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88화

Author: 임공
유건의 분노가 지금 극에 다다랐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유건을 오래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었다. 이건 진짜로 ‘끝’까지 간 상태라는 걸.

“나... 나는 정말 몰라요...”

남자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털썪!

유건이 손에 힘을 풀자, 남자는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윽!”

남자의 가슴이 먼저 바닥에 부딪혔다.

“컥, 컥...”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퍽!

어떻게든 일어나려 했지만, 유건의 발이 남자의 등을 밟았다.

그리고 완전히 짓눌린 채, 남자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유건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안에 서린 살기는 차가웠다.

“살고 싶으면, 당장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 말해.”

“그 여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렸다면, 넌 끝이야.”

“저, 저...”

남자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을 어떻게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제, 제발... 저, 저는 아무것도몰라요! 제발 살려주십쇼!”

순간, 방 안이 얼어붙었다.

쾅!

남자가 생각할 틈도 없이, 의자가 날아와 등을 강타했다.

“윽!”

이어서 그 남자는 온몸이 휘청이며 앞으로 쓰러졌다.

그 충격에, 남자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면서 이마에 몇 가닥 내려앉았다.

유건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느릿하게 넥타이를 풀었고, 혀로 어금니를 굴리며 중얼거렸다.

“그 입을 다문 대가야.”

유건은 다시 의자를 들어 올렸다.

“말할래, 안 할래?”

“아, 아...”

남자는 더 이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좋아. 아주 좋아.”

유건은 낮게 웃으며, 다시 힘을 주었다.

“그럼 네 뼈가 얼마나 단단한지 끝까지 확인해 보자고.”

“유건 씨!”

“형님!”

“하지 마세요, 유건 씨!”

그 순간, 몇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는데, 장소미는 유건을 뒤에서 안았고, 지한과 민환이 서둘러 유건의 손에서 의자를 빼앗았다.

“형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89화

    “유건 씨, 그렇게 말하지 마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소미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물었다. “혹시 오늘 일... 나 때문이에요?” 유건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입술은 단단하게 다물어졌다. “아니야. 소미 씨 탓이 아니야. 그냥... 내 탓이야.” 그는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장소미를 임신시킨 것도, 시연에게 상처 입힌 것도...’‘모두 내가 한 일이었어.’ ‘책임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시연을 놓지 못한 건, 나였어.’ ‘내가 내 욕심을 못 버려서.’ 그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유건은 이제야 제대로 깨달았다. 따릉- 유건의 핸드폰이 울렸는데, 부지하에서 온 메시지였다. 유건은 짧게 한숨을 쉬고,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소미를 힐끗 본 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받아요.” 소미가 잔잔하게 웃었다. “저요, 지금 뭐가 중요한지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요. 지금 가장 급한 건, 지 선생님을 찾는 거잖아요. 그 외의 일들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조용히 덧붙였다. “저는, 유건 씨가 저한테 한 말을 믿어요.” “고마워.” 그 순간, 유건은 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는 지체 없이 전화를 받았다. “말해.” 지하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게, 유건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알겠어. 바로 갈게.” 전화를 끊자마자, 소미가 먼저 말했다. “전 괜찮아요. 가야 한다면 빨리 가요.”하지만 유건이 곧장 자리를 뜰 리는 없었는데, 유건이 소미의 손에서 약봉지를 가져오며 말했다. “아니, 일단 소미 씨를 집에 데려다주고 갈 거야.” 시연이 아직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소미까지 위험에 노출시킬 수 없었다. “그래요.” 소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를 쉽게 버릴 순 없겠지.’ 소미를 집에 데려다준 뒤, 유건이 병원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90화

