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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or: 복덩이
사실 오소정더러 강민아에게 전화하라고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이미 충분히 한발 물러선 반하준이었다.

“사모님께서 돌아오시지 않겠다고 했어요.”

“콜록콜록.”

커피를 마시다가 그만 사레가 들려 참지 못하고 기침했다. 오소정이 뭔가 눈치채고 물었다.

“두 분 혹시 싸우셨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반하준의 호통에 주방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겁에 질린 오소정은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반하준이 손에 든 머그컵을 꽉 쥐었다.

‘안 돌아올 리가 없는데? 지금쯤이면 점심에 회사로 가져올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

예전에 그가 화를 낼 때면 강민아는 직접 회사로 도시락을 가져와 화해를 청하곤 했었다.

...

식탁에 앉은 반우정이 아침상을 보고 두 눈을 번쩍 떴다.

“와. 닭죽이다.”

닭죽을 좋아하는 반우정과 달리 반현민은 닭죽만 보면 헛구역질을 했다.

반하준과 반현민 모두 죽을 좋아하지 않아 반씨 저택에 있을 땐 죽을 거의 끓이지 않았다.

연진숙은 죽이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라고 했었다. 쌀이 부족해서 죽으로 끓여 먹는 거라고 말이다. 반씨 가문 사람들은 삼시 세끼를 과학적인 영양 균형에 맞춰 섭취했다.

강민아는 죽도 영양아가 있고 아이들에게 먹이면 소화가 더 잘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에 닭고기와 야채 등을 넣으면 음식쓰레기 같다면서 혐오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반현민에게 먹이려고 야채죽을 끓여준 적이 있었는데 반현민이 먹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후로 다시는 죽을 끓이지 않았다.

반현민에게 음식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혼내자 반현민이 화를 내면서 따졌다.

“이건 돼지들이나 먹는 건데 어떻게 나한테 먹일 수 있어요? 역시 엄마는 촌뜨기라니까요.”

옛 생각에 강민아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반우정은 벌써 닭죽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러고는 트림하면서 설거지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깨끗해진 그릇을 아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할머니 집에 와야만 닭죽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강민아가 대답했다.

“이제부턴 우리가 먹고 싶은 거 먹을 거야. 다른 사람들 신경 쓸 필요 없어.”

반우정이 말했다.

“그럼 내일은 밥하지 말고 쉬세요. 우리 나가서 사 먹어요.”

그 말에 강민아는 흠칫 놀랐다. 엄마라는 역할이 몸에 배어 딸을 위해 아침을 만드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보다 그녀의 삶이 먼저인데.

“그래.”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마치 따스한 햇살 같았다.

...

강민아는 반우정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다가 반씨 가문의 최고급 컬리넌을 보았다. 반현민이 가방을 메고 차에서 내리는 걸 본 순간 강민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반현민이 반우정에게 깡충깡충 뛰어오더니 손에 든 봉지를 흔들었다.

“이것 봐봐. 현이 형이 사 준 왁스 병 캔디야.”

반현민이 곰돌이 머리 모양의 왁스 병 캔디를 꺼내 자랑했다.

“피스타치오 라즈베리 맛이야.”

반우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단 거 많이 먹으면 충치 생기고 왁스 병 캔디도 몸에 좋지 않다고 했어.”

반현민이 혀를 날름 내밀면서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난 새엄마가 생겨서 옛날 엄마는 간섭하지 못해.”

그러더니 입을 삐죽거리면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현이 형이 왁스 병 캔디를 다른 친구들한테도 나눠 주래. 근데 너한테는 안 줄 거야, 이 뚱보야.”

선천적으로 허약한 반현민과 달리 반우정은 몸이 튼튼해서 반현민보다 덩치가 커 보였다.

예전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반우정에게 별명을 붙여선 안 된다고 반현민을 혼냈지만 지금은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고 마음대로 행동했다.

반우정이 두 손으로 가방끈을 꽉 잡았다.

“민아, 너 계속 이러면 엄마가 진짜 널 버릴지도 몰라.”

“내가 엄마를 버렸어. 돼지 먹이나 만드는 엄마를 누가 좋아하겠어?”

반현민이 봉지를 들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너무도 화가 난 반우정이 어린이집 문 앞에 놓인 작은 돌덩이를 들어 올리고 반현민의 뒷모습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결국 다시 내려놓았다.

반우정이 가슴을 치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여자애는 이러면 안 돼. 참아야지.”

...

반하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고급스러운 3단 도시락을 보고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무조건 도시락을 싸서 사무실로 가져오더라고.’

