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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作者: 복덩이
사실 오소정더러 강민아에게 전화하라고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이미 충분히 한발 물러선 반하준이었다.

“사모님께서 돌아오시지 않겠다고 했어요.”

“콜록콜록.”

커피를 마시다가 그만 사레가 들려 참지 못하고 기침했다. 오소정이 뭔가 눈치채고 물었다.

“두 분 혹시 싸우셨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반하준의 호통에 주방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겁에 질린 오소정은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반하준이 손에 든 머그컵을 꽉 쥐었다.

‘안 돌아올 리가 없는데? 지금쯤이면 점심에 회사로 가져올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

예전에 그가 화를 낼 때면 강민아는 직접 회사로 도시락을 가져와 화해를 청하곤 했었다.

...

식탁에 앉은 반우정이 아침상을 보고 두 눈을 번쩍 떴다.

“와. 닭죽이다.”

닭죽을 좋아하는 반우정과 달리 반현민은 닭죽만 보면 헛구역질을 했다.

반하준과 반현민 모두 죽을 좋아하지 않아 반씨 저택에 있을 땐 죽을 거의 끓이지 않았다.

연진숙은 죽이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라고 했었다. 쌀이 부족해서 죽으로 끓여 먹는 거라고 말이다. 반씨 가문 사람들은 삼시 세끼를 과학적인 영양 균형에 맞춰 섭취했다.

강민아는 죽도 영양아가 있고 아이들에게 먹이면 소화가 더 잘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에 닭고기와 야채 등을 넣으면 음식쓰레기 같다면서 혐오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반현민에게 먹이려고 야채죽을 끓여준 적이 있었는데 반현민이 먹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후로 다시는 죽을 끓이지 않았다.

반현민에게 음식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혼내자 반현민이 화를 내면서 따졌다.

“이건 돼지들이나 먹는 건데 어떻게 나한테 먹일 수 있어요? 역시 엄마는 촌뜨기라니까요.”

옛 생각에 강민아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반우정은 벌써 닭죽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러고는 트림하면서 설거지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깨끗해진 그릇을 아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할머니 집에 와야만 닭죽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강민아가 대답했다.

“이제부턴 우리가 먹고 싶은 거 먹을 거야. 다른 사람들 신경 쓸 필요 없어.”

반우정이 말했다.

“그럼 내일은 밥하지 말고 쉬세요. 우리 나가서 사 먹어요.”

그 말에 강민아는 흠칫 놀랐다. 엄마라는 역할이 몸에 배어 딸을 위해 아침을 만드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보다 그녀의 삶이 먼저인데.

“그래.”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마치 따스한 햇살 같았다.

...

강민아는 반우정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다가 반씨 가문의 최고급 컬리넌을 보았다. 반현민이 가방을 메고 차에서 내리는 걸 본 순간 강민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반현민이 반우정에게 깡충깡충 뛰어오더니 손에 든 봉지를 흔들었다.

“이것 봐봐. 현이 형이 사 준 왁스 병 캔디야.”

반현민이 곰돌이 머리 모양의 왁스 병 캔디를 꺼내 자랑했다.

“피스타치오 라즈베리 맛이야.”

반우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단 거 많이 먹으면 충치 생기고 왁스 병 캔디도 몸에 좋지 않다고 했어.”

반현민이 혀를 날름 내밀면서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난 새엄마가 생겨서 옛날 엄마는 간섭하지 못해.”

그러더니 입을 삐죽거리면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현이 형이 왁스 병 캔디를 다른 친구들한테도 나눠 주래. 근데 너한테는 안 줄 거야, 이 뚱보야.”

선천적으로 허약한 반현민과 달리 반우정은 몸이 튼튼해서 반현민보다 덩치가 커 보였다.

예전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반우정에게 별명을 붙여선 안 된다고 반현민을 혼냈지만 지금은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고 마음대로 행동했다.

반우정이 두 손으로 가방끈을 꽉 잡았다.

“민아, 너 계속 이러면 엄마가 진짜 널 버릴지도 몰라.”

“내가 엄마를 버렸어. 돼지 먹이나 만드는 엄마를 누가 좋아하겠어?”

반현민이 봉지를 들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너무도 화가 난 반우정이 어린이집 문 앞에 놓인 작은 돌덩이를 들어 올리고 반현민의 뒷모습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결국 다시 내려놓았다.

반우정이 가슴을 치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여자애는 이러면 안 돼. 참아야지.”

...

반하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고급스러운 3단 도시락을 보고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무조건 도시락을 싸서 사무실로 가져오더라고.’

그때 휴대폰이 울려 반하준이 전화를 받았다.

