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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Author: 삼구이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10 22:42:59

“최악의 짝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말씀인지….”

박 회장이 테이블 너머 예리를 향해 상체를 깊숙이 숙였다. 그리곤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은밀하게 속삭였다.

“말 그대로예요. 나도 다른 고객들처럼 아들의 결혼 상대를 찾으러 인연에 온 게 맞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최악인 상대를 찾으러 왔다는 거?”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예리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지구상 최악의 결혼 상대를 골라달라는 의뢰는 커플 매니저 일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었다.

“저희 인연의 설립 취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의뢰라 당혹스럽습니다. 실례지만 굳이 이런 일을 맡기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 순간 해미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숨이 넘어갈 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박장대소하는 그 기괴한 광경에 예리는 말문이 막혔다.

한참을 끅끅대며 웃던 해미가 간신히 숨을 골랐다.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가볍게 훔치더니, 굳어버린 예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동안 나 같은 의뢰인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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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28화

    은호는 허탈함이 섞인 눈으로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휴대전화를 책상 위로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갑자기 심상치 않게 변한 분위기에 선우와 지유가 마른침을 삼키며 은호의 눈치를 살폈다.다시 서류에 집중하던 은호가 펜 끝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응시했다."그나저나 이병훈 작가 컨택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입니까?"지유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작가님께 이번 전시 기획안 전달해 드렸고, 현재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까지는 받아둔 상태입니다.""검토 하나 확답받는 게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이었습니까?"은호의 낮은 목소리가 회의실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지유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이자 은호는 옆에 있던 선우에게 턱 끝으로 고갯짓을 했다.“초반에 작가님 측에서 거절 의사를 완강히 밝히시는 바람에, 다시 설득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습니다.”그 말에 은호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또 형들 때문입니까?”선우가 대답 대신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번에도 유동현 사장님께서 손을 쓰신 모양입니다. 작가님들 사이에서는 이미 저희가 전시 수익을 독점하고 작가를 소모품처럼 부린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퍼진 상태입니다."“…….”은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선우가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유 사장님 쪽에서 VIP 고객들의 구매력을 담보로 작가들을 회유하는 바람에, 이병훈 작가님도 저희 제안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셨던 것 같습니다."은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법적으로는 한 가족인 당사자가 직접 퍼뜨린 소문이었다. 그 신뢰도 때문인지 사람들은 동현의 말을 더 쉽게 믿어버렸다."우리가 이병훈 작가와 접촉한다는 정보가 대체 어디서 새 나간 건지…. 알겠습니다. 내부 전시 기획안 보안, 지금보다 더 철저히 관리하세요. 그리고 작가님 측에 우리 진정성이 왜곡되어 전달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주시고요."“네, 알겠습니다.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27화

    예리의 집 앞으로 은호의 차가 매끄럽게 멈춰 섰다. 안전벨트를 푼 예리가 내리기 전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이사님,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내일 출근도 하셔야 하는데 집까지 데려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얼른 들어가서 푹 쉬세요."은호가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나 팀장님도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오늘… ."은호가 무언가 덧붙이려다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단단한 목울대가 크게 한 번 일렁였다."고생하셨습니다."예리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예리가 차 문을 닫고 멀어지려는 찰나, 조수석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나예리 팀장님!”은호가 창밖으로 상체를 살짝 기울이며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갑작스러운 부름에 뒤를 돌아본 예리가 토끼 눈을 뜨고는 후다닥 차 근처로 다가왔다.창가에 바짝 붙어 선 예리를 확인한 은호가 무언가 결심한 듯 아까보다 훨씬 편안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아까 물으셨던 이상형 말입니다. 방금 생각났습니다.""정말요? 뭔데요?"예리가 눈을 반짝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은호가 예리와 가만히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함께 디저트를 먹으러 가고 싶은 사람이요."'…설마 이거 하나 말하려고 가던 사람을 다시 부른 건 아니겠지?'예리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황당함이 스쳤다. 수첩을 꺼내려 가방으로 향하던 손길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내려왔다."…그게 끝인가요?"“네, 끝입니다.”은호의 짧고 명쾌한 확답에 예리는 내려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붙잡았다."네, 다음 소개팅 리스트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그럼 정말, 조심히, 들어가세요. 유. 은. 호. 이사님."예리가 이름 어절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하며 가볍게 목례했다.은호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까지 확인한 예리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아파트 공동 현관으로 향했다."다정한 사람에, 이제는 함께 디저트 먹으러 가고 싶은 사람이라니. 아니, 그런 건 나중에 메시지로 보내도 되잖아. 난 또 엄청 중요한 거라도 생각난 줄 알았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26화

