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바로 달려 들어가 높은 소리로 말했다. "현진 언니 왔어요! 현진 언니 왔어요!"둘째 작은어머니는 유지혜의 흥분 된 모습을 보며 한마디 했다. "얘가 정말! 오면 왔지 뭘 그렇게 큰 소리야? 처음 봐?"말이 끝나기 바쁘게 강한서가 유현진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순식간에 사람들은 얼음이 되어버렸다할아버님을 모셔다드린다더니 유현진이 왜 직접 온 거지? 그것도 남편까지 데리고?'강한서는 한 번도 유씨 가문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없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도 신미정은 유씨 가문에는 지방 사람들이 많아 자기의 얼굴에 먹칠할까 봐 아예 초대하지 않았다.그래서 대부분 강한서와는 초면이다.비록 겉으로는 유현진을 돈 많은 남자를 물어 결혼한 앙큼한 년이라 욕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부러웠다.한주 강씨 가문은 보통 사람이 쳐다보지도 못하는 집안이다.아까 누가 유현진이 집안에서 결정권이 없다고 그랬더라? '강한서의 등장은 많은 사람을 뻘쭘하게 만들었다.안색이 제일 어두운 사람은 유현아다. 하지만 유현아는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언니, 형부. 어떻게 오셨어요?"유현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강한서가 말했다. "우리 와이프가 워낙에 가정을 중시해서 말이야. 증조할아버지가 퇴원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앉아서 오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해 특별히 나한테 침대가 있는 차를 가져가자고 하더군."유현아는 기분이 언짢았다.유현진의 예상 밖의 상황에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이 자식, 날 위해 나서는 거야?'유현아는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강한서는 비록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말속에는 그들을 향한 조소가 섞여 있었다. 굳이 '가정을 중시한다'라는 말을 꺼낸 거로 보아서는 아까 그들의 말에 반격하는 거나 다름없었다."역시 현진이는 생각이 깊어." 유상수는 강한서의 등장에 기분이 좋아져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빨리 들어와 앉게.""장인 어르신." 강한서가 유상수를 불러세우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차에 물건이 좀 많아서요. 물건 내려줄 사람이
유현진은 어안이 벙벙했다.자리에 있던 친척들도 할 말을 잃었다.최저 몇억이 넘는 물건들인데 강한서는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였다.게다가 특별히 유현진의 출연료를 언급한 거로 보아서는 아마도 유현아가 말한 '돈 많은 남자를 물었다'라는 말에 대한 답이었다.유현아는 강한서가 아까의 대화를 들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니 말끝마다 그녀를 조소하는 것이다.유현진의 출연료가 맞는지 아닌지를 떠나 강한서가 유현진과 함께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현진이 강씨 가문에서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아까까지만 해도 유현진을 껌처럼 씹던 친척들은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었다.둘째 작은어머니는 유현아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러고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말했다."아주버님, 아주버님은 정말 복 많은 사람이세요. 나는 또 현진이네 부부가 이사 온 줄 알았지 뭐에요. 하긴 사위도 아들과 같다고 그러잖아요."오늘 강한서의 등장은 유상수의 체면을 제대로 세워주었다. 유상수는 기름기 번지르르한 얼굴로 겸손한 척 말했다. "이게 다 뭐라고, 두 사람이 행복한 걸로 나는 만족해."둘째 작은어머니는 눈알을 굴리더니 갑자기 유현아에게 물었다. "현아야, 너 월급 얼마 받아?"속이 말이 아닌 유현아는 그 물음에 이내 둘째 작은어머니를 노려보며 말했다. "작은 엄마, 월급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기로 회사와 계약했어요."둘째 작은어머니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뭐 밖에 나가 얘기하겠어? 가족한테도 말 못 해?"유현아는 화가 올라와 얼굴이 푸르딩딩해졌다.유현진이 선물을 가득 가지고 왔으니 이 기회에 날 엿 먹이는 게 분명해. 유현진의 출연료로는 일 년을 모여도 저것들 다 못 살걸.'"여자들은 말이야. 시집을 잘 가야 해. 돈 많은 남자를 무는 게 물 남자가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유현진은 둘째 작은어머니를 싫어하고 그녀가 하는 말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유현아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재미있었다.그런데 오늘 강한서 오늘 왜 이래? 이상
