이랑 일 안 해요.”“말도 안 되는 소리!”우경아가 낮게 윽박질렀다. 한 번도 그녀에게서 먹잇감을 통째로 가져가는 사람은 없었다.강민아는 여전히 사람 좋은 표정으로 부드럽게 한숨을 쉬었다.“전 우 대표님이 무서워서 시작부터 많은 걸 바라는 거예요. 이미 한번 절 아웃시켜서 아직 마음이 불안하거든요. 저한테 큰 조각을 넘기기 싫고 수익의 100%를 넘기지 않는다면 전 그쪽이랑 일 안 해요. 세상은 저 없이 잘만 돌아가고 우 대표님은 저 말고 다른 사람 알아봐도 되니까요.”강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경아를 지나쳐갔다.우경아는 자신이 소유한 양자 테크나 옴 테크에서 데려온 전문가들이 강민아가 건넨 대형 모델을 사흘 밤낮으로 연구해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강민아!”그녀가 소리쳐 부르자 강민아는 뒤에서 들려오는 우경아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강성진과 도민영 사이에서 당신 같은 딸이 나올 줄은 몰랐네요.”강민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우 대표님, 칭찬 감사합니다.” 우경아의 목구멍에서 차가운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강민아를 만나러 직접 승덕까지 찾아오고 반씨 가문 사람과 무례한 교사까지 혼내줬으니 강민아가 은혜를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면 그녀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강민아가 조금도 물러서지 않을 줄이야.우경아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현이 씨!”윤세현을 보자마자 정이의 눈이 환하게 빛나며 폴짝폴짝 윤세현을 향해 달려갔다.윤세현은 강민아에 대한 걱정에 코끝에서 열기 섞인 숨결이 흘러나왔다.“현이 씨, 너무 보고 싶었어요!”정이의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윤세현은 쭈그리고 앉더니 정이의 의상을 보고 자기 외투를 벗어 아이에게 입혀주었다.“정이 너무 예쁘다.”정이의 머리가 조금 헝클어진 것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빗겨주었다.강민아는 윤세현을 향해 걸어갔다 “왔어?”지난주 윤세현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집을 나서면서 떠나기 전 곧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겼다.강민아는 윤세현에게 뭘 하러 가는 건지 묻지 않고 정이와 함께 윤세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그런데 뜻밖에도 윤세현이 서경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학교로 달려올 줄이야.우경아는 윤세현과 일정한 거리로 좁혀질 때쯤 말을 꺼냈다.“이번에 고생했어.”멈칫하던 윤세현의 조각상처럼 잘생긴 얼굴이 엄숙하게 바뀌었다.강민아는 우경아 앞에서 유독 경직된 윤세현을 알아차렸다.윤세현은 우경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긴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엄마, 민아는...”우경아는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고, 찬 바람에 풍성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더더욱 아름다움을 뽐냈다.“오랜만에 보는 건데 친구랑 좋은 시간 보내.”우경아는 강민아를 쳐다보지 않고 윤세현에게만 명령했다.“오늘 밤에 호텔로 와서 보고하고.”윤세현은 공손하게 우경아를 향해 답했다.“네.”우경아가 자리를 떠나서야 굳어있던 윤세현은 긴장이 풀리며 정이의 손을 잡고 강민아를 향해 걸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우 대표가 너 힘들게 했어?”강민아는 고개를 저었다.“미린국에 간 첫해에 한 거물이 널 눈여겨보고 거둬줘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했잖아. 그 거물이 우경아였어?”5년 전 윤세현은 강민아가 준 거금을 들고 미린국에 가면서 둘은 멀리 떨어지게 되었고, 윤세현은 나쁜 소식은 전부 감추고 좋은 소식만 전해주었다.그때 강민아는 두 아이를 낳은 터라 윤세현과
