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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한다고 말해줘
Autor: 금소

제1화

Autor: 금소
“아파?”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의 몸 아래 깔린 여자가 협조하지 않는 탓에 남자는 몇 번이나 시도해야 했다.

술기운 때문일까? 남자는 한 손으로 여자의 가녀린 허리를 받쳐 들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다.

동이 틀 때쯤에야 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욕실 쪽으로부터 들려오는 물소리에 깊이 잠들었던 민하윤은 이불 속에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어제 민하윤은 자신의 오랜 연인 진서우와 약혼식을 치렀다.

그들의 성대한 약혼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대부분이 민씨 일가, 진씨 일가와 사업으로 엮인 회사 사람들이었다. 어젯밤 진서우의 친구들은 약혼식이 끝난 뒤 따로 술자리를 만들었다. 민하윤은 말을 할 수 없었고 거절할 줄도 몰라 그들의 권유에 술을 아주 많이 마시게 되었다. 민하윤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약혼자 진서우가 자신을 꼭대기 층에 있는 스위트룸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그 뒤로 민하윤은 의식을 잃었고, 그렇게 두 남녀는 술기운을 빌려 밤새 뒹굴었다.

어느샌가 욕실 안에서 들려오던 물소리가 멈췄고 남자는 타월을 몸에 대충 두른 채로 걸어 나왔다. 남자는 몸매가 훌륭했다. 어깨는 넓고 허리는 얇았으며 탄탄한 근육 위에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민하윤은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기에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어젯밤의 장면들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어났어?”

하도진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침대 위 몸을 잔뜩 웅크린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흰 얼굴에는 아직 홍조가 남아있었다. 하도진은 여자의 부드러운 살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마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야수처럼 흡족한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 목소리는... 아니야!’

민하윤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공격성이 느껴지는 그윽하면서도 까만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민하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순간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 들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이내 침대 시트 위로 눈물을 떨어뜨렸다.

어젯밤의 즐거움과 쾌락이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가져다준 것이었다니.

민하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절망과 무력함이 몸을 휘감는 것만 같아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민하윤은 수화로 눈앞의 남자를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누구세요?]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어젯밤 그 사람이 그쪽이었나요?]

‘말을 못 하는 건가?’

하도진의 눈동자에 당황함이 스쳤다.

어젯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저 말없이 눈물만 흘린 이유가 있었다.

하도진은 여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하도진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애써 화를 억눌렀다. 하도진의 친구들은 어제 막 귀국한 하도진에게 술을 정신없이 먹이더니 그를 위해 이별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하도진에게 키를 건넸다.

어두운 방 안, 두 사람 모두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고 하도진은 민하윤이 먼저 자신에게 입을 맞췄던 걸 기억했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키스에 이성을 잃었고 결국 상대방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않고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다.

어젯밤 먼저 입을 맞춘 사람은 민하윤인데 왜 이제 와서 모른 척한단 말인가? 하도진은 경멸 어린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해하지 못하겠으니까 옷 챙겨 입고 이만 나가.”

민하윤도 계속 이불 안에 숨어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하도진이 떠난 걸 확인한 뒤 황급히 옷을 입었다. 그러나 어제 하도진이 속옷을 전부 찢어버린 탓에 속옷은 입을 수가 없었다.

민하윤은 힘겹게 옷을 다 챙겨입은 뒤 하도진의 앞에 섰다.

하도진은 민하윤을 본 순간 잠깐 넋을 놓았다. 그는 아침 햇살 아래서 눈앞의 민하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작은 얼굴, 반짝이는 두 눈, 살짝 부은 듯한 빨간 입술, 긴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풀어 헤쳤고 피부는 말도 안 되게 하얬다. 그리고 화장은 살짝 번진 데다가 눈은 놀라울 정도로 빨갰다. 아주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아름답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엉망이 된 침대 시트 위 빨간색 흔적이 하도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젯밤 민하윤이 서툴게 굴었던 이유가 있었다. 하도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민하윤이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하도진은 뭔가를 깨닫고는 지갑 안에서 현금을 꺼내 민하윤의 손에 쥐여줬다.

하도진은 그동안 민하윤 같은 여자를 많이 봐왔다.

“이거면 돼? 아니면...”