그때 휴대폰이 울려 반하준이 전화를 받았다.

“하준 씨, 점심 먹고 있어? 내가 만든 도시락 어때? 맛있어?”

휴대폰 너머로 강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만든 거야?”

그의 두 눈에 그도 미처 깨닫지 못한 불쾌감이 스쳐 지나갔다.

“응. 놀랐지? 처음 요리해서 손가락도 몇 군데나 베였어. 요리는 정말 나랑 안 맞아.”

강나현은 불평을 몇 마디 쏟아낸 후 반하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만들어준 점심 소중하게 생각해. 앞으로 다시는 안 할 거야.”

반하준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알았어. 바쁘니까 끊어.”

“하하하. 친구로서 충고하는데 바빠도 화장실 가는 거 잊지 마. 그러다 신장 약해진다.”

그는 전화를 끊고 눈앞의 도시락을 내려다보았다. 웬일인지 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반하준이 비서를 불러 물었다.

“우리 와이프 오늘 점심 가져왔어?”

“아니요. 사모님 오늘 회사에 안 오셨습니다.”

반하준의 잘생긴 얼굴에 차가운 냉기가 감돌더니 비서에게 말했다.

“이 도시락 네가 먹어. 와이프가 점심 가져오면 내가 이미 먹었으니까 다시 가져가라고 해.”

놀라서 딸꾹질까지 하던 비서는 감히 더 묻지 못하고 도시락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반하준은 점심부터 오후까지 강민아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회의실, 반하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민아의 전화를 세 통째 끊고 있었다.

‘또 하지 말라는 짓을 하네? 분명 근무시간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잠시 후 강민아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반하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 먹었으니까 도시락 가져올 필요 없어.”

“반하준 씨, 난 법원에 도착했는데 당신은 어디야?”

반하준이 화들짝 놀랐다. 그제야 오늘 오후 3시에 법원에서 만나자고 했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진심이었던 거야?’

저도 모르게 짜증이 확 밀려왔다.

“강민아, 적당히 해. 대체 언제까지 이혼 소리를 입에 달고 살 거야?”

하지만 강민아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당신이 퇴근할 때까지 법원에서 기다릴게.”

반하준이 버럭 화를 냈다.

“나랑 헤어지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18년 만에 찾은 딸이 집에서 놀고먹으면 네 친정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회의실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고위 임원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강민아의 목소리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차가웠다.

“반하준 씨, 당신과 헤어지면 난 더 이상 사모님이 아니겠지. 난 단지 강민아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만약 강씨 가문에서 날 원하지 않는다면 원래 성으로 바꿀 거고. 당신이랑 같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나만 당신을 사랑하고 아들을 사랑하잖아...”

그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상에 우리 결혼만큼 험난한 길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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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9화

    처음에 그의 눈빛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그러나 자신이 갇혀 있는 비좁은 공간과 구석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두 아이를 발견한 순간, 동공이 바늘구멍만 하게 수축했다.남자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두 손이 묶여 있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쿵 하고 나동그라졌다.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정이와 반석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의 얼굴 근육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충격과 황당함, 그리고 모든 게 끝장났다는 절망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너희...”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목구멍에서 떨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너희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그때 화물칸이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정이가 포탄처럼 튀어 나갔다.아직 어린아이였지만, 강민아를 닮아 체격이 다부진 편이었다. 평소 엄마를 따라 요가도 하고 여기저기 뛰어놀며 자란 덕분에 작은 몸에는 힘이 넘쳐흘렀다.게다가 지금은 아드레날린까지 솟구치는 상황이었다.정이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방금 정신을 차린 남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대로 남자의 허리 위에 거칠게 내려앉았다.“으윽!”두 손이 묶인 남자는 제대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마치 작은 산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간신히 일으켰던 상체가 다시 쾅 소리를 내며 철판 바닥에 처박혔다.차갑고 더러운 화물칸 바닥에 얼굴이 짓눌리자 코끝으로 지독한 쇠 냄새가 밀려들었다.정이는 두 다리를 벌려 말을 타듯 남자의 등 위에 올라탔다.그녀는 작은 두 손으로 남자의 뒷덜미를 있는 힘껏 움켜쥐고 머리를 바닥에 짓눌렀다.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관자놀이에는 핏줄까지 불거졌다. 정이는 이를 악물고는 낮고 매서운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움직이지 마. 이 나쁜 사람아. 또 움직이면 때릴 거야.”남자는 놀라움과 분노에 휩싸여, 굴욕감에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40여 년을 살아온 그가 고작 다섯 살짜리 꼬맹이에게 깔려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것도 이렇게 볼썽사나운 꼴로 말이다.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8화