“네가 강씨 가문으로 돌아가면서 우경아는 널 양딸로 데려가 네 보호자가 될 절차를 밟을 수 없게 되었어. 그러다 네가 결혼했다는 걸 알고... 너한테 완전히 흥미를 잃었지.”강민아는 먼 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우경아의 발목을 잡은 세력은 뭔데?”윤세현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우경아도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윤세현의 맑은 눈동자가 진지하게 반짝였다.“내 생각엔 그 힘이 널 지켜주는 것 같아.”강민아도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우경아에게 내 과거에 대해 말한 적 있어?”윤세현은 멍하니 고개를 흔들었다.“몇 번이나 날 떠보긴 했어도 난 네 일에 대해 조금도 털어놓지 않았어. 미린국에 오면서 너와 완전히 갈라졌다고 했거든.”강민아는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내가 볼 때 우경아는 오래전부터 날 지켜봤던 것 같아. 나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고 너조차 모르는 내 일을 다 알고 있었어.”강민아는 더 생각하기 싫어 다시 가벼운 어투로 윤세현에게 물었다.“우경아가 나한테 무슨 짓할까 봐 학교로 온 거야?”“서경에 오자마자 너 때문에 양자 테크가 억대 손해를 봤다는 소식을 들었어. 우경아가 직접 널 만나러 학교에 온다는 얘기도... 우경아는 무자비한 사람이라 건드리기만 하면 제자리에서 상도 엎어.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강민아의 두 눈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담겨 있었다 “난 아직 그 여자한테 거대한 이용 가치가 있어서 당분간은 나한테 아무 짓도 못 해.”오히려 윤세현을 달래며 말을 이어갔다.“걱정하지 마, 이미 우경아와 거래를 달성했거든.”윤세현은 어리둥절했다.“어떤 거래?”“내가 양자 테크의 통솔권을 가지고 우경아와 협업하는 동시에 1분기 투자금 4천억을 요구했어. 거기에 향후 양자 테크의 수익은 100% 나한테 돌아오기로 했지.”윤세현은 찬 공기를 들이켜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동의했어?”“응.”“어떻게?”강민아와 우경아가 협상한 조건은 윤세현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강민아가
반하준은 고개를 들어 방 문 쪽을 바라보았다.시야의 가장자리가 뿌옇게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눈을 크게 깜빡이자 들어온 여자가 이미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하준 씨.”강나현의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온몸이 그의 위로 쓰러졌다.반하준은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손이 뒤로 묶여 움직일 수 없어 몸을 뒤로 빼기만 했다.강나현은 온몸에 뼈가 사라진 듯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반하준의 몸을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강나현, 뭐 하는 거야!”반하준이 고함을 지르자 강나현이 흐릿한 눈동자로 가슴을 움켜쥐더니 고개를 들어 뜨거운 숨을 뱉으며 반하준을 바라보았다.“나 너무 더워. 온몸이 간지러워.”반하준의 눈가엔 싸늘한 감정만 담겨 있었다.“쓸데없는 걸 먹은 건 아니지?”강나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그냥 술을 조금 마셨을 뿐인데...”반하준이 불쑥 물었다.“술을 누가 줬는데?”“파티에 있던 웨이터가.”강나현이 고개를 들고 코를 훌쩍거렸다.“이 방 냄새 좋다. 향기로워.”강나현의 말을 듣는 순간 반하준은 온몸에 얼음이 섞인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느낌이었다.그는 숨을 꾹 참다가 다시 들이쉬는 순간 강나현이 말한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반하준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젠장!’그는 줄곧 방 안에 있었고 향기가 서서히 퍼졌기에 방금 들어온 강나현처럼 공기 중에 느껴지는 향기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반하준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잔에 향했다.그도 조금 전 술을 마셨지만 나중에 두 손이 묶이면서 더 이상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만약 수갑이 채워지지 않았고 이 방에서 갈증을 느꼈다면 그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저 술을 찾았을 거다.반하준은 어렴풋이 직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말도 안 된다며 부정했다.그는 강나현에게 물었다.“누가 널 들여보냈어?”강나현은 볼이 붉게 물든 채 손을 들어 화끈거리는 이마를 만지작거렸다.“응? 기억이 안 나. 하준 씨, 나 취한 것 같아.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강나현이 말하며 다시 반하준에
