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는 진료실 밖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가 주위의 모든 시선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고 있지 않았다.그는 잘생겼을뿐만 아니라 와이프 진료를 곁에서 도와주러 왔다는 필터가 더해지자 줄을 선 여성들은 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하지만 방금의 아주머니만은 그를 보는 표정이 아리송한듯했다.강한서도 이를 눈치채고는 상대방의 시선을 가렸다고 생각해 옆으로 몇 발자국 움직였다.결국 이 사교성이 활발한 아주머니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람이 좋아보여서 하는 말인데 왜 저런 비서를 곁에 두었어요?"강한서는 어안이 벙벙했다.그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드러내자 아주머니는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방금 오지 않았을때 당신의 비서가 밖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걸 봤어요, 얼마나 급해 하던지, 누가 남의 와이프를 기다리는데 그렇게 조급해해요? 그쪽도 마찬가지예요, 와이프가 저렇게나 예쁜데, 저렇게 젊은 비서한테 맡기면 혹시 무슨짓을 할지 누가 알아요?"강한서는 눈가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입술을 만지며 답했다.아주머니는 다리를 탁 치더니"그럼 더더욱 위험하죠, 몇년동안 봐왔는데 제 아무리 부처라도 감정이 생길수 밖에 없지요."아주머니는 자신이 발견한 "의문점" 에 대해서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서야 말하는걸 그만했다.떠나기 전 강한서에게 신신당부하며 말했다."꼭 조심해요, 마지막에 모든걸 잃고 후회하지 말고."강한서는 굳은 표정으로 물을 사온 민경하를 노려보았다.그는 맘속으론 뜨금했는지 미소를 지으며"강 대표님, 사모님께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나요?""아니."강한서의 목소리는 차가움이 약간 묻어있었다.민경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물 드시겠습니까? 차가운거 따뜻한거, 음료까지 다 있습니다.""몇명밖에 없는데 왤케 많이 사왔어?""사모님들께서는 따뜻한걸 드시면 좋지 않을가 생각해서요."강한서는 그를 1초간 노려보더니 갑자기 밑도끝도 없이 한마디 뱉었
차미주가 맥빠진 소리로 말했다"양성이래."유현진은 차미주의 반응이 어이가 없었다."양성인데 표정이 왜 이래?""조 선생님이 반 년에 한 번씩 재검사를 하면 된대. 그럼 조 선생님을 반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거잖아."차미주는 한숨을 푹 쉬면서 입으로 중얼거렸다."왜 양성이냐고."그런 차미주를 보고 있자니 유현진은 한심해서 입술이 떨렸다."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미쳤어?"그러자 차미주가 유현진을 노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네가 뭘 알아? 재검사를 자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두 사람이 만날 기회를 만드냐고. 정말 내가 독거 노인으로 죽어가는 꼴을 보고싶은 거 아니지?"유현진이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면서 말했다."카톡 추가했잖아.""맞다."차미주가 손으로 머리를 툭 치면서 말했다."내가 그걸 왜 까먹었지?"그러고는 이내 휴대폰을 뒤졌다. 조 선생님은 이미 그의 친구 요청을 수락한 상태였다. 조 선생님의 프사는 사복을 입은 본인 사진이었다.헬스장에서 런닝셔츠 차림으로 옷자락을 살짝 들어올리면서 거울을 보고 복근을 찍은 모습이었다.차미주의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복근 봐봐!"유현진이 바로 얼굴을 갖다 대고 폰을 들여다 봤다."괜찮네. 의사가운을 입으니까 전혀 안 알리더니.""지난번에 네가 나한테 보내준 그 BJ보다 훨씬 났잖아."유현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답했다."아니지. 그래도 그 BJ가 났지.""조 선생님이 더 났다니까."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한서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이때 민경하가 상사를 대신해서 물었다."BJ요?"유현진이 말리기도 전에 차미주는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몸이 엄청 좋은 BJ인데요. 생방송할 때면 부잣집 사모님들이 유독 즐기는 춤을 춰요.""부잣집 사모님들이 즐기는 춤이요?"두 사람의 대화를 듣자니 왠지 모르게 자신의 식견이 짧아 보이는 민경하였다.차미주가 아예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이거요."민경하가 가까이에 가서 영상을 보더니 입가가 떨렸다."이게 부잣지 사
민경하가 바로 답했다."1분기 실적이 그나마 괜찮아서 강 대표님이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할 겸 하는 거예요. 관심 있으시면 미주 씨도 함께 동참해요."차미주야 당연히 가고 싶었다. 딥블로 클럽은 엄청 유명한 고급 클럽이다. 인테리어도 워낙 호화로운 데다가 직원들의 외모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거기 한번 다녀오면 나중에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좋을 것이다.다만 그는 대뜸 답하기 어려웠다. 회사 직원들과 익숙치 않았기에 동참하려면 유현진을 부추길 수밖에 없었다."현진아, 어차피 오후에 너도 일 없잖아. 우리 같이 갈까?"차미주가 입을 연 이상 유현진도 거절하기 어려웠다. 며칠 동안 차미주는 그와 함께 장소를 찾아 다니느라 발품을 적잖게 팔았다. 이렇게 작은 청이라면 들어주는 게 마땅했다.