“하준 씨, 점심 먹고 있어? 내가 만든 도시락 어때? 맛있어?”

휴대폰 너머로 강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만든 거야?”

그의 두 눈에 그도 미처 깨닫지 못한 불쾌감이 스쳐 지나갔다.

“응. 놀랐지? 처음 요리해서 손가락도 몇 군데나 베였어. 요리는 정말 나랑 안 맞아.”

강나현은 불평을 몇 마디 쏟아낸 후 반하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만들어준 점심 소중하게 생각해. 앞으로 다시는 안 할 거야.”

반하준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알았어. 바쁘니까 끊어.”

“하하하. 친구로서 충고하는데 바빠도 화장실 가는 거 잊지 마. 그러다 신장 약해진다.”

그는 전화를 끊고 눈앞의 도시락을 내려다보았다. 웬일인지 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반하준이 비서를 불러 물었다.

“우리 와이프 오늘 점심 가져왔어?”

“아니요. 사모님 오늘 회사에 안 오셨습니다.”

반하준의 잘생긴 얼굴에 차가운 냉기가 감돌더니 비서에게 말했다.

“이 도시락 네가 먹어. 와이프가 점심 가져오면 내가 이미 먹었으니까 다시 가져가라고 해.”

놀라서 딸꾹질까지 하던 비서는 감히 더 묻지 못하고 도시락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반하준은 점심부터 오후까지 강민아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회의실, 반하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민아의 전화를 세 통째 끊고 있었다.

‘또 하지 말라는 짓을 하네? 분명 근무시간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잠시 후 강민아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반하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 먹었으니까 도시락 가져올 필요 없어.”

“반하준 씨, 난 법원에 도착했는데 당신은 어디야?”

반하준이 화들짝 놀랐다. 그제야 오늘 오후 3시에 법원에서 만나자고 했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진심이었던 거야?’

저도 모르게 짜증이 확 밀려왔다.

“강민아, 적당히 해. 대체 언제까지 이혼 소리를 입에 달고 살 거야?”

하지만 강민아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당신이 퇴근할 때까지 법원에서 기다릴게.”

반하준이 버럭 화를 냈다.

“나랑 헤어지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18년 만에 찾은 딸이 집에서 놀고먹으면 네 친정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회의실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고위 임원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강민아의 목소리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차가웠다.

“반하준 씨, 당신과 헤어지면 난 더 이상 사모님이 아니겠지. 난 단지 강민아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만약 강씨 가문에서 날 원하지 않는다면 원래 성으로 바꿀 거고. 당신이랑 같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나만 당신을 사랑하고 아들을 사랑하잖아...”

그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상에 우리 결혼만큼 험난한 길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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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7화

    “반씨 가문에서 대충 한 시간 전에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지금 감시 카메라 영상을 확인 중이야. 반씨 가문 쪽에서는 아직 너한테 연락 안 했지?”“난 더 이상 민이 엄마가 아니야. 반씨 가문에서 나한테 연락할 리도 없고 나한테 연락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 거야.”강민아는 자조적으로 말하며 마음속으로 짜증이 밀려왔다.“반하준과 민이가 교실을 떠나는 걸 내가 직접 봤어! 그런데 갑자기 민이가 실종됐다니?”무의식적으로 언성을 높이자 고요한 밤에 강민아의 목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육성민의 목소리가 강민아의 귀에 들려왔다.“말로는 반하준이 아들과 함께 학교를 나선 게 아니라 학교를 떠나기 전에 반현민을 기사에게 맡기고 회사로 갔대. 내가 입수한 진술서에 따르면 민이를 태운 차량 운전기사는 민이가 놀이공원에 가자고 떼를 쓰니 감당할 수 없어서 반하준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얻은 뒤 민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는 민이가 보이지 않으니 놀이공원에서 40분 넘게 찾다가 경찰에 신고했어.”꽉 움켜쥔 탓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강민아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그녀는 혼란 속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분명 숨어 있는 거야. 민이는 항상 그래. 화가 나면 일부러 숨어서 소리도 안 내고 반씨 가문의 모든 도우미가 찾아 헤매게 만들어.”“경찰이 이미 놀이공원을 샅샅이 수색했고 반씨 가문에서 사설 경호원까지 동원했지만 벌써 실종된 지 3시간이나 지났어. 수색 범위를 넓히는 중이야.”육성민의 말투는 평온했지만 연이어 들리는 소식에 강민아의 숨이 가빠졌다.걱정과 분노가 뒤섞였다.“민아야.”육성민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강민아는 정신을 차리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오빠, 경찰 쪽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가 무슨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줘.”민이의 양육권은 없어도 자신이 직접 배 아프게 낳은 자식이었다.“알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당황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 계획된 납치 사건일 수도 있으니까 절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6화

