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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6화

Author: 임공
‘그러니까... 고 대표님이 나랑 비닐랩 사이로 키스하겠다는 거야?’

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시연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녀는 거절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아쉽고, 복잡한 마음에 괜히 기대까지 되고 있었다.

“고...”

하은이 어렵게 입을 열려는 순간.

“여보.”

유건이 불쑥 시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둘 다 6번이야.”

시연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아니거든요?”

시연은 진심으로 억울해하며 번호표를 유건에게 내밀었다.

“나는 9번이에요.”

“거짓말.”

유건은 힐끔 보더니,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거 딱 봐도 6번인데? 못 믿겠으면 애들한테 물어봐.”

그러면서 태연하게 번호표를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주변 친구들도 상황 파악은 했지만, 서로 눈치를 보다 결국 하나같이 말했다.

이 타이밍엔 모두 ‘고 대표님’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맞아, 6번이야.”

“응, 완전 6번이지.”

“...”

하은은 이를 꽉 물고, 자신의 번호표를 조용히 접어 가방 속에 넣었다.

‘왜 하필...’

“자, 줘봐.”

유건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손을 내밀었고, 눈치 빠른 혜수가 재빨리 비닐랩 판을 건넸다.

“여보, 게임 룰은 지켜야지.”

“우와...”

“키스! 키스!”

“...”

동기들은 완벽하게 분위기를 띄웠다.

“받아.”

유건은 비닐랩 판을 시연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당신이 들고 있어. 난 그냥 얼굴 쪽에 살짝 키스할게. 약속해. 빨리, 다 기다리잖아.”

‘이 상황, 못 빠져나가.’

시연은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비닐랩 판을 받아서 들었다.

“절대 말 바꾸지 마요!”

시연은 매섭게 유건을 노려봤다.

“약속할게.”

유건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다. 이 사람... 그래도 기본은 지키는 사람이니까.’

시연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비닐랩 판을 얼굴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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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40화

    시연이 고개를 살짝 돌리자, 눈물이 툭 떨어졌다. “누나, 왜 울어?” 우주는 깜짝 놀라 부랴부랴 휴지를 들고 왔다. “누나 울지 마.” “누나는 우는 거 아니야.” 시연은 울면서 웃었다. “너무 좋아서 그래. 우리 우주가 잘 커 줬잖아. 이렇게 똑똑하고, 착하게.” “헤헤.” 우주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건 누나가 잘 가르쳐줘서야. 누나는 우주의 누나고, 우주의 엄마야!” “응...” 시연은 목이 메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연신 끄덕일 뿐이었다. 문밖에서는 지동성이 두 손으로 얼굴을 꽉 막고 있었다. 그도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이미 주름진 얼굴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시연아, 우주야... 아빠는 인간도 아니야. 아빠가... 아빠가 너희한테 너무 못했어...”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고인이 된 아내, 부명주의 얼굴. “명주야, 난 진짜 쓰레기야... 너도, 우리 애들도, 그 누구도 지켜주지 못했어...” 지동성은 소리 죽여 울었다. ... 잠시 후, 시연은 방에서 나왔다. 지동성은 머리를 부여잡고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눈은 이미 심하게 부어 있었다. 시연은 한눈에 알아차렸다. ‘다 들었구나... 근데 뭐... 이제 와서 그렇게 울면 뭐가 달라져.’ 시연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앞으로 걸었다. “가요.” 지동성은 우주를 놀라게 할까 봐 입도 뻥긋 못 하고 묵묵히 시연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조용히 차를 몰아 시연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가는 내내... 차 안엔 무겁디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그때, 갑자기 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이었다. ‘내가 모르는 번호?' “여보세요?” 시연은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지시연 씨, 맞죠?]시연은 순간 긴장했다. 그 목소리 분명 음성 변조가 되어 있었다. “네, 맞는데요. 당신은 누구세요?” [내가 누구인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39화