하도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민하윤이 그에게 현금을 집어던졌다.

하도진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위험한 기운을 내뿜었다.

“왜? 적어서 그래? 이미 내 친구에게서 돈을 많이 뜯어낸 걸로 알고 있는데. 몸을 팔 생각이었으면서 시가는 알아보지 않은 거야? 아니면 뭐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많이 뜯어낼지 고민하는 거야? 꿈깨...”

짝!

따귀를 맞은 하도진은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그는 입안에 고여있던 피를 뱉어낸 뒤 당장이라도 민하윤을 목 졸라 죽일 것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말 똑똑히 들어.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젯밤 먼저 내게 키스한 건 너야.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민하윤은 그의 말을 계속해 들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민하윤은 애써 눈물을 삼키다가 바닥에 떨어진 돈을 밟으며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민하윤은 길가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올라 휴대전화를 켜는 순간, 부재중전화와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민하윤은 메모장 안에서 목적지 주소를 찾아내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민하윤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녀의 귓가에 하도진의 말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어젯밤 먼저 키스를 한 게 그녀라니...

민하윤은 자신과 함께 밤을 보낸 남자가 낯선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택시는 한 별장 밖에 멈춰 섰고, 민하윤은 빠르게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민하윤은 얼른 몸을 씻은 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넓은 거실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민하윤은 머리도, 화장도 엉망이었고 눈가는 빨갰다. 드레스는 잔뜩 구겨져 있었고 희고 가는 목에는 붉은 키스 마크가 남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별장 안은 고요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민희수가 먼저 입을 뗐다.

“어머, 언니. 어제 어디 갔었어? 다들 언니를 밤새 찾았다고. 서우 오빠가 언니를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경찰에 신고할 뻔했다니까.”

진서우는 굳은 표정으로 민하윤의 목에 남은 키스 마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매우 싸늘했다.

“어디 갔었어? 몸은 왜 그래?”

다들 아무 말 없이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민하윤의 부모님마저 의심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더러운 것을 바라보듯 혐오와 경멸, 증오가 담긴 눈빛으로 민하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순간 억울함과 의아함, 무력함, 두려움이 치솟아 올랐다. 민하윤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기에 수화로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약혼자 진서우에게 말했다.

[어제 어디 갔었어? 왜 나만 호텔에 두고 간 거야?]

진서우는 수화를 조금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이해하지 못한 척했다. 그는 수려한 언변으로 모든 것을 언어장애가 있어 말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민하윤의 탓으로 돌렸다.

“우리는 이미 약혼한 사이야. 그런데 어젯밤에 갑자기 사라지더니 오늘 온몸에 다른 남자가 남긴 흔적을 달고 돌아와? 내 기분은 생각도 안 해?”

진서우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처럼 역정을 내며 억울해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진서우를 동정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서우가 그동안 자기를 얼마나 사랑해 줬는데.”

“부모님이 어떻게 교육했길래 저 모양이지? 곧 결혼할 사람이 다른 남자를 만나? 저런 여자랑 어떻게 결혼을 해?”

사람들 사이에서 듣기 거북한 말들이 나왔다. 아무도 민하윤을 믿지 않았고 다들 민하윤을 질타하고 욕했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서 민하윤을 성희롱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하윤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어젯밤 술에 취한 그녀를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스위트룸으로 데려다주었던 사람은 진서우였기에 절대 문제가 생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민하윤은 말할 수가 없었고 그녀를 믿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민하윤은 수화를 했다.

[그런 거 아니야. 내 말 좀 들어봐!]

진서우는 뭐가 그렇게 급한지 사람들 앞에서 자극적인 말로 민하윤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나랑 약혼하자마자 갑자기 사라져서 다른 남자랑 뒹굴다니. 민하윤, 네가 이런 사람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

민하윤은 열심히 손을 움직이다가 우뚝 멈췄다. 그녀는 서서히 두 손을 내린 뒤 어두운 눈빛을 해 보였다. 민하윤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민하윤, 나는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자랑 결혼할 생각 없어. 그러니까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해.”

[난 그런 적 없어. 오빠가 그런 거야? 일부러 그랬어?]

민하윤은 미친 사람처럼 진서우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목에 키스 마크가 남아있는 걸 본 순간, 민하윤은 따귀를 맞았다.