같이 가기로 하긴 했지만,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 유현진은 후회했다.유현아도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유현아는 이번 워크샵의 주인공이었다.얼마전 한성 그룹과 몇몇 대학이 협력하는 인재 계획을 유현아가 대표로 강연했다.첫 번째 장소가 바로 유현아의 모교였다. 현장의 분위기는 엄청 들끓었고, 기자들도 많이 몰려왔었다. 당시 현지 헤드라인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었고, 인기 검색어에도 올랐었다.유현아는 다년간 "노력파 여신"이라는 이미지로 대학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유현진도 그 강연 동영상을 본 적 있다. 하지만 끝까지 보지 않고 꺼버렸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유현아는 여러 해 동안 채널을 운영해 오면서 인기의 비결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그는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포장해왔다.비천한 출신인 자신은 불행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의 불운을 극복했으며, 심지어 더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고아원에서 괴롭힘 당했다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유현진은 유현아가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는 아무런 의견이 없다. 하지만 거짓말까지 하는 건 봐줄 수가 없었다.유현아는 입
소년은 속도를 줄이고 뒤돌아보았다. 바닥에 무릎꿇은 유현진은 얼굴이 창백해서 무릎을 부여잡고 있었다.소년은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되돌아왔다.하지만 유현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물었다."괜찮아요?"창백한 얼굴로 무릎을 부여잡고 있던 유현진은 아파서 어깨까지 떨고 있었다.소년의 마음이란 어른과 달리 단순한 법. 유현진이 진짜 아파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얼른 동료를 부르고, 가까이에 가서 고개를 숙여 유현진의 상태를 살폈다.소년이 웅크리고 앉자마자 유현진은 바로 소년을 바닥에 눕혀 제압했다. 소년이 반응하기도 전에 유현진은 소년의 나비 넥타이를 붙잡고 말했다. "이 녀석! 나를 보고 왜 도망쳐!"소년은 비로소 자신이 유현진의 꼼수에 넘어간 걸 알아채고 입으로 중얼거렸다."거짓말쟁이! 믿은 내가 바보지!"어렸을 적에 그렇게 당하고도 또 넘어가다니! 당시 이 여자는 자신한테 여자 옷을 입히기 위해 죽는 시늉까지 했던 위인이다.이 여자는 연기 하나는 끝내준다. 속이 시커매서는 뭘 연기하나 진짜인 것 같다.유현진이 실눈을 뜨면서 취조하듯 물었다."네 속에 켕기는 거 없으면 왜 날보고 도망치는데?"소년이 목을 빳빳이 세우고는 말했다."절 쫓아오지 않았으면 저도 도망칠 이유가 없었죠.""네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내가 왜 널 쫓아가?"유현진은 소년의 가슴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이렇게 말라서는 어른 흉내를 내서 양복이나 입고 말이야. 이게 네가 올 곳이야?"강한서가 도착하자 유현진이 마치 동네 깡패마냥 어린 종업원을 바닥에 눕히고 가슴을 마구 만지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그는 순간 머리가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 마냥 얼얼했다. 생방송 때 남자 BJ한테 별풍선을 날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가 보는 앞에서 본성을 드러내다니!"돈 벌어? 네가 무슨 돈을 벌어! 돈이 부족하면 나한테 말하면 될 일이지. 이런 옷차림을 하고 대체 뭐하는 거야? 너 여기에 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 줄 알아?"딥블루 클럽은 듣기 좋게 고급 클럽이지만, 결국은 돈 많은
결국 몇 사람은 매니저 사무실까지 불려갔다.유현진과 강한서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소년은 그들과 멀리 떨어진 소파에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매지저는 좌우로 세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그리고 사모님, 아마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금방 알았는데, 최근 일손이 부족해서 종업원 몇 명을 새로 채용했대요. 이 친구가 키도 크고 해서 다들 진짜 나이를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요.""알아보지 못하면 신분증 확인은 할 수 있잖아요. 이 녀석 아직 아직 미성년이에요."유현진은 화가 났다."저 성인이거든요."소년은 유현진을 흘끔 쳐다보더니 말했다."지난주에 이미 성인이 됐어요."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성인이 됐다고 이런 곳에 와서 일을 해? 너 고등학교 졸업했어? 대학입시는 어떡하고? 학교 안 다녀?"소년은 입술을 깨물더니 고집스레 말했다."상관하지 마요."유현진은 화가 치밀어서 머리가 아팠다."상관하지 마? 그럼 노원장님한테 전화 해서 오라고 할까?"그러면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하는 시늉을 했다.그러자 안색이 변하던 소년은 바로 유현진의 휴대폰을 뺏으려 했다. 하지만 휴대폰을 잡기도 전에 강한서가 그의 손목을 잡아 등뒤로 틀자, 그는 바로 소파에 엎어졌다."이거 놔요!"소년은 갖은 애를 써서 벗어나려 했지만, 강한서의 힘이 워낙 세서 꿈쩍도 못했다.이훈도 키가 180은 된다. 그는 기차역 부근에서 구조된 아이이다. 가족을 찾아주려고 시도했지만, 결과가 없자 구암동 고아원으로 보내졌다.길을 잃은 건지, 아니면 인신매매에 연루된 건지, 어린 아이를 이용하여 구걸하는 조직의 통제를 받아 줄곧 기차역 부근에서 범죄를 저질렀다.어린 시절에 겪었던 사건으로 인해 이훈은 몸이 엄청 날렵했기에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구에 의해 제압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그는 인정할 수도 없었고, 화도 났다.유현진은 이훈의 얼굴을 톡
