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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Author: 복덩이
윤세현의 옆으로 작은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심은호가 선두로 달려갔다.

심은호가 단번에 거리를 벌리자 반하준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그가 욕을 하려는 순간, 윤세현이 입을 열었다.

“민아야!”

윤세현은 팔을 높이 들고 강민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든 강민아는 반짝이는 눈동자가 두 개의 초승달로 변한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심은호는 강민아가 윤세현만 본다는 것을 눈치채고 우뚝 걸음이 멈췄다. 바로 그때 윤세현이 그를 지나쳐 강민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들 비켜!”

반하준은 어디선가 휠체어를 끌고 왔고 거기엔 민이가 타고 있었다.

그는 휠체어를 이용해 심은호의 앞을 막고 윤세현을 밀어내려 했지만 심은호는 통로에 서서 반하준의 길을 막았다.

“통로가 이렇게 좁은데 어떻게 휠체어를 밀고 들어가? 아들 데리고 가서 앉아!”

반하준은 얼굴을 찡그렸다.

“옆에 앉으면 우리 아들이 무대를 볼 수가 없잖아. 가운데 앉을 거야.”

그렇게 말한 반하준은 직접 민이를 안은 뒤 휠체어를 옆으로 던지고 그대로 좌석 중앙으로 걸어가려 했다.

좌석 앞 통로는 좁았고 심은호가 계속 반하준의 앞을 가로막아 그를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착한 개는 주인의 길을 막지 않아, 심은호!”

반하준의 불쾌한 어투에는 강한 경고가 담겨 있었지만 심은호는 뒤돌아보지 않고 미소만 지으며 대답했다.

“난 착한 개가 아니라 사냥개거든.”

그들이 강민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을 때는 이미 윤세현이 강민아 옆 빈자리에 앉아 있었다.

반하준은 윤세현을 베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고 심은호는 강민아를 지나 정고은의 옆으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설윤이가 무대 뒤에서 힘들어하던데 가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심은호가 딸을 언급하자 정고은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볼게요.”

심은호는 정고은의 인사를 받으며 그녀의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그도 강민아 옆에 앉게 되었다.

반하준은 민이를 안은 채 큰 기둥처럼 옆에 서 있었고 칼처럼 날카로운 그의 눈썹이 부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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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26화

    명함을 쥐고 있던 반하준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뼈마디가 피부 아래에서 하얗게 드러났다.그의 손에 들린 건 심은호의 명함이 아니라 그가 내민 도전장이었다.반하준은 조롱하듯 피식 웃었다.“달이든 별이든 그딴 건 모르겠고, 남의 아내나 탐내면서 어디서 고상한 척이야?”심은호의 변호사 명함이 반하준의 길고 강한 손끝에서 공 모양으로 구겨졌다.반하준이 손을 펼치자 일그러진 명함이 손에서 툭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그는 발을 들어 올려 심은호의 명함을 짓밟았다.반하준은 손목을 보라는 듯 가리켰다.“이건 민아가 생일 선물로 준 예거 르쿨트르 울트라 씬 문 시계야.”그러면서 눈썹을 치켜올리며 강조했다. “여기 달 보여? 민아는 나한테 자기를 손목에 걸라고 했어.”심은호가 고개를 숙인 채 피식 웃었다. 반하준의 자랑이 그의 눈엔 한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본론이나 얘기하지.”심은호는 반하준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다리를 벌린 채 오만한 자세로 앉았다.반하준의 이목구비가 날카로운 선을 자랑하며 그가 고개를 치켜들고 먼저 입을 열었다.“반용화가 널 대리인으로 임명했다는 건 민아와 석현이를 구했다는 뜻인가? 상태가 어때? 경찰이 날 찾아오기 전까지 소방관이 구조하는 건 못 봤는데.”“반석현 상태가 궁금하면 네 삼촌에게 물어봐. 민아 씨 상태는 알려주기도 싫고 너도 물어볼 자격 없으니까.”심은호는 반하준에게 서류 더미를 건넸다.“반용화 씨는 방화범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야. 네 아들 반현민이 불을 지르라고 지시했으니 보호자인 네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지.”하관이 피투성이가 된 원지성이 힘겹게 말했다 “변호사님, 저... 전 몇 년형을 선고받나요?”심은호는 반하준을 응시하며 답했다.“10년 이상.”그 말을 들은 원지성은 두 다리가 덜덜 떨리더니 그대로 의자에서 미끄러져 기절해 버렸다.반하준은 경찰에게 말했다.“아들을 데리고 와서 진술하겠습니다. 학교 측 피해도 반씨 가문에서 책임지고 보상하죠. 다른 건 제 변호사가 알아서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25화

