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문을 열자 찬 것이 먼저 들어왔다.
눈은 그쳐 있었다. 마당의 흰 바닥에 발자국이 어지러웠다. 사람이 여럿, 말이 둘. 횃불 하나가 낮게 흔들렸고, 불빛이 눈밭 위에 길게 누워 방금까지 조용하던 흰 것을 붉게 적셨다.
맨 앞에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눈을 오래 맞은 사람이었다. 어깨에도 검은 머리에도 눈이 앉아 있는데 털어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이 그의 위에만 유독 조용히 쌓이는 것 같았다. 사내가 가만히 있으면 곁의 소란한 것들이 함께 가만해졌다. 횃불을 든 자들도, 발을 구르던 말들도, 그의 반보 뒤에서 숨을 죽였다. 서 있는 것만으로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알게 하는 사람이 있다. 사내가 그랬다.
허리에는 검이 있었다. 운설은 상처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짐작하곤 했다. 손을 보면 더 그랬다. 사내의 손은 곱게 여문 손이었다. 마디가 굵지 않고, 함부로 휘두른 적 없이 벨 때만 정확히 벤 손. 약재를 부러뜨리는 운설의 손과는 다른 손이었다.
"이 길로 노인이 하나 지나갔소." 낮고 서늘한 목소리였다. 묻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확인하는 말투였다. "다쳤을 거요. 피를 흘리며."
운설은 대답하기 전에 제 소매를 보았다. 소매 끝에 검붉은 것이 말라붙어 있었다. 감출 수 없었다. 감출 생각도 없었다.
"안에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죽었어요."
사내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기다리던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의원입니다." 운설이 말했다. "죽은 사람은 눕혀 두는 게 예의예요."
그러며 그녀가 등을 든 손을 조금 올렸다. 문 안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로 옮겨 왔다.
사내의 말이 거기서 멎었다.
그는 쫓던 노인을 잊은 얼굴이었다. 눈 내린 변경의 허름한 약방 문간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서 있다는 눈이었다. 운설의 살결은 오래 눈을 본 사람의 것처럼 희었고, 그 흰 바탕 위에 눈썹과 눈이 먹을 한 번 떨어뜨린 것처럼 짙었다. 추위에도 붉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검은 머리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몇 점 얹혀, 불빛을 받아 잘게 빛나다 스러졌다. 그녀는 예쁘다기보다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한 번 본 사람이 다음에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잠깐 잊게 하는.
그리고 그 눈이 — 죽음을 여럿 보아 온 자의 눈매를 마주하고도 — 물러서지 않았다. 사내가 낯설어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물러서지 않음이었는지도 몰랐다. 눈밭에 놓이고도 울지 않았다던 아이의 눈. 운설은 제 얼굴이 남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오래 무심했으므로, 사내의 멈칫함을 제 탓으로 돌리지 못했다. 다만 그가 잠깐, 여기까지 온 이유를 잊었다는 것만 알았다.
사내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내려놓았던 것을 도로 집어 드는 사람처럼.
그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운설은 막지 못했다. 막을 힘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는 죽은 노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래 쫓던 얼굴을 마침내 확인하는 눈이었다. 그러고는 노인의 굳은 손을 폈다. 손은 비어 있었다. 무언가를 쥐고 있던 모양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의 시선이 노인의 등으로 옮겨 갔다. 갈라졌던 자리가 가지런히 여며져 있었다. 서두르지 않은 손이 한 땀 한 땀 뜬 자국이었다. 죽을 사람인 줄 알면서도 누군가 정성껏 꿰맨 상처였다. 화로는 아직 온기를 품고 있었고, 방 안에는 약초 끓인 냄새가 낮게 깔려 있었다. 사내가 그 냄새를 한 번 들이마셨다. 밤새 쫓으며 맡아 온 피 냄새와는 다른, 살아 있는 것을 살리려던 자리의 냄새였다.
"당신이 치료했군." 그가 말했다. 나무라는 것도, 묻는 것도 아니었다. "죽을 사람을."