    달리던 차가 갑자기 덜컥 멈춰 섰다. 타이어가 바닥을 긁으며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관성에 밀린 정이와 반석현은 뒤쪽 철제 벽에 세게 부딪혔다.반석현이 낮게 신음하자, 정이는 다급히 반석현을 끌어안고 그의 머리를 제 어깨에 파묻었다. 벽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두 사람이 미처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엔진이 꺼졌다.세상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차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이름 모를 벌레 울음소리만 남았다.‘벌써 도착한 거야?’두 사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끼익.짐칸 뒷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더니, 눈부신 햇빛 한 줄기가 칼날처럼 안으로 파고들었다.정이는 눈이 부셔 가늘게 뜬 채 방수포 틈으로 밖을 내다봤다.운전석 쪽에서 회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남자는 다른 사람 하나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는 등에 업힌 사람을 거칠게 짐칸 안으로 내던졌다.쿵!정신을 잃은 남자가 짐칸 안으로 굴러떨어지며 이마를 바닥에 부딪쳤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정이는 놀라 온몸을 움찔했다. 반석현은 재빨리 정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두 사람은 숨조차 멈춘 채 꼼짝하지 않았다.운전자는 문밖에 서 있었다. 역광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케이블 타이를 꺼내 짐칸에 쓰러진 남자의 두 팔을 등 뒤로 꺾어 단단히 묶는 모습만 보였다.그러고는 발로 남자를 걷어차 짐칸 안쪽으로 밀어 넣은 뒤, 문을 거칠게 닫았다.찰칵.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짧고 선명하게 울렸다.다음 순간 엔진이 다시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차체가 크게 한 번 떨리더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자갈길을 짓밟으며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어둠이 다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짐칸 안에 건장한 성인 남자 한 명이 더 늘어나자, 공기마저 한층 답답해진 듯했다.기름 냄새와 곰팡내가 뒤섞인 공기 사이로 희미한 피비린내까지 스며들었다.정이와 반석현은 방수포 아래에서 몸을 굳힌 채 서로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7화

    눈이 부실 만큼 강한 손전등 불빛이 차 안으로 훑고 들어와 종이상자와 방수포 위를 거칠게 비췄다.정이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작은 얼굴을 반석현의 어깨에 파묻었다. 두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쥔 탓에 손톱이 옷감 속으로 파고들 지경이었다.그녀는 반석현의 몸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반석현은 한 손으로 정이의 뒤통수를 감싸 보호하고, 다른 손으로는 방수포 아래에서 태블릿을 꽉 쥐고 있었다.‘절대 들켜서는 안 돼.’“젠장, 냄새 한번 지독하네.”한 남자가 코를 막으며 투덜거렸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차부터 처리해. 괜히 시간 끌었다가 문제 생기면 골치 아파.”먼저 입을 열었던 남자가 계속 중얼거렸다.“젠장, 돈 많은 놈들은 진짜 아까운 줄도 모른다니까. 이 차, 헐값에 팔아도 몇백만은 받을 텐데. 그냥 폐차시키라니. 내 생각엔 차라리...”그러자 다른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야, 됐어. 시키는 대로만 해. 괜히 일을 더 키우지 말고. 이번에 제대로 한 건 했으니, 빨리 차 처리하고 빠져나가야지.”두 남자는 앞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쾅!차 문이 거칠게 닫혔다.곧이어 금속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철컥 소리가 들렸다.순식간에 짙은 먹물 같은 어둠이 차 안을 완전히 집어삼켰다.정이는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반석현이 곧바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따뜻한 손바닥에는 긴장으로 맺힌 땀이 살짝 배어 있었다.반석현은 정이의 귓가에서 아주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숨결로 소식을 전했다.‘소리 내지 마.’곧 엔진이 거친 듯한 굉음을 토해 냈다. 곧 차체가 크게 한번 흔들리더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타이어가 깨진 유리 조각과 자갈을 밟고 지나가며 귀에 거슬리는 바드득 소리를 냈다.차체는 폭풍우 속을 헤쳐 가는 작은 배처럼 격렬하게 요동쳤다.정이와 반석현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정이는 얼른 다리에 힘을 주고 자세를 낮춘 채 반석현을 끌어안았다. 그가 뾰족한 상자 모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6화

