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화

Author: 복덩이
휴대폰 너머의 반하준은 진작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민아는 차에 올라타 액셀을 밟고 달려나갔다. 하지만 검은색 스포츠카 한 대가 따라오고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

도로 양쪽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은색 볼보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번개처럼 달려갔다.

강민아는 칠흑같이 어두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차를 이렇게 빨리 몰아본 게 정말 오랜만이라 계기판의 수치와 함께 아드레날린도 폭발했다.

현란한 색상의 스포츠카 세 대를 연속 추월하자 스포츠카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소리쳤다.

“대박. 저 사람 누구야?”

다른 스포츠카에 타고 있던 사람이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부하에게 지시했다.

“저 차 번호판 좀 조회해봐.”

강민아는 개조된 스포츠카들을 가볍게 제쳤고 커버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몇몇 재벌 집 자제들이 낀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찾았습니다. 강씨 가문의 차입니다.”

누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강씨 가문? 그럼 운전자가 강나현인가?”

“강나현이 운전 저렇게 잘한다고? 그럼 전에 우리랑 레이싱할 때 실력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야?”

은색 볼보가 산길을 따라 뱅글뱅글 올라갔고 뒤에 검은색 페라리가 바짝 따라붙었다.

심은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눈썹 앞으로 툭 내려왔다.

그는 한때 카리스마가 넘쳤던 강민아를 본 적이 있었다.

강민아는 14살에 고연대학교 영재반에 입학하여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3년 연속 우승한 천재였다. 19살에는 자동차 경주 연맹에 지원하여 레이싱 면허를 취득한 후 월드 랠리 챔피언십에서 10위 안에 들었다.

그녀의 인생은 꽃길이었고 항상 꽃과 박수갈채가 함께했다.

그런데 박사 공부를 한 지 3년이 되던 해에 갑자기 학업을 포기하더니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재벌가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 후로 그녀의 차에는 카시트가 설치되었고 시속이 70㎞를 넘은 적이 없었다.

타이어가 지면과 마찰하면서 귀를 째는 듯한 소리가 났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던 그때 강민아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심은호의 페라리가 그대로 추월해 지나갔다. 이젠 백미러를 통해서만 강민아가 길가에 세워둔 볼보를 볼 수 있었다.

강민아가 전화를 받자 차 안의 스피커에서 반우정의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민이 어머님, 빨리 어린이집으로 오셔야겠습니다. 현민이가 오늘 왁스 병 캔디를 가져와서 친구들한테 나눠줬는데 배가 아프다는 아이들이 몇 명 있어서요.”

그녀는 아직 조금 전 레이싱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선생님, 전 더는 현민이 엄마가 아닙니다. 앞으로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현민이 아빠한테 연락하세요. 절 찾지 마시고요.”

그러면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목소리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더는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네?”

담임 선생님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하려면 강민아를 찾아야 했다.

“현민이가 그러는데 왁스 병 캔디를 어머님이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먹다가 목에 걸린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었는데 저희가 제때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어요. 지금 다른 어머님들이 오셨거든요. 현민이 어머님이 직접 오셔서 해명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반현민과 반우정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부유한 아이들만 다니는 귀족 사립 어린이집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전화 왔을 때 휴대폰 너머에서 여자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정확히 들려왔다.

“현민이 어머님한테 연락이 닿았나요? 어떻게 아들한테 이런 걸 어린이집에 가져오게 할 수가 있죠?”

“우리 애는 아직 어려서 왁스를 뱉어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요. 목이 다 긁혀서 피가 나요.”

강민아가 물었다.

“우리 딸 정이랑 통화할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엄마.”

반우정의 앙증맞은 목소리가 강민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강민아가 물었다.

“정이 넌 왁스 병 캔디 먹었어?”

“민이가 나한테 뚱보라고 놀리면서 다른 친구들한테는 다 왁스 병 캔디를 줬는데 나한테는 안 줬어요.”