운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죽을 사람인 줄 알면서 손을 대는 것이 의원의 일이라는 말을, 이 사람에게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밖에서 누군가 발을 굴렀다. 추위 때문인지, 오래 선 채 기다리는 일이 낯설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사내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이, 이번에는 운설의 소매에 가 닿았다.
"그 손에 있던 것을."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져 있었다. "당신이 가졌군."
운설의 손이, 저도 모르게, 소매를 쥐었다.
눈 내리는 밤이었다.굵은 눈송이가 약방 처마 끝에 소리 없이 쌓였다.운설은 머리를 반쯤 묶은 채 약방 문을 열었다. 열 난 아이를 업은 아비가 눈밭에 서 있었다. 선우현은 옷고름을 잘못 맨 채 등잔을 들고 뒤따랐다.“언제부터 열이 났어요?”“해 지기 전부터요. 의원님이 돌아왔다기에—”“안 돌아왔어도 옆집 의원을 불렀어야죠.”운설은 아이를 받아 침상에 눕혔다. 젊은 의원도 안채에서 뛰어왔다. 두 사람은 맥과 목, 손발 온기를 나눠 살폈다. 단순한 겨울 열병이었다.선우현이 물을 끓이는 동안 단도 잠옷 차림으로 나왔다. 환자 아이의 언 손을 보고 자기 털신을 벗어 침상 아래 놓았다.“물어보고 줘야지.” 운설이 말했다.단이 아비에게 물었다.“빌려줘도 돼요?”아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신을 밀어 넣었다. 아이들은 곧 잠들었고, 어른들은 약 달이는 불을 지켰다.날이 밝을 무렵 열이 내렸다. 아비가 가진 돈이 없다고 하자 선우현은 장부에 외상 두 푼을 적었다. 단이 그 옆에 봄에 갚음이라고 삐뚤게 덧붙였다.“못 갚으면?” 아이 아비가 물었다.“그때 다시 정합시다.” 운설이 답했다.아침에는 편지가 네 통 도착했다.첫째는 혈비에게서 왔다. 북쪽 배수로에서 소맥의 남은 뼈를 찾았고, 다음에는 채령의 고향으로 간다고 했다. 사백은 갈림길마다 각자 다른 곳으로 갔다가 이상하게 같은 주막에서 다시 만난다고 썼다. 편지 끝에는 왕인 없이 언니가라고만 적혀 있었다.둘째는 명주의 것이었다. 흑요와 조각 반쪽을 한곳에 보관하지 않고 각자 품기로 했으며, 첫 매화가 지던 날 정무가 동쪽 물그릇으로 떠났다고 했다. 명주는 사흘을 울고 넷째 날 서쪽 약초를 캐러 갔다. 맥은 이제 아침에 두 번, 저녁에 한 번 뛴다고 적었다.담우의 편지는 같은 봉투에 없었다. 그는 백로진 이웃 마을에서 열병 환자를 돌보고 있었고, 명주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냈지만 아직 답은 없다고 했다. 세 번째는 성가시다 했으니 한 달 더 기다리겠다는 줄에 운설이 웃었다.셋째는 연도하와
풀린 머리카락이 운설의 등을 덮었다.선우현은 곧장 입을 맞추지 않았다. 반년 동안 먼 길과 싸움이 남긴 얼굴을 눈으로 먼저 더듬었다. 관자놀이의 가는 흉터, 야란의 약패를 쥐다 생긴 손바닥 자국, 피곤할 때 조금 내려앉는 왼쪽 눈썹까지.“왜 그렇게 봐요?”“돌아온 네가 내가 기억한 사람과 얼마나 다른지.”“많이 달라요?”“더 갖고 싶어졌어.”낮고 솔직한 말에 운설의 숨이 멎었다. 그녀가 먼저 그의 옷깃을 잡았다.“그럼 보기만 하지 말아요.”입술이 맞닿았다.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듯 느렸고, 다음에는 기다린 날을 한꺼번에 좁히듯 깊어졌다. 