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화

Author: 금소
“민 대표!”

소파 중간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이 호통을 치면서 지팡이로 바닥을 힘껏 내리찍었다. 노인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뒤 어두운 얼굴로 민성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한테 제대로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아이들 사이의 일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 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우리 진씨 가문에서는 그동안 민씨 가문을 많이 도와줬어. 진운 은행의 자금이 없었다면 민씨 가문은 일찌감치 파산했을 거야.”

상대방이 자신의 목숨줄을 틀어쥐자 민성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진씨 가문의 은혜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성현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그는 수치도 모르고 도움도 안 되는 민하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의 돈줄을 끊어버리려고 하다니.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정략결혼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은 무를 수 없어.”

진태원은 민성현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단호히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몸 간수도 제대로 못 하는 가벼운 여자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언어장애가 있는 건 둘째 치고 저 아닌 다른 남자랑 잤잖아요.”

진서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자신에게 민하윤과의 결혼을 강요할까 봐 걱정되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손주며느리가 바람을 피워서 할아버지 손주가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길 바라세요?”

처음에 진서우는 민하윤과의 결혼에 못 이기는 척 동의했다. 민하윤은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쁜 보기 드문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서우는 민하윤에게 언어장애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점이 진서우는 창피했다.

아마 민하윤과 잠자리를 가지더라도 민하윤은 신음조차 낼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진서우는 민하윤보다 조금 더 오픈 마인드인 민하윤의 동생 민희수를 좋아했다.

진서우는 민희수와 소꿉친구였는데 얼마 전 술김에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고, 민희수는 울면서 진서우에게 결혼하자고 했다. 솔직히 진서우는 조금 불안했다. 그러나 누구와 결혼하게 되든 어차피 정략결혼일 뿐이니 민하윤만큼 예쁘지 않은 민희수와 결혼하게 되어도 별로 상관없었다.

그리고 눈치가 빠르고 걸핏하면 싸늘한 표정을 짓는 언어장애인 민하윤보다 민희수와 결혼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진서우는 민하윤과 파혼하기 위해 어젯밤 일부러 판을 짰다.

민희수가 집요하게 감시하지만 않았다면 진서우는 민하윤이 다른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내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일을 자신이 아닌 남이 누린다는 건 배 아픈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진서우는 그 기회를 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하윤과 잠자리를 가진 남자가 부럽기도 했다.

진서우는 음흉한 눈빛으로 민하윤의 흰 피부를 바라보며 어젯밤에 일어났을 일들을 상상했다.

진서우의 속내를 꿰뚫어 본 민희수는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민희수의 마음속에서 증오가 끊임없이 자라났다. 민희수는 민하윤이 평생 재기할 수 없게 할 생각이었다.

“언니, 어서 서우 오빠한테 사과해야지.”

민희수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다들 정신을 차렸다.

진태원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결혼은 계획대로 진행할 거야. 민씨 가문에 딸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그 말에 모든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거실에 나란히 서 있는 민하윤과 민희수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파혼하겠다고 악다구니를 쓰던 진서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치 떼를 쓰던 아이가 사탕을 받고 조용해지듯 말이다.

민희수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부끄러운 듯 송해정의 뒤에 숨었다. 민하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보였다.

민하윤은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약혼자와 민희수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고, 그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거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의논이 분분했다. 민씨 가문의 그 일은 비밀이 아니었다.

민씨 가문에서는 아이를 잃어버렸던 적이 있는데 당시 송해정의 정신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었다. 그들은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보육원에서 민하윤 또래의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민씨 가문 사람들 모두 그 아이를 애지중지했고 그 아이에게 민희수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런데 십여 년 뒤, 갑자기 경찰이 찾아와 그들의 실종된 친딸의 DNA가 유전자 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됐다고 알렸다.

그 일로 도시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체면을 지키기 위해 민씨 가문에서는 밖에서 떠돌며 고생했던 친딸을 집으로 데려온 뒤 대외적으로 앞으로 민씨 일가에는 딸이 두 명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친딸을 데려왔다고 해서 입양한 딸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거기서 끝났다면 꽤 그럴싸한 아름다운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씨 가문의 친딸 민하윤은 그동안 갖은 고생을 했고, 17살 때 양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큰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리고 말았다.