    “아가씨들, 차에 타시죠.”심은호는 매우 신사적으로 강민아와 정이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정이가 먼저 차에 오르며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정중하게 심은호를 향해 말했다.“고맙습니다.”정이는 심은호가 남들처럼 단순히 어린 애로만 여기지 않고 똑같이 어른처럼 대해줘서 좋았다. 덕분에 본인도 성숙한 사람으로서 대접과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강민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정이가 심은호 덕분에 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은색 스포츠카가 짙어가는 어스름을 가르고 강민아의 아파트를 향해 부드럽게 달렸다.차 안에는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정이는 하루 종일 놀며 이런저런 감정 기복을 겪은 탓에 어린이용 안전 시트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강민아는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민이가 마지막으로 보였던 눈물 가득한 얼굴과 실망과 기대가 교차한 눈빛, 문을 박차고 나갈 때의 단호한 뒷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문질렀다.“왜 그래요?”심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백미러로 보지 않아도 강민아의 기분이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오늘 활동에서 반하준과 민이가 둘 다 일찍 나갔어요.”강민아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심은호에게 전했다.“유치하고 참을성 없고 성격 급한 게 3살짜리 애나 다름없어요.”그녀는 반하준을 욕하고 있었다.“민이가 그런 환경에서...”강민아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침묵을 선택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내뱉기엔 마음이 아팠다.“반하준은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체면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죠. 특히 자신의 체면을 깎아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그렇죠.”심은호의 말투에는 미묘한 조롱이 담겨 있었다.“설령 그게 자기 친아들이라도 말이에요.”강민아는 침묵했다. 심은호의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본능 때문에 차분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차량은 곧 강민아가 사는 고급 아파트 아래에 도착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5화

    심은호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불어오는 저녁 바람 속에서 나른하면서도 매혹적인 울림을 띠었다.그의 시선이 아주 자연스럽게 강민아에게 향하며 미소는 더욱 깊어졌다.“민아 씨 데리러 왔죠.”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전류가 바지직거리는 듯했다.안채린은 심은호가 강민아를 대놓고 감싸며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과 반석현이 자신에게 보이는 냉담함을 비교하니 치솟는 질투의 불길이 이성을 태워버릴 듯했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유지하면서도 목소리는 날카로워졌다.“심 대표님과 강 대표님은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강민아는 이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심은호가 가까이 다가오며 전하는 따뜻한 숨결과 반용화 쪽에서 보내오는 평온하지만 존재감이 극도로 강한 시선을 느꼈다.안채린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강 대표님이 무슨 수를 쓴 건지 우리 석현이가 참 잘 따르네요. 용화 씨, 잘 지켜봐요. 석현이가 이상한 사람들을 따라 배우면 안 되니까...”“안채린.”반용화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차가운 위엄을 띠고 있어 미처 뱉지 못한 날카로운 말을 막아버렸다.그는 고개를 들어 안채린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이전의 무심함이 사라지고 예리한 비난이 담겨 있었다.“말조심해.”안채린은 반용화의 시선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남은 말이 목구멍에 걸려버렸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시도 때도 없이 변했다.심은호는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생긴 듯 웃으며 불을 지폈다.“선생님 애인이 말을 심하게 하네요. 우리 민아 씨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심 대표님!”안채린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반용화의 꾸지람을 듣고 심은호의 비아냥까지 들려오자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반용화는 심은호에 대꾸하는 대신 강민아를 바라보며 평소처럼 평온한 어투로 말했다. 안채린에게 말할 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목소리였다.“오늘 고마웠어.”강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석현이 데리고 집에 놀러 와요.”심은호가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4화