    지한이 서둘러 말했다. “바로 사람들을 보내겠습니다.” “잠깐, 나도 같이 갈게.” 지하도 다시 시연을 찾으러 나갔고, 그렇게 해서 시작된 수색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시연의 흔적은 없었다. 유건은 링거를 다 맞추고도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더는 병실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정민환을 데리고 강울대 후문 쪽으로 향했다. ...차 안. 민환이 지한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응, 확인했어. 우리가 겹쳐서 찾지 않도록 이동할게.” 전화를 끊은 민환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 “형님, 지금까지 확인된 숙소들은...” 하지만, 유건은 듣고 있지 않았다. “형님?” “저기 봐.” 유건의 시선이 길 건너를 향해 있었는데, 민환도 그 시선을 따라가며 고개를 돌렸다. 바로 임진아가 보였다. 진아는 한 여학생과 함께 있었는데, 둘은 가벼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뭐가요?” “임진아가 저렇게 태평할 리가 없어.” 유건의 눈이 날카롭게 좁혀졌다. ‘제일 친한 친구가 사라졌는데, 임진아의 태도는 너무 평온하잖아?’ ‘임진아와 시연의 사이를 생각하면, 절대 저런 반응이 나올 수 없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임진아의 집이 아니라면? 시연이를 어디에 숨겼을까?’ 그때, 유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에 서 있던 여학생에게 향했다.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누구였더라?’ 기억력이 좋은 그는, 머릿속을 빠르게 되짚었다. ‘병원! 맞아!’ ‘저 여학생, 시연이랑 같은 과에서 실습하던 여학생이야.’ ‘내가 전에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스쳐 지나가며 본 적이 있어.’ “허.” 유건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민환아.” “네, 형님.” “저 여학생 기숙사 방 번호 알아봐.” “네?” “지금 당장.” 이제야 실마리가 풀렸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91화

    아주 좁은 기숙사에는 벽 쪽으로 침대가 나란히 두 개 놓여 있고, 그사이에는 작은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걸로 끝. 더 이상 공간은 없었다. 오래된 기숙사에는 에어컨조차 없었지만, 날씨는 미친 듯이 더웠다. 천장에 매달린 낡은 선풍기가 끽끽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지만, 바람이라고 할 만한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물병과 컵이 있었는데, 컵에 물을 따른 유건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기숙사에서 벌꿀을 찾지 못했다. 그는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꿀은 어디 있죠?” 침대에 등을 돌리고 누워 있던 시연이 움찔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굼뜬 움직임.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였네. 정말 고유건이 여기까지 찾아왔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유건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틀 정도 못 본 사이에 또 더 말랐네.’ 그는 하은을 힐끔 봤다. “아, 꿀이요?” 하은이는 재빨리 알아차리고 부리나케 벌꿀을 찾아 컵에 짜 넣었다. 그리고 공손히 내밀었다. “고마워요.” 유건은 짧게 인사를 건넨 후 자연스럽게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시연을 한 팔로 끌어안았다. ‘땀범벅이잖아...’ 시연은 순간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빼려 했지만 그녀는 힘이 없었다. 유건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곤, 꿀물을 한 모금 마셔 봤다. “딱 적당한 온도네.” 그리곤 컵을 시연의 입가에 가져갔다. “마셔. 천천히.” 조심스럽고도 다정한 남자의 손길. 하은은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조용히 도시락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고 대표님, 시연이가 아직 밥 못 먹어서 이걸 사 오던 참이었어요.” “그래요? 수고했어요.” 품위 있는 감사를 건네는 남자의 태도에 시연은 꿀물을 반쯤 마시고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더는 안 마실래요.” 유건은 컵을 치우고, 그대로 그녀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그는 안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92화