    “제 소개팅을 전부 지켜보고 계셨던 겁니까? 아니면 뭐 다른 특별한…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요?”예리의 등 줄기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눈치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빨라.'예리는 뻣뻣해진 고개를 고장 난 기계처럼 끼익 거리며 들어 은호를 마주 봤다. 예리가 급하게 말을 둘러대며 어색한 웃음 끝에 눈을 살짝 찡긋해 보였다."아, 그건…. 이사님! 아버지랑 할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세월이 얼마인데요. 제가 이 일을 자그마치 13년째 하고 있잖아요. 그 정도는 딱 보면 감으로 알 수 있죠. 하핫!"그러면서 괜히 비어 있는 물잔을 만지작거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구차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었다."그렇긴 하겠군요. 나 팀장님은 이 분야에서 알아주는 전문가니까요. 하지만, 그래도….""아 참! 이사님, 저번에 말씀드렸던 새로운 매칭 건 있잖아요. 다음 주 주말인데 그때 시간 괜찮으세요?"예리가 은호의 말을 다급하게 끊으며 화제를 돌렸다.‘제발, 그냥 넘어갑시다…!’은호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주말이면 스케줄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알겠습니다. 세부적인 일정은 비서실에 전달해 두겠습니다. 확인 부탁드릴게요."은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예리는 테이블 아래로 가슴을 쓸어내렸다.'다행이다. 아주 눈치를 챈 건 아닌 모양이네. 그래도 조심해야겠어.'이 눈치 빠른 인간 덕분에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었다.그렇게 진땀을 빼는 사이 어느덧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이었다. 조용한 노크 소리와 함께 직원이 들어와 검은색 원형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마지막 디저트는 흑임자로 만든 아이스크림입니다. 곁들여진 한라봉 소스를 살짝 얹어 드시면 훨씬 진한 풍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정갈하게 담긴 아이스크림과 과일이 조화롭게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직원이 설명을 마치고 나가기 무섭게 예리는 숟가락을 들어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술 떠 입에 넣었다.시원하고 고소한 맛이 혀끝에 닿는 순간, 조금 전까지 곤두섰던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25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복도 끝 방 안으로 들어섰다.부드럽게 미끄러진 미닫이문이 조용히 닫히자, 소란스러운 바깥과 분리된 두 사람만의 공간이 마련되었다.은은한 나무 향이 감도는 방 안에는 정갈한 백자 그릇들이 정교하게 차려져 있었다.예리가 상 위의 음식을 크게 훑어보았다.그 모습을 본 은호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띤 채 말했다."어서 드시죠."“그럼, 잘 먹겠습니다.”예리는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을 들었다. 큼직한 갈비구이 한 점을 입에 넣은 예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완전 맛있어. 이 갈비 진짜 맛있는데요? 이런 곳은 대체 어떻게 아셨어요?"그 와중에도 주은이 생각난 예리는, 나중에 꼭 그녀를 데려와야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우며 은호를 바라봤다.은호는 그런 예리의 앞에 놓인 빈 잔에 조심스레 물을 채워주며 입을 열었다.“예전에 아버지와 자주 오던 곳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주로 혼자 왔지만요.”“아….”예상치 못한 유 회장의 언급에 예리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맛있게 음식을 씹던 입안이 순식간에 까슬해지는 기분이었다.“괜찮습니다. 이제 익숙해졌습니다.”은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지만, 억지로 감정을 덮어버리려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괜한 질문을 던져 그의 아픈 구석을 건드린 것 같아 예리는 자책감이 밀려왔다.사과를 건넬 타이밍마저 놓쳐버린 예리는 그저 은호가 채워준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의도치 않게 생겨난 어색함을 먼저 지워낸 건 은호였다.“나 팀장님은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신 겁니까?”예리는 들고 있던 물잔을 내려놓고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음,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을 거예요.”“그렇게나 빨리 시작하셨습니까?”예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네. 아버지 회사라 한 번씩 도와드리곤 했거든요.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대학교 들어가서고요.”고개를 끄덕이던 은호가 다시 예리에게 물었다.“그럼, 이 일은 왜 시작하게 된 겁니까? 원래부터 이런 결혼 관련 일에 관심이 많으셨는지 궁금해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24화