강민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왁스 병 캔디 누가 민이한테 줬는지 알아?”

“이모요.”

강나현일 거라고 진작 예상하고 있었다.

반하준이 항상 강나현을 감싸준 바람에 반현민도 그대로 따라 했다. 반우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 너머에서 반현민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왁스 병 캔디는 엄마가 준 거야. 현이 형이 준 게 아니라.”

“반현민, 거짓말하지 마.”

“닥쳐. 으앙.”

강민아는 그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곧 반현민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담임 선생님이 큰소리로 말했다.

“반우정, 현민이 때리면 안 돼.”

맞은 게 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강민아는 전화를 끊고 오소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 방금 민이 담임 선생님이 전화 왔는데 민이가 가져간 왁스 병 캔디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대요. 담임 선생님이 지금 왁스 병 캔디를 더 보내 달라고 하시네요.”

“네? 왁스 병 캔디요?”

강민아는 어리둥절해 하는 오소정을 뒤로 하고 할 말만 한 다음 전화를 끊어버렸다.

오소정은 오늘 반현민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강나현을 만났다고 했던 운전기사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하여 바로 운전기사에게 강나현이 왁스 병 캔디를 준 게 맞는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강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현 씨, 그 왁스 병 캔디 어디서 샀어요? 도련님 반 친구들이 너무 좋아해서 담임 선생님이 왁스 병 캔디를 좀 더 보내 달라고 하시네요.”

강나현의 얼굴에 기쁜 미소가 나타났다. 드디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반현민의 새엄마 노릇을 할 기회가 생겼다.

오소정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

강민아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검지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때 누군가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유리창을 내리자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 사이에 껴있는 명함 한 장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검은색 금박 명함에 대성 로펌 파트너 심은호라고 적혀있었다.

“이혼 상담이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해요.”

강민아가 명함을 받으며 말했다.

“심은호 씨는 서경시 최고의 변호사라서 수임료가 너무 비싸요.”

심은호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 양복을 입긴 했지만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셔츠 깃을 밖으로 펼쳐 목이 더 섹시해 보였다.

“돈 안 받아도 됩니다.”

강민아가 웃으며 말했다.

“돈 말고는 드릴 게 없는데요.”

“5년 전에 민아 씨가 박사 과정을 밟다가 포기하고 결혼하러 간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잖아요. 아버지가 요즘 몸이 안 좋으신데 시간 나면 보러 좀 와줘요. 그럼 소송을 무료로 도와줄게요.”

심은호의 아버지 심한기는 과거 서경대학교 수학 학과 교수이자 강민아의 박사 과정 지도교수였다.

강민아가 고연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심한기는 얼른 대학교를 졸업하여 박사 과정을 밟으라고 했었다.

나중에 그녀는 서경대학교의 박사 과정을 밟았고 심한기는 그녀에게 자꾸만 연구를 다그쳤다. 왜냐하면 해외에서 대학교에 대한 봉쇄 제재가 언제 있을지 모르기에 그때가 되면 연구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강민아는 서경대학교와 반씨 가문을 오가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반하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요리, 꽃꽂이, 예술품 감상 수업을 등록해주었다. 그녀는 훌륭한 재벌가 며느리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과 학업을 모두 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국 임신하고 하혈한 후에 심한기에게 자퇴하겠다고 했다.

“교수님을 뵐 면목이 없어요.”

그녀는 아직도 심한기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분노나 비난도 없이 그저 고개를 돌렸고 더 이상 그녀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심은호는 한 손으로 차 문을 짚고 좁은 차 안의 강민아를 내려다보았다.

