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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복덩이
사실 오소정더러 강민아에게 전화하라고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이미 충분히 한발 물러선 반하준이었다.

“사모님께서 돌아오시지 않겠다고 했어요.”

“콜록콜록.”

커피를 마시다가 그만 사레가 들려 참지 못하고 기침했다. 오소정이 뭔가 눈치채고 물었다.

“두 분 혹시 싸우셨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반하준의 호통에 주방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겁에 질린 오소정은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반하준이 손에 든 머그컵을 꽉 쥐었다.

‘안 돌아올 리가 없는데? 지금쯤이면 점심에 회사로 가져올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

예전에 그가 화를 낼 때면 강민아는 직접 회사로 도시락을 가져와 화해를 청하곤 했었다.

...

식탁에 앉은 반우정이 아침상을 보고 두 눈을 번쩍 떴다.

“와. 닭죽이다.”

닭죽을 좋아하는 반우정과 달리 반현민은 닭죽만 보면 헛구역질을 했다.

반하준과 반현민 모두 죽을 좋아하지 않아 반씨 저택에 있을 땐 죽을 거의 끓이지 않았다.

연진숙은 죽이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라고 했었다. 쌀이 부족해서 죽으로 끓여 먹는 거라고 말이다. 반씨 가문 사람들은 삼시 세끼를 과학적인 영양 균형에 맞춰 섭취했다.

강민아는 죽도 영양아가 있고 아이들에게 먹이면 소화가 더 잘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에 닭고기와 야채 등을 넣으면 음식쓰레기 같다면서 혐오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반현민에게 먹이려고 야채죽을 끓여준 적이 있었는데 반현민이 먹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후로 다시는 죽을 끓이지 않았다.

반현민에게 음식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혼내자 반현민이 화를 내면서 따졌다.

“이건 돼지들이나 먹는 건데 어떻게 나한테 먹일 수 있어요? 역시 엄마는 촌뜨기라니까요.”

옛 생각에 강민아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반우정은 벌써 닭죽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러고는 트림하면서 설거지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깨끗해진 그릇을 아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할머니 집에 와야만 닭죽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강민아가 대답했다.

“이제부턴 우리가 먹고 싶은 거 먹을 거야. 다른 사람들 신경 쓸 필요 없어.”

반우정이 말했다.

“그럼 내일은 밥하지 말고 쉬세요. 우리 나가서 사 먹어요.”

그 말에 강민아는 흠칫 놀랐다. 엄마라는 역할이 몸에 배어 딸을 위해 아침을 만드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보다 그녀의 삶이 먼저인데.

“그래.”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마치 따스한 햇살 같았다.

...

강민아는 반우정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다가 반씨 가문의 최고급 컬리넌을 보았다. 반현민이 가방을 메고 차에서 내리는 걸 본 순간 강민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반현민이 반우정에게 깡충깡충 뛰어오더니 손에 든 봉지를 흔들었다.

“이것 봐봐. 현이 형이 사 준 왁스 병 캔디야.”

반현민이 곰돌이 머리 모양의 왁스 병 캔디를 꺼내 자랑했다.

“피스타치오 라즈베리 맛이야.”

반우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단 거 많이 먹으면 충치 생기고 왁스 병 캔디도 몸에 좋지 않다고 했어.”

반현민이 혀를 날름 내밀면서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난 새엄마가 생겨서 옛날 엄마는 간섭하지 못해.”

그러더니 입을 삐죽거리면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현이 형이 왁스 병 캔디를 다른 친구들한테도 나눠 주래. 근데 너한테는 안 줄 거야, 이 뚱보야.”

선천적으로 허약한 반현민과 달리 반우정은 몸이 튼튼해서 반현민보다 덩치가 커 보였다.

예전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반우정에게 별명을 붙여선 안 된다고 반현민을 혼냈지만 지금은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고 마음대로 행동했다.

반우정이 두 손으로 가방끈을 꽉 잡았다.

“민아, 너 계속 이러면 엄마가 진짜 널 버릴지도 몰라.”

“내가 엄마를 버렸어. 돼지 먹이나 만드는 엄마를 누가 좋아하겠어?”

반현민이 봉지를 들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너무도 화가 난 반우정이 어린이집 문 앞에 놓인 작은 돌덩이를 들어 올리고 반현민의 뒷모습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결국 다시 내려놓았다.

반우정이 가슴을 치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여자애는 이러면 안 돼. 참아야지.”

...

반하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고급스러운 3단 도시락을 보고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무조건 도시락을 싸서 사무실로 가져오더라고.’

그때 휴대폰이 울려 반하준이 전화를 받았다.

“하준 씨, 점심 먹고 있어? 내가 만든 도시락 어때? 맛있어?”

휴대폰 너머로 강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만든 거야?”

그의 두 눈에 그도 미처 깨닫지 못한 불쾌감이 스쳐 지나갔다.

“응. 놀랐지? 처음 요리해서 손가락도 몇 군데나 베였어. 요리는 정말 나랑 안 맞아.”

강나현은 불평을 몇 마디 쏟아낸 후 반하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만들어준 점심 소중하게 생각해. 앞으로 다시는 안 할 거야.”

반하준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알았어. 바쁘니까 끊어.”

“하하하. 친구로서 충고하는데 바빠도 화장실 가는 거 잊지 마. 그러다 신장 약해진다.”

그는 전화를 끊고 눈앞의 도시락을 내려다보았다. 웬일인지 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반하준이 비서를 불러 물었다.

“우리 와이프 오늘 점심 가져왔어?”

“아니요. 사모님 오늘 회사에 안 오셨습니다.”

반하준의 잘생긴 얼굴에 차가운 냉기가 감돌더니 비서에게 말했다.

“이 도시락 네가 먹어. 와이프가 점심 가져오면 내가 이미 먹었으니까 다시 가져가라고 해.”

놀라서 딸꾹질까지 하던 비서는 감히 더 묻지 못하고 도시락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반하준은 점심부터 오후까지 강민아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회의실, 반하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민아의 전화를 세 통째 끊고 있었다.

‘또 하지 말라는 짓을 하네? 분명 근무시간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잠시 후 강민아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반하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 먹었으니까 도시락 가져올 필요 없어.”

“반하준 씨, 난 법원에 도착했는데 당신은 어디야?”

반하준이 화들짝 놀랐다. 그제야 오늘 오후 3시에 법원에서 만나자고 했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진심이었던 거야?’

저도 모르게 짜증이 확 밀려왔다.

“강민아, 적당히 해. 대체 언제까지 이혼 소리를 입에 달고 살 거야?”

하지만 강민아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당신이 퇴근할 때까지 법원에서 기다릴게.”

반하준이 버럭 화를 냈다.

“나랑 헤어지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18년 만에 찾은 딸이 집에서 놀고먹으면 네 친정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회의실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고위 임원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강민아의 목소리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차가웠다.

“반하준 씨, 당신과 헤어지면 난 더 이상 사모님이 아니겠지. 난 단지 강민아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만약 강씨 가문에서 날 원하지 않는다면 원래 성으로 바꿀 거고. 당신이랑 같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나만 당신을 사랑하고 아들을 사랑하잖아...”

그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상에 우리 결혼만큼 험난한 길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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