누군가 다가와 반하준의 귀에 속삭였다. “반 대표님, 부사장님이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고 하십니다.”그에게 말을 전하러 온 사람은 강민아 비서였다.멈칫하던 반하준이 잠시 주위를 둘러봤지만 강민아는 보이지 않았다.“민아 어디 있어요?”비서가 말했다.“부사장께서는 바깥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세요.”반하준은 비서를 따라나섰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말도 안 하고 눈길도 안 줬는데 이제 와서 단둘이 만난다고?그 생각에 반하준은 숨이 가빠졌다.참으로 방탕한 여자다.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려 한다니! 심은호 앞에서는 그를 무시하고 또 심은호의 눈을 피해 그와 만나려 하고 있다.남녀관계에서 강민아가 하는 행동은 반하준의 예상을 완전히 넘어섰다.‘방탕하게 살고 싶어서 이혼하자고 한 건가?’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심은호와 윤세현을 양옆에 둔 것도 모자라는가.결혼 생활 도중 그녀가 바람을 피운 적은 없는지 궁금할 정도다.그렇게 생각하며 반하준은 점점 더 짜증이 밀려왔다. 가슴이 무거운 돌덩이에 짓눌린 듯 심장이 아파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직원이 방 문을 열며 안으로 안내했다.방 문 앞에 서 있던 반하준은 지금 강민아가 자존심을 버리고 용서를 빈다면 심은호, 윤세현과 깨끗하게 헤어지게 할 거라 다짐했다.물론 강민아가 기꺼이 그의 곁으로 돌아와 속죄해야만 용서할 거다.“반 대표님,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사람이 정신이 팔렸을 때 누군가 옆에서 뭐라고 시키면 생각 없이 따르게 된다.방으로 들어간 반하준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방에 아무도 없었다.‘조금 전 강민아 비서가 뭐라고 했지? 기다리라고?’그를 여기로 불러놓고 기다리게 한다니.강민아가 일부러 못되게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걸까?하지만 오늘은 강승이 정식으로 인수된 날이라 강민아는 분명 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을 거다.먼저 따로 만나자고 했으니 잠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반하준은
“아니야!”반하준은 분노에 미칠 지경이다. 심은호가 어떻게 감히 이런 식으로 그를 모욕할 수 있나.‘이런 악랄한 놈!’“민아야, 날 믿어줘.”반하준은 살면서 이렇듯 비굴하게 누군가에게 애원해 본 적이 없었다.처음으로 막다른 궁지에 내몰리자 그는 고립된 채 가만히 서 있었다.강민아 뒤에 서 있던 재벌가 거물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반하준이 다쳤나? 멀쩡해 보이는데. 오히려 심은호가 엉망진창이네.”“누가 봐도 심은호가 괴롭힘을 당했잖아.”“반하준이 심은호 저격한 게 하루 이틀이야? 전에 심은호를 주먹으로 때린 것도 내가 봤어.”“전에 화장실에서 핸드워시를 심은호에게 뿌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눈에 거슬려서 와인을 쏟았네.”“강민아를 빼앗아 가려고? 방에 가서 단둘이 상처를 보여주기는 무슨, 누가 봐도 꼬드기는 거지!”“난 심은호 편이야. 심은호는 당당한 남자 친구인데 반하준은 전남편이잖아. 내연남이라도 되고 싶은 건가?”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반하준의 얼굴이 먹물처럼 어두워졌다.“내연남?” 반하준은 억울한 듯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미쳤어? 내가 어떻게 내연남이야!”심은호는 웃으며 말했다.“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내연남이긴 하지.”반하준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그는 강민아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 그녀를 돌아보았다.하지만 강민아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심은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다.“어디 다쳤어요?”“여기요.”심은호가 얼굴을 가리키자 반하준의 동공이 커지면서 소리를 질렀다.“안 때렸어!”강민아는 손을 뻗어 부드럽고 섬세한 손끝으로 심은호의 뺨을 어루만졌다.심은호는 사람 좋아하는 사모예드처럼 고개를 갸웃한 채 강민아의 손길을 느끼듯 천사 같은 미소를 지었다.강민아는 그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반하준은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강민아, 나 진짜 안 때렸어!”강민아는 심은호에게 말했다.“가서 옷 갈아입어요. 복도로 나가
