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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팔부 (雪夜八部)
설야팔부 (雪夜八部)
Author: moominkiller

1. 눈 내리는 밤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1 15:23:39

"의원, 이 손가락이 안 펴져."

노파가 약상 위에 손을 올렸다. 검지와 중지 마디가 굽어 있었고, 손등에는 오래된 흉이 한 줄 그어져 있었다. 평생 무언가를 쥐고 비틀어 온 손이었다.

운설은 그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차가웠다. 그녀는 노파의 손을 화로 쪽으로 가져가 손등부터 천천히 데웠다. 마디가 풀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날이 추워 굳은 거예요. 뜨거운 물에 자주 담그세요."

노파는 대답 대신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운설은 굽은 마디를 하나씩 눌러 폈다. 노파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가 가라앉았다.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눈이 오면 사람들은 약방을 찾지 않았다. 발이 빠지는 길을 건너오느니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고 하룻밤을 견뎠다. 노파도 어지간히 참다 왔을 것이었다.

노파가 돌아가고, 약방에는 약초 끓는 냄새와 화로의 숨소리만 남았다. 운설은 그 비어 있음을 좋아했다.

그녀는 마른 당귀를 손끝으로 부러뜨렸다. 똑,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손가락 마디를 타고 올라왔다. 잘 마른 약재는 그렇게 운다. 운설은 그 소리를 들으려고 일부러 천천히 부러뜨렸다.

창밖에서 눈이 내렸다. 소리도 없이.

운설은 업둥이였다. 청하 운씨의 가주 운백천이 눈 오는 길에서 거두었다고 했다.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가 눈밭에 놓여 있었고, 울지 않았다고. 운설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대목에서 멈칫했다. 어째서 울지 않았을까. 추웠을 텐데.

어릴 적 운설은 다른 아이들처럼 칼을 배우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운백천은 고개를 저었다. "넌 손이 야무지다. 약방이나 봐라." 그뿐이었다. 서운했지만, 자라면서 그 말이 싫지 않아졌다. 약재를 다룰 때 그녀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가끔 운설은 제 손을 들여다보다 멈췄다. 이 손이 눈밭에 놓이기 전에 무엇을 하던 손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양명(養名)은 운설이었다. 그 전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생각은 김처럼 올라왔다가, 손등이 녹는 동안 흩어졌다.

밤이 깊자 눈이 굵어졌다.

운설은 등을 끄려다 손을 멈췄다. 문밖에서 소리가 났다. 바람은 아니었다. 무언가가 문에 기대어 천천히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녀는 등을 들고 문을 열었다.

눈 위에 한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늙은 사내였다. 흰 눈 위로 검붉은 것이 번지고 있었다. 사내의 등에는 칼이 지나간 자리가 있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추웠겠다. 운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것이었다.

그녀는 등을 눈 위에 내려놓고 사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무거웠다. 운설은 사내를 끌어 문지방을 넘었다.

사내가 눈을 떴다. 흐린 눈이 운설의 얼굴에 닿더니 흔들렸다. 오래 찾던 것을 마지막에야 찾은 사람처럼.

"……너는." 피 거품이 섞인 목소리였다. "너는, 그 눈을 가졌구나."

운설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피를 멎게 하는 것, 사내를 화로 곁에 눕히는 것이었다.

사내가 운설의 소매를 붙들었다. 죽어 가는 손이라기엔 힘이 셌다.

"삭월(朔月)의……" 그가 말했다. "마지막, 아이……"

말은 끝나지 못했다. 사내의 머리가 운설의 어깨로 떨어졌다. 가슴은 아직 얕게 오르내렸다.

눈이 내렸다. 두 사람 위로, 소리도 없이.

입안에서 곶감의 단맛이 천천히 녹고 있었다. 언제 입에 물었는지 운설은 기억하지 못했다. 어울리지 않는 단맛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낯선 사내를 안고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밤, 운설은 자신이 모르던 이름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았더라도, 그녀는 문을 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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