    ‘역시...’ 시연은 하나도 놀랍지 않았기에, 그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알겠어.” [시연아, 너...]진아가 망설이며 물었다. [정말 우주가 간 이식하게 할 거야?] “나는 우주에게 사실대로 말할 거야. 할지 말지는... 곧 열다섯 살이 되는 우주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야.” 진아와 통화를 끝낸 시연은 잠시 핸드폰을 쥔 채 가만히 서 있다가, 지동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연아.]상대방의 목소리. “내일 시간 어때요? 같이 우주 보러 가시죠.”수화기 너머의 지동성은 핸드폰을 꼭 쥔 채, 모든 걸 눈치챘다. [좋아.]... 지동성은 낮에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시연과 지동성은 저녁에 별산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별산장 앞, 두 사람은 마주 섰다. 아버지와 딸. 서로를 마주 보면서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먼저 들어갈게요.” 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우주한테 말할 거예요. 아저씨가 아프다고... 우주가 싫다고 하면, 억지로 시키지 마세요.” “그럼, 그럼! 절대 안 그럴게!” 지동성은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믿든 안 믿든, 난 처음부터 너희한테 이렇게까지 부탁할 생각 없었어...” “그만하세요.” 시연은 차갑게 말을 끊었다. ‘저 사람의 진심이 뭔지, 이제는 관심 없어.’ ‘지금 필요한 건,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들어가요.” “그래.” 두 사람은 우주의 숙소에 들어섰다. 시연은 곧장 우주가 있는 방으로 갔고, 지동성은 문 근처에 조용히 서 있었다. 이 시간, 우주는 저녁 식사를 막 끝낸 참이었다. “누나!” 우주는 시연을 보자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왔어?” “우주야.” 시연은 우주의 손을 잡아끌어 조심스럽게 소파에 함께 앉았다. 그리고 우주를 가만히 바라봤다. ‘진짜 많이 컸다.’ “우리 우주, 이제 다 컸네. 어엿한 소년이야.” “그렇지?” 우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38화

    “아, 네.” 기환은 이유도 제대로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도 형수님 말이라면 꼼짝 못 하는데, 내가 뭘...’ 차가 멈추자, 시연은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손 좀 놔요, 나 잠깐 내려야 해요.” 유건은 시연이 떠나려는 줄 알고, 시연의 팔을 문어처럼 감아버렸다.그리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나 아파... 힘들어...” ‘진짜 미치겠네...’ 시연은 이마를 짚었고,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유건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고, 미세하게 식은땀까지 맺힌 듯했다. ‘연기하는 건 아니야.’ “나 가는 거 아니에요. 약 사러 가야 해요. 금방 올게요.” 시연이 부드럽게 설명했다. “기환이를 보내.” 유건이 떼쓰듯 말했다. “안 돼요.” 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기환 씨는 무슨 약 사야 하는지 몰라요.” 시연은 유건을 자세히 살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요? 빈속일 때부터 아픈 거예요? 아니면 밥 먹고 나서...?” “음... 밥 먹고 나서.” 유건은 진지하게 대답했다.그는 최근 들어 식욕도 뚝 떨어졌던 상태였다 “더부룩하고, 가끔은 속에서 불나는 것 같아.” “알겠어요.” 시연은 짧게 답하고 말했다. “금방 다녀올게요.” 하지만 혹시라도 시연이 그냥 사라질까 봐, 유건은 기환에게 분명히 지시했다. “기환아, 너도 같이 가.” “네, 형님!” 차를 세운 곳 근처에는 약국이 있었다. 시연이 굳이 이곳에서 내리자고 한 것도 약국 때문이었다. 기환은 조심스럽게 시연을 따라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시연은 약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약사가 약을 준비하러 안으로 들어갔을 때, 기환이 망설이며 시연을 불렀다. “형수님...” “사실, 형님... 진심으로 형수님을 좋아해요.” 시연은 순간 멍해졌다. ‘진심으로?’ 하지만 곧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환 씨는 어차피 고유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37화

