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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9 08:16:14

린은 손을 가슴 안쪽으로 넣어 이준의 회중시계를 꺼냈다. 손때가 자욱하게 묻은 차가운 금속 시계가 이준의 손바닥 위에 놓인 비단 조각과 닿았다.

째깍, 째깍, 째깍.

정글의 적막 속에서 일정한 시계 소리가 두 사람의 심장 박동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퍼져나갔다.

"이 시계가 내 가슴에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어."

린의 갈라진 목소리가 애절하게 떨렸다.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가두고 채찍으로 때릴 때도, 이 소리를 들으며 견뎠어. 당신이 나를 찾으러 오고 있다는 걸 믿었으니까."

이준은 린의 두 손을 꽉 감쌌다. 거친 사나이의 손과 베이고 터진 여인의 손이 하나로 얽혔다. 사상과 이념의 폭정도, 분단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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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공의 연인들   45. 사이공의 연인들

    이준의 목소리에 애타는 진심이 서려 있었다. 린은 겨우 눈을 떠 이준을 바라보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향해 깊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린은 이준의 목을 감싼 두 손에 힘을 주었다."한... 나는 괜찮아요. 당신의 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프지 않아요."린의 갈라진 목소리가 밤바람 속으로 아득하게 흩어졌다. 이준은 이를 악물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사상이라는 이름의 폭정에 짓밟히면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텨낸 여인이었다. 연인이 느꼈을 그 외로움과 고통에 비하면, 자신의 육체가 겪는 피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당신을 절대로 다시 잃지 않을 거야. 그 어떤 지옥이 가로막는다고 해도.'이준은 숲속 깊은 곳, 거대한 열대 나무 뿌리가 천장처럼 덮인 작은 동굴로 린을 들였다.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 적들의 탐조등이나 추격대의 시야를 피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이준은 자신의 군용 우의를 바닥에 깔고 린을 가만히 앉혔다. 수통을 꺼내 입에 물을 한 모금 머금은 뒤, 린의 차가운 입술로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린은 이준의 체온이 담긴 물을 마시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준은 조심스럽게 린의 피로 물든 아오자이 자락을 살폈다. 무릎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전부 찢어져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이준은 자신의 셔츠 자락을 찢어 개울물에 적신 뒤, 린의 상처를 정성껏 닦아내기 시작했다.거친 군인의 손이었으나, 린의 몸에 닿는 촉감만큼은 비단보다 부드럽고 세심했다."아프지 않아요, 한. 그러니까 그런 슬픈 눈으로 보지 마요."린이

  • 사이공의 연인들   44

    린은 손을 가슴 안쪽으로 넣어 이준의 회중시계를 꺼냈다. 손때가 자욱하게 묻은 차가운 금속 시계가 이준의 손바닥 위에 놓인 비단 조각과 닿았다.째깍, 째깍, 째깍.정글의 적막 속에서 일정한 시계 소리가 두 사람의 심장 박동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퍼져나갔다."이 시계가 내 가슴에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어."린의 갈라진 목소리가 애절하게 떨렸다."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가두고 채찍으로 때릴 때도, 이 소리를 들으며 견뎠어. 당신이 나를 찾으러 오고 있다는 걸 믿었으니까."이준은 린의 두 손을 꽉 감쌌다. 거친 사나이의 손과 베이고 터진 여인의 손이 하나로 얽혔다. 사상과 이념의 폭정도, 분단이라는 차가운 장벽도 두 연인의 연모를 끊어낼 수 없었다.그때, 수풀 너머에서 적들의 거친 군화 소리와 사냥개의 사나운 으르렁거림이 가까워졌다."이 근방이다! 핏자국이 이쪽으로 이어져 있다!""수색을 강화해라! 반동분자들을 잡는 자에게는 당의 포상이 내릴 것이다!"이준의 눈빛이 순간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 전장의 사신 같은 차가운 살기가 다시금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린, 여기서 잠시만 숨어 있어요. 내가 저들을 처리하고 올 테니까.""한, 위험해요! 혼자 가면 안 돼요!"린이 불안한 눈빛으로 이준의 소매를 잡았으나, 이준은 그녀의 손등에 살며시 입을 맞추며 가늘

  • 사이공의 연인들   43

    이준은 린을 한 손으로 안아 올린 채, 다른 한 손으로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는 적들을 향해, 이방인 병사는 연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사투의 탄환을 장전했다.사상이라는 거대한 칼날을 부수고, 붉은 대지를 넘어 자유의 하늘로 향하는 두 연인의 목숨 걸린 탈출극이 마침내 수용소의 붉은 불길 속에서 피비린내 나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포화 속의 탈출조사실 창틀을 뚫고 들어온 총탄이 시멘트 벽면을 사정없이 짓찧었다. 바위가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희끄무레한 비산 먼지가 어두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밖에서는 붉은 별 뱃지를 단 적들의 발자국 소리가 찌걱거리며 들이닥치고 있었다."저 안이다! 반동분자와 외세의 괴뢰군을 당장 체포해라!""항복하지 않으면 개머리판으로 짓밟아 버린다!"악에 받친 고함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한이준은 망설임 없이 린의 가녀린 허리를 한 팔로 단단히 감싸 안았다. 그의 다른 한 손에는 방금 전 적에게서 빼앗은 소총이 서늘하게 쥐여 있었다. 이준의 단단한 체구가 린의 작은 몸을 마치 거대한 방패처럼 완벽하게 감쌌다."린, 눈을 감고 내 목을 꼭 끌어안아요."이준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린의 귓가를 흔들었다. 린은 망설이지 않고 이준의 목에 두 팔을 감아올렸다. 그의 군복에서 풍겨 나오는 화약 냄새와 땀 냄새, 그리고 뜨겁게 고동치는 심장 박동이 린의 전신에 강렬한 온기를 불어넣었다."네, 한... 절대로 놓지 않을게요."

