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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Author: 꽃길마다

제1화 7년을 기다렸어

Author: 꽃길마다
강시아는 사직서를 다 작성하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대형 전광판에서는 구승준과 진은채의 결혼 소식이 벌써 일주일째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승준은 은채를 미친 듯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시아가 승준의 곁을 지켜온 시간이 무려 7년이라는 사실을.

열여덟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간을 시아는 모두 승준에게 바쳤다.

하지만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 하고, 이제 시아도 떠나려 한다.

결혼식을 올리는 날, 승준의 세상엔 시아라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시아는 시선을 거두고, 사직서를 접어 하얀 봉투에 넣었다.

그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승준이 들어왔다.

검은 셔츠에 검은색 바지. 길게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에 강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차가운 고급스러움이 그의 몸에 배어 있었다.

시아는 아직도 승준을 처음 만난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역시 검은 셔츠 차림으로 바 한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치 모든 걸 잃은 듯 낙담한 눈빛이었다.

그때 승준의 집안은 파산 상태였고, 밀린 술값은 손목시계를 맡겨서 해결하던 때였다.

시아는 대신 나서서 그 시계를 찾아주면서, 승준을 자신의 인생에 끌어들였다.

그러나 진흙 속에 묻힌 용은 결국 하늘로 솟는 법. 승준은 다시 일어섰고, 지금의 구영시 재벌가의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내가 문자 보냈는데 왜 답이 없어?”

승준의 날카로운 시선이 시아 손에 든 봉투에 꽂혔다.

시아는 봉투를 쥔 채 창밖을 가리켰다.

“대표님과 은채 씨의 결혼 홍보 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승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홍보 영상, 네가 직접 기획한 거잖아. 뭘 더 볼 게 있다고.”

그렇다. 그 영상은 시아가 직접 기획한 것이었다.

영상 속 승준과 은채의 모든 사진, 모든 달콤한 순간, 모든 사랑의 문구 하나하나까지 시아가 직접 구상하고 정리해 넣었다.

그때 승준은 시아에게 말했다.

“이건 네가 직접 해. 다른 사람이 하면 은채가 안심이 안 된대.”

승준과 은채의 관계는 고작 3개월 전에 시작된 것이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7년 전, 은채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구씨 가문이 파산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3개월 전, 은채가 가족과 함께 귀국하자 승준은 은채와 다시 인연을 이어갔고, 화려하게 프러포즈까지 했다.

시아가 승준의 곁을 지킨지도 벌써 7년이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 승준이 시아와 결혼할 거라 생각했고, 심지어 시아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3개월 전, 승준이 시아에게 좋아하는 반지 디자인을 고르라고 했을 때, 시아는 자기 손가락 사이즈로 반지를 골랐다.

하지만 그날 밤, 불꽃놀이가 터지던 순간 승준이 말했다.

“반지 이리 줘.”

시아가 온 마음을 다해 고른 반지를 건네자 승준은 그대로 돌아서서 무릎을 꿇고 은채의 손가락에 끼웠다.

찬란한 불꽃이 하늘을 수놓는 그 순간, 시아는 남자가 은채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7년을 기다렸어. 그 오랜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너 없이 산 적 없어.”

그 순간, 시아의 마음은 그 불꽃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승준의 말에 따르면 그 모든 날들 속에서 남자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은채였다.

‘그럼 그 이천오백 일 동안 너의 곁에서 일하고, 술에 취한 너를 챙기고, 너의 품에 안겨 잠든 난 뭐지?’

하지만 시아는 그 질문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왜냐면 승준과 은채의 결혼 자체가 그 질문의 답이었으니까.

승준을 7년이나 지켜온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둘이 학창 시절 나눴던 짧은 첫사랑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7년 동안 승준은 여자에게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여자 혼자만의 기대였고, 그 기대가 무너졌다고 해서 승준을 탓할 수도 없었다.

시아는 흐트러졌던 감정을 정리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이 7년 동안 짝사랑했던 남자를 바라봤다.

“대표님, 무슨 지시사항 있으신가요?”

“오늘 밤 나랑 진씨 가문에 같이 가. 선물은 네가 알아서 준비하고.”

승준은 형식적인 말투로 지시했다.

“네.”

시아는 승준의 비서였다. 어떤 요구든 언제나 응하는 위치.

승준은 시아의 얼굴을 훑어보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시아, 너...”

세 글자까지만 말하고 멈췄다.

승준도 그 느낌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통 잘 웃질 않네.”

결국 승준은 그렇게 말했다.

온통 은채에게만 관심을 쏟아온 승준은 시아가 웃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알아챘다.

시아는 즉시 입꼬리를 올려 정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앞으론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대표님.”

“시아야.”

승준이 낮은 소리로 시아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지금 맡고 있는 이 비서 자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바뀌지 않아. 내년에는 부대표로 승진도 시킬 생각이야.”

작은 비서에서 시작해 대표의 비서실장, 곧 부대표 자리까지.

그건 지난 7년 동안 승준이 시아에게 준 보상의 결과였다.

하지만 승준은 몰랐다. 시아가 진짜로 원했던 건 그런 직위가 아니었다는 걸.

여자가 바랐던 건 단 하나. ‘구승준의 와이프’라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건 시아 혼자만의 착각이자 환상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시아는 미소 띤 얼굴로 승준의 말을 받아들였다.

7년 동안, 승준이 주는 것에 시아는 뭐든 받아들였고, 주지 않는 것에 한 번도 목맨 적 없었다.

승준은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고, 시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

“전제 조건, 어떤 실수도 없어야 한다는 거야. 특히 결혼식에서.”

“걱정 마세요. 대표님과 은채 씨의 결혼식, 제가 완벽하게 준비해 드리죠.”

시아가 약속했다.

승준은 시아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그때, 시아 손에 들린 흰 봉투가 승준의 눈에 들어오고, 남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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