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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그냥 테스트해 보는 거예요

Author: 꽃길마다
“자기야, 좋은 아침.”

승준이 눈을 뜨자, 검은색 슬립 원피스를 입은 은채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불 속의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걸 보고 승준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필름이 끊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남아 있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승준은 다시 눈을 감았고, 은채를 쳐다보지 않았다.

은채는 남자의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자기야, 우리 밖에 좀 나가볼까? 강 비서 커플 좀 봐. 얼마나 잘 노는지.”

은채는 눈앞의 친구 전용 핸드폰을 돌려 방금 본 영상을 승준에게 보여줬다. 자기 힘으로는 이 남자의 시선을 끌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이용한 것이다.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이었다.

승준은 눈을 뜨고 영상 속 화면을 바라봤다.

영상엔 조금 전 시아가 춤추는 장면, 지호가 시아를 안아 들던 장면, 둘이 코인 자동차를 타고 놀던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잘 찍혀 있었고, 감성적인 편집 덕분에 더 로맨틱해 보였다.

승준의 가슴에는 쓰고 시린 감정이 치밀었다.

그는 이불을 걷어내고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은채는 안에서 들려오는 구역질 소리를 들었다. 질투 때문에 토한 건지, 아니면 씁쓸함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 승준은 지호와 시아 앞에 나타났다.

상처 난 자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고, 캐주얼한 트레이닝 세트를 입은 모습은 여전히 보기 좋았다.

은채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함께 걸어왔다.

두 사람은 겉모습만큼은 여전히 잘 어울리는 커플처럼 보였다.

“쟤 또 왔어.”

지호와 시아는 지금 수천 평에 달하는 잔디밭에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초록 풍경은 마치 초원에 온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왜요? 당신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

햇살이 강해지자 시아도 선글라스를 썼다. 그런 서늘한 분위기에 선글라스까지 더해지니 치명적이면서도 거칠고 자유로운 느낌을 풍겼다.

지호는 반쯤 누운 자세로 다리를 꼬고 있었다.

“그래, 나 때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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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제296화 다시는 따라오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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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제295화 시험이 아니라 선택이죠

    공항은 사람들로 붐볐으나 지호는 멀리서도 바로 알아보았다. 체크인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주시우는 짙은 회색 슈트 차림에, 사람들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단정하고 날카로웠다.지호의 눈빛이 깊어지던 그때 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 대표님, 수고하셨어요. 여기까지 하시고 돌아가세요.”시아의 말은 정중했지만 단단한 벽을 세우듯 차갑고 멀리 있었다. 하 대표님 같은 존칭으로 철저히 선을 긋고 있었다.‘혼자 출장 가는 줄 알았는데, 주시우가 동행이라니.’지호는 입꼬리를 비틀며 낮게 말했다.‘다리 부러뜨린 말도 숨은 여물은 먹여야지. 아직 주 대표에게 인사도 못 했는데.’그 시각, 시우도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 사이를 훑어보다가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곧장 발걸음을 옮겨 다가왔다.“수고 많으시네요, 하 대표님.”시우의 인사는, 조금 전 강시아가 건넨 ‘수고 많았어요’와 다를 바 없었다.이에 지호는 비죽 웃었다.“과찬이세요. 제 아내를 바래다주는 건 당연한 일이죠.”시우의 눈썹이 가볍게 올라가더니 말없이 강시아를 보았다.“출장이 조금 갑작스러웠네요.”“괜찮아요.” 시아는 조용히 그러나 정확히 비서의 자세로 대답했다.“우린 곧 탑승해야죠.”시우는 지호에게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시아와 함께 체크인을 마쳤다.시우의 키와 하지호는 비슷했다. 나란히 서 있는 시아는 적당한 높이로 둘 사이에 섰고, 어쩐지 두 사람은 묘하게 잘 어울렸다.이에 지호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휴대폰을 꺼내 단호히 명령했다.“고 비서, S시 가는 비행기, 가장 빠른 걸로 예약해.”비행기가 안정하게 날시자, 시우는 서류 가방을 열고 한 묶음을 꺼내 시아에게 건넸다.“만성 관련 자료예요. 미리 숙지해 두세요.”시아는 받아 들고 첫 장을 넘겼다. 프로젝트 기본 소개, 일정표 그저 흔한 자료였다.그런데 일곱 번째 장에서 손이 멈췄다.붉은 글씨로 ‘주한그룹 기밀’이라 적혀 있었는데, 이는 해외 고객과의 최근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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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제293화 이걸로 만족하죠?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라는 말은 지호를 위해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시아는 지호의 수작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저 구급상자를 정리해 놓고 내려다보듯 지호를 보았다.“지금 이거 완전히 억지 부리는 거잖아요?”“억지라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억울하지.” 지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소파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이건 합리적으로 부상자 신분을 활용하는 거지.”지호는 불현듯 시아의 손목을 붙잡아 살짝 끌어당겼다.시아는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 지호의 무릎 위로 안착했다.“지호 씨!” 시아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지호의 팔이 허리를 단단히 감아 놓았다.“쉿.” 지호가 귀에 바짝 대고 속삭였는데 따뜻한 숨결이 민감한 귓불을 간질였다.“얌전히 있어. 잠깐만 안고만 있게.”이에 시아의 온몸이 굳어졌다.지호의 단단한 허벅지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서서히 깨어나는 다른 무언가도 느껴졌다.“당신...” 시아의 귓불까지 붉게 달아올랐다.“당신 정말 뻔뻔하네요!”지호의 낮은 웃음이 가슴에서 울리며 시아의 등을 타고 전해졌다.“여보, 난 오직 당신한테만 뻔뻔해.”지호는 일부러 시아를 더 껴안으며 장난스레 움직였다. 그리고 시아의 목까지 붉게 물드는 걸 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당장 나가요!” 시아는 결국 폭발해 가까운 곳에 있던 쿠션을 집어 지호의 얼굴로 힘껏 던졌다.지호는 몸을 재빨리 비틀어 첫 번째는 피했으나, 두 번째 쿠션은 정통으로 머리를 때렸다.“아악!” 지호는 과장되게 신음하며 이마를 감쌌다.“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려 드네!”이에 시아는 벌떡 일어나 문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마저 덜덜 떨고 있었다.“지금! 당장! 나가요!”지호는 천천히 일어나 어지럽힌 셔츠를 정리했다. 문 앞에 다다르자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졌다.“참, 내일 내가 올 때...”지호는 시선을 소파로 흘리며 입꼬리를 올렸다.“오늘 밤 못 끝낸 일, 그때마저 할 수 있겠지?”시아는 더는 말도 못 하고 문을 가