심은호의 말을 들은 반하준은 얼굴이 일그러졌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과 갈비뼈가 아팠다.지금 강민아에게 온몸을 맡기듯 기대어 있는 저 남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려고 했다.그런데 지금 오염된 브로치를 손에 들고 강민아에게 불쌍한 척을 하고 있었다.해도 해도 너무했다.“강민아, 저놈한테 속지 마!”참을 수 없어 소리를 내지른 반하준은 입안에 온통 피 맛만 감돌았다.그는 복부를 감싼 채 개미 수만 마리가 갉아먹는 듯한 통증을 참고 있었다.바닥에 깨진 유리잔을 바라보며 강민아의 동공은 이미 싸늘해졌다.“심은호 씨 몸에 묻은 레드 와인, 당신이 쏟았지?”묻는 게 아닌 반하준의 짓을 단정하는 어투였다.반하준은 입술을 달싹이며 목구멍에서 진동하는 피 맛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실수로 그런 거야.”심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약한 꽃으로 둔갑했다.“그래요. 반하준은 실수로 그런 거니까 나 때문에 화내지 마요.”반하준은 심은호의 그런 모습에 이가 갈렸다.‘저 개자식은 연기를 왜 저렇게 잘해?’남들 몰래 연기 학원이라도 다니는 건지.“민아야, 저 자식이 일부러 불쌍한 척 연기하는 거야. 아까 날 때리는 거 못 봤지? 내 갈비뼈와 손가락을 부러뜨리려고 했어! 콜록콜록.”반하준의 가슴속에는 차마 내뱉지 못한 뜨거운 열기가 여러 가닥으로 뭉쳐서 이리저리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기침할 때마다 온몸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뼈가 다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심은호는 고개를 숙여 손바닥에 있는 공작새 모양의 브로치를 바라보더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살짝 붉게 물든 코끝으로 훌쩍이며 칭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반하준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그러더니 자신의 소매로 브로치 표면을 살살 닦으며 브로치에 묻은 와인 얼룩을 닦아내려 애썼다.반하준은 감시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올려다봤다.젠장!그는 심은호를 골탕 먹이기 위해 강나현에게 감시카메라를 끄라고 시켰다.카메라가 켜져 있었다면 강민아가 심은호의 본색
“삼촌, 다 됐어요?”육성민은 체육관 밖 공터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 막대기로 타서 재가 돼버린 낙엽을 헤집고 있었다.그는 단열 장갑을 끼고 호일로 감싼 고구마를 불에서 꺼냈다.육성민이 호일을 뜯어내자 뿜어져 나오는 꿀고구마 향에 정이의 입안에는 금세 군침이 돌았다.“빨리 줘요!”정이가 손을 뻗어 가져가려는데 육성민이 말했다.“뜨거워.”그는 쌓아놓은 벽돌 위에 고구마를 올려놓고 숟가락을 생수로 헹군 뒤 정이에게 건넸다.정이는 숟가락으로 고구마를 파서 호호 불었다.서둘러 한입 베어 물던 아이의 두 눈이 휘어지며 통통한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나타났다.정이가 유난히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육성민의 눈가에도 흐뭇함이 가득했다....강승 테크. 인수식이 끝나고 뒤풀이가 진행될 때, 심은호가 화장실에서 막 나오려던 순간 마주 오던 반하준과 부딪혔다.반하준은 한발 물러서고, 심은호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장이 와인으로 얼룩진 게 보였다.장밋빛 붉은 액체가 강민아가 조금 전 선물한 공작 브로치 위로 쏟아졌다.반하준은 자신의 걸작에 감탄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눈이 없어? 자꾸 안하무인으로 굴면 다음에 더러워지는 건 옷뿐만이 아닐 거야.”반하준은 기세등등하게 손가락을 휙 돌려 잔을 아래로 뒤집었다. 남은 레드 와인이 전부 심은호의 신발 끝으로 쏟아졌다.그는 비웃으며 말했다.“복도 카메라는 고장 났지만 민아한테 찾아가 울면서 일러바쳐도 돼. 너 연약한 척 잘하잖아. 어디 계속해 봐. 미리 말하는데 민아는 단순히 호기심에 널 갖고 노는 거야. 하루 종일 자기 뒤에 숨어서 징징거리는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반하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심은호는 주먹을 휘둘렀다!주먹이 바람을 일으키며 허공을 가르더니 그대로 반하준의 복부를 강타했다. 갑자기 손을 쓸 줄 몰랐던 반하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손을 뻗어 막으려 했지만 그대로 심은호의 주먹에 맞고 말았다.그 탓에 반하준의 손에 들려있던 유리잔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산산조각
심은호의 공개 고백에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반하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번개와 천둥이 몰아칠 것처럼 검은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 있었다.강민아는 풍성한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심은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옆모습은 부드러운 얼굴선과 높은 콧대, 깊은 눈매를 자랑하며 마치 장인이 정성스럽게 조각한 것처럼 보였다.천장에서 비추는 조명이 그의 눈가를 비추자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움직이더니 그가 고개를 돌려 강민아를 바라보았다.