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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로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1 16:05:20

사내는 무거웠다. 운설은 그를 화로 곁까지 끌어다 눕혔다.

등을 보려면 옷을 갈라야 했다. 피가 옷감에 얼어붙어 살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 더운 물을 적신 천을 그 위에 얹고 기다렸다. 억지로 뜯으면 새살까지 함께 떨어진다. 얼어붙은 것은 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운설은 서두르지 않았다. 서둘러 본 적이 없었다.

천이 식으면 다시 물에 담갔다가 얹었다. 세 번을 그러고 나서야 옷이 살에서 떨어졌다.

칼자국은 셋이었다. 하나는 깊고 둘은 얕았다. 얕은 둘은 깊은 하나를 피하려다 생긴 것이었다. 쫓기며 맞은 상처였다. 운설은 그런 상처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앞에서 받은 칼과 뒤에서 받은 칼은 결이 달랐다. 이 사내는 등을 보이고 도망치다 이곳에 닿았다.

그녀는 바늘을 불에 지졌다. 실을 꿰었다. 살을 여미는 동안 사내는 앓지 않았다. 앓을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었다.

화로가 낮게 숨을 쉬었다.

운설은 사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뜨거웠다. 상처의 열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타는 열이었다. 이런 열은 약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몸이 마지막으로 제 것을 태우는 열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사내는 아침을 보지 못한다.

그래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열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으려는 손이었다. 죽어 가는 사람의 곁에서 운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손을 데워 주는 것. 마디를 눌러 펴 주는 것. 아까 그 노파에게 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내가 눈을 떴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불을……" 그가 말했다. "쬐게 해 줘서."

"말하지 마세요."

"아니." 사내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웃으려던 것 같았다. "따뜻한 데서, 가는 건…… 오랜만이라."

운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로를 그의 쪽으로 조금 밀어 주었다.

"삭월(朔月)을…… 아느냐."

"몰라요."

"모르는 게…… 낫다." 사내는 한참을 쉬었다. 숨이 짧아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알아야 하는 게 있어."

그가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 굳은 손가락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운설이 대신 그 품을 열어, 안에 든 것을 꺼냈다.

쇠붙이였다. 손바닥만 한 패(牌). 차가웠고, 오래 몸에 지녀 온 것이라 한쪽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표면에 초승달이 새겨져 있었다. 이지러진 달, 거의 다 사라져 가느다란 선 하나만 남은 달이었다.

"이건……"

"쥐어라." 사내가 말했다. "네 것이다."

운설은 쥐지 않았다. 낯선 물건이었다. 낯선 사내의 낯선 물건. 받을 이유가 없었다.

사내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아까처럼, 죽어 가는 손이라기엔 힘이 셌다. 그 손이 운설의 손을 끌어 제 가슴 위에 얹었다. 얇게 오르내리는 가슴이었다.

"들어라. 소리를."

"……무슨 소리요."

"강이…… 흐르는 소리."

운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화로가 숨 쉬는 소리, 밖에서 눈이 쌓이는 소리 없는 소리.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상처의 열도, 이마의 열도 아니었다. 사내의 가슴 안쪽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그녀의 손바닥으로 천천히 건너오고 있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막을 새도 없이, 막을 생각도 못 한 채. 운설의 손끝이 저릿하더니 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운설은 제 손이 떨리는 것을 오래 잊고 살았다. 약재를 다룰 때에도, 살을 여밀 때에도 그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서웠다. 상처보다도, 죽음보다도.

"손을 떼고 싶어요."

"떼도 된다." 사내가 말했다. "이미…… 건너갔다."

떼자 손은 다시 조용해졌다. 저릿함도 가라앉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다만 손바닥 한가운데가, 데인 자리처럼 오래 따뜻했다.

"넌 그 눈을 가졌다." 사내가 다시 말했다. 처음 문 앞에서 했던 말이었다. "네 어미의 눈이다. 그 여자도…… 울지 않았다. 눈밭에서도."

운설은 멈칫했다. 자신이 울지 않는 아이였다는 이야기를, 그녀는 평생 남에게서 들어 왔다. 그런데 이 사내는 그것을 제 어미에게 옮겨 말하고 있었다.

"내 어미를 아세요."

"삭월의…… 마지막 공주였다." 사내의 목소리가 이제 실낱같았다. "너는 그 마지막의, 마지막이다."

말은 거기서 끊겼다.

운설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화로가 한 번 숨을 쉬었다. 두 번 쉬었다. 세 번째 숨은 사내의 것이 아니라 화로의 것이었다. 사내는 더 이상 숨 쉬지 않았다.

날이 밝을 무렵 눈이 그쳤다.