    “네?” 하은의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하은은 놀라 허둥대며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고 대표님! 시연이는 제 친구인데, 제가 당연히 돌봐야죠...” “빨리 알려줘요.” 유건은 귀찮다는 듯 단호하게 잘랐다. “말 안 해도 찾아낼 수 있으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 학생이 시연이를 챙기는 게 정말 고마워서 그런 거니까 받아주고요.” “아... 네.” 하은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아니에요. 갈게요.” ...기숙사 건물 밖. 유건은 걸음을 멈추고 건물을 한 번 올려다봤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지한을 향해 낮게 말했다. “지금 당장 처리할 게 있어.” “알겠습니다, 형님.” ...기숙사 안. 하은이는 방을 들락날락하며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도착하는 배달 상자들... 전부 다 유건이 보낸 거였다. 책상 위는 이미 가득 찼기에, 결국 다른 짐들을 치워야 할 지경이었다. 음식, 생활용품, 필요한 건 전부 다 옮겨야 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하은은 도시락을 여는 순간, 진한 냄새가 퍼졌다. 딱 적당한 온도... 하은은 밥그릇을 챙겨 시연을 부축했다. “조금이라도 먹어 봐.” “응.” 시연은 일부러 굶지는 않았다. 한눈에 봐도 성애 이모의 손맛이었으니 말이다. “꺅!” 갑자기 하은이 비명을 질렀다. “뭐야?” 시연이 고개를 들었다. 하은은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었다. “무슨 대형 이슈라도 떴어?” “아니, 그게 아니고!” 하은은 말을 더듬으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곳엔 하은의 계좌에 5천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떠 있었다.순간, 시연의 손이 멈췄다. “이게 뭐야?” 하은은 침을 삼켰다. “고 대표님이, 나한테 보낸 거래... 널 돌봐준 거에 대한 감사라는데... 이건 너무 많잖아!” 여자의 말끝이 떨렸다. ‘이건... 장난이 아니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93화

    502호에 가장 먼저 에어컨이 설치되었고, 바로 옆 방들도 차례로 공사가 진행됐다. 어수선했던 소음이 점점 멀어지며 구경하던 학생들이 하나둘 흩어지자, 하은은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녀는 침대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히며, 씨익 웃었다. “꿀물 좀 마실래? 고 대표님이 보내준 무첨가 최고의 국내산이야. 한 잔 타 줄게.” “응, 고마워.” 시연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은은 찻잔에 꿀물을 타서 건넸다. 그리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한껏 즐기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시원하다!” 시연은 말없이 컵을 내려다보며 한 모금 삼켰다. “시연아.” 하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 대표님, 너한테 진짜 잘해 주는 거 같아. 이렇게까지 하는 거 보면.” 시연은 잠시 망설였지만, 작게 중얼거렸다. “돈이 많잖아.” “아, 참.” 하은은 눈을 반쯤 감고 한숨을 쉬었다. “돈이 많은 건 맞지. 근데 돈 많다고 다 이렇게 해? 돈 아까워하는 부자들도 널리고 널렸어.” 그러더니 툭, 시연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한번 잘 생각해 봐. 뭐, 나는 그냥 하는 말이야.” 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솔직히, 그녀는 확실히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 여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 시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톡 알림이었는데, 유건에서 온 톡이 하나 떴다. [이제 좀 시원해?] 시연은 한참 동안 가만히 화면을 바라봤는데, 답장하진 않았다. 잠시 후, 또 유건에서 온 톡이 왔다. [편하게 쉬어. 내가 미처 생각 못 한 게 있으면, 네 친구한테라도 전해줘.] 시연은 핸드폰을 내려놓은 후, 베개 밑으로 밀어 넣었다. 순간, 그녀는 두려워졌다. ‘고생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하지만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건, 감당하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94화

    “주지한 씨죠?” 하은은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제발, 고 대표님께 전해주세요! 시연이가 아주 아파요. 강울대학교병원에 가야 하는데, 제가 못 업겠어요!”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지한의 목소리가 순간 팽팽하게 긴장됐다. [고마워요, 친구분.] “별말씀을요!” 전화를 끊자마자, 하은은 급히 사탕 하나를 까서 시연의 입에 넣었다. “일단 이거 물고 있어. 고 대표님이 금방 올 거야!” 시연은 너무 지쳐서 고개를 끄덕일 힘도 없었기에, 그냥 눈만 천천히 깜빡였다. 하은은 시연의 곁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친구의 식은땀을 닦아주며 지켜봤다. ...그 시각. 지한이 전화를 받을 때, 유건은 수액을 맞고 있었다. 그는 회사 일로 종일 병원에 있지도 못했기에, 그제야 겨우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형님.” 지한은 망설임 없이 보고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갈 테니까 형님은 수액부터...”그는 끝까지 말할 수 없었는데, 유건이 이미 바늘을 뽑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유건의 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형님!” 지한이 다급하게 티슈를 뽑았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유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를 닦으며 단호하게 물었다. “차는 준비됐어?” “예.” “그럼 가자.”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건은 이미 병실 문을 나서고 있었다. ...10분도 채 안 돼서, 유건은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밤늦은 시간. 기숙사 출입 문제를 고려해, 지한이 미리 기숙사 관리실과 조율을 끝마쳤다. “형님, 들어가도 됩니다.” 관리실 선생님은 문을 열어줬고, 유건은 거침없이 502호로 향했다. “고 대표님, 오셨...” 하은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유건은 이미 침대 옆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으응...” 시연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힘없는 신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유건의 가슴이 세게 죄어들었고 숨이 턱 막혔다. 그는 곧장 몸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95화