손에 힘을 너무 많이 준 탓에 민성현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민하윤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도움 안 되는 것. 어쩜 이렇게 뻔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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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9화

    민하윤은 책상 위의 마지막 서류까지 가지런히 정리한 뒤 기지개를 켰다.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 자리는 반 이상 비어 있었고 민하윤은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원증부터 목에서 뺐다.민하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하도진에게 답장을 보냈다....하도진은 심심한 듯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고 있었다.옆에서는 삼색이가 가방 안에서 앞발로 벽면을 긁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하도진이 고개를 돌려 보니 삼색이는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잔뜩 서운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사람과 고양이가 그렇게 눈싸움을 벌였다.“너도 하윤이 보러 가고 싶어?”하도진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고양이 가방을 앞쪽으로 멘 채 검은색 얇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자 늘씬하고 곧게 뻗은 몸이 드러났다.하도진이 신은 가죽 구두는 저녁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딱 퇴근 시간과 겹쳤기에 하도진은 사람들의 흐름을 거슬러 태유 은행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덕분에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도진에게 쏠렸다.심플한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지만 하도진은 이상하리만큼 눈에 띄었다.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길게 뻗은 체형도 그랬고 얼굴까지 워낙 잘생겼다.그런 남자가 앞쪽으로 반려동물 가방까지 메고 있으니 묘한 반전 매력이 더해졌다.그러니 하도진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을 수가 없었다.하도진은 삼색이를 안은 채 태유 은행 로비로 들어가더니 젊은 직원에게 작업용 카드까지 빌려 출입 게이트를 통과했다.“임원실은 몇 층이죠?”“중간 관리자 이상은 거의 다 꼭대기 층의 사무 구역에서 근무해요.”“고마워요.”하도진이 입꼬리를 휘며 웃자 젊은 여직원은 홀린 듯 그를 바라봤다.“연락처 하나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여직원은 용기를 내 먼저 말을 붙였다.“저도 고양이 키우거든요. 가끔 정보 공유해도 좋을 것 같아서요.”하지만 하도진은 고개를 저었다.그러더니 손가락으로 가슴 앞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얘 엄마가 워낙 관리가 엄해서요.”“아...”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8화

    민하윤은 늘 하도진을 놀라게 했다.하도진은 민하윤의 고집과 질긴 생명력을 오래전부터 봐 왔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소중한 정의감까지 새삼 느끼고 있었다.민하윤은 한 번도 하도진의 손바닥 위에서 길러지는 금실 좋은 새장이 아니었고 절대 하도진이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민하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도진 씨도 많이 변했네요.”“퇴근하고 내가 널 데리러 가도 돼? 삼색이가 곧 새끼 낳을 것 같아서 병원에 한 번 더 데려가야 해.”예전의 하도진은 늘 제멋대로였다.민하윤의 기분을 먼저 헤아리는 법도 없었고 하물며 진지하고 평등하게 대화한다는 건 더더욱 기대할 수 없었다.시간은 참 좋은 스승이었다.사람에게 더 잘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니까 말이다.민하윤은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다.“네. 알겠어요.”“하윤아, 우리 내일 혼인신고 다시 하러 가면 안 돼?”“안 돼요.”“그럼 언제는 되는데?”“도진 씨의 행동을 봐서요.”민하윤은 잠깐 생각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제 기분도 봐야 해요.”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하윤아, 어젯밤에 네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벌써 잊은 거 아니지?”민하윤은 가만히 떠올려 봤다.숙취 때문에 어젯밤의 기억은 온통 야릇한 일들만 뒤섞여 남아 있었다.민하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제가 뭐라고 했는데요?”“내가 잘한다고 하면서 나한테 명분이라도 줘야겠다고 했잖아.”하도진은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화가 난 얼굴이었다.민하윤이 돌아서는 속도는 책장 넘기는 속도보다 빠르다고 생각했다.하도진은 얼굴을 굳힌 채 따져 물었다.“잊었어? 진짜 하나도 기억 안 나?”민하윤은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가렸고 그 순간,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도진 씨 좀 보세요. 또 성질내네요.”“내가 언제 성질냈어? 너 지금 어디야? 와서 우리 얼굴 보고 똑바로 얘기하자. 하윤아, 나 진짜 어젯밤에 녹음 안 한 게 너무 아쉬워. 네가 어제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7화