    정이와 반석현은 철문 틈새로 몸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공장 안에는 코를 찌르는 화학약품 냄새가 남아 있었고, 녹슨 쇠 냄새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까지 뒤섞여 있었다.바닥에는 깨진 유리병과 찌그러진 화학약품 통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누렇게 말라붙은 잡초가 갈라진 시멘트 틈을 비집고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발목을 긁힐 것 같았다.반석현은 쪼그려 앉아 태블릿으로 바닥을 찍었다.“뭐 찾았어?”정이가 다가왔다.반석현은 바닥에 나란히 찍힌 두 줄의 타이어 자국을 가리켰다.흔적은 아주 선명했다.가장자리도 또렷했고 빗물에 씻긴 흔적도 없었다.게다가 타이어 무늬 사이의 간격까지.반석현은 태블릿에서 미리 저장해 둔 사건 관련 화물차 사진을 불러냈다.사진과 자국을 비교한 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민이를 납치한 그 차야.]정이가 목소리를 낮춘 채 다급히 속삭였다.두 줄로 길게 이어진 타이어 자국은 흉터처럼 망가진 바닥을 가르며 공장 깊숙한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정이와 반석현은 벽에 바짝 붙어 이동했다.본관 뒤편에 산더미처럼 쌓인 폐파이프 더미를 돌아간 끝에, 반쯤 무너진 철제 지붕 아래에서 마침내 목표물을 발견했다.흰색 중형 화물 밴이었다.차량에는 낡은 검은색 방수포가 대충 덮여 있어 뒤쪽 일부만 드러나 있었다.하지만 전에 뉴스에서 경찰이 추격하던 차량과는 달랐다.이 차량의 왼쪽 범퍼에는 새로 생긴 듯한 긁힌 자국이 있었고, 차체에는 바리케이드에서 묻은 것 같은 짙은 붉은색 페인트가 남아 있었다.반석현은 몸을 낮춰 타이어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손끝에 미세한 고무 가루가 묻어났다.그는 태블릿을 들어 화면 속 사진과 꼼꼼히 비교했다.타이어 무늬 간격과 마모 정도까지 시스템에 저장된 두 번째 화물차와 완벽하게 일치했다.틀림없었다.바로 이 차였다!정이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정이는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차 뒤쪽 발판에 올라섰다.그리고 살짝 열려 있는 화물칸 문에 손을 뻗었다.끼이익.금속 경첩이 귀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5화

    호출한 차량의 번호판은 반석현의 태블릿에 뜬 정보와 일치했다. 은색 국산 세단이었다.정이가 먼저 뒷좌석 문을 열더니, 작은 포탄처럼 차 안으로 쏙 뛰어들었다. 반석현도 곧바로 뒤따라 탔다. 차에 오르자마자 그는 태블릿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손가락으로 화면을 빠르게 넘기며 화학공장 주변의 실시간 감시카메라 배치 상황을 확인했다.운전기사는 마흔이 넘은 아저씨였다. 백미러로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두 아이를 본 그는 순간 멈칫했다.“얘들아, 너희... 어른은 같이 안 가니?”정이는 사람의 마음을 녹여 버릴 것처럼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가지런한 젖니를 드러냈다.“아저씨, 저희는 아빠 찾으러 가는 거예요. 아빠가 화학공장에서 야근하고 있거든요. 엄마가 아빠한테 밥을 가져다드리라고 했어요.”그러면서 손에 있지도 않은 도시락을 흔드는 시늉까지 했다.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반석현마저 고개를 돌려볼 정도였다.운전기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반석현을 바라보았다.반석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맑고 차분한 눈에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그는 심지어 살짝 고개까지 끄덕이며 정이의 연기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그런데...”운전기사가 머리를 긁적였다.“거긴 폐쇄된 지 벌써 3년이나 됐어. 라디오에서 그러더라. 어젯밤엔 그쪽에 경찰도 다녀갔다고.”마침 차 안 라디오가 속보로 전환됐다. 여성 앵커의 엄숙한 목소리가 좁은 차 안에 울려 퍼졌다.“부신 그룹의 작은 도련님 반현민 군의 실종 사건의 최신 소식입니다. 경찰은 서교 국도에서 사건 관련 차량을 발견했으나, 현재까지도 아이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정이의 얼굴에 떠 있던 미소가 순간 굳었다.반석현이 좌석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정이가 꽉 움켜쥔 주먹을 살며시 잡았다. 그의 손바닥은 차갑고 땀으로 축축했지만, 이상하게도 정이의 콩닥거리는 심장을 조금 진정시켜 주었다.“우리 아빠는 경비원이에요.”정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경찰 아저씨들도 아빠가 부른 거예요. 우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4화