    하은은 급히 유건을 따라 화장실 세면대 앞까지 왔다. 유건은 복부를 짚으며 세면대에 기대어 토하고 있었다. 오늘 제대로 먹은 것도 없이 술만 잔뜩 들어간 속이 완전히 뒤집힌 듯했다. “고 대표님...” 하은은 초조함과 안쓰러움이 뒤섞인 얼굴로 다가갔다. 한 손에는 물병, 다른 손에는 휴지를 들고서. ‘조금 나아지면, 물로 입 헹구게 하고 닦아줘야지.’ “좀 괜찮아졌어요?” 하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시연이 화장실 쪽으로 다가왔다. 사실 시연은 오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결국 나 때문인데...’ 끝내 양심을 저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시연의 눈에 들어온 건... 하은이 애타게 유건 옆을 지키며 정성껏 챙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네.’ 시연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고, 이내 단숨에 몸을 돌렸다. 두 손은 꽉 쥐자, 둥글게 다듬어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세게 힘이 들어갔다. ‘좀 아프네...’ 그럼에도 시연은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한편, 유건은 거의 다 토해내고 나니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다. “고 대표님.” 하은이 얼른 물과 휴지를 내밀었다. “여기요, 입 헹구시고, 닦으세요.” 유건은 하은을 흘깃 쳐다봤다. 하지만 손은 까딱도 하지 않았고, 대신 물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시연이는?” 하은은 당황해 입을 벌렸다. “시연이는... 아마 아직 룸에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조심스레 툴툴거렸다. “시연한테 오라고 했는데, 안 오더라고요.” 다시 한번 물과 휴지를 내밀며 말했다. “고 대표님, 여기요.” “필요 없어.” 유건은 물끄러미 다른 데를 바라본 채, 아예 손도 내밀지 않았다. 그냥 찬물을 두 손에 받아 헹구듯 입을 씻고, 물기를 대충 털어내더니 곧장 룸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방에 도착한 유건은 순간 멈춰 섰다. ‘시연이가 없어.’ 유건의 눈이 서늘하게 좁혀졌다. 그리고 천천히 하은을 향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36화

    ‘그러니까... 고 대표님이 나랑 비닐랩 사이로 키스하겠다는 거야?’ 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시연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녀는 거절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아쉽고, 복잡한 마음에 괜히 기대까지 되고 있었다. “고...” 하은이 어렵게 입을 열려는 순간. “여보.” 유건이 불쑥 시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둘 다 6번이야.” 시연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아니거든요?” 시연은 진심으로 억울해하며 번호표를 유건에게 내밀었다. “나는 9번이에요.” “거짓말.” 유건은 힐끔 보더니,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거 딱 봐도 6번인데? 못 믿겠으면 애들한테 물어봐.” 그러면서 태연하게 번호표를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주변 친구들도 상황 파악은 했지만, 서로 눈치를 보다 결국 하나같이 말했다. 이 타이밍엔 모두 ‘고 대표님’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맞아, 6번이야.” “응, 완전 6번이지.” “...”하은은 이를 꽉 물고, 자신의 번호표를 조용히 접어 가방 속에 넣었다. ‘왜 하필...’ “자, 줘봐.” 유건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손을 내밀었고, 눈치 빠른 혜수가 재빨리 비닐랩 판을 건넸다. “여보, 게임 룰은 지켜야지.” “우와...” “키스! 키스!” “...”동기들은 완벽하게 분위기를 띄웠다. “받아.” 유건은 비닐랩 판을 시연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당신이 들고 있어. 난 그냥 얼굴 쪽에 살짝 키스할게. 약속해. 빨리, 다 기다리잖아.” ‘이 상황, 못 빠져나가.’ 시연은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비닐랩 판을 받아서 들었다. “절대 말 바꾸지 마요!” 시연은 매섭게 유건을 노려봤다. “약속할게.” 유건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다. 이 사람... 그래도 기본은 지키는 사람이니까.’ 시연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비닐랩 판을 얼굴 앞에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35화