남자가 강민아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는 순간, 호수처럼 맑은 그의 눈동자에는 오랜 세월 강민아를 향해 쌓아온 감정이 가득했다.강민아의 숨결 하나하나가 뜨거웠고, 남자의 눈에서 넘쳐흐르는 파도가 밀려와 그녀를 감쌌다.마치 용암이 발밑에 흐르듯 빠르게 위로 올라오는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꽉 쥐었고 마른침을 삼키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긴장하지 마요.” 그는 따뜻한 목소리로 강민아를 달랬다.“갑작스러운 고백에 어떻게 긴장을 안 해요?”“미안해요.” 심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민아가 말했다.“계속 말해요. 듣기 좋으니까.”강민아의 칭찬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심은호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두 눈이 반짝이며 마음을 다잡은 그가 마이크를 마주한 채 아래에 있는 반하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강민아에게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심은호에게만 있었고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민아 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할 겁니다. 결혼하든, 누군가를 떠나든 무엇을 하든지 늘 뒤에서 지키고 있다가 필요할 때 나타날 겁니다. 전 앞으로도 여전히 민아 씨의 모든 결정을 지지합니다. 태산 그룹에서 정식으로 강승 테크를 인수했으니 두 회사는 더욱 높은 곳을 향해 비상할 겁니다.”반하준은 입가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며 손등에는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갑자기 뚜껑이 열린 탄산음료처럼 동시에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마치 그의
“설마 심은호가 부사장이 반씨 가문 사모님일 때부터 좋아한 건 아니겠지?”“왜 그렇게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냈나 했더니, 남의 아내를 탐낸 거였어?”가십거리에 사람들은 흥분하며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설마 강민아가 반하준과 이혼하기 전에 두 사람이 이미...”“어쩐지 둘이 그렇게 빨리 만나더라니.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 시그널 주고받은 거 아니야?”“설마 반 대표가 바람피우는 걸 알고 강민아와 이혼한 건가? 세상에!”다들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파격적인 소문에 재벌가 인사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반하준의 어두운 눈동자에 살기가 번뜩였다.심은호가 그의 평판을 망칠 작정이라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심은호를 끌고 갈 것이다!‘심은호, 너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감히 내 여자를 노렸으니 너도 똑같이 당해봐.’지유빈은 반하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강민아 씨 말로는 대표님께서 적극 이혼을 원했다고 하던데요. 왜 이혼하고 나서는 강민아 씨가 누굴 만나는지 이렇게 신경 쓰는 거죠?”강민아는 반하준이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고, 반하준은 지유빈을 우습게 여겼다.“기자로서 아직도 모르겠어? 심은호가 내 아내를 오랫동안 탐냈다고! 5년 전부터 내 아내를 지켜봤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이혼까지 했는데도 왜 계속 아내라고 말하는 거죠? 그 결혼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대표님 혼자인 것 같은데요.”거대한 스피커가 반하준의 몸속에서 울려 퍼지듯 그의 심장을 뒤흔들고 오장육부에 고통을 선사했다.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잘 안다. 강민아가 이혼한 뒤 지유빈은 기자로서 업무 때문에 줄곧 강민아를 지켜봤다.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세 사람의 가십거리에 집중하는 동안 지유빈만 그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다.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리는 반하준의 눈동자를 보며 남자가 단순히 강민아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때 반하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무시하고 싶었지만 지유빈의 말에 궁지로 몰린 그는 갑자기 울리는 전화가 구세주처럼