“젊었을 땐 누구를 사랑해도 괜찮고 성숙했을 땐 무엇을 포기하든 다 괜찮아요. 아직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다시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9화

    강민아는 발바닥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반하준, 아이를 잃어버리면서 머리까지 어떻게 된 거야?”반하준은 예상치 못한 강민아의 직접적인 욕설에 눈동자가 확 커졌다.강민아가 그에게 다그쳤다.“오늘 유치원에서 애들 다 보는데 민이한테 화를 낸 사람이 누군데? 민이만 버려두고 떠난 게 누군데? 민이는 당신 따라 나간 거야. 그 삐뚤어진 눈은 아직도 못 고친 거야?”“그만해!”반하준은 머리가 지끈거려 강민아의 말을 가로챘다.그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차갑게 말했다.“난 너랑 논쟁하고 싶지 않아. 지금 우리가 싸울 때야?”연진숙이 즉시 맞장구를 쳤다.“강민아, 네게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어서 네가 민이를 어디에 숨겼는지 말해! 안 그러면 내가 너 가만두지 않아!”“여사님.”강민아는 참을 수 없어 차가운 어투로 맞섰다.“손자를 걱정하시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말조심하세요. 증거 없는 주장은 명예훼손이에요. 전 누구보다도 민이가 무사하기를 바라요. 지금 제가 원하는 건 경찰이 빨리 아이를 찾도록 돕는 거지, 여기서 근거 없는 의심과 비난을 듣는 게 아니라고요!”강민아는 이 두 사람을 더 이상 상대할 생각도 없었기에 시선을 형사에게 돌리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형사님, 우선 운전기사의 자세한 진술과 놀이공원 감시 카메라 조사 결과, 현재 경찰이 확보한 단서를 확인해야겠어요. 민이가 가끔 토라질 때면 숨기도 하는데 이번엔 시간이 너무 길고 범위도 평소 장난 수준을 넘어섰어요. 그렇게 단순한 사건 같지는 않아요.”형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아의 말을 듣자마자 드디어 정상적인 사람을 만나 구원받는 기분이 들었다.형사가 뭔가 말하려는 찰나, 반하준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표정이 살짝 바뀌며 재빨리 전화받았다.“말해.”통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조용한 실내에서 강민아는 어렴풋이 상대방의 조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대표님, 찾았습니다! 도련님께서 마지막으로 놀이공원 동쪽 감시 카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8화

    강민아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가슴 속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심은호에게 진지하게 말했다.“금방 돌아올게요.”“네, 기다릴게요.”심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 키를 건넸다. 차분한 그의 눈빛이 강민아에게 말없이 힘을 실어주었다.강민아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바로 심은호의 차에 올라타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로 향했다.밤은 깊었지만 경찰서 안은 불빛이 환했고 분위기는 엄숙했다. 그녀가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느껴졌다.입구에서 신분과 용건을 밝히는데 옆 칸에서 여자의 울먹이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손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들 가만 안 둘 거야.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어떻게 민이 그림자도 안 보여!”강민아가 그 방으로 다가가 문 앞에 섰을 때쯤 반하준의 반듯하고 거대한 체구가 보였다. 남자의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가 그의 미간에 담긴 깊숙한 감정을 겹겹이 덮었다.반하준은 짜증이 가득 난 모습이었다. 그게 연진숙 때문인지, 아니면 민이가 실종된 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연진숙은 의자에 앉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는데 화장이 약간 번져 있었으며 얼굴에는 초조함과 분노가 가득했다.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옆에 서서 잔뜩 찡그린 얼굴에 ‘골치 아픈’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민이가 실종된 것보다 더 성가신 게 반씨 가문 사람들의 질책이었다.반하준은 무언가 감지라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강민아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자 그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쳤다.여러 시선이 강민아에게 쏠리며 방 안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여긴 어떻게 왔어?”반하준의 눈빛은 복잡했다. 놀라움과 짜증, 그리고 깊숙한 곳에 차지한 걱정과 피로를 감출 수 없었다.연진숙은 강민아를 보자 금세 눈물을 거두고 대신 비난과 원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강민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와? 너지, 네가 내 손자를 숨겼지!”연진숙은 잔뜩 화가 난 채 쏘아붙였다.“이런 식으로 우리 반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7화