    시연은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평소에 쉽게 얼굴이 붉어지는 편도 아닌데, 지금은... ‘주변에 다 내 동기들인데!’ “고유건 씨! 지금 제정신이에요?” 시연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여보.” 유건은 술기운인지, 아니면 진심이 터져 나온 건지, 시연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남자의 거친 숨결과 술 냄새가 시연의 얼굴을 덮쳤다. “나 무시하지 마. 나 싫어하지도 말고, 응?” 그러면서 유건은 시연의 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댔다. “만져봐. 여기, 아파 죽겠어.” ‘이 인간, 미쳤어... 진짜!’ 시연은 당혹감과 분노로 머리가 새하얘졌다. “손 놔요!” 시연은 얼굴이 뜨겁게 타오르는 걸 느끼며 버둥거렸다. 이미 주변 동기들의 은근한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아 진짜 죽고 싶다...’ 하지만 유건은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여보, 나 좀 봐줘. 여기 아프다고...” 그때, 물을 들고 돌아온 하은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 속엔 어딘가 모르게 질투 섞인 감정도 스쳤다. “고 대표님, 그리고 시연아.” 예전에 의대 학생회장을 했던 남학생이 다가와서 둘을 불렀다.“저쪽에서 게임을 하는데, 같이 가볼래?” “좋아!” 시연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얼른 유건을 밀쳐내며 대답했다. 게임이고 뭐고 상관없었다. ‘이대로 이 인간 옆에 있다간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아.’ “그럼 다 같이 가자.” “응.” 시연이 소파 쪽으로 가자, 주변 동기들이 눈치껏 자리를 비켜줬다. 하지만 유건은 여전히 시연 옆에 딱 붙어 앉아 있었다.팔을 벌려 시연을 둘러싸듯 감싸며, 그 누구도 근처에 앉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했다. 유건은 시연만 바라보며 낮게 물었다. “무슨 게임이야? 진실게임? 벌칙 게임? 한심해서 못 하겠네.” ‘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심지어 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34화

    “그래?” 시연은 고개를 들어 겨우 한 번 쓱 주변을 둘러봤다. 유건은 몇몇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다들 술잔을 들고 있었고, 유건은 거절할 생각도 없는 듯 하나하나 받아 마시고 있었다. “쳇...” 하은이 시연을 힐끔 보며 말했다. “시연아, 고 대표님... 너 엄청나게 아끼는 거 티 난다?” 시연은 잠시 멈칫했다. “너도 느꼈어?” “누가 봐도 알겠는데?” 하은은 약간 질투 섞인 목소리로 웃었다. “고 대표님이 GP그룹 대표야. 갓 졸업한 우리 같은 애들 앞에서 저렇게 체면까지 내려놓을 이유가 뭐겠어? 다 너 때문이지.” ‘그럴싸하네...’ 시연은 괜히 찜찜해졌기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사실 시연은 유건이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신경 쓰는 게 싫었다. 아니, 꽤 거슬렸다. “잠깐 앉아 있어. 난 먹을 거 좀 가져올게.” 하은이 활기차게 일어섰다. “내가 다녀올게.” “아냐, 넌 그냥 있어. 혹시라도 배 아프면 어쩌려고.”이미 벌떡 일어난 하은을 보며, 시연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이 모임은 뷔페 형식이라 음식은 셀프였고, 노래방이나 당구도 같이 즐길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은이 양손에 쟁반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고마워.” 시연은 무심하게 한쪽 쟁반을 보며 말했다. “근데... 너 엄청나게 배고팠어?” 쟁반에는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니.” 하은이 피식 웃었다. “이건 고 대표님 거야.” 그녀는 또 다른 쟁반을 가리켰는데, 이미 조금 먹은 흔적이 보였다. “이게 내 거고.” ‘아...’ 시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답답했다. ‘내가 예민한 걸까? 자세히 보면... 하은이, 고유건한테 꽤 신경 쓰는 것 같은데?’ ‘고유건, 이 남자... 괜히 인기가 많은 타입이네...’ 시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음식에만 집중했다. “여보.” 조금 후, 유건이 다가왔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33화