선우현의 손이 머리카락 아래 목덜미를 감싸자 운설이 작은 숨을 흘렸다.“하아…… 우현.”이름이 나오자 그의 입맞춤이 더 집요해졌다. 운설의 등이 문에 닿았고, 손은 어느새 선우현의 허리 매듭을 풀고 있었다.“문턱도 확인하고 빗장도 확인하더니.”“반년 만이다.”“겨울 궁에서도 했잖아요.”“우리 방은 반년 만이지.”선우현은 그 차이가 대단하다는 얼굴이었다. 운설이 웃다가 목선을 따라 내려오는 입술에 웃음을 잃었다. 손가락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아…… 잠깐.”그가 즉시 멈췄다.“상처?”“아니요. 너무…….”말끝을 찾지 못한 운설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계속해요.”선우현의 숨이 목덜미에서 뜨겁게 번졌다. 그는 그녀를 안아 침상까지 갔다. 예전처럼 무공으로 가볍게 든 몸이 아니어서 두 걸음째에 숨이 흐트러졌다. 운설이 웃으며 발을 바닥에 내렸다.“같이 걸어요.”둘은 입술을 떼지 못한 채 서툴게 침상까지 갔다. 상 모서리에 무릎이 부딪치고 옷자락이 발에 걸렸다. 완벽하지 않은 몸들이어서 더 익숙했다.이불 위에서 선우현은 서두르지 않았다. 손끝으로 운설의 달라진 선을 다시 익히고, 지나간 상처마다 입술을 머물렀다. 운설은 참으려던 숨을 놓았다. 짧은 탄식과 그의 이름이 방 안에 번질 때마다 선우현의 눈빛이 더 짙어졌다.“내가 보고 싶었어요?”“매일.”“어느 때 제일?”
백로진 약방 문턱은 한 치 높아져 있었다.비가 들이치지 않게 길수가 덧댄 나무였다. 운설은 첫발부터 걸려 넘어질 뻔했고, 선우현이 허리를 받쳤다.“우리 집 맞아요?”“문턱이 주인을 몰라보는군.”안에서 복례가 국자를 들고 뛰어나왔다.“반년 만에 와 놓고 문턱 탓을 하네!”국자가 선우현 어깨를 치기 전에 운설이 막았다. 다친 자리라고 하자 복례는 그를 부엌에 앉히고 찬물부터 길어 오라고 했다. 돌아온 검신에게 내린 첫 명이었다.부엌 선반 위치도 바뀌어 있었다. 선우현은 물바가지를 찾는 데 한참 걸렸고, 단이 문 뒤에서 꺼내 주었다.“아버지는 집도 몰라요?”“집이 나 없는 동안 움직였다.”“집은 안 움직였어요. 물건만 바뀌었지.”선우현은 반박하지 못했다. 단은 의기양양하게 새 쌀독과 약초 말리는 곳을 하나씩 알려 줬다. 아버지가 지키러 돌아온 집이 아니라, 아버지도 다시 배워야 할 집이었다.마을 사람들은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운설이 비운 침방은 여리에게 배운 의원 둘이 번갈아 썼고, 우물은 길수와 떡집 노파가 관리했다. 진료 장부에는 잘못 놓은 침과 고친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제가 없어도 잘했네요.”“없어서 한 거지.” 복례가 말했다. “있었으면 네가 다 했을 테니까.”운설은 서운한 얼굴을 했다가 웃었다. 돌아올 자리는 비어 있는 의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기 삶을 이어 가다 한 칸 내어 주는 곳이었다.젊은 의원은 운설이 예전에 쓰던 약장을 셋으로 나눴다. 가운데 칸 하나를 비워 두었으나 운설 이름은 붙이지 않았다.“돌아오시면 어느 칸을 쓰실지 몰라서요.”운설은 가장 낮은 칸을 골랐다. 아이도 약 이름을 볼 수 있고, 앉아서 오래 일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자리였다. 높은 칸은 젊은 의원이 그대로 쓰게 했다.단은 뒷마당에서 또래 아이들과 눈 녹은 진흙으로 성을 쌓고 있었다. 부모를 보자 달려오다가 손에 든 진흙을 내려다봤다.“안아도 돼요?”운설이 두 팔을 벌렸다.“물어봐 줘서 고마워.”진흙 묻은 몸이 품에 뛰어들었다