동네에는 오래된 전통이 있었다. 대학교에 붙은 아이가 있으면 다들 그 집으로 찾아가 돈 봉투와 함께 축하를 보냈다.유현진이 태주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하현주는 파티를 크게 열었지만, 누구의 돈 봉투도 받지 않았다. 누가 봐도 웅장한 장면이었다.둘째 작은어머니는 아들이 입학통지서를 받자마자 사면팔방에 알리며 파티를 열겠다고 했다.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돈 봉투만 받아놓고 식사는 집에서 조촐하게 준비했다.집에서 하는 것도 모자라 셰프를 청하는 돈도 아까워 전골 요리를 사람들에게 대접했다.그것도 집에서 팔다 남은 무와 배추를 가득 넣어서 고기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몇천만 원의 돈 봉투를 받고 전골 요리를 대접하니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그것도 가난한 집안이면 모를까, 이 집안은 유상수 다음으로 잘사는 집안이다.어마어마한 면적의 과수원에서만 해도 몇억의 연 수입을 얻는 데다가 유상수의 동생도 워낙에 부지런하다 보니 유상수 회사에서 관리직을 맡아 연봉 몇천만 원을 받는다.그렇게나 돈이 많으면서도 인색한 행동에 친척들은 그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그래서 유민성이 경민 대학교 석사 면접에 통과했다는 말에도 사람들은 시큰둥했다. 보나 마나 돈을 뜯어 가기 위한 수작이 분명했으니 말이다.아무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 눈에는 친척들이 그저 질투하는 거로 보였기 때문이다.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넷째 작은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넷째 동서, 진성이는 재수도 했는데 성적이 어떻게 나왔어?"넷째 작은어머니는 그 물음에 답하기 싫어 대충 지나갔다. "자기 일인데 알아서 하겠죠. 안 물어봤어요."둘째 작은어머니가 말했다. "그게 어떻게 걔 혼자 일이야? 가문의 큰일이지. 작년에 그렇게 망쳐놓고 올해 재수를 한 건데 진보는 있을 거 아니야? 우리 민성이 면접 결과도 다 내려왔는데 성적 이미 다 나왔을 거 아니야. 설마 저번보다도 더 말아먹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넷째
둘째 작은어머니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 그게 아니라."강한서의 시선은 둘째 작은어머니를 향했다. "그럼 무슨 뜻이죠? 확실하게 얘기해 주세요. 우리 집사람 어린 나이에 나한테 시집와서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도 하고 내가 집일에 신경 쓰지 않고 회사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내조해 주고 있어요. 그런데 왜 웃음거리가 됐죠?"유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강한서는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도리어 옆에 있던 유현진의 얼굴이 빨개졌다.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 하루 종일 늦잠.식사 준비 = 먹을 수 없는 요리.내조 = 강한서의 카드로 쇼핑.강한서 처에서 보면 내가 이혼을 얘기하는 게 그렇긴 하네.'둘째 작은어머니는 얼굴이 뻘게져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넷째 작은어머니는 입꼬리를 올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잘난 척하더니. 쌤통이네!'결국 유상수가 중재에 나섰다. "나이가 얼만데 말을 함부로 해, 애들 웃겠어!"둘째 작은어머니는 그제야 표정 관리를 했다.이내 유현아가 어르신을 부축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어르신은 연세가 근 아흔이지만 나이에 비해 몸이 튼튼했다. 그저 허리가 구부정하고 얼굴에 주름이 많을 뿐이지 옷도 새 옷이라 깔끔하고 멀쩡해 보였다.어르신은 모두를 한번 둘러보다가 강한서에게서 시선이 멈추더니 아래 우로 훑어보았다.유상수가 어르신을 부축하려고 하자 어르신은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유상수는 강한서를 소개했다. "할아버지, 이쪽은 내 사위 강한서에요. 전에 사진 보여드렸던 적이 있어요."유상수는 평소보다 목소리를 크게 말했다. 어르신은 청력이 좋지 않아 목소리가 낮으면 잘 듣지 못한다."나이는?"어르신이 물었다.강한서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서른이에요."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른에 장가를 가? 어디 문제라도 있는 거야?"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어르신의 말에 모두 손에 땀을 쥐었다.유현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하지만 강한서는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물론, 유상수를 욕하는 말이었다. 