    혹시라도 말실수해서 반하준을 화나게 할까 봐 두려웠다.“도, 도련님께선 불을 지르면 강민아 씨와 대표님이 불길 속에 뛰어들어 구하러 올 거라고 했어요. 그 기회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원지성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애원하듯 말했다.“그런데 강당 꼭대기 층의 건축 자재에 방화 기능이 없을 줄은 몰랐어요. 대표님, 제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어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그때 한 경찰이 문을 열고 밖에서 말을 전했다.“반석현 보호자 반용화 씨 측 변호사가 도착했습니다.”경찰관의 말이 떨어지자 훤칠하고 반듯한 체격의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의자에 앉아 있던 반하준이 시선을 돌리자 잘생긴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게 보였다.회색 정장을 집은 심은호는 날카로운 눈매와 짙게 번뜩이는 눈동자를 자랑하며 거침없는 아우라를 드러냈다.반하준의 시선이 그의 왼쪽 가슴에 달린 공작 브로치로 향했다.그는 이내 소매를 접어 명품 시계를 들어냈다. 강민아가 그의 생일에 준 선물인데 언제인지는 잊어버렸다.사실 강민아가 해마다 준 선물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강나현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약에 취해 그를 덮치려 한 이후 구치소에 보내지 않은 것만으로 이미 그녀에게 큰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이젠 그녀의 연락처까지 전부 차단해 버렸다.눈 깜짝할 사이에 심은호가 그의 앞에 도착해 반하준에게 명함을 건넸다.“안녕하세요. 반용화 씨 소송 대리인 변호사입니다. 반석현이 강당에 갇힌 채 화재를 당한 사건을 담당하게 됐습니다.”반하준은 마치 왕좌에 앉은 듯 좌석 팔걸이에 두 손을 얹고 온몸으로 세상 모든 존재가 자신의 아래에 있는 듯 위엄 있는 아우라를 뿜어냈다.그는 손을 뻗어 심은호가 건넨 명함을 받았다.그와 심은호는 오랜 세월 알고 지냈지만 깊은 사이가 아니었고, 맹수처럼 만나면 서로를 견제하고 경계하기만 했다.게다가 일찌감치 심은호가 서경 안팎을 넘나든다는 걸 알아차렸고 한때는 심은호의 먹잇감이 된 듯한 착각도 들었다.심씨 가문 도련님은 언제든 그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24화

    반하준은 경찰서에 앉아 경찰이 제공한 감시카메라 영상을 보았다.영상 속 그의 비서는 강당 꼭대기 층에 가연성 물질을 놓고 불을 질렀다.불을 지른 비서는 반하준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그의 손은 은색 수갑으로 묶여 있었다.이 순간 반하준의 분노는 최고조에 달했고 얼굴이 날카롭게 굳어지며 어두운 눈동자는 섬뜩한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서의 멱살을 잡고 거세게 끌어당겼다.비서의 가슴이 책상 가장자리에 부딪히며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반하준의 눈빛에 책상 밑에 드리운 두 다리를 덜덜 떨었다.“대... 대표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경찰이 서둘러 다가와 반하준을 제압하며 상대의 멱살을 끌어당기는 그의 손을 제지하려 했다.“반하준 씨, 진정하세요.”“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남자가 거센 분노를 터뜨렸다.“내 아내가 너 때문에 불에 타서 죽어버렸어. 내가 어떻게 진정을 해!”반하준은 한 손이 경찰에게 잡히자 강제로 상대를 밀쳐내며 다른 한 손으로 비서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부숴버릴 듯 그의 얼굴을 책상에 짓이겼다.“으윽!”비서가 고통에 숨을 헐떡거리자 경찰 몇 명이 달려들어 반하준의 행동을 제지했다.“반 대표님, 진정하세요! 원지성 씨 자백에 따르면 아들인 반현민의 지시로 승덕 학교 강당에 불을 질렀답니다. 인명 피해는 없으나 심각한 안전 문제를 초래했는데... 아내분이 불에 타서 죽었다니요? 원지성 씨가 다른 살인 사건에 연루된 겁니까?”경찰관의 말을 들은 반하준은 멈칫하며 상대 경찰을 돌아보았다.“강당 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게 확실합니까?”경찰도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소방서에서 승덕 강당에 대한 2차 수색을 진행했지만 사상자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반하준의 동공에 차고 넘쳤던 살기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그는 비서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았고, 마치 오랫동안 물에 빠져있다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정신없이 신선한 공기를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23화

