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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금소
민하윤은 그날 어떻게 집에서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민희수가 하루건너 자신이 결혼한다는 사실을 문자로 자랑했다.

민하윤은 회사 근처에서 자취했다. 십 평 조금 넘는 크기라 별로 크지 않았지만 욕실 하나가 딸려 있고 가구도 빠짐없이 있었다.

민하윤은 민희수를 언팔로우 하려다가 실수로 민희수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민희수는 여전히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민씨 가문 별장의 거실에 각종 주얼리와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놓고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그리고 아래 글을 적었다.

[역시 엄마, 아빠 최고. 엄마, 아빠 덕분에 스물셋에 수십억대 혼수를 마련했다.]

민하윤은 민희수가 올렸던 게시물들을 쭉 보았다. 민희수는 누가 봐도 화려한 삶을 사는 재벌가 딸 같아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스포츠카와 명품 백, 옷장을 가득 채운 맞춤 드레스와 주얼리들, 그리고 가끔은 가족들과 단톡방에서 나눈 대화를 캡처해서 올리기도 했다. 평소 무뚝뚝하던 민성현은 민희수가 보낸 문자에 꼬박꼬박 답장을 보냈고 유머러스했다. 심지어 늘 까칠하던 송해정도 자애롭고 다정했다. 누구라도 그런 가족 분위기를 부러워할 것이다.

민하윤은 자조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가족 단톡방에는 오직 세 명뿐이었다. 민하윤은 없었다.

민성현, 송해정과의 채팅 기록은 민하윤과 진서우의 정략결혼이 정해졌을 때 멈춰 있었다.

민성현, 송해정은 민하윤을 위해 혼수를 준비했다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하윤아, 예물은 엄마, 아빠가 보관해 줄게. 네가 챙겨가면 결국엔 진씨 가문의 것이 될 거니까. 혼수도 꽤 많아. 그리고 널 위해 가장 좋은 실크 이불 여러 개를 주문했어. 그거 챙겨가.]

당시 민하윤은 바보처럼 그 말에 감동했었다.

그들은 친딸도 아닌 민희수가 결혼할 때는 집과 차, 비싼 보석들이 박힌 주얼리들을 준비해 주었다. 그들보다 더 부유한 진씨 가문에 시집가서 괴롭힘이라도 당할까 봐 말이다. 그러나 민하윤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는 겨우 이불 여러 개를 준비해 주었다.

민하윤은 부모님과 여동생의 연락처를 차단한 뒤 삭제했다. 어차피 민하윤은 이미 평판이 추락했고 그들은 민하윤이 더는 본인들의 체면을 깎지 않고 민씨 가문에서 알아서 나가 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민하윤은 감정을 추스른 뒤 출근 준비를 했다. 그녀는 일부러 셔츠 안에 터틀넥 이너를 입었다. 온몸 곳곳에 키스 마크가 남았는데 그중에서도 목 부근이 특히 심했기 때문이다.

민하윤은 전국 곳곳에 지점을 둔 은행에서 일했다. 민하윤은 명원 태유 은행 본점에서 신용대출 업무 중에서도 대출 관리를 주로 맡았다.

민하윤은 업무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 부서 내 모든 신용대출 업무는 반드시 그녀의 손을 거쳐야 했고, 일반적으로 민하윤이 최종 검토 후 상사에게 보고했다.

실어증은 민하윤의 일상생활에 여러모로 불편함을 주었다. 특히 고객을 상대할 때는 수화를 써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했다. 민하윤은 대학교 때 금융학과 경영학을 복수로 전공하였고 그것이 태유 은행에서 파격적으로 그녀를 채용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민하윤이 이 은행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민하윤의 선배 임형섭이 회사에 그녀를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하윤아, 이건 에스티 벤처 투자의 건축 입찰 대출 자료야. 일단 이것부터 검토해 줘. 임원들은 에스티와 계약을 맺기를 원해. 에스티는 매년 자금 흐름이 수천억에 달하니 말이야. 임원들이 말하길 이번에 에스티와 장기적으로 협력하게 되면 올해 우리 부서 연말 보너스 열 배로 주겠대.”

임형섭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수많은 젊은 여자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민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업무는 그녀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나 다음 달 3일에 포리아로 출장 가야 해. 그러니까 네가 나 대신 하씨 가문 어르신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줘.”

임형섭은 붉은색에 금색이 어우러진 초대장을 민하윤에게 건넸고 민하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드레스는 미리 주문해 뒀으니까 내가 준비한 선물을 챙겨 가서 얼굴만 비추면 돼.”

임형섭은 이미 모든 걸 준비해 두었다. 그는 민하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민하윤은 임형섭의 행동이 지나치게 다정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민하윤은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수화로 임형섭에게 물었다.

[제가요?]

임형섭은 민하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기에 그녀를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내가 준 초대장을 들고 가면 돼.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눌 필요는 없어.”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갔다가 임형섭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될까 봐, 또는 일을 망칠까 봐 걱정되었다. 그 순간 임형섭이 회심의 한마디를 했다.

