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진호영은 주방장에게 아직은 서두르지 말고 생선의 배부터 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사람들 다 모이면 자기가 잡은 10킬로그램짜리 잉어를 한 바퀴 쫙 돌려 자랑부터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하도진은 진호영을 차갑게 흘겨보며 피식 웃었다.“차라리 그 잉어를 페라리 보닛에 매달고 명원시를 한 바퀴 돌고 오지 그래? 내일 뉴스에 뜨면 낚시꾼들이 실컷 부러워할 거야.”진호영은 그 말을 칭찬으로만 알아들었기에 손을 휘휘 저으며 웃었다.“됐어. 난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하거든.”하도진은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 뒤 민하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는 몇 번 신호가 가다가 바로 끊겼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곧바로 다른 번호를 눌렀다.구준오는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더니 웃음을 짓더니 휴대폰 화면을 뒤집어 민하윤 쪽으로 내밀었다.“하윤 씨를 찾는 전화에요.”민하윤은 눈앞의 구준오가 대체 어떤 성격인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민하윤은 켜진 휴대폰 화면을 힐끗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이 받으세요.”구준오는 낮게 웃고는 더 이상 민하윤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고 전화받는 동시에 스피커폰을 켰다.“어디야? 구준오, 난 하윤이를 데리고 와서 다 차려진 음식을 먹으라고 한 거야. 요트 타고 나가서 직접 물고기를 잡아 오라고 한 적 없거든?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하도진은 인내심이 바닥난 사람처럼 혀를 차면서 말했다.그러자 구준오는 느긋하게 받아쳤다.“내가 가면 무조건 하윤 씨를 데리고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그 말에 하도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수화기 너머로 부산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 진호영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형, 어디 가? 생선은 이미 손질만 하면 바로 냄비 들어갈 준비 끝났어. 가지 마.”구준오는 작게 웃었다.하도진이 이런 일에는 진심이라는 걸 잘 아는지 더 이상 놀리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사람은 데려왔어. 근데 난 공항 쪽으로 좀 돌아가야 해. 여동생이 집에 말도 없이 귀국해
“별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정중하게 사과할 필요 있나요?”남자의 말투는 한결 누그러져 있었고 가볍게 하지율을 말리듯 손을 저었다.“네?”민하윤은 순간 눈을 들어 상대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두 사람의 시선이 짧게 마주쳤다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비켜 갔다.임형섭은 그 미묘한 기류를 바로 감지했다.임형섭은 스타 라이트 대표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봤다.‘대외적으로 공개된 정보는 거의 없는데 하윤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을 알고 있는 거지? 설마...’임형섭은 눈썹을 살짝 모았고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민하윤은 소중한 보물 같은 사람이었다.언젠가는 누군가 민하윤의 유일함과 소중함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구준오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의자 등받이에 느긋하게 몸을 기댄 채 손에 든 금속 펜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이 프로젝트는 하윤 씨가 맡고 있었어요?”민하윤은 구준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애초에 하도진의 주변 인간 중에 정상적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민하윤은 하도진의 친구들을 몇 번 본 적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이 남자는 유독 말수가 적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더 파악하기 어려웠다.하지만 그런 점을 다 빼고 봐도 구준오는 사업 감각만큼은 타고난 사람이었다.가업을 잇는 대신 맨손으로 시작해 스포츠 게임 업계의 절대 강자가 된 인물이기도 했다.“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어요. 투자 리스크 평가도 일부 진행했어요.”민하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민하윤의 노트북 안에는 아직 정리 중인 프로젝트 문서와 윤곽만 잡힌 리스크 평가 보고서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그럼 전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제가 태유 은행을 믿어도 되는 건가요?”이건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거의 백 평은 되어 보이는 회의실이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세 명의 부행장도 모두 고개를 돌려 민하윤을 바라봤다.민하윤은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프로젝트 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지는 결국 저희가 제출한 제안서에