    강울대학교병원, VIP 병실. 시연이 혹시라도 깨어나 도망칠까 걱정돼서, 유건은 그녀를 자신의 병실로 데려왔다. 그리고 바로 내과 담당의를 호출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닙니다.” 진료를 마친 의사가 차트를 넘기며 말했다. “이번에는 치료를 중단한 탓에 그런 거니까, 수액 이틀 정도 맞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유건은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천천히 물었다. “앞으로도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나요?” “지금 당장은 장담할 수 없지만...” 의사는 현실적으로 답했다. “초기에는 크게 악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친 후에도 주기적인 체크와 모니터링은 필수입니다.” 유건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수고 많으셨어요.” “별말씀을요, 고 대표님.” 의사가 나가고, 유건은 조용히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시연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가 임신으로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니 장소미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장소미 또한 앞으로 시연처럼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을 터였다. 유건은 더 이상 선택을 미룰 수 없었다.왜냐하면, 지금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결국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유건도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몇 시간 후. 시연이 천천히 눈을 떴다. 순간,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깨달았다. ‘여긴... 고유건의 병실이야.’ 그리고 유건은 바로 옆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동식 수액 거치대가 옆에 놓여 있고, 남자의 왼손에는 수액 라인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오른손으로는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또한 남자 앞에는 노트북이 켜져 있었고, 틈틈이 타자를 치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진짜...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네.’ 그 순간, 시연은 자기가 유건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민망해졌다. ‘고유건은 소파에서 자고, 나는 침대에서 잤다?’ 왠지 미안해졌기에, 그녀는 팔을 짚고 천천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96화

    “이번 일... 정말 미안해.” 유건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사실, 유건도 이 정도의 사과로는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것은 꼭 해야 할 말이었다. ‘...?’ 시연은 순간 멍해졌지만, 곧 깨달았다. ‘아, 그 일.’ 솔직히 말해서, 시연이는‘괜찮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유건이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떠올리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왜 그렇게 나한테 못되게 굴었어요?” 책망. 원망. 그리고... 서운함. 시연의 모든 감정이 섞인 말을 듣자, 유건의 눈빛이 흔들렸다.시연의 그 한마디가, 가슴을 세게 쥐어짜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맞아.” 그는 인정했다. “내가 나쁜 놈이었어.” 그리고 말을 잇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치 한숨처럼, 유건은 말했다. “이제부터...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야.” “네?” “아니.” 유건은 스스로를 비웃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 자체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남자의 말이 점점 더 흐트러졌다. 시연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건이가 다시 한번 자기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긴장했다. “시연아.” 남자는 잠시 숨을 삼켰다. “우리, 더는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 쿵-그 순간, 시연은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뭐?’ 그녀는 오랫동안 유건을 바라봤고, 불안하게 되물었다.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게... 그럼, 이제 내가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녀는 일부러 ‘헤어지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유건과 시연의 관계는, 항상 유건이 주도했다. 그래서 유건이 원하지 않는 이상, 시연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유건이 엄청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유건은 목이