운설은 사내의 눈을 감겼다. 마지막까지 뜨고 있던 눈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보려 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손 안에 초승달 패가 남아 있었다. 언제 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손가락이 그것을 꼭 쥐고 있었다. 아까 그 노파의 굽은 손처럼, 무언가를 놓지 못하는 손의 모양으로.

삭월. 마지막의 마지막. 어미의 눈.

말들은 김처럼 올라왔다가, 이번에는 흩어지지 않았다. 손바닥 한가운데의 온기처럼, 가라앉아 남았다.

운설은 곶감을 떠올렸다. 어젯밤 입안에서 녹던 단맛. 그것을 언제 삼켰는지도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났다.

바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무너지는 소리도 아니었다. 여럿이었다. 눈을 밟는 발이 여럿, 그리고 그 사이로 말발굽 소리가 눈에 묻혀 둔하게 울렸다. 소리는 약방 쪽으로 곧게 오고 있었다. 길을 아는 걸음이었다. 누군가를 쫓아 온 걸음이었다.

운설은 초승달 패를 소매 안에 감췄다. 왜 감췄는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다만 손이 먼저 그렇게 했다.

그녀는 죽은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문을 보았다.

눈은 그쳐 있었다. 소리 없이 내리던 것이 그치자, 세상은 오히려 더 조용했다. 그 조용함 속으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운설은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고리는 차가웠다. 그것을 쥔 손바닥 한가운데만 아직 따뜻했다.

발소리가 문 앞에 멈춰 섰다. 여럿의 숨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숨과 나란해졌다.

운설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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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47. 안뜰

    겨울 궁의 문은 두 사람을 따로 삼켰다.선우현은 창을 든 여섯에 둘러싸여 대전 쪽 돌계단으로 올라갔고, 운설은 사백을 따라 옆문으로 들었다. 헤어지며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것이 그녀를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 등이 계단 위 어둠에 잠기는 것을 그녀는 끝까지 지켜보았다."걱정은 넣어 두어라." 사백이 말했다. "마님은 값을 매기기 전에는 물건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물건.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백도 알면서 하는 말이었다.궁은 성이라기보다 산 자체였다. 바깥에서 본 문루와 성벽은 얼굴일 뿐, 몸은 바위산 속으로 뻗어 있었다. 회랑이 굴이 되고 굴이 다시 마당이 되는 길을 사백은 등불도 없이 걸었다. 더운 물이 벽 속 어딘가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산이 통째로 숨을 쉬는 소리 같았다. 십팔 년 전 그 밤, 이 산까지는 토벌대가 닿지 못했다고 사백이 말했다. 길을 아는 자도 여기까지는 몰랐다고. 그 말끝이 잠깐 어두워졌다.안뜰은 뜻밖에 사람의 온기로 붐볐다. 바위를 파고 지은 회랑마다 등불이 켜지고, 더운 물이 도는 돌바닥에서 김이 올랐다. 아이들이 뛰다가 멈춰 서서 그녀를 보았다. 물동이를 인 여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늙은이들이 문가로 나왔다. 백여 개의 눈이 그녀를 따라왔다.절반은 절을 했다. 무릎을 꿇는 이도 있었다. 달무리 부인의 낯을 아는 늙은 눈들이 그녀의 낯에서 죽은 이를 찾아내고 젖었다. 늙은 여인 하나는 그녀의 소맷자락을 두 손으로 받들고 이마를 대었다. 무어라 말릴 새도 없는 일이었다. 받들어지는 일은 쫓기는 일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무겁게 했다.절반은 절하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소문 속의 요녀와 그 곁에 왔다는 선우가의 핏줄을 셈하는 눈들. 그 눈들 중 하나가 지나가며 낮게 뱉은 말을 운설은 들었다. 늦게도 왔군. 다 죽고 나서야.늦게도 왔군. 처소에 들어 문이 닫힌 뒤에도 그 말은 벽에 남아 있었다. 열여덟 해를 어디서 무엇으로 살았는지 이 사람들은 모르고, 알