민하윤은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하도진이 보낸 문장 하나에 시선이 걸렸다.[사람 보내서 데리러 갈게. 어차피 같은 방향이야.]민하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민하윤은 하도진이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이미 안 간다고 했는데 설마 사람까지 보내 억지로 끌고 가겠다는 걸까.그때 이남주가 슬쩍 다가오자 민하윤은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 화면을 꺼 버렸다.“언니, 뭔가 수상한데요? 그것도 아주 수상하다고요.”이남주가 손가락으로 민하윤의 등을 콕 찌르며 물었다.“남자랑 문자하는 거죠?”그러자 민하윤의 얼굴이 굳었다.민하윤은 이남주의 손을 탁 쳐 내고 말이 새어 나갈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언니도 이제 서른인데 연애하는 게 뭐가 어때요?”이남주는 자칭 연애 박사였다.남녀 사이의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리는 타입이라 결국 목소리 조절에 실패했다.그 순간,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민하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뭔가 말리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원래부터 표정이 좋지 않던 남자가 손을 한 번 들더니 발표를 끊었다.그러더니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방금 누가 떠들었죠?”부서 발표를 맡고 있던 송 행장은 그대로 굳어 버렸고 민망한 듯 헛기침이 새어 나왔다.프로젝트 제안서는 회사 측에서 문제를 한가득이나 잡아냈고 게다가 송 행장은 프로젝트를 직접 맡았던 사람도 아니라 PPT를 그대로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이미 좋지 않던 안색은 더 어두워졌지만 스타 라이트의 대표가 버젓이 앉아 있는 앞에서 함부로 성질을 낼 수도 없었다.이남주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하필이면 이런 난감한 상황이었다.이 프로젝트는 원래부터 성사되기 어려워 보였지만 그렇다고 이 판이 자기들 같은 실무진 때문에 망했다는 누명은 절대 쓸 수 없었다.그런 뒤집어쓰기야말로 직장인 목숨줄을 바로 끊어 버릴 일이었다.스타 라이트는 이제 막 떠오르는 스포츠 게임 회사였다.산하에 세계
‘오늘은 정말 귀신에 홀린 날이네. 누구보다 침착한 사람이 고작 한 마리도 못 낚았다는 게 말이 돼? 오히려 제일 성질이 급하고 생각 없는 놈이 대어를 낚아 올렸네. 이게 맞아?’송지훈은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 봤지만 도무지 이해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그는 옆에서 한껏 우쭐해진 진호영을 힐끗 쳐다봤다.진호영은 이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들떠 있었다.당장이라도 자기가 잡은 잉어를 끌어안고 왈츠라도 출 것 같은 기세였다.‘설마 저 자식이 도진의 미끼에 약이라도 탄 걸까?’송지훈은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다.그는 곧장 연못가로 가 하도진의 낚싯대 끝에 달린 바늘을 잡아당겼다.빈 바늘이었다.‘빈 바늘이었다고? 미끼는? 지렁이는? 아니... 그래서 한나절 내내 입질이 없었구나. 여기서 강태공 흉내 내고 있었던 거네. 낚일 놈만 낚여라... 뭐 이런 건가?’송지훈은 손에 든 빈 바늘을 흔들며 하도진을 한번 돌아봤다.송지훈의 눈빛은 참 묘했고 의미심장하고 수상쩍기 그지없었다.그런데도 하도진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값이 수천만 원대의 낚싯대를 아무렇게나 옆에 던져두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꼬고 있던 긴 다리를 풀고 느긋하게 일어났다.그러고는 정자 쪽으로 걸어가며 진호영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고추장 양념으로 해. 걔는 매운 거 좋아하니까...”‘걔가 매운 걸 좋아한다고? 누구를 말하는 거지? 도진이는 고추 하나도 안 먹는 사람이잖아.’하도진은 나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휴대폰을 들어 민하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러자 민하윤은 거의 바로 답장을 보냈다.이를 바득바득 가는 원숭이 이모티콘 하나와 함께 도착했다.[저리 가세요.]하도진은 민하윤하고 상의나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고 그냥 제멋대로 혼자서 일정을 바로 확정해 버렸다.기분이 한껏 좋아진 하도진은 다시 다른 채팅창으로 넘어가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송지훈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차를 따라 준다는 핑계로 슬쩍 하도진의 옆에 붙었다.그러더니