외모든, 분위기든, 자태든, 몸매든 민하윤은 모든 방면에서 민희수를 가뿐히 이겼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실어증에 걸려서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민씨 가문과 진씨 가문이 정략결혼을 할 거라는 것도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민씨 가문은 몇 년 전 자금줄이 끊겼었는데 당시 진씨 가문에서 거액의 자금을 제공하여 민씨 가문을 위기에서 구했다.

민씨 가문이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진씨 가문 덕분이었다.

두 집안은 사업 거래가 잦았고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집안 어른들은 정략결혼을 하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 진서우와 결혼할 사람은 민희수였다. 민희수와 진서우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서 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씨 가문에서는 이익의 확실성을 중요시했기에 며느릿감으로 민하윤을 더 선호했다.

사실 진씨 가문에서는 민씨 가문이 갑자기 등을 돌릴까 봐 걱정되어 진짜 민씨 가문의 피를 가진 민하윤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민하윤의 추문을 모두가 알게 되었으니 더는 며느리로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민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이익은 유지해야 했기에 진태원은 한 걸음 양보하여 양녀인 민희수를 며느리로 받아줄 생각이었다.

“희수는 아직 어리니 2년 뒤쯤으로 미루죠.”

줄곧 말이 없던 송해정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이 사랑하는 막내딸을 위해 나섰다.

민하윤은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의 친모를 바라보았다. 민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정략결혼이 결정되었을 때 그녀의 의사를 물은 사람은 없었다. 이 결혼은 오로지 두 가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민하윤은 그 탓에 원하지도 않는 결혼을 해야 했다. 그런데 민하윤이 아닌 민희수로 상대를 바꾸자고 하자마자 바로 안 된다면서 나서는 것을 보니 우스웠다.

민하윤은 자조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민하윤의 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친부모님마저 그녀를 혐오했고 자연스럽게 민희수를 편애했다.

누가 민씨 가문의 친딸일까?

민하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눈앞의 민희수를 바라보았다. 민하윤이 민씨 가문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민하윤의 부모님은 민희수가 서운해할까 봐 걱정되어 민희수에게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사실 민하윤의 생일이 민희수보다 이틀 늦었지만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민하윤은 민희수만큼 부모님의 환심을 잘 사지 못했고 심지어 말도 할 줄 몰랐다. 17살이 되어서야 민씨 가문으로 돌아왔으니 그들 사이에 가족애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 민하윤의 방은 아주 작은 데다가 가정부의 방 옆에 있었다. 반대로 민희수는 아주 크고 예쁘게 꾸며진 방을 가졌다.

민하윤은 매달 식비가 10만 원뿐이었고 매일 버스를 타고 등교해야 했다.

반대로 송해정은 민희수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일부러 운전기사를 시켜 민희수를 픽업했고 가정부는 매일 민희수를 위해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다. 그러다가 집밥이 질리면 호화로운 5성급 호텔로 가서 밥을 먹었고 신용카드도 마음껏 긁었다.

민하윤이 기숙사를 운영하는 공립학교를 다닐 때 민희수는 명원의 사립학교를 다녔다.

민하윤의 옷장 안에는 양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낡은 옷 몇 벌뿐이었지만 민희수에게는 예쁜 옷들과 명품 가방들이 가득했다.

민희수가 성년의 날 선물로 빨간색 스포츠카를 받았을 때 민하윤의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두 사람의 생일은 불과 이틀 차이였다. 부모님은 매년 민희수를 위해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었지만 민하윤을 위해서는 생일 케이크 하나 준비해 준 적이 없었다. 아무도 그녀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축하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송해정은 민희수가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는 건 원하지 않으면서 갑자기 낯선 남자와 결혼하게 된 민하윤의 기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민씨 가문의 진짜 딸은 과연 누구일까?

누가 봐도 사랑 가득 받는 민희수일 것이다.

민하윤의 부모님은 친딸인 민하윤을 사랑하지 않았고 진서우와 민희수는 민하윤 몰래 바람을 피웠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욕받이가 된 건 다름 아닌 민하윤이다.

