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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재욱 오빠, 오빠가 그렇게 잘났어요? 날 좋아하면 죽기라도 해요? 아니면 뭐 큰일 나요?”

석양 아래,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잘생긴 소년이 농구공을 옆구리에 낀 채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죽는 것보다 더 괴롭겠지.”

유시아는 뻔뻔하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오빠 여자친구 없잖아요? 나랑 사귀어 보자니까요. 어쩌면 오빠가 날 좋아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결국 고개를 돌린 소년이 오만한 표정으로 소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세상에 여자가 너 하나뿐이더라도 너랑은 안 사귈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오빠 엄마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안 가르쳐줬대요?”

줄곧 뻔뻔하던 유시아도 결국 임재욱 때문에 화가 나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가녀린 뒷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아낼 수 있었다.

1층 소파에 앉아있던 임재욱의 머릿속에 그때 그 뒷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지우려 해봐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마치 각인된 것만 같았다.

임재욱은 어쩐지 짜증이 치밀어올라 들고 있던 와인잔을 치우고 테이블 위 담뱃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빨았는데 호흡이 흐트러진 탓에 사레에 들린 임재욱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격하게 기침했다.

그는 조금 전 담배를 피울 때 유시아의 입가에 피를 묻힌 모습과 그녀가 침대에서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를 줄은 몰랐다.

아니, 이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미 3년 전에 끝난 사이였다.

유병철이 신서현을 차로 치어죽인 그 시점부터 둘은 평생 이어질 수 없었다.

임재욱은 신서현의 남자였기에 평생 유시아의 남자가 될 수 없었다.

임재욱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들고 있던 담배를 내려놓고 위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날이 거의 밝을 때쯤, 커튼이 열렸고 눈부신 햇빛이 유시아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유시아의 눈처럼 하얀 피부는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거의 투명해 보일 정도였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시아가 흰 피부를 타고 나서가 아니라 감옥에서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해 병적으로 하얗게 되었다는 걸 말이다.

햇빛에 오랫동안 쬔 탓에 조금 불편했는지 유시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유리창 밖의 햇빛을 바라보았다. 별장 내의 우거진 녹음을 보니 3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모든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임재욱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순진무구한 소녀였다.

그러나 어제의 일은 그녀의 뇌리에 박혀서 시시각각 그녀를 일깨워 줬다. 지금의 유시아는 오점 말고는 가진 것 하나 없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임재욱의 장난감에 불과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쉰 뒤, 유시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가서 씻었다.

이 별장은 사람이 자주 묵지 않는지 욕실이 텅 비어 있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유시아는 개의치 않았다. 3년간 감옥에 있었던 그녀로서는 각종 샤워용품이 구비되어 있길 바란 적이 없었다. 그냥 깨끗이 씻을 수 있으면 됐다.

유시아는 세수한 뒤 간단히 물로 샤워했다. 다 씻은 뒤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제야 입을 옷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감옥에서 나온 뒤로 그녀의 모든 물건은 그 짐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짐가방을 임재욱이 어디에 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시아는 어쩔 수 없이 침대 시트를 몸에 두른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 자신의 짐가방을 찾았다.

별장은 아주 조용했다. 맨발로 계단을 내려가서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임재욱은 이미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던 유시아는 고개를 든 순간 통유리 앞에 서서 꼼꼼히 프리지어를 관리하는 그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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