    “반씨 가문에서 대충 한 시간 전에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지금 감시 카메라 영상을 확인 중이야. 반씨 가문 쪽에서는 아직 너한테 연락 안 했지?”“난 더 이상 민이 엄마가 아니야. 반씨 가문에서 나한테 연락할 리도 없고 나한테 연락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 거야.”강민아는 자조적으로 말하며 마음속으로 짜증이 밀려왔다.“반하준과 민이가 교실을 떠나는 걸 내가 직접 봤어! 그런데 갑자기 민이가 실종됐다니?”무의식적으로 언성을 높이자 고요한 밤에 강민아의 목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육성민의 목소리가 강민아의 귀에 들려왔다.“말로는 반하준이 아들과 함께 학교를 나선 게 아니라 학교를 떠나기 전에 반현민을 기사에게 맡기고 회사로 갔대. 내가 입수한 진술서에 따르면 민이를 태운 차량 운전기사는 민이가 놀이공원에 가자고 떼를 쓰니 감당할 수 없어서 반하준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얻은 뒤 민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는 민이가 보이지 않으니 놀이공원에서 40분 넘게 찾다가 경찰에 신고했어.”꽉 움켜쥔 탓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강민아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그녀는 혼란 속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분명 숨어 있는 거야. 민이는 항상 그래. 화가 나면 일부러 숨어서 소리도 안 내고 반씨 가문의 모든 도우미가 찾아 헤매게 만들어.”“경찰이 이미 놀이공원을 샅샅이 수색했고 반씨 가문에서 사설 경호원까지 동원했지만 벌써 실종된 지 3시간이나 지났어. 수색 범위를 넓히는 중이야.”육성민의 말투는 평온했지만 연이어 들리는 소식에 강민아의 숨이 가빠졌다.걱정과 분노가 뒤섞였다.“민아야.”육성민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강민아는 정신을 차리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오빠, 경찰 쪽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가 무슨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줘.”민이의 양육권은 없어도 자신이 직접 배 아프게 낳은 자식이었다.“알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당황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 계획된 납치 사건일 수도 있으니까 절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6화

    “아가씨들, 차에 타시죠.”심은호는 매우 신사적으로 강민아와 정이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정이가 먼저 차에 오르며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정중하게 심은호를 향해 말했다.“고맙습니다.”정이는 심은호가 남들처럼 단순히 어린 애로만 여기지 않고 똑같이 어른처럼 대해줘서 좋았다. 덕분에 본인도 성숙한 사람으로서 대접과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강민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정이가 심은호 덕분에 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은색 스포츠카가 짙어가는 어스름을 가르고 강민아의 아파트를 향해 부드럽게 달렸다.차 안에는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정이는 하루 종일 놀며 이런저런 감정 기복을 겪은 탓에 어린이용 안전 시트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강민아는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민이가 마지막으로 보였던 눈물 가득한 얼굴과 실망과 기대가 교차한 눈빛, 문을 박차고 나갈 때의 단호한 뒷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문질렀다.“왜 그래요?”심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백미러로 보지 않아도 강민아의 기분이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오늘 활동에서 반하준과 민이가 둘 다 일찍 나갔어요.”강민아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심은호에게 전했다.“유치하고 참을성 없고 성격 급한 게 3살짜리 애나 다름없어요.”그녀는 반하준을 욕하고 있었다.“민이가 그런 환경에서...”강민아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침묵을 선택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내뱉기엔 마음이 아팠다.“반하준은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체면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죠. 특히 자신의 체면을 깎아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그렇죠.”심은호의 말투에는 미묘한 조롱이 담겨 있었다.“설령 그게 자기 친아들이라도 말이에요.”강민아는 침묵했다. 심은호의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본능 때문에 차분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차량은 곧 강민아가 사는 고급 아파트 아래에 도착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5화