민하윤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뭐라도 쏘아붙이려는 순간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잠금을 풀어 보니 이남주가 몰래 보낸 메시지였다.[어디예요? 스타 라이트의 대표님이 벌써 회의실에 들어오셨어요. 임원진도 다 와 있어요. 빨리 오세요!][임 행장님께서 연락해 보래요. 두 분이 싸우셨어요?]민하윤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시락통을 든 채 본관 쪽으로 뛰어갔다.하도진은 허겁지겁 달아나는 민하윤의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민하윤은 도시락과 가방을 1층 로비 안내 데스크에 맡긴 뒤 바로 카드를 찍고 최상층 회의실로 올라갔다.이남주는 업무용 노트북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나란히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하이힐 굽이 흡음 카펫 위를 연달아 두드렸다.“스타 라이트의 대표님이 진짜 잘생겼어요. 전에도 신용대출팀에서 연합 회의할 때 스타 라이트 사람들이랑 몇 번 부딪힌 적 있는데 다들 성격 좋고 일도 깔끔해서 같이 일하기 편했거든요. 근데 대표님은 잘생기기는 했어도 진짜 까다로워요.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서 프로젝트가 진짜 엎어질 수도 있어요. 우리 부서 직원들이 몇 달 동안 고생한 게 다 물거품 될 판이에요. 이따가 발표하실 때 절대 저 사람 눈에 띄지 마세요. 본점 주주들도 다 왔고 중간 이상 간부들도 전부 회의실에 앉아 있어요. 이 프로젝트는 거의 틀어질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우리가 뒤집어쓸 수는 없잖아요. 그건 막아야죠.”이남주는 쉴 새 없이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다.민하윤은 눈썹을 살짝 모은 채 거친 숨과 콩닥콩닥 빨리 뛰고 있는 심장을 가라앉혔다.그러고는 손을 펴 노트북을 받아 들고 마지막으로 자기 차림새를 점검했다.“제 머리나 입술은 괜찮죠?”그러자 이남주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손가락으로 민하윤의 뺨 한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여기 하얀 게 뭐가 묻었어요.”민하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화장까지 지워질까 봐 덜컥 겁이 나 얼른 휴지를 꺼내
하도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민하윤의 얼굴을 감싸 쥔 뒤 가볍게 입을 맞췄다.“어때? 생각 다 했어? 네가 고개만 끄덕이면 내가 서 비서를 시켜서 바로 사직 처리하게 할게.”“싫어요. 제가 앞으로 30년도 더 일하면 은퇴할 텐데 그때 가서 도진 씨가 말한 사모님 같은 생활을 해도 안 늦어요.”민하윤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방금까지 다정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더니 민하윤은 하도진의 손을 탁 쳐내며 말했다.“비켜 주세요. 저 진짜 늦어요.”“너처럼 멍청한 여자는 처음 봐.”하도진은 어이없다는 듯 숨을 들이켠 채 계단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는 가느다란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민하윤은 아직도 다리에 힘이 풀린 상태였다.5센티가 되는 하이힐을 신고 걷자니 발걸음이 더 비틀거렸다.그때 서명인이 검은색 포르쉐 918 옆에 서서 민하윤의 앞을 막아섰다.“사모님, 타시죠.”“네? 저를 뭐라고 부르셨어요?”민하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한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서명인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으로 말을 고쳤다.“민하윤 씨, 타시죠. 지금 출발하면 10시 반 전에는 은행에 모셔다드릴 수 있을 겁니다.”‘10시 반? 10시 반이라고!’민하윤은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조수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기사님은요?”민하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다가 창문에 기대어 조심스레 물었다.“설마 서 비서님께서 저를 데려다주시는 건 아니죠?”그러자 서명인은 예의 바르게 미소만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그러더니 차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본능적으로 내리려던 순간, 하도진이 바깥에서 차 문을 붙잡더니 손으로 민하윤의 머리를 다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하도진은 서명인이 가져온 새 맞춤 정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온몸에서 상쾌하고 말끔한 기운이 돌았다.하도진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도진 씨가 직접 운전하시게요?”민하윤은 눈을 크게 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