    하도진은 차체에 기대선 채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의 담배를 꺼냈다.손마디는 완전히 감각을 잃은 듯 굳어 있었고 손가락도 마음대로 구부러지지 않았다.간신히 손바닥으로 담배를 쳐서 한 개비를 빼낸 뒤 고개를 숙여 물었다.하도진은 금속 라이터를 더듬어 꺼내 몇 번이나 켜려고 노력한 끝에 겨우 불을 붙였다.불꽃이 담배 끝을 핥았다.하도진은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몸을 숙인 채 심하게 기침을 터뜨렸고 담배를 문 채, 외울 정도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우통 인터내셔널 하버.민하윤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 겨우 발을 옮기며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식빵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고 있었고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뜬금없이 울렸다.민하윤은 발신자 이름을 힐끗 보는 순간 혼이 빠진 사람처럼 휴대폰을 뒤집어 식탁 위에 엎어 놨다.하도진은 고집이 황소 같은 사람이었다.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끊임없이 울렸고 대리석 상판 위에서 휴대폰이 이상한 진동음을 냈다.민하윤은 결국 못 참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아직도 화났어?”하도진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무심코 입꼬리를 올렸다.눈을 감은 채, 수화기 너머에서 민하윤이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부루퉁하게 서 있을 모습을 그려 보고 있었다.“할 말 있으면 빨리 해요. 헛소리...”민하윤은 갑자기 말을 멈췄고 손가락을 깨물며 속으로 기겁했다.‘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대담할 수 있지? 머리보다 입이 먼저 움직이다니...’“민하윤, 너한테 할 말이 있어.”하도진은 정말 딴사람처럼 들렸다.낮고 거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전류음을 타고 민하윤의 귀에 스며들었다.“내 말 좀 들어 줄래?”민하윤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못 이기는 척 작게 대답했다.“네...”“먼저 잘못부터 인정할게. 고은율의 일 때문에 주민혁을 거의 절반 죽여 놨어.”“뭐라고요?”“고은율이 술에 취한 상태로 주민혁한테 강제로 끌려갔어.”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켠 뒤 잠시 말을 골랐다.“주민혁 그 자식은 너한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6화

    하도진의 눈빛은 알 수 없을 만큼 깊었고 눈 밑으로 핏빛이 서서히 번졌다.주민혁의 그런 말을 듣는 순간, 하도진은 가슴속의 어딘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하도진은 주민혁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고 주먹을 말아 쥔 채 미친 사람처럼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넌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고은율은 소파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고 얼굴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은율은 하도진이 마치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걸 건드린 사람처럼 주민혁에게 정말 손을 봐주지 않고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사람을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친 뒤 느릿하게 넥타이를 풀었다.그러더니 주먹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하도진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가득했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번호 하나를 눌렀다.하도진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담담했다.“도련님, 바쁘십니까? 와서 동생 시신이나 수습하시죠.”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다는 듯 전화를 끊어 버린 하도진은 발끝으로 피범벅이 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주민혁을 한 번 툭 건드렸다.하도진은 길게 숨을 내쉰 뒤, 고은율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등을 돌렸다.그대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도진아.”고은율은 넋이 나간 얼굴로 하도진을 불렀다.고은율의 목소리는 몹시 떨렸고 공포와 울음이 뒤섞여 있었다.“도진아, 또 네가... 날 구해 줬네.”하지만 하도진의 마음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아주 오래전 어느 날, 하도진 역시 혼자 룸 안으로 뛰어들어 처참하게 짓밟히던 고은율을 구해 낸 적이 있었다.“고은율, 너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아무 말도 안 하려고 해.”고은율은 눈물을 쏟아 내며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맨발로 바닥을 딛자 고은율의 하얀 발가락에는 피가 묻었다.고은율은 하도진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끝까지는 안 갔어. 나 당하지는 않았어. 도진아, 제발 날 버리지 마. 응?”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5화