    예리는 은호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당연히 선우가 운전할 거라는 예리의 예상을 깨고 은호는 직접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예리 역시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몸을 실으며 물었다."전 비서님은 어디 가시고 이사님께서 직접 운전 하세요?"은호가 안전벨트를 매며 무심하게 대답했다."시간이 너무 늦어서 먼저 퇴근하라고 했습니다."갑작스러운 퇴근 지시에 어리둥절해하던 선우의 얼굴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가 사라졌다. 사실은 예리와 단둘이 있고 싶어 무작정 선우의 등을 떠민 은호였다.하지만 막상 둘만 남으니, 조수석에서 느껴지는 예리의 온기가 새삼 신경 쓰여 은호는 핸들을 잡은 손에 슬쩍 힘을 주었다.좁은 차 안에는 엔진의 낮은 진동음과 함께 은호의 향취가 짙게 깔렸다.처음 코끝을 스친 건 깊고 중후한 우디 향이었으나, 이내 그 뒤를 따라오는 건 햇볕에 잘 말린 면 셔츠에서 날 법한 포근한 머스크 향이었다.어떤 향수일지 가늠해 보던 예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위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이틀간의 결과들이 겹쳐 보였다.'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솔직히 유은호 매칭은 토요일 하루면 깔끔하게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제 만난 그 누구에게도 은호의 손목은 묵묵부답이었다.결국 오늘까지 급하게 추가 스케줄을 잡았건만 절망적이게도 결과는 똑같았다.더 미칠 노릇인 건, 상대방의 손목에는 모두 선명한 유효기간이 나타났다는 점이었다.‘그럼, 결론은 이 인간이 문제라는 건데. 도대체 눈이 얼마나 높은 거야?’예리가 고개를 돌려 은호를 남몰래 째려봤다. 은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눈이 아무리 높은 고객이라도, 상대가 별로여도, 며칠짜리 짧은 유효기간 하나쯤은 나타나는 게 정상이었다.그런데 은호의 손목은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예리가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제 상대를 못 찾은 게 나 팀장님께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일입니까?”조용하던 은호가 불쑥 입을 열었다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23화

    방금 마주했던 그의 눈에 더 이상 눈물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감정 없는 인형처럼 건조하기만 했다.하지만 예리는 그 메마른 눈동자 너머에서, 이 빌어먹을 능력 앞에 무력하게 무너졌던 어린 날의 자신을 발견했다.그래서였을까. 저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말을 내뱉은 건.‘설마, 나 지금… 동정이라도 하는 건가.’예리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그에게 가장 잔인한 덫을 놓고 있는 당사자가 정작 자신인데, 이제 와 동정이라니. 가당치 않은 소리였다.이런 어설픈 감상은 일을 그르치기에 딱 좋은 독일 뿐이었다. 예리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마음을 다잡았다.지금 중요한 건 오직 하나, 박해미와의 거래를 완벽하게 성사시키는 것뿐이었다.***주말 내내 소개팅 회원들로 북적였던 인연 본사 2층 카페도 이제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어느덧 카페에 남은 건 은호의 테이블뿐이었다.맞은편 상대의 입술은 아까부터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였다.은호는 넋이 반쯤 나간 채 멍하니 앞을 응시했다.“…….”맞은편의 풍경이 하도 수시로 바뀌어 지금이 몇 번째 상대인지, 이 여자의 이름이 다빈이였는지 하빈이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은호는 힐끔 창밖을 쳐다봤다. 분명 이곳에 들어올 때는 해가 높이 떠 있었는데 어느새 달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그럼, 즐거웠습니다.”마침내 앞에 앉아 있던 상대가 짧은 인사를 건넸다. 은호는 도무지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도 즐거웠습니다.”여자가 가방을 챙기며 일어날 채비를 하자 은호가 곧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은영이 무전기에 대고 연락을 취했다.잠시 뒤, 카페 안으로 들어선 예리가 활짝 웃으며 테이블로 다가왔다. 예리는 아직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오늘 두 분 어떠셨나요? 괜찮으셨을까요?""네, 은호 씨 말수는 좀 적으셨지만…."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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