어머니 봉분에는 이름패가 둘 놓여 있었다.운설이 첫 사흘 동안 죽은 아이 둘의 이름을 찾아 가져온 패였다. 하나는 마도가 기억했고, 다른 하나는 왕가 옛 부엌 장부에서 발견했다. 빈 동그라미가 채령과 무진으로 채워졌다.혈비는 북쪽 배수로에서 찾은 소맥의 작은 신을 들고 왔다. 아비에게 뼈와 함께 돌려주고 남은 한 짝이었다. 소맥의 아비가 왕가가 기억하라고 맡겼다.두 자매는 서로 절하지 않았다. 봉분 앞에 나란히 앉아 각자 가지고 온 것을 어머니 수놓은 달무리 천 위에 놓았다.운설은 약패 첫 사흘을 소리 내 읽었다. 혈비는 밀지의 문을 열라는 줄을 읽었다. 좋은 줄만 고르지 않고 같은 목소리로 끝까지 나눠 읽었다.선우현과 사백은 들리지 않을 만큼 물러나 있었다. 사백이 물었다.“저 자리에 끼고 싶지 않습니까?”“많이.”“그런데 왜 여기 있습니까?”“운설이 부르면 갈 거다.”사백은 그 말을 곱씹었다. 혈비가 부르지 않아도 늘 앞서 달려가던 자신과 달랐다. 그는 활 없는 손으로 무덤길의 마른 가지를 치웠다.“어머니를 용서했어?” 혈비가 물었다.“아직 그 말을 정하지 않았어.”“미워하고?”“첫 사흘을 생각하면. 밀지를 보면 또 보고 싶고.”운설은 마른 풀을 뽑아 손가락으로 비볐다.“언니는?”“어머니가 밀지를 내게 닿게 하지 못한 게 원망스럽다. 그런데 내가 왕인을 깨지 않은 세월까지 어머니 탓으로 할 수는 없더군.”혈비는 왕의 옷을 입지 않았다. 짧은 푸른 소매 아래 밧줄 상처가 남아 있었다. 북쪽 길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왕이라 부른 적도, 우물 죄인이라 욕한 적도 있었다. 어느 이름도 막지 않았다고 했다.“하진은?”“겨울 궁을 떠났다.”“어디로?”“말해 주지 않았다.”혈비가 씁쓸하게 웃었다.“그래도 찾지 않을 거야?”“이번에는 찾지 않는 것이 그 아이를 잃는 일과 다르다. 살아서 자기 길을 숨기겠다고 했으니까.”야란은 겨울 궁에 남아 지하 약방을 작은 병소로 바꾸는 일을 보고 있었다. 왕가 의원은 들이지 않았고, 빨래
네 갈래 길 앞에 수레가 네 대 멈췄다.혈비는 북쪽 배수로로, 고윤은 갈대 나루로, 명주는 서쪽 약초길로 가야 했다. 담우가 갈 남쪽 끝에는 백로진이 있었다.누구도 먼저 작별을 말하지 않았다. 같은 일을 겪고 살아남았으니 끝까지 함께 가야 할 듯한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흑수촌에서 온 작은 배가 나루에 닿았다. 노분이 보낸 물항아리와 편지 한 장이 실려 있었다. 항아리에는 노칠 이름패를 단 뒤 처음 길은 흑수촌 우물물 한 병이 담겨 있었다.명주가 마개를 열었다. 붉은 겨자씨와 삭힌 무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가슴 안 정무가 두 번 두드렸다. 노칠이 찾던 집 냄새였다.노분은 글을 몰라 이웃 아이에게 편지를 부탁했다. 오라비를 문턱에 달았다. 늦게 왔다고 욕하고, 그래도 왔다고 밥 한 그릇 놓았다. 마지막에는 명주의 뺨에 바를 풀 이름이 적혀 있었다.편지 뒷면에는 노칠이 어릴 때 냇가에서 넘어져 생긴 무릎 흉터와, 삭힌 무를 훔쳐 먹다 들킨 날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시신을 확인할 때 필요했던 표식이 이제는 오라비가 살았던 날을 돌려놓는 이야기가 되었다.명주는 정무에게 들려줘도 되는지 노분에게 묻지 못했다고 했다. 정무가 가슴 안에서 한 번 두드렸다. 