Latest chapter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20화

    “고, 유, 건!” 시연의 인내심이 결국 터졌다. “알았어, 알았다고.” 유건은 두 손을 들어 항복의 제스처를 취했다. “너 샤워 다 끝내고, 잠자리에 들면 그때 갈게. 욕실 바닥 미끄럽잖아. 그 생각하니까 그냥 여기 있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래.” ‘아주 지극정성이네, 진짜.’시연이 숨을 꾹 참고 머리를 홰 젖히며 돌아서자, 긴 머리카락도 그녀를 따라 허공을 스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연이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방에서 나왔을 때, 유건은 이미 마른 수건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연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유건이 선수를 쳤다. “머리만 말려주고 갈게. 팔 오래 들고 있으면 어깨 아프잖아.” ‘와... 이 사람 진짜 각 잡았네.’ “당신...” 시연은 유건을 날카롭게 흘겨봤다. “지금 완전 딱 쫀득한 엿 같은데요? 질척거리는 게, 떼도 안 떨어질 것 같아요.” “고마워, 나 그런 칭찬 좋아해.” 유건은 오히려 웃으며 수건을 펼쳤다. “칭찬...?” 시연은 어이없어 입을 다물었다.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정신력은 또 뭐야...’ “자, 머리 말리자. 머리 다 말리고 자야 감기 안 걸리지.” 결국 시연은 눈을 감았다. ‘됐어... 그냥 못 본 척하자. 말하면 뭐 해? 안 먹힐 텐데.’ ...그런 날들이 계속됐다. 유건은 하루에 두 번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아침엔 아침밥 들고 등장. 점심엔 직접 못 오면 민환을 통해 도시락 배달. 저녁엔 꼭 나타났다. 빠르면 같이 저녁, 늦으면 야식. 그리고 샤워 후엔 늘 자연스럽게 등장해 머리를 말려주기까지. 시연은 정말 할 수 있는 말은 다 해봤다.차갑게도 말해봤고, 내쫓으려 해본 적도 있었고, 문 앞에 세워두기도 해봤다. 하지만 유건은 마치 그 자리가 제자리라도 되는 듯, 늘 시연 곁을 지켰다.마치 떠날 줄 모르는 그림자처럼.어느 날 오전. 시연은 오랜만에 강울대병원에 들렀다. ‘잠깐 들릴 생각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9화

    “놓아달라고?” 유건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긴 속눈썹 아래로 감춰진 눈빛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널 좋아한다고 말한 게, 널 못 놔주겠다는 뜻인 것 같아?” ‘또 그 말이지. 좋아한다, 좋아해. 그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데...’ 시연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왜 그래?” “왜 그러냐고요?” 시연은 아주 작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한숨을 쉬었다. ‘진짜... 말이 안 통해.’ 머리는 온통 유건이 감아준 목도리로 덮여 있었다.겉으로는 따뜻해 보였지만 마음은 너무도 답답했기에, 약간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알잖아요. 나... 당신을 한 번도 좋아한 적 없다는 거...” “응, 알아.” 유건은 고개를 숙이며 낮게 웃었다. “아직 기억해.” “그럼 지금 이건 다 뭐예요?” 시연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우린, 그거 때문에 헤어진 거잖아요?”두 사람은 명확하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진 않았다.하지만 그동안의 긴 냉전은 이미 서로의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서로 말은 안 했지만, 끝난 거나 다름없었어. 할아버지 때문에 그냥 참고 있었던 거지.’ ‘이젠 할아버지조차 이혼을 허락했는데... 왜?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건데...’ “나도 알아.” 시연은 말끝을 질끈 씹듯 말했다.“당신이 그랬잖아요,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의미 없다고. 세상에 여자가 한둘도 아닌데, 그런 사람한테 매달릴 필요 없다고요...” 유건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 말, 정확히 그렇게 했었다. ‘참 잘 기억하네. 근데 내가 했던 행동들은 왜 기억 안 하지...?’ 유건은 얇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그냥 아무 말이나 뱉은 거야.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였어?” “뭐라고요...?” 시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말 바꾸는 거야?’ ‘이 인간, 진짜 뻔뻔하네.’ “우린 말 안 통해요. 난 당신처럼 무책임한 사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8화