이곳에서는 민하윤의 존재 자체가 웃음거리였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7화

    하도진은 차체에 기대선 채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의 담배를 꺼냈다.손마디는 완전히 감각을 잃은 듯 굳어 있었고 손가락도 마음대로 구부러지지 않았다.간신히 손바닥으로 담배를 쳐서 한 개비를 빼낸 뒤 고개를 숙여 물었다.하도진은 금속 라이터를 더듬어 꺼내 몇 번이나 켜려고 노력한 끝에 겨우 불을 붙였다.불꽃이 담배 끝을 핥았다.하도진은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몸을 숙인 채 심하게 기침을 터뜨렸고 담배를 문 채, 외울 정도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우통 인터내셔널 하버.민하윤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 겨우 발을 옮기며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식빵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고 있었고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뜬금없이 울렸다.민하윤은 발신자 이름을 힐끗 보는 순간 혼이 빠진 사람처럼 휴대폰을 뒤집어 식탁 위에 엎어 놨다.하도진은 고집이 황소 같은 사람이었다.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끊임없이 울렸고 대리석 상판 위에서 휴대폰이 이상한 진동음을 냈다.민하윤은 결국 못 참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아직도 화났어?”하도진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무심코 입꼬리를 올렸다.눈을 감은 채, 수화기 너머에서 민하윤이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부루퉁하게 서 있을 모습을 그려 보고 있었다.“할 말 있으면 빨리 해요. 헛소리...”민하윤은 갑자기 말을 멈췄고 손가락을 깨물며 속으로 기겁했다.‘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대담할 수 있지? 머리보다 입이 먼저 움직이다니...’“민하윤, 너한테 할 말이 있어.”하도진은 정말 딴사람처럼 들렸다.낮고 거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전류음을 타고 민하윤의 귀에 스며들었다.“내 말 좀 들어 줄래?”민하윤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못 이기는 척 작게 대답했다.“네...”“먼저 잘못부터 인정할게. 고은율의 일 때문에 주민혁을 거의 절반 죽여 놨어.”“뭐라고요?”“고은율이 술에 취한 상태로 주민혁한테 강제로 끌려갔어.”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켠 뒤 잠시 말을 골랐다.“주민혁 그 자식은 너한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6화

    하도진의 눈빛은 알 수 없을 만큼 깊었고 눈 밑으로 핏빛이 서서히 번졌다.주민혁의 그런 말을 듣는 순간, 하도진은 가슴속의 어딘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하도진은 주민혁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고 주먹을 말아 쥔 채 미친 사람처럼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넌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고은율은 소파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고 얼굴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은율은 하도진이 마치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걸 건드린 사람처럼 주민혁에게 정말 손을 봐주지 않고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사람을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친 뒤 느릿하게 넥타이를 풀었다.그러더니 주먹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하도진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가득했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번호 하나를 눌렀다.하도진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담담했다.“도련님, 바쁘십니까? 와서 동생 시신이나 수습하시죠.”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다는 듯 전화를 끊어 버린 하도진은 발끝으로 피범벅이 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주민혁을 한 번 툭 건드렸다.하도진은 길게 숨을 내쉰 뒤, 고은율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등을 돌렸다.그대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도진아.”고은율은 넋이 나간 얼굴로 하도진을 불렀다.고은율의 목소리는 몹시 떨렸고 공포와 울음이 뒤섞여 있었다.“도진아, 또 네가... 날 구해 줬네.”하지만 하도진의 마음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아주 오래전 어느 날, 하도진 역시 혼자 룸 안으로 뛰어들어 처참하게 짓밟히던 고은율을 구해 낸 적이 있었다.“고은율, 너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아무 말도 안 하려고 해.”고은율은 눈물을 쏟아 내며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맨발로 바닥을 딛자 고은율의 하얀 발가락에는 피가 묻었다.고은율은 하도진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끝까지는 안 갔어. 나 당하지는 않았어. 도진아, 제발 날 버리지 마. 응?”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5화