    “반석현은 왜 갇힌 거예요?”비서가 목소리를 낮추며 민이에게 물었다.“몰라요.”민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비서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반씨 가문의 경호원 중 한 명이 말렸다.“대표님, 우선 돌아가시죠. 소방관들이 강민아 씨와 석현 도련님을 구하면 제일 먼저 연락드릴게요.”반하준이 차갑게 소리쳤다.“난 여기서 기다릴 거야! 두 사람 보기 전에는 안 가!”“아빠, 엄마가 일부러 안 나오려고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무슨 헛소리야!”반하준의 칼날 같은 눈빛은 금방이라도 민이의 작은 몸을 난도질할 것 같았다. 민이는 그의 눈빛에 그대로 굳어버렸다.“반현민 데려가.”반하준은 지시를 내린 뒤 민이를 무시해 버렸다.“도련님, 집으로 가시죠.”민이는 반하준의 거대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로 앞에 있는데 저 멀리 떨어진 것 같았다.“아빠!”입술을 달싹이며 다시 반하준을 불렀지만 등을 돌린 반하준은 꿈쩍도 하지 않고 무시했다.매캐한 타는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우자 민이는 더 이상 숨을 쉬기 힘들어졌고 입과 코를 막은 채 기침을 했다.“가요.”어차피 엄마와 반석현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새벽녘, 강당 뒤쪽 하늘이 화염으로 붉게 물들어 있는 듯 보였다.소방관들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 끝에 강당의 불은 마침내 꺼졌다.어느새 아침 6시, 소방관들은 폐허 속에서 아직도 불길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반하준은 밤새 강당 밖 돌 벤치에 앉아 있었다.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깊숙이 구부린 채 아침 이슬이 입고 있던 검은 양복은 물론 머리카락과 눈썹까지 촉촉이 적셨다.발소리가 들리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충혈된 눈으로 검게 그을린 강당을 바라보았다.강당에서 소방관 몇 명이 나오는 것을 본 반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뒤늦게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아 몸이 뻣뻣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팔다리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일어났다.“사람 찾았어요?”밤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 그의 잠긴 목소리는 거칠었고 얼굴은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22화

    “석현이는 몇 월에 태어났어요?”반용화에게 물었지만 그는 이렇게만 답했다.“말하기 곤란해.”반석현의 신분, 생년월일은 전부 공개할 수 없는 비밀이라 강민아가 이렇게 말했다.“정이는 집에서 동생인데 석현이 누나 해도 될까? 정이 누나가 너 챙겨줄 거야. 어때?”“석현아, 다음에 다시 놀러 와.”“석현아, 나랑 정이가 너 엄청나게 기다렸어!”강민아의 따뜻한 목소리가 반석현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며 눈앞이 흐릿한 채 캐비닛에 쓰러졌다.그 순간 강민아는 머리 위에서 요란한 소리를 들었다.위층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손에 흐르는 피가 너무 끈적거려서 더 이상 머리핀을 잡을 수 없었던 그녀는 막무가내로 밧줄을 뜯고 반석현을 안고 나왔다.반석현이 그녀의 품에 들어오는 순간 두 사람의 심장이 높은 곳에서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그녀가 반석현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눈앞이 갑자기 흐려지며 앞을 볼 수가 없고 숨쉬기가 힘들었다.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둠이 눈앞의 빛을 삼켜버렸다.그렇게 뒤로 쓰러지며 의식을 잃은 순간, 키가 큰 인물이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강당 밖에서 반하준은 소방관들이 강당 건물에 난 불을 끄는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며 정신이 혼미해졌다.그의 부하들은 민이를 둘러싸고 민이에게 물을 건네거나 부채질을 해주었다.민이가 물을 다 마신 뒤 비서가 산소 호흡기를 건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도련님, 이제 괜찮으세요?”민이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불타고 있는 강당을 바라보았다.“엄마랑 반석현은 왜 아직도 안 나와요? 정말 안에서 죽은 거예요?”“닥쳐!”반하준이 살벌한 눈동자를 번뜩이며 낮게 윽박질렀다.경호원 중 한 명이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대표님, 연구원님께 어떻게 설명하죠?”반하준은 머릿속에 실타래가 마구 엉키고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을 느꼈다.화재 이후 지금까지 반용화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강민아는 아직 강당에서 나오지 않았고 그녀가 지금 불길 한가운데 있다면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21화