    반석현은 태블릿에 정이와 나눌 내용을 적었다.[트럭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곳은 제3화학공단이야. 그 여자가 분명 그곳에 흔적을 남겼을 거야.][그 여자가 납치범들과 접촉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나, 민이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기록을 찾아야만 잡을 수 있어.]반석현이 태블릿을 내려놓고 정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단호했다.아직 어린 얼굴이었지만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이 묻어났다.정이 역시 그런 반석현의 잘생긴 얼굴을 2초 정도 빤히 쳐다보더니 힘껏 눈가를 문지르며 말했다.“나, 진실을 밝혀내고 말 거야!”정이의 말이 이어졌다.“민이 그 녀석, 가끔은 정말 밉고 나를 화나게 할 때도 많았고 엄마를 맨날 실망시키기만 했지만... 그래도 난 꼭 그 녀석을 찾을 거야. 이렇게 사라지게 둘 순 없어.”정이와 반석현은 서로를 바라봤다. 정이는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갖다 대고 입을 삐죽 내밀며 쉿 하는 소리를 냈다.“내가 민이 찾으러 가는 거, 석현이 너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반석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사이 정이는 이미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정이가 그에게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반석현은 의자에 앉아 문 앞까지 다가간 정이를 바라보았다. 서재의 이 문은 그에게는 넘기 힘든 거대한 장벽과도 같았다. 그가 이 문을 밖으로 나서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런데 이번에는 정이가 이 문을 나서는 것뿐만 아니라, 민이가 사라졌던 그 위험한 장소로 직접 가겠다고 한다.반석현은 의자에서 내려와 붉은 입술을 꾹 깨물며 정이에게 다가갔다.“왜?”정이가 뒤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반석현은 천천히 정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그가 정이에게 손을 내밀었다.정이가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반석현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정이도 반석현에게 손을 내밀며 그의 손을 꽉 잡았다.“석현아, 너도 나랑 같이 탐험하러 가고 싶은 거야?”반석현이 정이를 향해 머리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23화

    “반석현은 왜 갇힌 거예요?”비서가 목소리를 낮추며 민이에게 물었다.“몰라요.”민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비서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반씨 가문의 경호원 중 한 명이 말렸다.“대표님, 우선 돌아가시죠. 소방관들이 강민아 씨와 석현 도련님을 구하면 제일 먼저 연락드릴게요.”반하준이 차갑게 소리쳤다.“난 여기서 기다릴 거야! 두 사람 보기 전에는 안 가!”“아빠, 엄마가 일부러 안 나오려고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무슨 헛소리야!”반하준의 칼날 같은 눈빛은 금방이라도 민이의 작은 몸을 난도질할 것 같았다. 민이는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42화

    무대에 있던 강민아도 순간 멈칫했다.반진경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감싸며 눈을 크게 떴다.부은 뺨을 만지자 머리카락보다 가는 수백만 개의 바늘이 혈관을 뚫고 피부를 찢는 것만 같았다.반진경은 그제야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왜 날 때려요?”반진경이 빽 소리를 지르자 우경아는 그저 웃었다.눈꼬리가 위로 올라가고 풍성한 속눈썹은 눈가에 내려앉은 나비가 날갯짓하듯 펄럭거렸다.“때리는 거로는 부족하지. 머리에 구멍을 뚫어 구정물을 다 내보내야 하니까.”우경아가 키 172에 15센티 하이힐까지 신으니 그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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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아는 반진경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았기에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허공에 불꽃이 튀며 타는 냄새가 났다.반씨 가문에서도 반진경은 강민아에게 그다지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고, 그땐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강민아도 의식적으로 반진경을 피했다.그런데 여전히 자신을 저격하는 그녀의 모습에 강민아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편견이란 게 한번 자리 잡으면 사라지기 어렵고 재벌일수록 원래 외부인을 경멸하는 경향이 강하다.반진경 역시 반하준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진심으로 경멸했다.강민아가 반씨 가문으로 시집온 순간부터 반진경은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28화

    아이는 자신이 한 말이 강민아에게 아픈 가시가 될 거라는 걸 알았다.그래서 일부러 가시 돋친 말로 강민아를 자극했다.말을 마친 민이가 승리자처럼 강민아를 주시하며 그녀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색을 드러내길 기다렸다.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어딜 찔러야 제일 아픈지 잘 알았다.시골에서 태어나 레이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강민아 같은 여자는 반씨 가문 도련님의 엄마가 될 자격이 없었다.“민아, 만약 내가 시범 경기에서 1등 하면?”강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서늘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민이의 말에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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