유현진은 오히려 자기의 증조할아버지가 아직도 너무 정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유상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서가 현진이한테 얼마나 잘하는데요. 현진이가 복 받은 거죠. 그게 어떻게 구렁텅이에요?"어르신은 콧방귀를 뀌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한서가 어려운 걸음을 했으니, 유상수는 기어코 강한서에게 식사하고 가라고 권했다.두 사람은 워낙 어르신을 모시고 바로 출발하려 했지만, 유상수의 만류에 식사하고 얘기도 나누다가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어르신을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편히 누우실래요?" 유현진이 어르신에게 물었다.하지만 어르신은 기어코 앉아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누우면 창밖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말이다.유현진은 우습기도 했지만 자기 증조할아버지의 뜻이니 그 뜻에 따랐다.어르신은 평생 고향에서 지내시다가 처음으로 한주시에 왔다. 한평생 가장 멀리 온 곳이다.민경하는 운전을 천천히 했다. 움푹하게 파인 두 눈으로 뚫어져라 창밖의 경치를 감상했다. 한주시의 번화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한참 홀린 듯 경치를 감상하던 어르신은 감탄하며 말했다. "우리나라도 높은 건물이 많이 들어선 거로 보아 많이 발전했구나."유현진은 그 말에 마음이 짠해 났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증조할아버지만 좋으시다면 오래 계셔도 좋아요."어르신은 웃으며 장난식으로 받아쳤다. "이 나이에 이런 복도 들어오다니."말을 끝낸 어르신은 손을 가슴에 넣고 이리저리 더듬다가 페레로 초콜릿을 꺼내 유현진에게 건네주며 아이처럼 천진한 말투로 말했다. "이거 현아 방에서 가지고 나온 거야. 현아가 이거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나는 이가 다 빠져서 못 먹어. 네가 나 대신 맛 좀 보렴."유현진은 멈칫했다.사실 유현아는 증조할아버지에게 큰 인상이 없었다. 어렸을 때 고향에 내려간 적이 별로 없거니와 가더라도 얼마 못 있고 집에 돌아왔으니, 그녀는 그저 증조할아버지가 옷 주머니에서 사탕 봉지를 꺼내 그녀에게 주었던 기억만 희미하게
민경하는 업무 보고를 끝내고 문뜩 무언가가 떠올라 말했다. "맞아요. 오늘 대표님 회의 들어가셨을 때 한 대표님께서 연락해 주셨어요. 올해 상인회는 유람선에서 진행할 거라면서 사람을 보내 초대장을 가져오셨어요. 참석 여부에 상관없이 연락해달라고 그러시던데요. 대표님, 참석하시겠어요?""아니요." 강한서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거절했다.민경하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럼 한 대표님한테 전화 넣을게요."상인회는 날이 갈수록 성질이 변해갔다. 규모는 점점 커졌지만, 알맹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게다가 올해는 스케일이 더 커졌다.'유람선?'강한서는 뭔가 생각 난 듯 민경하를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초대장은 그대로 두세요."민경하는 뜻밖의 말에 의아했다. "가시게요?"강한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유현진이 유람선 타고 싶다 그랬잖아요? 데리고 가보죠, 뭐. 세상 물정을 그리도 몰라서야."민경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사모님 유럽 여행 때 유람선 타고 가셨는데, 그것도 보름이나.'유현진은 유럽 여행 때, 매일 같이 수십 장의 사진을 보냈다.하지만 강한서는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때 두 사람은 신혼부부였건만 강한서에게서 다정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그래서 민경하는 늘 강한서가 이 결혼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언제부턴가 강한서가 이상했다. 회의하다가도 휴대폰에서 알람 소리가 뜨면 바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민경하는 강한서가 협력사의 소식을 기다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협력사의 소식을 확인하고는 늘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러다 사흘째 되는 날, 그날 회의 중에 강한서는 유현진에게서 보내온 돌고래 영상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환해졌다.민경하는 알 수 있었다. 강한서가 이틀 동안 표정이 어두웠던 건 유현진의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대표님 기억력이 얼마나 좋으신데. 그때 일을 까먹을 리가 없는데?'그렇다고 민경하는 감히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민경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강한서의 말에 답하고 사무실을 나