    유건은 순간 깨달았다. ‘또 괜히 오해한 거야?’ 그리고 슬쩍 레오를 쳐다봤다. 레오는 오히려 예의 바르게 웃으며 고개까지 끄덕였다. 유건은 본능적으로 레오를 다시 훑어봤다. ‘대체 이 아저씨는 뭐야? 시연이 주변에 이런 사람 있었나? 처음 보는데.’ 바로 그때, ‘청운각’ 문이 열리고 시연이 어떤 남자 동료와 함께 나왔다. “레오 선생님.” 레오가 곧장 앞으로 다가갔다. “이쪽이 레오 선생님입니다.” “반갑습니다.” 둘은 불어로 대화를 나눴다. 유건은 불어를 따로 배우지 않아서, 몇 마디 단어만 간신히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은 뒤, 레오와 남자 동료는 청운각 룸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시연은 함께 들어가지 않았다. ‘아... 시연이가 다리 놔준 거였구나.’유건은 이제야 대강 상황을 파악했지만, 이제 와서 뭐라고 변명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또 혼자 난리 친 거네.’ 시연은 ‘청운각’을 떠나 ‘청파각’ 쪽으로 걸어갔다. 유건은 조용히, 죄지은 사람처럼 시연 뒤를 따라갔다. ‘어떻게 사과하지...’ 그때, 엘리베이터가 기회를 줬다. 타자마자 유건은 시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너무 긴장해서 그랬어. 저 아저씨가 네 팔 붙잡은 거 보고... 질투 났어.” “질투요...?” 시연은 어이없어 웃으면서도 짜증이 섞였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데요? 배가 이렇게 나왔는데, 누가 나를 좋아해요?” “왜 안 좋아해?” 유건은 단호하게 받아쳤다. “우리 결혼할 때도 너 배불뚝이였잖아. 그런데도 난 상관없었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진심으로 좋아하면, 황제도 과부랑, 형수랑, 심지어 며느리랑도 결혼한다잖아. 배 나온 거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순간, 시연은 얼어붙었다. ‘이 사람... 이런 말까지 한다고?’ 그리고 심장이 덜컥거렸다.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유건의 이 말이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32화

    유건은 레오의 손목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손 놔요.” 유건의 몸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레오는 그런 유건을 경계하며 시연을 지키듯 그녀를 뒤로 감췄다. “당신 누구예요? 시연 씨를 다치게 하지 마시죠.” 하지만, 유건은 레오의 말이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그래도 레오가 쉽게 손을 놓지 않겠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좋아요. 안 놓겠다 이거죠?” 유건은 싸늘하게 웃으며 천천히 오른손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시연이 놀라서 황급히 유건을 붙잡았다. “고유건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유건의 얼굴엔 먹구름처럼 어두운 기운이 드리웠다. “이 남자는 누구야? 왜 너를 데리러 온 건데?” 물론, 유건은 오늘이 시연의 동창회 날인 걸 알고 있었다. 시연이 직접 얘기해주진 않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비워서 같이 가려고 했다.그렇게 급히 달려온 유건과 달리, 시연은 연락 한번 없이 다른 남자와 동창회에 가려 했다. 게다가... 레오는... 아무리 봐도 꽤 나이 들어 보였다. ‘원한 게 결국 이런 거야?! 설마, 저런 아저씨랑 동창회에 가겠다는 거야? 무슨 사이길래?” 유건은 점점 화가 치밀고, 서글픔까지 몰려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지시연, 너 눈은 어디에다 두고 다니냐? 나 같은 건 싫고, 저런 아저씨는 괜찮아? 저 인간, 네 아빠뻘이야!” ‘뭐야...?’ 이 상황, 시연에게는 너무 익숙했다. 유건이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게 누구든, 다른 남자가 시연의 옆에 있으면 바로 오해하고 화를 냈다. “그만해요!”시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예전의 그녀는 그냥 넘어가겠지만, 이젠 유건이 자신에게 참견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가운 눈빛으로 유건을 쏘아보며 말했다. “진짜 지긋지긋해요. 더 이상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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