  •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제292화 당신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게

    시아는 비웃듯 웃었다.“난 일할 때 돈만 보는 게 아니라 상사를 봐요.”그 말은 가슴을 찌르는 칼날 같았다.지호의 눈빛에 일부러 상처 입은 듯한 기색이 스쳤다.“당신 눈엔, 내가 그렇게 형편없어? 주시우보다도 못해?”시아는 지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스스로 알잖아요. 비교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잠시 서로의 시선이 맞부딪히자 공기가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그러다 지호가 피식 웃었는데 그 웃음에는 자조가 묻어 있었다.“맞아. 난 좋은 상사는 아니지.”지호는 한발 물러서며 출입문을 비켜섰다.“들어가. 푹 쉬어.”시아는 지호가 이렇게 쉽게 물러설 줄은 몰랐다. 그래서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문이 닫히기 직전, 문틈 사이로 보인 건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는 지호의 그림자였다.불빛에 길게 늘어진 그 그림자는 왠지 쓸쓸해 보였다.문에 등을 기댄 시아의 마음이 괜히 복잡해졌다.방금 자기 말이 너무 가혹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그 순간, 휴대폰이 진동하며 시아의 생각을 끊었다.바로 낯선 번호에서 온 사진이었다.화면을 열자 시아의 온몸이 순간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사진 속에는 민아와 은채가 잔을 맞대고 웃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건 사진 한쪽에 찍힌 날짜였는데 바로 오늘이었다.‘저 둘이 언제 그렇게 가까워진 거지?’시아는 곧장 지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곧 익숙한 벨 소리가 복도에서 울려 퍼졌다.문을 벌컥 열자 지호가 서 있었다. 그 역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무슨 일이야?” 지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분명 같은 메시지를 받은 듯했다.“당신 동생이랑 진은채가...” 시아는 말을 잇다 멈췄고 지호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내가 처리할게.”지호는 잠시 멈췄다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요즘 그 여자 조심해. 구승준과 얽힌 게 단순하지 않아.”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호의 소매 끝에 비친 희미한 혈흔을 발견했다.“다쳤어요?”그러자 지호는 본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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