이훈은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면서 얼버무렸다."안 좋은 화장품이라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 거예요."이훈은 괜히 저렴한 파운데이션을 산 걸 속으로 후회했다. 땀이 나자 파운데이션이 바로 지워졌기 때문이다.유현진은 인상을 썼다. 지금 누굴 맹인으로 아나? 분명 구타로 인한 흉터잖아!그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이훈에게 물었다."이거 여기 사람들이 때린 거야?""그런 거 아니에요.""그럼 누가 때린 건데?""맞은 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알레르기 반응이라고."이훈이 어떻게 해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자, 유현진은 또 노원장을 언급하면서 위협했다."그럼 노원장님한테 전화해도 돼?"노원장으로 위협하는 게 비겁하기는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이훈은 노원장한테 전화하겠다는 말에 바로 솔직하게 말했다."친구들과 장난하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그리고는 조급하게 말했다."얼른 돈을 돌려줘요.""돌려주는 건 문제 없어. 지금 바로 학교로 가자."이 말에 이훈의 얼굴이 바로 굳어버렸다."안 가요."이훈의 표정을 보자 유현진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너 며칠이나 학교에 안 나간 거야?"이훈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참 후에야 답했다."나 학교 안 다닐 거예요."이 말을 듣자 유현진은 바로 분노를 토했다."너 지금 몇 살이야? 학교 안 가면 너 뭐 할래? 서빙이나 하면서 살래? 그런데 그런 건 젊을 때나 가능하지 늙어서는 어떡할래?"유현진의 말에 엄청 반감을 느낀 이훈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길은 저 혼자 선택해요. 제가 어떻게 살든 무슨 상관이냐고요?"유현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내가 상관 안하면 너 어떻게 살 건데? 지금 네 모습을 거울에 비춰봐봐. 얼굴은 귀신처럼 화장을 하고. 이게 네가 선택한 길이야?"이훈은 목을 빳빳이 뻗치고는 말했다."아무튼 상관 말아요."유현진이 지금 막 폭발하려는데 강한서가 말렸다."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학교에 바래다 준다고 해도 사람이 없을 거야.""그럼 어떡해?""내일 월
유현아......유현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속으로 유현진을 욕하면서도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언니랑 형부가 급한 일 있으면 어쩔 수 없죠. 조심히 들어가요."유현진은 유현아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이훈은 카트를 흘끔거리더니 발을 살짝 내밀어 카트를 걸었다. 그러자 카트에 실었던 음료수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유현아의 다리에 쏟아졌다.유현아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해댔다. 방금 전에 갖췄던 예의바른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다.강한서가 쳐다보자 그는 자신이 추태를 보였다는 것을 깨닫고 아픔을 참으면서 표정을 다듬더니 낮은 소리로 스태프들을 나무랐다."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요?"유현진은 이훈을 흘끔 쳐다봤다. 이훈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유현진은 이훈의 손동작을 포착했다. 이 녀석 CCTV를 돌려보면 어떡하려고.이훈은 유현아와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러니 원한 같은 것도 맺힐 리가 없었다.타인에게 발각되기 전에 유현진은 얼른 사람을 데리고 사고현장을 빠져나왔다.이훈은 유현진을 따라 집까지 왔지만, 어찌나 입이 무거운지 묻는 물음에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다.그래서 유현진은 이훈 몰래 노원장한테 연락하여 그의 근황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역시 노원장은 이훈이 학교를 안 나가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이훈이 지난번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따냈고, 올해 대학입시에서도 실력대로 발휘만 하면 문제 없을 거라고 하였다.그래서 유현진은 이훈이 학교를 안 다니는 일을 노원장한테 말하지 않았다.게스트룸은 아랫층에 있었다.이훈은 유현진을 쫓아내고, 커다란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웠지만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하고 잠이 들지 않았다.내일 학교에 가면 어떡하지?생각하면 할 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마음이 초조해지지 화장실이 급했다.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자 강한서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도로 방문을 닫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더이상 참을 수 없자 다시 방문을 열고