여러번의 반복하여 설득을 끝냈다.강한서는 옆에서 하품을 따라하는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고작 법에 관한 드라마를 찍는데 밤까지 새야 돼?"어젯밤에 유현진은 "법역" 촬영때문에 외출을 했었고 강한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돌아올거라고 예상했었지만 아침 다섯시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유현진은 연신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저녁 촬영은 당연히 저녁에 해야지, 대낮에 하면 화면에 그 느낌이 나겠어?"강한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현진은 귀마개를 끼며"나 잠깐 잘테니까 도착하면 깨워 줘."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눈을 감았다.강한서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는 불만인듯 눈썹을 찌푸렸다.(그 많은 일은 뒤로 미루면서까지 와줬는데 그냥 잔다고?)유현진이 깨어났을땐 이미 부두에 도착한 뒤였다.곧 승선할 유함선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높이만 봐도 칠층짜리 건물에 맞먹는듯했다. 그리고 선체는 육안으로 봤을때 대략 150미터 정도 돼보였다. 그녀가 전에 유럽에서 탔었던 배보다 훨씬 기풍이 넘쳤다.어르신께서 차에서 내리자 배에서 웨이터들이 내려와 휠체어를 대령했다.원래 어르신께서 혼자서 걸을수도 있다고 고집을 부리셨지만 아래를 한번 힐끔 보고는 그 높이에 다리가 후들거려서 결국엔 휠체어에 앉아서 이동했다.배위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강한서가 나타나자 이쪽으로 오며 아부를 떠는 사람들도 있었다.유현진은 너무나도 졸렸기에 방열쇠를 받고는 민경하에게 어르신을 잘 보살피라는 당부를 하고는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그녀가 깨어났을땐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있던 참이였다.그녀는 커텐을 걷고 밖을 내다봤다, 태양은 한창 저물고 있었다. 수면에 저녁노을이 반사되여 반짝반짝거리는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이따금씩 몇마리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엄청 먹음직스러워보였다.맞다, 그녀는 배가 고팠다.어젯밤 촬영할때 야식을 먹었던것 빼곤 지금까지 잠만 잤으니 어찌 배고프지 않을까?(여섯시가 다 되였는데도 아직도 배식
(이건 뭔 뜻이지?)주강운은 식지로 태양혈을 살살 문지르며 살짝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최선을 다해 대화를 해봤는데요, 셰프가 아직 시간이 안돼서 만들어진 음식이 없다네요. 하지만 저희에게 식재료는 줄수 있으니 알아서 만들어 먹으라고 했어요."유현진은 이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와, 모처럼 유람선을 탔는데 밥도 저절로 해 먹으라고?)"그냥 배식시간을 기다리는게 났겠어요."그녀가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그녀는 창피한듯 옷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갑시다.""잠깐만요."주강운은 말하면서 양복외투를 벗으며"이걸 잠시만 들어줄수 있어요?"유현진은 뭔지 모르겠다는듯이 외투를 건네 받았다.주강운은 하얀색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고 셰프가 던져준 후라이팬에 불을 붙이고 물을 넣었다.유현진은 행동을 멈추고"직접 요리하시려고요?"이에 주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파스타 좋아하세요?"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려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예요, 안 해도 돼요. 요리까지 해주시다니 당치도 않아요. 조금만 기다리면 배식시간이 될거예요.""아직도 두시간이나 남았는데요?"주강운은 이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로 파스타를 만들었다."먹을걸 찾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기엔 제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요."유현진은 주강운에게 어디서 식사할수 있는가고 물어본것에 대해서 엄청 후회했다.(이럴줄 알았으면 조금만 참았을걸, 요리까지 하게 만들고...... 경우도 이런 경우가 없네.)그녀가 안절부절하는걸 본 주강운은 그녀의 다급함을 알아채고 대화로 그녀의 주의력을 돌리려고 했다."전에도 궁금했었는데, 한서랑은 어떻게 만나게 된거예요?"과연 유현진의 주의력은 쉽게 돌려졌다."맞선에서요."강한서는 맞선을 통해 처음 그녀를 만났지만 그녀는 이 것이 처음은 아니였다.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차 사고가 났던 그 날, 그녀는 처음으로 강한서를 만났었다.그 날 사고가 났을때, 차 전체가 옆으로 넘어져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