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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적당히 잘생기고, 적당히 매너 있고, 적당히 성격 좋은.

Penulis: 크리스탈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18 20:46:16

남자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살짝 턱을 치켜들었다.

"컥.."

마시던 물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아직 저희, 제대로 통성명도 안 한 것 같은데요."

"제가 저 싫어하는 사람은 기가 막히게 빨리 알아보는 편이라서요. 지금 아니면 못 볼 것 같던데. 아니에요?"

기가 막힌 그의 통찰력에 다영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이 기괴한 몰골을 보고도 좋다고 들러붙는 멀쩡한, 아니 과하게 잘생긴 남자라니.

여태 결혼을 못한 이유가 설마 이런 하드코어한 특이 취향 때문이었나?

어이가 없으면서도 순수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말 몇 마디 섞어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지금 제 꼴이 이런데, 뭘 보시고... 대체 왜요?"

남자는 흐트러짐 없는 올곧은 시선으로 다영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예뻐서요. 거짓말 같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의 조건은 터무니 없이 완벽했다.

빼어난 얼굴과 훤칠한 키, 넘사벽 재력까지.

하지만 그녀는 이 남자만큼은 만날 수 가없었다.

'하정하.'

하필 전남자친구와 성까지 같을 줄이야.

그를 만나면, 전남친을 못잊어 일부러 동명이인인 남자를 꼬셔 만났다는 소문이 퍼질게 뻔했다.

이 소리가 그에게까지 들어가면,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죄송하지만, 세 번이나 만나기에는 제가 좀 바빠서요."

그녀가 능숙하게 그를 밀어냈다.

그와의 자리를 피할 구실이기도 했지만, 바쁘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최근 자신의 '서양화' 전공을 살려 평생교육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남자의 눈썹 끝이 미묘하게 올라갔다.

"전 남자친구랑 이름이 같아서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바쁘신 거라면 유감이네요."

그 순간 정곡을 찔린 다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개팅 상대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제 전 남자친구 이름은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지금 되게 불쾌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시고 가시죠."

그러나 남자는 등받이에 여유롭게 기댄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허다영 씨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됩니까?"

낮게 가라앉은 음성에, 다영의 목덜미로 서늘한 소름이 훅 끼쳤다.

"이런 선자리만 서른 번 가까이 돌았으면 나 같은 남자 만나기 쉽지 않은 거 잘 알 텐데."

입가에 머물던 장난기 어린 미소가 씻은 듯 사라지자, 그의 차가운 이목구비가 더욱 도드라졌다.

"그건 제가 알아서 판단할..."

"대체 이 선자리를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순진한 사랑 찾기?"

정하가 그녀의 말을 칼같이 자르고 들어왔다.

"정말 결혼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아직 전 애인을 기다리느라 결혼을 피하는 건지 잘 생각해보세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다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6년이라는 시간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우기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다영은 만지작거리던 가방끈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어설프게 세우고 있던 방어기제를 거두자, 힘이 들어가 굳어있던 어깨에도 스르르 힘이 풀렸다.

'멍청하게 굴지 마.'

전 남친이랑 이름이 똑같다고 이 좋은 조건의 남자를 놓친다고?

서른 번 남짓한 선자리가 이미 증명해주지 않았던가.

낭만은 얼어 죽을, 적당한 타협과 확실한 조건만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게요."

다영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한결 차분하고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불타는 연애 같은 거 기대하고 나온 자리 아닙니다. 전 애인한테 미련이 남아서 현실 도피하는 것도 아니고요."

남자의 짙은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듯 반짝였다. 그가 비스듬히 턱을 괴며 물었다.

"그럼 뭡니까."

"다만, 셈이 좀 확실했으면 해서요. 정하 씨."

전 애인과 같은 이름을 부르면서도 다영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아시다시피 집도 망해서 재산이랄 것도 없고, 전 평생교육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제 밥벌이하기도 빠듯해요. 아빠도 위암이시라 병원비도 감당해야 하고요. 감정 소모하면서 의미 없는 밀당이나 할 여유, 없어요."

말을 입 밖으로 뱉어낼수록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포장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니 한결 숨쉬기가 편했다.

"원하는 조건이 뭐냐고 물으셨죠?"

두꺼운 안경알 안으로 초롱초롱해진 그녀의 눈동자가 보였다.

"돈 많고, 다른 건 모두 다 적당한 사람이요. 적당히 잘생기고, 적당히 매너 있고, 적당히 성격 좋은."

다영의 솔직하다 못해 지독하게 현실적인 요구사항을 듣던 정하의 입꼬리가 나직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조건치고는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정하가 비스듬히 괴고 있던 손을 내리며 다영을 가만히 건너다보았다.

사실 다영은 자신이 떡진 머리에 우스꽝스러운 점까지 찍고 나온 이 기괴한 몰골에도 정하가 눈 하나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았던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정하 역시 이 선자리가 시급하긴 마찬가지였다.

하명그룹 회장인 그의 할아버지는 날마다 기한을 정해두고 가문을 위해 정략결혼을 성사시키라며 강한 압박을 넣고 있었다.

그러나 정하에게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자신의 재력과 배경을 노리고 완벽한 신붓감인 척 '사랑'을 연기하며 들러붙는 여자들이었다.

구질구질한 애정 구걸이나 감정 노동 따위는 정하의 인생 계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필요로 한 것은 오직 하나, 할아버지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사랑 따위는 일절 기대하지 않는 사업 파트너 같은 여자였다.

그런 정하의 눈앞에 나타난 허다영은 그야말로 완벽한 선택지였다.

일부러 엉망진창으로 꾸미고 나와 가벼운 사내들을 솎아내는 현명함, 자신의 사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솔직함까지.

적어도 그는 눈 앞에 있는 여자가 제 신붓감이 될거라는 것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당돌하기까지 한 다영의 역공에, 한 방을 먹었다는듯 정하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가식 없이 서늘했던 얼굴에 처음으로 번지는 '진짜' 미소였다.

"이제야 대화가 좀 통하네."

그가 테이블 위로 깍지를 끼며 상체를 바짝 기울였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허다영 씨가 방금 말한 밥벌이 걱정. 내 옆에선 평생 안 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의 진한 목소리가  다영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적당히는 잘 모르겠네. 난 아주 잘생기고, 아주 매너좋고, 아주 나이스한 성격이라."

크리스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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