  • 사이공의 연인들   42

    이준의 목에서 피가 섞여 나오듯 거칠고 떨리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전장의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적들의 목을 베어 넘겼던 차가운 야수였지만, 연인의 참혹한 몰골을 마주한 사나이의 눈가에는 참았던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이준은 소총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린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뛰어들었다."한... 한...!"린은 꿈인 줄만 알았다. 사상이라는 거대한 장벽 아래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그 지옥의 밑바닥에서,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또 부르짖었던 사나이가 진짜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린은 떨리는 손을 뻗었다. 이준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작고 부러질 듯한 몸을 자신의 단단한 품 안으로 세게 끌어안았다.거칠고 축축한 군복 표면에 린의 마른 살결이 닿았다. 이준은 린의 정수리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었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사정없이 요동치는 거친 고동이 린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린... 내가 너무 늦었습니다."이준의 목소리가 오열로 부서졌다. 그는 린의 피 묻은 뺨과 이마, 그리고 터진 입술 위에 절박하게 입을 맞추었다. 연인을 붉은 지옥에 홀로 두고 도망쳤다는 통한의 죄책감이, 이제야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눈물로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아니에요, 한..."린은 이준의 목을 꼭 안았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러질 듯 아팠지만, 그녀는 이준의 군복 자락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쥐었다."올 줄 알고 있었어요

  • 사이공의 연인들   41

    이준은 탐조등 불빛이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통나무 담장의 틈새를 뚫고 내부로 스며들었다. 가시철조망이 군복을 할퀴고 살가죽을 베어 핏물이 흘렀으나, 이준의 발걸음은 유령처럼 신속하고 조용했다.수용소 내부의 참상은 참혹했다. 좁디좁은 통나무 감옥 안에는 뼈만 남은 죄수들이 공포에 질려 웅크리고 있었고, 중앙 마당에는 매질에 사용되던 채찍과 핏자국이 희미한 등불 아래 버려져 있었다. 사상이라는 이름의 폭정이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지옥의 현장이었다.이준은 경계가 삼엄한 수용동 중앙을 피해, 보초들의 움직임이 집중되는 수석 조사실과 독방 구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반동분자나 주요 감시 대상을 취조하고 고문하는 곳. 린이 만약 살아있다면, 그 잔혹한 자들의 손에 끌려가 있을 장소는 오직 그곳뿐이었다.조사실 입구를 지키던 적의 보초 둘이 당황한 기색으로 소총을 고쳐 쥐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어이, 무슨 일이야? 진짜 외세의 간첩이라도 들어온 거야?""글쎄 말이다. 북쪽 산악 경계망이 무너졌다는데..."사내들의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소환된 사신처럼 이준의 형체가 튀어나왔다.슉-! 콰직!이준은 단검의 손잡이로 오른쪽 보초의 턱관절을 거칠게 후려쳐 뇌진탕을 일으킨 뒤, 다른 보초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의 목덜미를 꺾어 바닥으로 짓눌렀다. 단 3초 만에 벌어진 정교하고도 무자비한 제압이었다.이준은 비틀거리는 보초들의 몸을 구석으로 치워버린 뒤, 차가운 단검으로 조사실 굳게 잠긴 육중한 나무 빗장을 사정없이

  • 사이공의 연인들   40. 사이공의 연인들

    "당신들이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고문하고 짓밟아도, 내 마음속에 있는 그분의 진심을 죽일 수는 없어요. 그분은 반드시 나를 찾으러 올 거란 말이에요!""이 미친 년이!"분노한 간부가 군홧발을 들어 린의 가슴을 차려 했다.그 순간, 밖에서 긴급 비상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비상! 비상이다! 산악 통제 구역에 적성 분자가 침투했다!"망루 위에서 기관총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간부와 보초들이 당황하여 총을 고쳐 쥐며 조사실 밖으로 뛰어나갔다.바닥에 홀로 남겨진 린은 거친 숨을 내쉬며 가슴속 회중시계를 꼭 안았다. 심장이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한... 당신인가요? 당신이 정말로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요?'린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려 피 묻은 뺨을 씻어내렸다. 공포도, 통증도 사라졌다. 오직 사나이를 향한 애절한 연모와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렬한 생존의 의지만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같은 시각, 자라오 산악 지대 입구의 짙은 정글.핏빛 달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영롱하게 비치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군복을 입은 한이준은 바위 뒤에 몸을 밀착시킨 채 숨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피가 묻은 단검이 쥐여 있었다. 발밑에는 방금 전 자신을 발견하고 총을 겨누려 했던 공산당 초병 사내가 숨이 끊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이준은 서늘한 눈빛으로 초병의 시신에서 소총과 탄창을 신속하게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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