    하도진의 차는 길가에 멈춰 섰다.희뿌연 새벽빛 아래 세상은 짙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하도진은 문득 헛웃음이 터졌다.‘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아직 철없는 애송이처럼 이렇게 무모하고 충동적이라니. 내 멘탈이 이렇게나 형편없단 말인가.’민하윤이 손가락 하나 까딱해 유혹하기만 해도 하도진은 그토록 하찮고 값싸 보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하도진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해가 뜨기 전에 담배를 한 개비 물었다.그때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려 댔다.하도진은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 차창을 올린 뒤 전화를 받았다.“형 지금 어디야? 은율 누나가 주민혁한테 끌려갔어!”수화기 너머로 진호영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준오 형은 해외 나갔고 나도 그 새끼 사람들한테 맞았어. 형, 지금 어디야?”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켠 뒤 대뜸 욕부터 퍼부었다.“생각이란 게 있긴 해? 내가 아까 뭐라고 했어? 걔 마음대로 날뛰게 두지 말고 주민혁의 술집에서 바로 데리고 나오라고 했지. 사람 말이 그렇게 알아듣기 어려워? 꼭 일이 이 지경까지 터져야 정신 차리냐?”“나가던 길에 하필 그 새끼랑 마주쳤어. 형 지금 어디냐고? 은율 누나 아직 취해 있어. 진짜 큰일 날까 봐 무서워.”진호영의 목소리는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하도진은 욕설을 뱉으며 핸들을 틀고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하도진은 이런 귀찮은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주민혁 그 개자식이 자기를 향한 원한 때문에 귀신처럼 달라붙어 자기 주변 사람들까지 건드리는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차는 고가도로 위를 미친 듯이 달렸고 짙던 안개도 조금씩 걷혀 갔다.하도진은 차 문도 제대로 닫지 않은 채 주민혁의 라운지 바로 안으로 들이닥쳤다.1층 댄스 플로어에서는 조금 전까지 남녀들이 디제이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들고 있었지만 다음 순간 새하얀 스포트라이트가 번쩍 켜지자 모두 멍하니 서로 얼굴만 바라봤다.하도진은 2층 룸 문을 발로 걷어찼고 방 안의 상황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주민혁은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4화

    “그러면 우리는 지금 무슨 사이야? 단순히 잠자리만 하는 사이라는 말은 하지 마. 난 너랑 섹파 안 해.”민하윤은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서랍장을 열어 지폐 다발을 꺼내 침대 위에 내던졌다.“이 정도면 돼요?”“지금 뭐 하자는 거야?”하도진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식었다. 음산하게 가라앉은 얼굴에 보는 사람마저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하지만 민하윤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 다리는 후들거릴 만큼 힘이 풀려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단호했다.“기억 안 나요? 저랑 처음 잔 다음에 도진 씨도 저한테 이랬잖아요. 두툼한 돈다발을 던졌죠.”“하윤아, 지금 날 돈 받고 몸을 판 남자 취급하는 거야?”하도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숨까지 흐트러졌다.민하윤은 얼굴을 돌린 채 말했다.“그때 도진 씨가 저한테 한 만큼 저도 똑같이 해 주는 거죠.”하도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민하윤이 이렇게까지 독할 줄은 몰랐다.‘진짜 당한 만큼 그대로 돌려주는구나. 좋아.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하도진은 침대 위의 돈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침대 가장자리를 툭툭 두드렸다.“자, 이만큼 줬으면 소중한 손님이 손해 보게 하면 안 되지. 이리 와. 내가 계속 서비스를 잘해 줄게.”민하윤은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기에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아... 아니에요. 안 해도 돼요. 이 정도면 아주 만족스러웠어요.”하도진은 차갑게 웃으며 일부러 돈다발을 흔들어 보였다.“그럴 리가... 이 돈은 너무 많잖아. 우리 손님 손해 보면 안 되지. 올라와. 이만큼이나 받았으니 제대로 해 줄게.”민하윤은 머리를 세차게 저었고 겁에 질린 듯 침만 꿀꺽 삼켰다.민하윤은 애초에 자기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몰랐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 입만 멋대로 움직였다.“아니에요. 남는 건 팁으로 해요.”‘팁? 팁이라고?’하도진은 입꼬리를 올렸지만 웃음은 눈까지 닿지 않았다.‘이 여자가 진짜 날 돈 주고 부르는 남자 취급한 거네.’하도진의 시선이 천천히 민하윤의 몸 위를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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