    “고마워요.” “천만에요.” 우주는 과일 접시를 힐끗 보더니,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리켰다. “누나, 이 귤, 진짜 달아.” “그래?” 시연은 가볍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물었다. “우주는 먹어봤어?” “응.” 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까 아저씨가 준 거야.” 그 말에, 시연의 웃음이 그대로 멈췄다. ‘아저씨...’ 우주의 입에서 나오는 그 ‘아저씨’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당연히 지동성이었다. “그 사람이...” 시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가 널 보러 왔었어?” “응.” 우주는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오후에 왔어.” ‘어제...’ ‘퇴원한 바로 다음 날?’ ‘그럼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우주를 보러 온 거야...?’ ‘이게 진심일까, 아니면 또 쇼일까?’ 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까지 애써야 할 이유가 대체 뭐지...?’ “누나.” “응?” 시연이 정신을 가다듬고 우주를 바라보자, 우주는 조금 머뭇거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저씨... 이제 괜찮아진 거야?” ‘뭐...?’ 시연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우주야,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 “아저씨가 그랬어.” 우주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동안 날 보러 못 온 건, 아팠기 때문이라고.” ‘왜 그런 말을 우주한테 했지...?’ 시연의 가슴이 조여왔다. “아저씨가 또 뭐라고 했는데? 무슨 병이라고 했어?” “아... 뭐라고 했냐면...” 시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진짜 말한 거야? 설마...’ “뭐라고 했는데?” 우주는 천진하게 대답했다. “감기래.” “감기...?” 그 말에 시연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그 정도로만 말했구나...’ ‘정말... 그 사람, 아직도 이중적인 사람이네.’ “누나.” 우주가 다시 입을 열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7화

    해가 채 뜨기도 전, 시연은 조용히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아는 이불 속에서 눈을 겨우 떠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몇 시야...?” “아직 이른 아침이야.” 시연은 진아의 통통한 볼을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나 우주랑 아침 먹기로 해서 좀 일찍 나가. 너는 더 자.” “응...” 진아는 듣자마자 바로 순하게 눈을 감았다. 시연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히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별산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문을 연 건 최예민이었다. “우주 도련님은 지금 세수 중이에요. 아침에 깨우지도 않았는데, 누나 온다고 혼자 벌떡 일어나서 준비하더라고요.” 최예민은 환하게 웃으며 시연을 안으로 안내했다. “사모님, 여기 앉으세요. 아침은 다 준비됐고, 곧 가져올게요.” “고마워요.” “아이고, 뭘요. 당연한 일인데요.” 조금 뒤, 식탁 위에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이 놓이고, 화장실 문이 열렸다. “누나!” 우주가 얼굴에 물기를 머금은 채 반짝이는 눈으로 뛰어왔다. 그러고는 시연의 옆에 착 붙어 앉으며 해맑게 웃었다. “조심해!” 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작은 만둣국 한 그릇을 우주 앞에 놓아줬다. 조금 전 살짝 식혀둔 국이었다. 그래도 시연은 당부했다. “천천히 먹어. 국물 뜨거우니까.” “응! 누나 걱정하지 마. 나 조심할게!” 우주는 아주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나도 같이 먹자!” “그럴까?” 시연도 조심히 젓가락을 들며 미소 지었다. ...그 시각, 시연의 아파트. 띠링- 초인종 소리에 진아는 부스스 일어나 문으로 갔다. 눈은 반쯤 감긴 채로 문을 열었는데, 눈이 순간 커졌다. “고, 고 대표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진아는 아직 잠옷 차림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등장에 머리도 제대로 못 가다듬은 상태였다.유건은 짧게 진아를 본 후, 바로 시선을 돌려 옆으로 몸을 틀었다. “시연이는 일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6화

    “지시연!” 유건은 눈살을 찌푸리며 시연의 손을 꽉 쥐었다. 그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너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요, 나도 알아요.” 시연은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살짝 올리며 유건을 바라봤다. “내가 당신이 한 말 몇 마디에 감동해서 울컥하고, 기분 좋아서 그 말들 다 들어줄 정도로 철없는 애인 줄 알아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유건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리고 눈동자엔 씁쓸함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나, 진심으로 너한테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어. 진심으로... 너한테...”“하지 마요.” 시연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망설임 하나 없이, 맑고 또렷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마음, 난 안 받을 거예요.”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멎은 듯 조용해졌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유건은 잠시 말이 없다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얼굴이었다. “거절할 줄 알았어. 하지만 시연아, 내가 널 좋아하는 감정은 네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내 의지로도 안 돼.” 유건은 이내 들고 있던 장미꽃을 시연 앞으로 내밀었다. “오늘 막 비행기로 도착했는데, 마음에 들어?” 시연은 말문이 막혔다. ‘이 상황에서... 꽃을 보여주면 내가 감동할 줄 아나 봐?’ 시연은 꽃은 쳐다보지도 않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좋아요.” 유건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아, 기분 상했나 보네. 오늘은 일단 가주는 게 딱 좋겠어.’ “장미 안 좋아해?” 유건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알았어. 다음엔 다른 꽃으로 할게.” “뭐라고요...?” 시연은 벙찐 얼굴로 유건을 쳐다봤다. ‘지금... 난 그 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런데 유건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려,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진아에게 장미꽃을 건넸다. “진아 씨, 이거 좀 꽂아줘.” “네? 아, 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5화