    민이는 자신을 돌보고 있던 비서에게 고개를 돌렸다.비서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무너진 강당 일부를 공포에 질려 바라보았다.갑자기 셔츠 자락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민이가 자신을 잡아당기고 있었다.민이의 뺨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축축한 얼굴엔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있었다.“엄마... 저기서 죽는 거예요?”민이는 비서에게 다시 물었고 비서는 발을 밟힌 듯 비명을 질렀다. “모르겠어요!”미리 강당을 살펴봤지만 오래된 상부 건물이 그가 지른 불에 이토록 쉽게 무너져 내릴 줄은 몰랐다.“그럴 리가 없어!”비서가 중얼거렸다. 그가 미리 알아본 바에 따르면 강당 꼭대기 층이 내화 재료로 만들어져 있어 그곳에 불을 지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가연성 물질이 다 타면 강당 내부의 불도 자연스럽게 꺼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비서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다.강당 최상층에 대한 건축 자재 보고서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누군가 가운데서 돈을 꿀꺽해 방화 재료 살 돈을 받고 실제로는 불량 재료를 사용한 것이다.원칙적으로 서경 일류 명문 학교인 승덕의 건축 설계와 자재는 전부 최상급이어야 하지만 교내 재정 예산이 많기 때문에 누군가 그 틈을 노리고 악행을 저질렀을 가능성 또한 높았다.그 생각에 비서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물에 푹 젖은 듯 머리카락이 땀에 축 늘어졌다....강당 내부에서 강민아는 머리핀을 힘껏 흔들어 마침내 매듭을 풀었다.“으윽!”반석현은 강민아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져 강민아가 서둘러 여기서 나가기를 바랐다. 이제 막 캐비닛에서 정신을 차린 그는 강당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강민아가 캐비닛을 열었을 때야 강당에 불이 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강민아의 옷이 얼굴을 감싸고 있어서 숨 쉬는 공기가 그다지 탁하지 않았지만, 강민아가 숨을 참느라 얼굴이 빨개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반석현의 두 눈에 눈물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20화

    심은호는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며 다른 곳에 통화를 연결했다.육성민에게 연락해 통화가 연결되자 그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어딨어요! 불경이라도 가지러 갔어요? 길가에 있는 할아버지도 벌써 지팡이 들고 불 끄러 갔겠네!”“닥쳐요!”육성민은 무언가를 뒤집어쓴 듯 목소리가 다소 어눌하게 들렸다.심은호는 그가 호흡 마스크를 쓰고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나 들어갑니다!”육성민은 한 마디만 전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강당 2층. 민이는 강민아의 휴대전화를 들고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그는 휴대폰 화면에 표시된 ‘심은호'라는 이름을 내려다보다가 바로 끊기 버튼을 눌렀다.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아이는 자신이 시켜서 지른 불이기에 비서가 반드시 무사할 정도로만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온몸으로 주변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민이는 젖은 손수건으로 막아도 불쾌한 냄새를 계속 맡을 수 있었다.민이는 당황한 나머지 계단을 내려와 강당 출입문 방향으로 달려갔다.강당 밖에는 소방차 4, 5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불을 끄고 있던 소방관들이 뛰어나오는 아이를 보고 달려와 감쌌다.“아빠!”민이는 울타리 밖에 서 있는 반하준을 보고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고 그제야 목소리가 쉬었다는 걸 깨달았다.민이의 외침을 들은 반하준은 경계선을 뜯어버리고 달려들었다.민이의 뒤를 돌아보았지만 민이를 따라 나오는 사람이 보이지 않자 반하준의 가슴은 물에 빠진 돌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강민아는?”그가 다급하게 묻는데 민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원망 섞인 어투로 말했다.“아직 안에 있어요.”반하준은 더욱 초조했다.“왜 아직도 안에 있어!”민이는 강민아가 준 손수건을 쥔 채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이 반하준과 똑 닮아 있었다.“반석현을 선택했으니까요!”민이는 화풀이를 하듯 소리를 질렀다.“날 버렸어요! 내가 친아들이 맞긴 해요?”민이가 흐느끼며 반하준에게 물었다.“왜 반석현만 챙기고 날 그냥 내버려둬요? 난 그냥 예전처럼 돌아가길 바랐던 건데!”굵직한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19화