    하도진의 차는 길가에 멈춰 섰다.희뿌연 새벽빛 아래 세상은 짙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하도진은 문득 헛웃음이 터졌다.‘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아직 철없는 애송이처럼 이렇게 무모하고 충동적이라니. 내 멘탈이 이렇게나 형편없단 말인가.’민하윤이 손가락 하나 까딱해 유혹하기만 해도 하도진은 그토록 하찮고 값싸 보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하도진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해가 뜨기 전에 담배를 한 개비 물었다.그때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려 댔다.하도진은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 차창을 올린 뒤 전화를 받았다.“형 지금 어디야? 은율 누나가 주민혁한테 끌려갔어!”수화기 너머로 진호영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준오 형은 해외 나갔고 나도 그 새끼 사람들한테 맞았어. 형, 지금 어디야?”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켠 뒤 대뜸 욕부터 퍼부었다.“생각이란 게 있긴 해? 내가 아까 뭐라고 했어? 걔 마음대로 날뛰게 두지 말고 주민혁의 술집에서 바로 데리고 나오라고 했지. 사람 말이 그렇게 알아듣기 어려워? 꼭 일이 이 지경까지 터져야 정신 차리냐?”“나가던 길에 하필 그 새끼랑 마주쳤어. 형 지금 어디냐고? 은율 누나 아직 취해 있어. 진짜 큰일 날까 봐 무서워.”진호영의 목소리는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하도진은 욕설을 뱉으며 핸들을 틀고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하도진은 이런 귀찮은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주민혁 그 개자식이 자기를 향한 원한 때문에 귀신처럼 달라붙어 자기 주변 사람들까지 건드리는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차는 고가도로 위를 미친 듯이 달렸고 짙던 안개도 조금씩 걷혀 갔다.하도진은 차 문도 제대로 닫지 않은 채 주민혁의 라운지 바로 안으로 들이닥쳤다.1층 댄스 플로어에서는 조금 전까지 남녀들이 디제이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들고 있었지만 다음 순간 새하얀 스포트라이트가 번쩍 켜지자 모두 멍하니 서로 얼굴만 바라봤다.하도진은 2층 룸 문을 발로 걷어찼고 방 안의 상황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주민혁은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4화

    “그러면 우리는 지금 무슨 사이야? 단순히 잠자리만 하는 사이라는 말은 하지 마. 난 너랑 섹파 안 해.”민하윤은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서랍장을 열어 지폐 다발을 꺼내 침대 위에 내던졌다.“이 정도면 돼요?”“지금 뭐 하자는 거야?”하도진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식었다. 음산하게 가라앉은 얼굴에 보는 사람마저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하지만 민하윤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 다리는 후들거릴 만큼 힘이 풀려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단호했다.“기억 안 나요? 저랑 처음 잔 다음에 도진 씨도 저한테 이랬잖아요. 두툼한 돈다발을 던졌죠.”“하윤아, 지금 날 돈 받고 몸을 판 남자 취급하는 거야?”하도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숨까지 흐트러졌다.민하윤은 얼굴을 돌린 채 말했다.“그때 도진 씨가 저한테 한 만큼 저도 똑같이 해 주는 거죠.”하도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민하윤이 이렇게까지 독할 줄은 몰랐다.‘진짜 당한 만큼 그대로 돌려주는구나. 좋아.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하도진은 침대 위의 돈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침대 가장자리를 툭툭 두드렸다.“자, 이만큼 줬으면 소중한 손님이 손해 보게 하면 안 되지. 이리 와. 내가 계속 서비스를 잘해 줄게.”민하윤은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기에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아... 아니에요. 안 해도 돼요. 이 정도면 아주 만족스러웠어요.”하도진은 차갑게 웃으며 일부러 돈다발을 흔들어 보였다.“그럴 리가... 이 돈은 너무 많잖아. 우리 손님 손해 보면 안 되지. 올라와. 이만큼이나 받았으니 제대로 해 줄게.”민하윤은 머리를 세차게 저었고 겁에 질린 듯 침만 꿀꺽 삼켰다.민하윤은 애초에 자기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몰랐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 입만 멋대로 움직였다.“아니에요. 남는 건 팁으로 해요.”‘팁? 팁이라고?’하도진은 입꼬리를 올렸지만 웃음은 눈까지 닿지 않았다.‘이 여자가 진짜 날 돈 주고 부르는 남자 취급한 거네.’하도진의 시선이 천천히 민하윤의 몸 위를 훑었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3화