듣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남의 가족 편지를 함께 몸에 산다는 이유로 가져가지 않았다.“오라버니가 돌아갔네요.” 담우가 말했다.“우리가 데려다준 거지, 제 몸에서 나온 물만 돌아간 건 아니야.”명주는 노분과 수레꾼, 관을 태운 사람 이름을 하나씩 말했다. 정무도 가슴 안에서 박자를 보탰다.고윤은 항아리 가까이 오지 않았다. 노칠을 그릇에 넣은 자기 손이 고향물까지 흐릴까 두려운 얼굴이었다.명주가 그에게 한 잔 떠 주었다.“받아도 되느냐?”“제가 주는 게 아니라 노분 어르신이 모두 나눠 마시라고 했어요.”고윤은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 물을 마시기 전 노칠 이름을 소리 내 불렀다. 사죄는 덧붙이지 않았다. 죽은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받아 달라고 청하지 않았다.감시인들이 고윤 수레의 쇠줄을
연도하의 수레에는 깃발이 없었다.공동 소금길 사람들은 각자 자기 표식을 되찾았고, 그는 빈 수레 하나만 몰았다. 겨울 궁에 남은 마지막 장부를 무한으로 가져갈 참이었다.운설은 성문 밖까지 배웅했다. 선우현도 곁에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를 막지 않았다.“다음에는 어디로 갑니까?” 운설이 물었다.“길 식솔들이 부르는 곳으로. 내가 갈 수 있는 날까지.”“부르지 않으면요?”“내 작은 창고에서 욕먹으며 장부를 쓰겠소.”연도하가 웃었다. 예전의 화려한 겉옷도 비싼 말도 없었으나 눈빛은 오히려 가벼웠다.하란주는 수레 뒤에서 말편자를 살폈다. 작별이 길어져도 재촉하지 않았다. 운설이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도하를 데려가 줘서 고맙다고 하면 싫어하겠죠?”“몹시.”“그럼 흑마장 말을 빌려줘서 고마워요.”“그건 받겠소.”하란주는 연도하와 같은 길을 가지만 그를 거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둘의 수레와 말은 다음 갈림에서 각자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었다.그는 운설에게 작은 나무자 하나를 내밀었다. 한 치 표시에서 부러져 있었다.“이걸 왜 줘요?”“내가 그대 마음에서 한 치만 달라 했을 때 쓰던 자요. 돌려주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대 것이 아니었소.”운설은 받지 않았다.“당신 것이면 가져가요.”“그럼 부러뜨리겠소.”“그것도 당신이 정해요.”연도하는 자를 부러뜨리지 않았다. 수레 앞 작은 상자에 넣었다. 자기 욕망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남의 마음을 재는 데 다시 쓰지 않으려는 자리였다.“아직도 나를 사랑해요?”선우현의 손가락이 운설 손 안에서 아주 조금 굳었다. 연도하는 그 움직임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그렇소.”“그 마음 때문에 돌아오라고 하진 않을 거고?”“하지 않겠소.”“잊어 달라고도 안 해요.”“그것까지 그대 일이 되면 안 되니까.”연도하는 운설을 처음 본 밤을 말했다. 칼에 쫓기면서도 쓰러진 낯선 사람 맥을 먼저 짚던 손을 보고, 그 손이 자기에게 닿기를 바랐다고 했다.“그 마음 때문에 그대를 살린 적도 있고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