    심은호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불어오는 저녁 바람 속에서 나른하면서도 매혹적인 울림을 띠었다.그의 시선이 아주 자연스럽게 강민아에게 향하며 미소는 더욱 깊어졌다.“민아 씨 데리러 왔죠.”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전류가 바지직거리는 듯했다.안채린은 심은호가 강민아를 대놓고 감싸며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과 반석현이 자신에게 보이는 냉담함을 비교하니 치솟는 질투의 불길이 이성을 태워버릴 듯했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유지하면서도 목소리는 날카로워졌다.“심 대표님과 강 대표님은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강민아는 이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심은호가 가까이 다가오며 전하는 따뜻한 숨결과 반용화 쪽에서 보내오는 평온하지만 존재감이 극도로 강한 시선을 느꼈다.안채린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강 대표님이 무슨 수를 쓴 건지 우리 석현이가 참 잘 따르네요. 용화 씨, 잘 지켜봐요. 석현이가 이상한 사람들을 따라 배우면 안 되니까...”“안채린.”반용화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차가운 위엄을 띠고 있어 미처 뱉지 못한 날카로운 말을 막아버렸다.그는 고개를 들어 안채린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이전의 무심함이 사라지고 예리한 비난이 담겨 있었다.“말조심해.”안채린은 반용화의 시선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남은 말이 목구멍에 걸려버렸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시도 때도 없이 변했다.심은호는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생긴 듯 웃으며 불을 지폈다.“선생님 애인이 말을 심하게 하네요. 우리 민아 씨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심 대표님!”안채린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반용화의 꾸지람을 듣고 심은호의 비아냥까지 들려오자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반용화는 심은호에 대꾸하는 대신 강민아를 바라보며 평소처럼 평온한 어투로 말했다. 안채린에게 말할 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목소리였다.“오늘 고마웠어.”강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석현이 데리고 집에 놀러 와요.”심은호가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574화

    석양의 여운이 학교의 하얀 외벽에 따뜻한 금빛 테를 드리웠다.행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듯 들뜬 모습으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차례로 정문을 나섰고, 웃음소리와 작별 인사가 어우러져 따뜻한 활기를 띠었다.강민아는 반용화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정이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아이는 여전히 흥분한 채 조금 전 투표하던 것에 대해 재잘거리고 있었다.정이와 반석현은 손을 맞잡았다. 정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석현은 고개를 들어 정이를 바라보다가 강민아의 반응을 살폈다.반용화의 차가운 시선이 두 아이에게 머물렀다.그들이 학교 정문에 다다라 작별 인사를 하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멀리서 다가오며 여자의 의도적으로 다정한 척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석현아, 이모가 데리러 왔어!”강민아가 고개를 들자 안채린이 샤넬 정장을 차려입고 정교한 화장을 한 채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이마에 미세한 땀방울까지 맺혀 있는걸 봐서는 급하게 온 모양이었다.그녀는 복잡한 눈빛으로 강민아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경계심과 미묘한 질투가 섞여 있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혀 반석현의 손을 잡으려 했다.“석현아, 네가 1등을 했다며? 정말 잘했어. 자, 이모랑 같이 집으로 가서 제대로 축하하자.”그러나 반석현은 그녀가 손을 뻗는 순간 작은 몸을 뒤로 움츠리며 강민아 뒤로 숨었다.아이는 온몸을 강민아 뒤에 숨긴 채 다가갈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고 작은 손으로 어느새 강민아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안채린의 미소는 굳어졌고 허공에 뻗었던 손은 어색하게 그대로 멈춰 있었다.그녀의 눈빛에 민망함과 짜증이 스쳤다. 몸을 일으키며 내뱉는 말에는 감지하기 어려운 원망이 묻어났다.“용화 씨, 석현이 좀 봐요. 나랑 점점 더 거리를 두잖아요. 엄연히 내가 친이모인데.”반용화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석현이 성격이 그런 거니까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잘 대해줘.”이 말은 안채린의 귀에 오히려 비난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