    “연하... 아...”민하윤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입술을 세게 깨물었지만 얼굴은 피가 날 듯 붉게 달아올랐다.“연하가 뭐?”하도진은 이를 악문 채 아까보다 더 거칠게 민하윤을 몰아붙였다.민하윤이 꼼짝도 못 하는 지점까지 몰아세운 뒤 낮게 으르렁댔다.“말해.”“저는... 연하랑 해 본 적이 없...”민하윤은 눈가를 붉힌 채 하도진의 등을 꽉 붙잡았고 고개를 뒤로 젖히자 목덜미를 따라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하지만 하도진은 그런 대답으로는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하도진은 민하윤의 귓불을 문 채 조금씩 느리게 그녀를 괴롭혔다.“넌 연하의 몸매가 좋다고 했잖아.”하도진은 다시 지독하게 밀어붙였다.이 몇 년 동안 하도진은 너무 오래 참아 왔다.진짜로 거의 스님처럼 살아 버릴 지경이었다.그런데 민하윤은 항도시에서 남자들을 만졌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연하가 어려서 좋지? 몸 좋고 탄탄해서 좋다며?”“민하윤, 뒤에서 몰래 다른 남자 건드릴 배짱은 있으면서 왜 지금은 입을 다물어?”민하윤은 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올까 봐 입술을 더 세게 깨물었다.그 순간, 민하윤은 정말 너무 수치스러웠다.“민하윤...”“하윤아, 내 이름을 불러 줘.”하도진은 민하윤의 속마음을 훤히 읽고 있었다.떨리는 민하윤의 속눈썹을 바라보며 하도진은 끈질기게 달랬다.“착하지? 응? 이럴 때 또 벙어리 흉내 내지 마. 전화로 날 욕하던 그 기세는 어디 갔어? 아까 그 독한 말투는 어디 갔는데? 할 수 있으면 끝까지 해 봐.”하도진은 민하윤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하도진은 자신이 원하는 걸 들었다.민하윤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하도진의 이름을 불렀다.한 번.또 한 번.그때마다 하도진 마음속의 불길은 더 크게 치솟았다.“사기꾼. 나쁜 놈.”“그래. 연하는 좋고 어리고 나는 사기꾼에 나쁜 놈이지?”민하윤이 아무리 욕을 퍼부어도 하도진은 멈추지 않았다.“연하가 좋다며?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2화

    “와...”민하윤은 감탄을 삼키지도 못하고 중얼거리더니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그러고는 한 번 쥐어 보고 또 한 번 눈을 크게 떴다.“와...”하도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하도진은 혀끝으로 이를 훑으며 낮게 물었다.“하윤아, 어때? 손맛이 괜찮아?”“좋아요.”민하윤은 얼굴을 붉힌 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도진이 화를 내지 않자 민하윤은 오히려 더 대담해졌다.양손을 다 올린 채 장난기 가득한 손길로 여기저기 만져 보려 들었다.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하도진은 다급히 민하윤의 손목을 붙잡았다.“하윤아, 너 지금 뭐 하는 건데? 계속 이러다 진짜 큰일 나.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민하윤은 반쯤 알아듣고 반쯤은 못 알아들은 얼굴로 하도진을 올려다봤다.그러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흥, 깍쟁이...”하도진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하얘졌다가 다시 달아올랐다.하도진은 묘한 눈빛으로 민하윤을 내려다봤다.“민하윤, 자신 있으면 계속해 봐. 내일 술 깨고 나서 후회하면 안 돼.”하도진은 이미 참을 만큼 참은 상태였다.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도 이런 식으로 계속 건드리면 버틸 수가 없었다.술기운이 오른 민하윤은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다.손부터 나가는 데다 심지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재능까지 있었다.그 뒤로는 모든 게 너무 빨랐다.민하윤은 장난처럼 하도진의 목덜미를 물었고 거기서부터는 누구도 걷잡을 수 없었다.현관 앞 차가운 바닥에서 두 사람은 끝없이 서로를 밀어붙였다.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끝을 보겠다는 듯할 기세였다.마지막 순간에 민하윤이 작게 떨리는 숨소리를 흘리자 하도진 머릿속의 마지막 이성까지 완전히 끊어 놓았다.“민하윤, 후회하지 마.”“네...”창밖에서는 천둥이 굴렀고 굵은 빗방울이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렸다.밖은 폭풍우가 내리고 있었지만 방안은 끝없이 뜨거웠다....한참 뒤.두 사람은 바닥에 서로를 끌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