물론 이러한 물음에 솔직하게 답할 강한서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되물었다."네 생각에는?"이훈이 답했다."보기에는 그런 것 같아요."강한서는 살짝 웃고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훈은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물었다. "형부, 현진이 누나를 설득해 주면 안돼요? 저 학교에 가기 싫어요."형부라는 호칭에 강한서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이훈을 흘끔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보기에는 내가 너의 현진이 누나를 말릴 수 있을 거 같아?"이훈......강한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맥주 한 캔을 열면서 이훈에게 물었다."마실래?"이훈이 맥주를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강한서가 맥주를 도로 가져가면서 말했다."깜빡했네. 너 아직 미성년이지."이훈......성인이 맞거든요.강한서는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는 물었다."학교는 왜 가기 싫은데?" 강한서가 물은 것은 '학교는 왜 가기 싫은데'지 "학교 다니기가 왜 싫어"가 아니었다.비슷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 의미를 따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이훈는 입술을 깨물면서 한참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강한서도 다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이훈이 입을 열었다."제가 사람을 다치게 했어요. 그쪽에서 병원비 2억을 배상하라고 해요."이훈은 말하고 나서 강한서의 표정을 살폈다. 의외였던 것은 강한서의 눈빛에서 짜증과 불쾌함을 보아낼 수 없었다.심지어 강한서는 담담하게 한마디 더 물었다."너 사람을 죽였어?"이훈......"아뇨! 그저......머리를 다치게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저도 맞았어요. 그 애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와서 병원비 리스트를 가지고 원장님을 찾아가겠다고 하면서 우리더러 2억을 배상하라고 하는데, 저한테 그렇게 큰 돈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그러자 강한서가 말했다."네가 돈을 배상하기 싫어서 학교를 나가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이 원장님을 찾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얼굴이 창백해진 이훈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부정행위 같은 건 내부 조사로 진행해봤자 무슨 결과가 있겠어요? 학교 입장에선 당연히 부정하겠죠. 창피하잖아요.][부정행위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여기로 모이세요!]...댓글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던 그때, 그 대학원생은 좋아요가 제일 많이 눌린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았다. [진윤 학생의 루머가 퍼진 그날, 전 바로 해명 글을 올렸었어요.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피드는 계속 비공개로 전환이 되었어요. 서버 문제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피드를 업로드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며칠 사이 계정을 바꿔가며 계속 피드를 작성했지만 결과는 똑같았어요. 계속 업로드가 되지 않더라고요. 실체가 없는 압박 때문에 전 진윤 학생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없었어요. 그더라 오늘 점심이 되어서야 계정이 정상적으로 활성화되었고요.][전 대학원 2학년생이에요. 솔직히 얘기하면 적지 않은 학생에게 과외를 해줬어요. 하지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대부분이었어요. 진윤 학생은 제가 가르쳤던 학생 중 유일한 대학생이었어요.][과외비도 많이 챙겨줬고 사교성도 좋아서 다른 과외는 전부 거절하고 진윤 학생 한 명만 했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공대의 많은 수업은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진윤 학생은 기초도 좋은 편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했어요. 새벽 2, 3시까지 공부하는 것도 기본이었어요. 그러니 그 정도 난이도의 시험은 통과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죠.][인터넷에선 다들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진윤 학생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하던데 솔직히 얘기하면 만약 진윤 학생이 부정행위로 그 정도 성적을 받은 거라면 정말 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제가 하고 싶은 말을 여기까지예요. 앞으로 악플에 더는 대응하지 않을 거예요.]그는 설명과 함께 캡처 여러 장을 함께 공개했다. 그 중에는 업로드에 실패했던 여러 개의 피드와 늦은 새벽 진윤과 문제집을 토론하던 대화기록 그리고 진윤이 그에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