    석양의 여운이 학교의 하얀 외벽에 따뜻한 금빛 테를 드리웠다.행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듯 들뜬 모습으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차례로 정문을 나섰고, 웃음소리와 작별 인사가 어우러져 따뜻한 활기를 띠었다.강민아는 반용화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정이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아이는 여전히 흥분한 채 조금 전 투표하던 것에 대해 재잘거리고 있었다.정이와 반석현은 손을 맞잡았다. 정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석현은 고개를 들어 정이를 바라보다가 강민아의 반응을 살폈다.반용화의 차가운 시선이 두 아이에게 머물렀다.그들이 학교 정문에 다다라 작별 인사를 하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멀리서 다가오며 여자의 의도적으로 다정한 척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석현아, 이모가 데리러 왔어!”강민아가 고개를 들자 안채린이 샤넬 정장을 차려입고 정교한 화장을 한 채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이마에 미세한 땀방울까지 맺혀 있는걸 봐서는 급하게 온 모양이었다.그녀는 복잡한 눈빛으로 강민아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경계심과 미묘한 질투가 섞여 있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혀 반석현의 손을 잡으려 했다.“석현아, 네가 1등을 했다며? 정말 잘했어. 자, 이모랑 같이 집으로 가서 제대로 축하하자.”그러나 반석현은 그녀가 손을 뻗는 순간 작은 몸을 뒤로 움츠리며 강민아 뒤로 숨었다.아이는 온몸을 강민아 뒤에 숨긴 채 다가갈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고 작은 손으로 어느새 강민아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안채린의 미소는 굳어졌고 허공에 뻗었던 손은 어색하게 그대로 멈춰 있었다.그녀의 눈빛에 민망함과 짜증이 스쳤다. 몸을 일으키며 내뱉는 말에는 감지하기 어려운 원망이 묻어났다.“용화 씨, 석현이 좀 봐요. 나랑 점점 더 거리를 두잖아요. 엄연히 내가 친이모인데.”반용화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석현이 성격이 그런 거니까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잘 대해줘.”이 말은 안채린의 귀에 오히려 비난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3화

    활동실에 있는 반석현은 천천히 시상대에 올랐다. 늘 사람들 뒤에 숨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기에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런데 조명 아래 서자 뚜렷한 이목구비와 긴 속눈썹이 빛에 비쳐 얼굴에 길게 드리워졌다. 게다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를 본 학부모와 아이들은 모두 일제히 숨을 들이쉬었다.반석현이 당당하게 그들 앞에 선 후에야 그들은 반석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비로소 이 아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알았다.“반석현, 작은 천사 같아!”아이들은 어느새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그러나 활동실 내 밝은 조명과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반석현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해 본능적으로 도피하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고개를 들어 강민아와 반우정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선생님이 작은 트로피를 반석현에게 건네자 반석현은 두 손을 받은 뒤 선생님에게 인사했다.주임 교사는 몸을 낮추어 반석현에게 물었다.“석현아, 1등 해서 기쁘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어?”반석현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는 반석현의 신체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이 닫혀버려 외부와 소통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임도 잘 알고 있었다.반석현이 시상대에 올라 상을 받겠다고 했을 때 주임 교사는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그래서 반석현이 입을 열기를 기대했다.몸이 살짝 굳은 반석현은 재빨리 무대 아래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본 후 고개를 푹 숙였다. 안색은 더욱 창백해진 듯했다.마지막 희망을 움켜쥐듯 품에 있던 휴대폰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뭔가 말을 해야 할까?’작은 트로피를 받았기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반석현의 흰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스쳤다.약간 긴장한 탓인지 동작이 평소보다 더 힘차게 움직였다.몇 초 후 화면을 들어 모든 사람을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2화

    거부하듯 머리를 저은 반석현은 반용화의 휠체어 팔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그러더니 도움을 청하듯 반용화를 바라보았지만 반용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깊은 눈빛으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아주 침착하게 재촉하는 기색 하나 없이 말이다.주변에 있던 어떤 아이들은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반석현은 상 받으러 갈 용기도 없나 봐.”“반석현은 괴짜야!”자리하고 있는 학부모들도 당연히 반석현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한 학부모는 함부로 말하는 자기 아이의 입을 급히 막았다.“석현아, 어서 상 받으러 가!”반우정이 반석현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자세를 낮추어 반석현과 눈높이를 맞춘 강민아는 매우 부드러운 목소리로 격려하듯 한마디 했다.“석현아, 저기 봐봐. 네가 만든 찹쌀떡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 이건 모두가 너를 인정해 준 거야. 정말 대단해. 혼자서도 갈 수 있지? 아까 찹쌀떡을 만들 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가면 돼, 괜찮아.”반우정이 옆에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석현아! 너는 이 세상에서 제일 용감해!”강민아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반석현을 바라보며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민아 이모가 상 받으러 함께 가 줄까?”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린 반석현은 시상대 위 반짝이는 메달과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번갈아 보았다. 눈빛에는 여전히 약간의 두려움이 남아 있었지만 당황스러움은 점차 사라지고 어느새 용기가 생긴 듯했다.반석현은 강민아에게서 응원의 힘을 전달받으려는 듯 손을 뻗어 강민아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그러고는 휴대폰에 몇 글자 입력하여 강민아에게 보여주었다.[저 혼자 할 수 있어요.]얼굴에 미소가 가득 피어오른 강민아는 바로 반석현에게 대답했다.“그래, 석현아. 용기 내어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돼.”깊게 숨을 들이쉰 반석현은 마침내 휠체어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그러고는 그 누구의 손도 잡지 않은 채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두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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