    유건의 말에 시연은 멍해졌다. ‘뭐...?’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반응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말했잖아요. 장소미 때문에 애쓸 필요 없다고...” “장소미 때문이 아니야!” 유건이 더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급함과 답답함이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장소미 얘기 좀 그만해. 지금 내가 함께 있는 사람은 너야. 근데 넌 계속 장소미 얘기만 해?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렇게 해서 날 포기하게 하려고?” ‘포기...?’ ‘무슨 포기?’ 순간 얼어붙은 시연의 가슴 한쪽이 덜컥 내려앉았고,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만해요. 듣기 싫어요.” 시연은 급하게 말을 끊고, 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찾았다. 하지만 열쇠를 꺼내기도 전에, 손목이 따뜻한 손에 붙잡혔다. 유건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날 벌주려고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야? 내가 무슨 마음인 줄 진짜 몰라서 그래?” “내가... 뭘 알아야 하는데요?” ‘왜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지...?’ ‘설마... 아니겠지.’ “좋아해.” 짧은 세 글자가 공기 속에 맴돌며 터졌다.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지금, 뭐라고 했어?’ 시연은 입술을 벌린 채, 말없이 유건을 바라봤다. 눈동자엔 당혹감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겹쳤다. 유건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지시연. 나 너 좋아해.”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지시연, 내가 지금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내 마음을 너만을 향한다고.”27년 인생, 유건에게 고백이란 건 처음이었다. 얼굴이 빨개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볼 안쪽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은 분명했다. 그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떨릴 일이야...?’ ‘이런 게 고백이라는 건가?’ 돈 많고, 능력 있는 고유건 대표도 이 순간만큼은 그냥 연애 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4화

    그날 갑자기 셋이 자리를 뜰 때, 성빈한테는 제대로 설명도 못 하고 나왔다. ‘좀 미안하긴 했는데...’ “아냐.” 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 평일이잖아. 성빈이 일하는 날이야. 우리처럼 백수들이랑은 다르지.”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시연은 더 고집하지 않았다. 진아는 시연을 위해 산모 요가 클래스에 함께 들어갔다. 영화는 그냥 그랬다. 극장을 나오자 둘 다 하품만 연발. 밖은 여전히 눈이 펑펑 내리는 G시. “으, 춥다...” 진아는 시연의 팔짱을 끼고, 발을 구르며 입김을 불었다. “우리 샤부샤부 먹자! 얼큰한 걸로!” “평소 가던 데로 가자.” “좋아!” 마침 그 식당은 클럽 근처에 있었다. 클럽 쪽으로 들어서자, 진아가 걸음을 멈췄다. “왜?” 시연은 고개를 돌려 진아가 보는 쪽을 따라 바라봤다. 멀지 않은 곳에서, 클럽 안에서 나오는 성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곁엔 젊은 여자가 있었다. 둘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성빈은 여자의 어깨에 여성용 외투를 살포시 걸쳐주고 있었다. 자연스럽고, 세심하고, 약간 고개를 숙인 그 눈빛은... 분명히 다정했다. “진아야.” 시연은 거의 반사적으로 진아의 손을 꼭 잡았다. “응.” 진아는 시선을 거두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봐봐, 오늘 성빈 안 부르길 잘했지. 바쁘잖아, 저렇게.” 시연은 눈썹을 찌푸렸다. ‘성빈이... 연애 안 한다더니. 그럼 저 여자는 뭐지?’ ‘이건 좀 아니잖아?’ 뭔가 기분이 상한 시연은 진아를 살짝 당겼다. “가서 인사나 할까?” “야야...” 진아는 손을 급히 잡아당기며 막았다. “지금 데이트 중이잖아. 우리가 가면 민폐지.” “진아야...” “가자니까!” 진아는 배를 가볍게 감싸며 투정을 부렸다.“나 진짜 배고파 죽겠어. 너는 안 배고파? 얼른! 밥 먹자고.” 결국 시연은 한숨을 쉬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3화