심은호가 헤어지겠다는 말에 반하준은 악랄한 눈빛을 드러냈다.비록 연기라는 걸 알지만 저렇게까지 말해놓고 어떻게 수습할지 두고 볼 작정이었다.“심은호, 이미 말했으면 지켜야지.”반하준은 심은호에게 강민아와 헤어지라고 강요할 생각이었다.“난 심은호 씨랑 헤어질 생각 없어.”강민아가 말하며 심은호의 큰 손을 감싸더니 반하준에게 경고하듯 말했다.“당신이 우리 사이에서 수작을 부린다고 심은호 씨와 안 헤어져.”반하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심장이 저 깊은 나락으로 던져진 듯했다.“민아 씨...”심은호가 부드럽게 그녀를 부르자 강민아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두 집안 인수식에서 소란을 피운 건 이 사람이에요. 나가도 그쪽이 아니라 반하준이 나가야 한다고요!”심은호는 입꼬리를 씩 올렸고, 반하준은 누군가 몽둥이로 세게 내리치듯 심장 안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심은호는 강민아의 말에 위로받았는지 두 눈이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했다.“민아 씨는 나한테 참 잘해주네요.”강민아의 단호한 말 한마디면 그는 만족할 것 같았다.강민아가 부드럽게 그를 달랬다.“내 남자 친구니까요.”“강민아!”보다 못한 반하준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내가 여기 있는데!’그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강민아와 심은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맞닿은 두 사람의 시선이 끈적했다.“민아 씨, 아직 말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어요.”심은호는 큰 결심을 한 듯 목소리는 온화했지만 예쁜 두 눈에는 슬픈 기색이 묻어났다.“반하준이 우리 둘을 헤어지게 하려고 병원 시스템을 해킹해 내 진료기록을 훔쳐 갔어요. 내가 병원에 다니는 걸 알고 병이라도 있을까 봐 내 진료기록으로 나한테 헤어지라고 협박했어요!”강민아도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녀가 먼저 심은호에게 반하준이 한 어리석은 짓을 널리 알리자고 제안하기도 했다.지금 심은호는 일부러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이런 말을 하는 거다.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가십거리를 직감한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심은호의
강나현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쳤다.“나 저 사람 알아! 강승 직원이야!”그녀는 연설문이 바뀐 것이 반하준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증명하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그 순간 장면이 전환되고 연설문을 바꾼 사람이 복도에서 반하준과 단둘이 만나는 게 보였다.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강나현은 표정이 확 바뀌며 말문이 막힌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눈으로 반하준을 돌아보았다.심은호의 연설문이 바뀐 게 정말 반하준과 관련이 있을 줄이야.하지만 반하준이 했다기엔 너무 저급한 수작이 아닌가.강승의 직원을 시켜서 연설문을 바꾼 것도 모자라 감히 회사 안에서 직원과 따로 만나다니.그런 짓을 하면서도 반하준은 카메라를 피할 생각조차 못 했던 걸까.강나현은 놀란 표정으로 반하준을 바라봤지만 남자는 다 들키고도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마치 대형 스크린에서 강승 직원과 공모한 사람이 전혀 아닌 것처럼.강민아는 시치미를 떼는 반하준의 모습에 입을 열었다.“그럼 저 직원에게 반 대표님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어보죠.”카메라에 찍힌 직원은 당황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의 시선을 마주한 채 눈에 띄게 두 다리를 덜덜 떨었다.“부사장님, 반 대표님이 저한테 시켰어요! 저한테 2천만원 줬는데 이 돈 다 드릴게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경악하며 말했다.“정말 반하준이 한 짓이야? 심은호를 노리는 건가?”“심은호와 강민아가 만나니까 전남편이 질투가 나는 건 당연하지. 근데 너무 비열하다.”강민아에게 공개적으로 폭로 당한 반하준은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너한테 들킬 줄 알았어. 그냥 네가 어떻게 할지 보고 싶었을 뿐이야. 심은호의 연설문이 바뀐 걸 알고도 아무 말 안 하길래 난 네가...”반하준은 말을 꺼내며 입에서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그는 수치심도 모르는 듯 이렇게 물었다.“그래, 내가 시켰어. 그게 뭐? 강민아, 심은호 때문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