  • 설야팔부 (雪夜八部)   46. 아침

    파내는 소리로 아침이 왔다.눈벽 너머에서 삽과 손 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운설은 밤새 갈아 댄 찬 수건을 그의 이마에서 거두었다. 열은 새벽 고비를 넘겼다. 눈을 뜬 그는 제가 어젯밤 무슨 말을 흘렸는지 모르는 낯이었고, 그녀는 굳이 알려 주지 않았다. 그 방에는, 아무도 — 끊긴 말은 그녀의 안에 접어 두었다. 열이 지어낸 헛것일 수도 있었다. 헛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눈벽이 뚫리고 아침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맨 먼저 들어온 것은 사백의 얼굴이었다. 매의 눈이 굴 안을 한 바퀴 돌았다. 타다 남은 초, 널린 옷가지, 꿰맨 어깨, 한 뼘 사이로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눈으로 셈을 끝낸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운설부터 끌어올렸다."포로라 했지." 눈 위로 올라선 뒤에야 사백이 말했다. 그녀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묶은 줄이 꽤 튼튼하더구나."운설은 대꾸할 말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볼이 붉어지지 않는 낯이 평생 처음으로 아쉽지 않았다.부대의 셈은 다행히 가볍지 않게 끝났다. 말 셋을 잃고, 기수 둘이 뼈를 다쳤으나 목숨은 다 붙어 있었다. 강이 눈을 가른 자리 덕에 매몰이 얕았다고 했다. 기수들이 그녀를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두려움 반, 다른 것 반. 뼈피리 가락에 울던 여자가 눈 벌판을 갈랐다. 겨울 궁에 닿기 전에 이야기가 먼저 닿을 것이었다.사백은 두 기수를 데리고 벼랑 위를 살피고 내려왔다. 손에 검게 탄 헝겊과 끊어진 노끈, 그리고 쇠 부스러기를 들고 있었다."화뢰(火雷)다." 여자가 그것들을 운설의 손바닥에 부렸다. "눈시렁 밑동에 묻고 심지를 태웠어. 두 군데. 눈이 저절로 내려온 게 아니라 내려앉힌 거다.""맹의 것입니까.""맹의 화뢰에는 낙인이 있다. 이건 민짜야." 사백의 눈이 가늘어졌다. "맹이 낙인을 지웠거나, 맹이 아니거나. 어느 쪽이든 — 협곡에 우리가 드는 날과 시각을 안 자다."또 새는 곳. 나루에 이어 두 번째였다. 운설은 쇠 부스러기를 쥐었다. 누군가 그물을 짜고 있었다. 맹의 그물도

  • 설야팔부 (雪夜八部)   45. 눈굴

    강이 갈라 놓은 눈의 틈은 사람 둘이 들 만한 굴이 되어 있었다. 운설은 그 안으로 그를 끌어들이고, 무너진 눈으로 입구를 반쯤 막아 바람을 죽였다. 밖은 이미 저물어, 협곡 어딘가에서 기수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눈벽 너머 아득하게 오갔다. 목청껏 답해 보았으나 눈은 소리를 먹었다. 구조는 아침의 일이 될 것이었다.봇짐에서 밀랍 초가 나왔다. 약재상 노파가 눌러 담아 준 두 자루 중 하나였다. 부시를 치자 좁은 눈굴에 노란 불이 앉았다. 눈벽이 그 빛을 되쏘아, 굴 안은 뜻밖에 환했다."옷을 벗어야겠습니다." 운설이 말했다.반쯤 의식이 돌아온 그가 눈을 떴다."등의 상처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젖은 옷은 이 추위에 수의(壽衣)입니다." 그녀는 의녀의 목소리를 꺼내 썼다. 꺼내 쓴다고 꺼내지는 목소리가, 오늘은 어딘가 삐걱거렸다. "돌아누우세요."그는 잠깐 그녀를 보다가, 순순히 몸을 돌렸다. "……환자요." 낮게 그 한마디를 하면서였다. 언젠가 환자가 아니라고 두 번 우기던 사람의 항복이, 하필 이런 데서 나왔다.찢긴 옷을 어깨에서 걷어 내렸다.촛불 아래 등이 드러났다. 낙석에 맞은 왼 어깻죽지가 검붉게 부어오르고, 그 아래로 손바닥 길이의 열상이 벌어져 있었다. 운설은 상처부터 보았다. 상처를 보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그런데 상처를 다 보고 난 눈이, 일 없이 그 곁의 것들에 가 닿았다.흉터들이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오래된 흉이 저마다의 세월을 지고 흩어져 있었다. 살이 아문 결을 보면 상처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열둘이나 열셋의 것, 스물의 것, 작년의 것. 검신이라 불리기까지의 세월이 등 하나에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다. 함부로 산 몸이 아니라, 함부로 살도록 내몰린 몸이었다.손끝이 지혈초를 개다가 한 번 떨렸다.수없이 본 남자의 등이었다. 의원에서, 장터에서, 뼈를 맞추고 고름을 짜며 본 등이 백이 넘었다. 떨린 적은 없었다. 살은 살이고 상처는 상처였다. 그런데 지금 이 등 앞에서 침을 쥔 손이 낯선 박자를 탔다. 살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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