    시연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동성이 그런 걸 물어올 줄은. ‘이제 와서 이런 걸 묻는다고?’ ‘이게 걱정이라고? 참...’ 시연은 코웃음이 나올 뻔했다. ‘죽을 날 다 돼가니까, 양심이라도 생긴 건가? 완전 새사람 된 것처럼 굴고 있네.’ “시연아... 고 대표 좋아하니?” 시연이 침묵하자, 지동성은 조급해졌다. 장미리가 약을 가지러 갔던 참이라. 시간이 얼마 없었다. 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아니요. 안 좋아해요.” ‘예전에 좋아했던 적이 있다고 해도... 그건 그냥 과거일 뿐이야.’ ‘그리고 그런 얘길 굳이 이 사람한테 할 필요도 없어.’ 그녀는 지동성이 쥐고 있는 팔을 살짝 흔들며 말했다. “이제... 가도 될까요?” “응, 그래.” 지동성은 멍한 표정으로 손을 놓았고, 시연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돌아섰다. 멀리서 장미리가 약 봉투를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약국 줄이 엄청 길더라고요.” 장미리는 다가와 지동성을 부축했다. “다 받아왔어요. 이만 가요.” 오늘은 집에 가기 전에, 딸 장소미에게 들를 예정이었다. “그래...” 지동성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장미리에게 이끌려 외과 건물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하지만 머릿속에는 시연의 말만이 맴돌았다. ‘안 좋아해요...’ ...병실 안, 장소미는 수액을 맞으며 누워 있었다. “소미야, 오늘은 좀 어때?” 장소미가 약 봉투를 내려놓으며 병상 옆에 앉았다. “뭐가 어때요?” 소미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맨날 약 바르고, 주사 맞고, 치료받고 있잖아요!” 그러더니 갑자기 거즈로 감긴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근데 봐봐요. 그렇게 해도 맨날 이 모양이잖아요!” “어머, 얘야!” 장미리는 깜짝 놀라 급히 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다 상처 다시 터지면 어떡해? 조심 좀 해.” 지동성도 진정시키듯 말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2화

    시연은 진아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뭐, 그런 셈이지.” 그러고는 비웃듯 웃어 보였다. “고 대표는 항상 자기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근데 이번엔 미안하지만... 실망 좀 해야 할걸?’ ‘우주를 위해서라면, 난 절대 물러설 수 없어.’ 그날 밤, 유건은 나타나지 않았다. G시에 아예 안 온 건지, 왔지만 시연을 피한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시연은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시연은 강울대병원에 들렀다. 갑작스러운 병가 탓에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 하고 나온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었다. 서류며 자료가 다 사물함에 있어서, 후임에게 전달하려면 직접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마무리하고 병원을 나서려던 때, 외래 진료 대기석에 앉아 있던 지동성이 눈에 들어왔다. 시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번 병환 이후로 지동성은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피부도 푸석했고, 눈빛도 많이 흐려진 듯했다. 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먼저 알아챈 건 지동성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시연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시연아.” 시연은 입술을 꾹 눌렀다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오늘 퇴원이에요?” “응. 병원에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더니, 집이 그리워지더라.” 지동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더는 입원해도 큰 효과 없는 보존 치료. 그는 이제 집에서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동성의 시선이 시연의 배로 내려갔다. “배가 많이 나왔네.” “네.” 시연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동성은 개의치 않은 듯 미소 지으며 물었다. “고 대표랑은... 잘 지내고 있어?” ‘잘?’ 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눈빛에는 어떤 온기도 없었다. “아마도... 잘 지내는 편이겠죠.”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