    캐비닛에 있던 반석현은 민이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심은호도 전화기 너머로 민이의 말을 들었다.그는 한 손을 가슴 앞에 드리운 채 다른 손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차가운 눈빛으로 화면 속 영상에서 민이가 반석현을 방에 밀어 넣는 걸 지켜보았다.정이는 뒷좌석에서 두 손으로 앞쪽 의자 등받이에 손을 올린 채 눈을 크게 떴다. 어두운 눈동자가 속절없이 흔들렸다.“난 둘 다 살릴 거야!”민이는 강민아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소리를 질렀다.“아니요. 한 명만 선택할 수 있어요!”그는 손을 뻗어 강민아의 팔을 잡으며 집착과 애원이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엄마, 반석현은 괜찮을 거예요. 나랑 같이 여기서 나가요. 네? 같이 나가서 아빠랑 만나면 우리 가족은 다시 함께할 수 있어요.”강민아는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몸을 돌려 가방에서 머리핀을 꺼냈다. 머리핀을 밧줄의 매듭 사이로 넣는 데 집중한 나머지 민이가 말하는 소리를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며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다.“민아, 넌 먼저 가!”그녀는 아들에게 그 말만 반복했다.강민아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옷은 흠뻑 젖어 있었다.30초만 더 있으면 반석현을 가둔 밧줄을 풀 수 있었을 텐데!민이는 너무 화가 나서 발을 쿵쿵 굴렀다. “꼭 반석현을 구해야 해요? 엄마, 나 좀 봐요! 다리가 너무 아파서 못 걷겠어요. 나 좀 업어 줄래요?”눈가에서 떨어지는 땀이 강민아의 눈에 흘러들자 그녀는 손을 들어 따끔거리는 땀방울을 닦아냈다.민이는 연기가 너무 심해 참을 수 없어 콜록거렸다.더 세게 기침해 강민아의 관심을 끌고 싶었지만 이런 환경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혼자 불길 속에 몸을 던져 강민아가 구하러 오길 기다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생각을 바꿔 반석현을 묶어버린 거다.만약 강민아가 반석현을 포기하고 그를 더 걱정했다면 더 빨리 이곳을 떠났겠지만 강민아는 그를 실망하게 했다.강민아의 팔을 잡고 있던 민이의 작은 손이 미끄러지며 생존 본능에 이끌려 뒤로 물러났다.아이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18화

    민이는 멍하니 반석현의 몸을 옭아맨 밧줄을 끊어내려는 강민아를 바라보았다. 저 밧줄을 끊지 못하면 반석현은 캐비닛을 벗어날 수가 없다.반석현은 기침하지 않으려 참았고 강민아는 서둘러 옷을 벗어 텀블러에 남은 물로 적신 뒤 젖은 옷을 반석현의 머리에 둘러주며 코와 입을 막았다.옷이 반석현의 얼굴을 반쯤 가리자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만 불안에 잠식되어 밧줄을 풀려고 애쓰는 강민아를 바라보았다.“민아 씨, 이젠 나와야 해요!”스피커 모드로 돌린 휴대폰에서 심은호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렸다.2층 방에는 감시 카메라가 없어 차에 있던 심은호는 컴퓨터로 복도 카메라를 확인하고 있었다.강민아의 휴대폰으로 민이와의 대화를 듣고 현재 그녀의 처지를 판단했다.강민아와 통화하는 동시에 남자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카메라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았는데 2층의 카메라 기록이 사라졌다는 건 누군가 일부러 저장되지 않게끔 설정한 거다.하지만 카메라 칩에 백도어가 있어 감시 영상을 백업용으로 한 시간 동안 임시 저장할 수 있었다.컴퓨터 화면의 차가운 빛이 심은호의 잘생긴 얼굴을 비췄고, 그의 동공은 어두운 빛으로 덮여 있었다.그는 자신이 심어놓은 크롤러 프로그램이 강당 내부의 감시 영상을 컴퓨터로 전송할 때까지 기다렸다.그 시각 심은호의 휴대폰에서 강민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석현이가 갇혔어요. 심은호 씨는 우선 민이부터 강당 밖으로 안내해요!”강민아는 입을 여는 순간 매캐한 연기가 밀려와 콜록거렸다.공기 중 일산화탄소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고 이런 환경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지원 요청할 테니까 민이 데리고 먼저 나와요!”심은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강민아는 이를 악물고 밧줄을 끊느라 손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석현이를 두고 갈 수 없어요!”못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없는 거다. 반석현만 두고 민이와 함께 떠나는 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반석현에게 차마 여기서 기다리면 누군가 금방 구하러 올 거라는 말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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