“에스티와 협력하려면 반드시 이 파티에 참석해야 해. 나도 우리 아버지 덕분에 초대장을 얻은 거야.”

임형섭은 민하윤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준 사람이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민하윤은 그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를 대신하여 불바다도 건널 수 있었다. 하물며 에스티와 연을 맺을 기회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알겠어요. 갈게요.]

민하윤은 감격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달 뒤, 하씨 가문 저택 앞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도로 양옆은 비싼 차들로 가득했다.

박달나무로 된 상자 하나를 챙긴 민하윤은 택시 기사에게 길가에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비싼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에 택시를 타고 갔다가는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될 터였으니 차라리 일찍 차에서 내려 조금 더 걷는 편이 나았다.

민하윤은 자태가 굉장히 좋았고 얼굴도 예뻐서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차가 막힌 틈을 타 수많은 사람들이 차 안에서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민하윤은 임형섭이 준비해 준 베이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정교하고 복잡한 수공예 디자인의 드레스가 민하윤의 완벽한 목선과 허리선을 돋보이게 했다. 민하윤은 긴 머리카락을 낮게 묶어주었고 화려한 액세서리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민하윤의 흰 피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민하윤은 초대장을 들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하씨 가문 저택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검은색 벤틀리가 도착해 가장 좋은 자리에 주차했다.

차 안의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맞춤 제작된 정장이 그의 몸에 꼭 맞아서 태가 났다. 하도진은 오늘 파티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무심한 얼굴로 긴 다리를 꼰 채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하도진은 시선을 들어 옆에 앉아 있던 집사를 힐끗 보았다.

“할머니가 드디어 그곳에서 돌아온 건가요?”

“할머님께서는 두 달 전 사람을 시켜 본인은 기도를 마친 뒤 돌아올 테니 도련님께서는 우선 회사 일에 익숙해지라고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 이번에 어르신의 생신이 되어 온 가족이 모이자고 했습니다.”

집사는 직접 하도진을 위해 문을 열었다. 그들 때문에 뒤에 차들이 꽉 막혔는데도 집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하씨 가문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하러 온 것이지만 하도진은 집으로 돌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도진은 5년 만에 다시 낯설면서도 익숙한 본가로 돌아오게 되었다. 가정부들은 바빠서 정신이 없어 보였고 마당에는 디저트와 마실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손님들이 담소를 나누는 소리와 음악 소리, 분수 소리가 어우러졌다. 하도진은 굳은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다른 분위기를 지닌 젊은 남자가 나타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맞춤 정장을 입은 하도진은 매우 눈에 띄었다. 뚜렷한 이목구비, 그윽하면서도 차가움이 느껴지는 눈동자, 높은 콧대까지. 잘생긴 얼굴 때문에 젊은 재벌가 딸들은 저도 모르게 하도진을 힐끔댔다. 그러나 하도진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압박감 때문에 다들 겁을 먹고 감히 하도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민하윤은 이런 자리를 싫어했다. 그녀는 선배가 부탁한 선물을 직원에게 건넨 뒤 홀로 파티장 구석 쪽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다. 눈앞의 다양한 음식들을 본 민하윤은 왠지 모르게 속이 울렁거렸다. 상한 음식이라도 먹은 것인지 요즘 속이 계속 좋지 않아서 자꾸 토하고 싶었다.

“언니,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민희수는 어떻게 초대장을 구한 걸까? 그녀는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꾸민 채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민희수는 일부러 와인잔을 높이 들고 있었는데 오른손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가 굉장히 눈에 띄었다. 모든 움직임이 계산된 것만 같았다.

민하윤은 그 반지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진씨 가문에서 약혼식 준비를 하면서 민하윤을 위해 준비한 반지였는데 두 달도 되지 않아 그 반지는 민희수의 것이 되었다.

민하윤은 민희수와 괜히 얽히고 싶지도 않았고 괜히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기에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민희수가 일부러 그녀의 앞길을 막고 말했다.

“언니, 언니 추문이 명원에 쫙 퍼졌더라.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는 알지? 내가 언니였으면 엄마, 아빠 망신 안 시키려고 얌전히 집에 숨어 있을 텐데.”

민하윤이 시선을 들어 민희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예쁜 눈동자에 냉소와 경멸이 가득했다. 민하윤은 자신의 앞에서 연기를 하는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민하윤은 민희수가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민희수는 민하윤을 화나게 만들어 민하윤이 오늘 하씨 가문의 파티를 망치게 한 뒤 모든 책임을 민하윤에게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멍청한 생각이었다. 민하윤은 민희수의 바람을 이루어줄 생각이 없었기에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녀의 드레스를 밟는 바람에 민하윤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그 순간 높게 쌓아 올려졌던 잔들이 풀밭 위로 와르르 쏟아지면서 큰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민하윤에게로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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